속임수
2021년 2월 05일 11:30,
서울시 종로구 청와대 국가위기상황센터 지하 벙커.
트럼프 대통령과의 통화를 마친 후에도 대통령은 꺼져버린 영상 모니터를 계속해서 바라봤다.
“쉽지 않군.”
이마를 매만지며 짧게 내뱉은 대통령은 비서실과 연결된 인터폰을 눌렀다.
“네, 대통령님.”
“지금 즉시 NSC 소집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일방적인 요청 사항에 국가안전보장회의를 소집한 대통령은 답답한 마음을 풀고자 책상 위에 놓인 작은 상자를 열었다. 그리고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들어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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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2월 05일 12:30,
서울시 종로구 청와대 국가위기상황센터 지하 벙커(NSC 회의실).
1시간 만에 NSC 위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또한, 강이식 합참의장을 비롯한 최호일 합참차장과 각 군 참모총장도 이번 회의에 참석했다.
“본론으로 바로 들어가겠습니다. 트럼프 대통령 즉 미국 정부는 현재 일본 대공습에 대한 모든 작전에 대한 중지를 요청했습니다.”
대통령의 첫 마디에 참석한 위원들과 합동참모본부 장성들은 생각지도 못한 미국 정부의 요청에 할 말을 잃었는지 누구 하나 선뜻 대답하는 사람은 없었다. 이에 대통령은 계속 말을 이어갔다.
“다들 황당해하는군요. 저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미국의 요청에 대해 여러분의 의견을 내주시기 바랍니다.”
대통령은 참석자들을 둘러보고는 팔짱을 끼며 말하자 강현수 국방부 장관이 질문을 던졌다.
“갑자기 중립적인 입장에서 이번 한일전에 관여하는 이유가 뭡니까? 대통령님?”
“이번 일본 공습 중에 일본에 주둔 중인 미군기지의 피해라는 이유라는군요.”
“이건 너무 억지 아닙니까? 미군 기지에 일본 주력 부대를 주둔시켜놓고 그런 말을 할 수가 있는 겁니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미군 기지에 맘먹고 공격한 것도 아니고 요격미사일을 발사한 일본 부대를 보복 차원에서 공격한 것이 아닙니까?”
강현수 국방부 장관은 황당한 이유에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며 거침없이 말을 이었다.
규슈 공습 후 일본 전역에 대한 대공습이 시작된 후 미군 기지에서 주둔 중이던 일본 사드 부대와 반공 부대에서는 한국 전투기에 대한 요격 공격이 있었고 그럴 때마다 한국 전폭기와 폭격기에서 보복성 폭격을 가해 미군 기지에 대한 피해가 발생했다. 하지만 이것은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정당하다고 볼 수 있었다. 처음부터 일본 자위군을 미군 기지에서 내보냈다면 일어나지 않을 일이었다.
“역시 미국은 이해관계에 있어서 일본을 우리 대한민국보다 더 친밀한 동맹국으로 보고 있는 듯합니다.”
오장수 안보실장이 조용한 어조로 말했다.
“예전부터 그렇지 않았습니까? 어쨌든 지금 상황에서는 미국의 요청을 받아들여 대공습을 멈추고 휴전 아닌 휴전으로 가느냐 아니면 요청을 뿌리치고 계속해서 일본을 압박하느냐가 아니겠습니까? 이에 어떤 쪽으로 결정하느냐에 따라 우리 대한민국의 국익을 생각해봐야 할 듯합니다.”
김재학 외교부 장관이 현 상황의 핵심 부분을 지적했다. 이에 대통령이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김 장관님 말이 맞습니다. 이에 실질적 계산을 해봅시다.”
“대통령님! 미국의 요청을 들어주고 한일전을 마무리하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솔직히 지금 상황만 보더라도 일본은 엄청난 군사적 경제적 타격을 입었습니다.”
나성태 비서실장이 조심스럽게 의견을 냈다.
“나 실장님! 지금 와서 이대로 끝낼 수는 없습니다. 제주도는 물론 우리 국군장병들의 희생이 컸습니다. 그렇다고 지금 일본 정부의 종전으로 인한 사과와 전쟁보상을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국방부 장관이 목소리에 힘주어 반대 의견을 냈다. 이에 비서실장은 현실적인 대답을 했다.
“강 장관님! 미국의 요청을 들어주고 미국을 통해 일본 정부의 사과와 피해보상을 요청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일본 정부의 사과와 전쟁 피해보상을 전제로 한 미국 정부의 요청을 받아들인다? 나쁘지 않군요. 좋은 의견입니다. 합참의장?”
“네, 대통령님.”
“합참의장은 할 말 없습니까?”
