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05화 (205/605)

남벌

2021년 2월 05일 09:40,

일본 이오즈섬 상공.

양세봉함(SSP-85)을 잡기 위해 해수면 바로 위에서 낮게 비행하던 SH-60K 대잠헬기에 하얀 빛줄기가 뿌려졌다. 헬기를 스치고 지나친 레이저 빔은 이내 해수면에 작은 물기둥을 여러 개 만들었다.

쮸웅쮸웅쮸웅쮸웅쮸웅~

팟팟팟팟~

갑작스러운 레이저 벌컨 빔이 대잠헬기의 기체와 로터 부위에 착탄 되자 기체 곳곳에서도 검붉은 연기와 화염이 치솟았다. 또한, 로터마저 부러지자 중심을 잃은 대잠헬기는 그대로 오른쪽으로 빙글빙글 돌며 해수면으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투탓탓탓탓탓~

쏴아아아~~ 콰앙~

해수면과 부딪친 SH-60K 대잠헬기는 거대한 물보라를 만들고는 이내 작은 폭발과 함께 바닷속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상공에서는 CF-21P 주작 전투기 2기가 유유히 비행하며 또 다른 SH-60K 대잠헬기를 공격하기 위해 각기 기동을 펼치며 레이저 벌컨 빔을 뿌려댔다.

동료 헬기의 추락에 놀란 근방에서 임무를 수행하던 제1호위대군 소속의 대잠헬기들은 이내 묵중한 기체를 사방으로 기울이며 회피기동에 들어갔다. 하지만 신속한 회피기동에도 불구하고 CF-21P 주작 전투기에서 빛 속도로 쏟아지는 레이저 벌컨 빔에 헬기 기동의 한계를 보이며 속수무책으로 격추당하기 시작했다.

콰앙~ 콰앙~ 콰르르릉~

공중에서 폭발하던가 아니면 처음 대잠헬기처럼 바다로 추락했다. 어떤 대잠헬기에서는 검붉은 연기가 뿜어져 나오자 승조원 일부는 헬기에서 뛰어내려 바다로 빠지기도 했다.

8번째 대잠헬기가 해수면 10여 미터 상공에서 폭발하는 장면을 바라보며 다음 표적을 찾기 위해 레이더를 확인하던 최영호 소령의 항전 계기판에서 RWR(Radar warning receiver) 경보음이 울렸다.

삐이.

최영호 소령에게 레이더 전파를 발신한 정체는 현재 유일하게 살아남은 제1호위대군 소속의 이지스 구축함인 공고함(DDG-173)이었다. 이러한 정보를 확인한 최영호 소령은 윙맨인 오길성 대위에게 지시를 내렸다.

- 블랙문1, 컨택 블랙문3, 뮤직 온! 스파이크 나인! 나인! 투투 네크이드.

- 블랙문3, 카피 뎃.

- 블랙문1은 타켓 스위치! 밴딧 4기는 블랙문3가 처리한다.

- 블랙문3, 편대장님! 혼자서 이지스 구축함을 상대하겠다는 겁니까?

오길성 대위는 최영호 소령의 지시에 놀랐는지 되물었다.

- 블랙문1, 바쁜데 두 번 말하게 하지 마!

- 블랙문3, 카피 뎃.

오길성 대위의 대답이 들린 순간 자신을 노리는 미사일이 발사되었다는 경보음으로 바뀌었다.

삐빅삐빅삐빅삐빅삐빅

이에 최영호 소령과 오길성 대위의 주작 전투기는 강력한 ECM(Electronic Counter Measures) 방출 출력을 최대치로 올리며 이내 브레이크 턴 기동과 함께 플레어와 채프를 동시다발적으로 상공에 뿌렸다.

크게 선회각을 두고 원형을 그리며 회피기동에 들어간 주작 전투기 2기를 향해 공고함에서 발사한 SM-2 대공 미사일 2기가 무서운 속도로 날아왔다.

오길성 대위의 기체를 노리던 SM-2 대공 미사일은 뿌려대는 채프 즉 금속 조각과 충돌한 후 폭발했고 최영호 소령을 노리던 SM-2 대공 미사일도 고기동 회전 회피기동으로 따돌렸다.