“저는 군입니다. 대통령님! 국가에서 정한 결정에 충실히 따르는 것이 저희 군인이 해야 할 일입니다.”
기대는 안 했지만 역시나 군인답게 딱딱한 말만 하는 강이식 합참의장의 말에 대통령은 살짝 미소를 보이고는 재차 물었다.
“좋습니다. 이건 만일입니다. 우리가 미국의 요청을 거부한다면 혹여 미군이 움직일 수 있습니다. 미국과 군사적 충돌이 발생한다면 현재 우리나라 군 전력으로 감당할 수 있습니까?”
상당히 위험한 질문이었다. 하지만 합참의장은 망설임 없이 바로 대답했다.
“여러 가지 전력과 전술을 생각해봐야겠지만 현재 우리 군 전력으로 보자면 충분히 승리할 수 있다고 봅니다.”
“러시아와도 현재 교전 아닌 교전 중인 상황에서 미국을 상대로 이길 수 있다는 겁니까?”
대통령은 합참의장의 말이 믿기지 않았는지 재차 질문했다.
“이길 수 있습니다. 대통령님!
이때 비서실장이 대화에 끼어들며 말했다.
“대통령님! 우리가 미국의 요청을 거부했을 때 군사적 보복보다는 총성 없는 경제적 보복이 우려됩니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의 경제적 단합으로 우리의 대외 수출에 압박을 가한다면 경제적 피해는 매우 심각해질 수 있습니다.”
경제학박사 출신이기도 한 비서실장의 말에 회의실은 일순간 웅성거렸고 회의 열기는 갈수록 더욱 뜨거워졌다. 수많은 의견이 오고 간, 이날 회의는 저녁이 돼서야 마무리가 되었다.
회의 결론은 조건부 수용이었다. 이에 3일간의 휴전 아닌 휴전의 시간을 갖고 미국 정부와 재차 회담하기로 했다. 이로써 일본 전역에 대한 대공습 작전은 17시부로 중지되었다. 또한, 금일 새벽 6시에 인천 해군 항에서 출항한 제10상륙함대와 제7기동전단, 제2함대 구축함, 그리고 각가지 상륙 지원함은 작전 중지 명령을 받고 목포항으로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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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2월 05일 17:30,
전북 군산시 제38전투비행단 공군기지.
제38전투비행단의 이글루에는 아침부터 일본 대공습 작전에 투입되었던 주작 전투기에 정비관을 비롯한 여러 정비병이 달라붙어 각가지 정비를 하느라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블랙문 편대의 이글루에서는 누군가의 휘파람 소리가 들려왔다.
금일 밤 10시까지 계획된 일본 대공습 임무가 공군작전사령부의 갑작스러운 중지 명령에
금일 밤 22시에 계획된 일본 대공습 작전이 공군작전사령부로부터 취소되었다는 명령이 내려오자 여섯 번째 출격 준비를 하던 최영호 소령은 잠시 시간적 여유가 생기자 휘파람을 불며 자신의 애마 측면에 킬 마크를 그리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최영호 소령이 그리고 있는 그림은 전투기 모양의 킬 마크가 아닌 금일 낮에 반파시킨 이지스 구축함인 공고함을 그리고 있었다.
“대한민국 공군 중에 아니지, 전 세계 공군 중에 구축함 킬 마크는 나밖에 없을 거다.”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검은색으로 구축함을 그리는 가운데 누군가가 최영호 소령을 불렀다.
“최 소령.”
최영호 소령의 단짝인 화이트엔젤 편대장 전창빈 소령이었다.
“왔냐? 넌 오늘 몇 소티냐?”
전창빈 소령 역시 임무 중단 명령에 따라 잠시 시간을 내 최영호 소령을 보러온 것이었다.
“5소티! 근데 너 뭐 그리냐?”
“보면 모르냐? 구축함 킬 마크다. 하하하.”
“제공기 주제에 네가 구축함을 잡았다고?”
“이 자식은 친구라는 놈이 이렇게 소문이 늦어서야······.”
구축함 킬 마크를 완성한 최영호 소령은 몸을 돌려 V자 손 모양을 보이며 해맑게 웃었다.
“정말이냐?”
“공고함 잡았다. 하하하.”
“정말? 대단한데?”
“그런데 너 지금 여기와도 되냐? 아무리 임무가 취소되었어도 대기해야 하는 거 아냐?”
“비행대대장님한테 물어보니 오늘 출격 임무는 없단다. 들어보니 미국과 어쩌고저쩌고하는가 봐. 그래서 일부 몇 명만 빼고 자유시간이다. 너네도 그럴 텐데? 못 들었냐?”
“그래? 잘됐네. 오늘 온종일 조종만 해서 그런지 온몸이 찌뿌둥한데. 샤워하고 맥주 한잔하자.”
“좋지! 가자! 근데 너 정말 구축함 잡은 거야?”
“이 자식은 속고만 살았나.”
“이 자식 이러다가 나보다 먼저 진급하는 거 아니야?”
“아마도? 그렇게 되면 상급자 대우 확실히 해라! 알았냐?”
“꺼져라.”
“하하하.”
최영호 소령과 전창빈 소령은 티격태격 장난치며 이글루를 빠져나와 비행단 본부 건물로 발걸음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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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2월 06일 15:00,
서울시 광화문 외교부 장관실.
“어서 오십시오.”
김재학 장관은 윌리 골드 미 대사와 함께 온 파란 눈의 사내를 비롯해 여러 사내에게 소파를 가리키며 말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백악관 대외전략협상관 랜디 존슨입니다. 그리고 옆에 있는 친구들은 제 경호원과 보좌관입니다.”
자리에 앉은 파란 눈의 사내는 자신과 함께 온 사내들을 소개했다.
“네, 반갑습니다. 저는 외교부 장관인 김재학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지시에 급히 한국행 비행기를 타고 온 랜디 존슨 협상관은 이번 한일전 종전에 따른 일본에 대한 대한민국의 요구사항을 협상하기 위해 왔다.
“상황이 상황인 만큼 바로 본론으로 넘어가시죠. 한국이 일본에 요구하는 조건은 무엇입니까?”
협상관답게 포커페이스인 랜디 존슨 협상관은 소개가 끝나자마자 본론 얘기를 꺼내 들었다.
“그렇지죠.”
이에 짧게 대답한 김재학 장관은 뒤에서 서 있는 보좌관으로부터 여러 장으로 제본된 서류철을 건네받아 랜디 존슨 협상관에게 내밀었다.
“이것입니다. 한번 보시지요.”
랜디 존슨은 서류철을 받아 천천히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총 8개 조건으로 구성된 내용을 읽어나가던 랜디 존슨은 살짝 미간이 좁히며 서류철을 내려놨다. 이에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윌리 골드 미 대사 역시 서류를 들어 읽어나갔다.
“김 장관님.”
“네, 말씀하세요.”
“조건이 너무 과한 듯합니다.”
“어떤 이유로 과하다 생각하십니까?”
일본에 대한 한국의 요구조건은 총 8가지였다.
1항: 국제 사회에 이번 한일전의 발발 원인을 사실에 따라 거짓 없이 밝히며 대한민국에 대한 정식 항복 선언을 한다.
2항: 1항을 근거하여 일본은 전쟁 발발 원인 국으로 전쟁피해보상금을 20년간 매년 700억 달러(80조 6천억 원)를 매년 1월 1일 대한민국에 지급한다.
3항: 임진왜란 시절부터 일제 강점기 기간까지 불법적으로 약탈한 한국의 모든 문화재에 대해 무조건 반환한다. 이에 일본은 향후 10년간 대한민국의 문화청이 일본에서 한국 문화재에 대한 조사 및 사찰에 대한 사법적 권한을 가질 수 있도록 1년 안에 법 제정을 추진한다.
4항: 일제 강점기 기간 대한제국에 행한 모든 악행은 물론 강제징용자와 위안부 피해자에 대해 국가적 입장에서 정식으로 사죄한다. 특히 위안부 할머니에 대해서는 모든 분에게 찾아가 진심 어린 사죄를 한다. 그리고 모든 피해자에 대해서는 적절한 피해보상을 한다. 피해 보상금은 1인당 500만 달러(58억 원)로 한다.
5항: 대마도(쓰시마섬) 영토를 대한민국에 영원히 이양한다. 또한, 독도에 대한 대한민국의 영토임을 국제 사회에 선언하며 지금까지 일본 영토라고 주장했던 모든 사실에 대해 사과한다. 그리고 대한민국과 일본 사이의 바다를 ‘동해’란 이름으로, 대마도가 위치한 해협을 ‘대한해협’으로 정한다.
6항: 일본은 군국주의를 버리고 2차 세계 대전의 전범국답게 보통국가 선언을 철회하고 군대를 보유할 수 없는 국가로 돌아간다. 또한, 제2의 야스쿠니 신사와 같은 2차 세계 대전 A급 전범자의 위폐를 놓고 참배하지 않는다.
7항: 현 아베 신조 내각은 해산하며 새로운 내각을 구성한다.
8항: 1항부터 7항 모든 조건을 수용한다면 대한민국은 일본에 대한 군사적 행동을 즉시 멈추며 수용하지 않을 시 대한민국은 수용할 때까지 지속적인 군사적 행동을 가한다. 이 조건의 수용 기간은 2021년 3월 8일 18시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