공고함(DDG-173)에서 발사한 대공 미사일을 회피기동으로 따돌린 최영호 소령의 기체는 이내 공고함(DDG-173) 쪽으로 최소각 선회를 한 후 날아갔다. 2차 세계 대전 때나 있을법한 구축함과 전투기 간의 직접 교전이 막 시작되고 있었다. 그것도 이지스 구축함을 상대로 공대함 미사일이 아닌 12mm 레이저 벌컨 빔만으로 말이다. 3자 입장에서 보자면 지금 최영호 소령은 매우 무모한 행동으로 보일 수 있었다. 하지만 최영호 소령은 이러한 불리함을 개의치 않고 공고함(DDG-173)의 함수를 향해 저돌적으로 파고들었다.

드르르르륵~ 드르르르륵~ 드르르르륵~ 드르르르륵~

마하 5에 달하는 속도로 고속기동을 하는 주작 전투기가 공고함과의 거리가 좁혀지자 컴퓨터로 제어되는 2문의 CIWS 20mm 펠링스 6연장 개들링건에서 불이 뿜어져 나왔다. 분당 3,000발의 발사 속도를 자랑하는 기관포탄이 전투기를 스치며 지나갔다.

마하 4에 달하는 속도에서 드릴 같은 회전 기동으로 쏟아지는 펠링스 기관포탄을 가까스로 피하는 상황에서 최영호 소령은 헬멧 바이저의 사각 조준점을 오직 공고함의 함교를 조준하는 데만 신경을 집중했다. 그리고 이내 조준점이 공고함의 함교에 지정되자 조종간 손잡이의 검지를 당겼다.

쮸웅쮸웅쮸웅쮸웅쮸웅

공고함(DDG-173)의 상공을 스치고 지나가며 12mm 레이저 벌건 빔이 함교를 향해 쏟아졌고 이내 함교 내 곳곳에 착빔이 형성되면서 불꽃을 터졌다.

팟팟팟팟~ 팟팟팟팟~

강화유리의 파편이 함교 내로 쏟아지며 항전 장비를 비롯한 각가지 콘솔에 작은 스파크가 튀겼다. 그리고 운이 나쁘게도 레이저 빔에 맞은 승조원들이 바닥에 나뒹굴며 쓰러졌다. 공고함(DDG-173)의 함장 마쓰야마 일등해좌 역시 유리 파편에 왼쪽 팔을 다치고는 콘솔 뒤편에 몸을 숨겼다.

“나가모토 부함장! 괜찮나?”

바닥에 쓰러진 승조원 중 부함장을 향해 소리쳤다. 하지만 부함장은 아무 말도 없었다. 부함장은 상체와 하체가 분리되어 함교 바닥 전체에 검붉은 피를 채우고 있었다. 부함장은 재수 없게도 레이저 벌컨 빔을 맞고 그대로 즉사했다.

한편 공고함(DDG-173)을 스치고 지나친 최영호 소령은 끊임없이 꼬리를 물고 쏟아내는 펠링스 기관포탄을 가까스로 뿌리쳤고 순간 저속으로 살 덴 기동을 펼쳐 다시 한번 공고함의 함미쪽으로 날아갔고 이번엔 헬기 격납고 상단에 탑재된 펠링스를 노렸다.

드르르르륵~ 드르르르륵~ 드르르르륵~

파팟파팟~

빗발치는 펠링스 기관포탄에 재수 없게도 주작 오른편 주익 날개에서 연쇄적인 스파크가 튀겼다. 이에 놀란 최영호 소령은 고개를 돌려 주익 날개를 살폈다. 하지만 리퀴드메탈 합금으로 코팅된 주익 날개는 20mm 기관포탄 몇 발쯤은 충분히 견디어냈다.

“휴우~ 이거 심장 쪼들리는구만~”

잔뜩 인상을 찌푸린 최영호 소령은 두 눈을 부릅뜨고는 헬멧 바이저의 조준점이 정확히 함미에 있는 펠링스에 고정되자 최영호 소령은 어김없이 검지를 당겼다.

쮸웅쮸웅쮸웅쮸웅쮸웅~ 쮸웅쮸웅쮸웅쮸웅쮸웅~

드르르르르르륵~ 드르르르르르륵~ 드르르르르르륵~

펠링스 기관포탄과 레이저 벌컨 빔이 서로를 향해 교차하며 날아갔다.

팟팟팟팟

펠링스의 원통형 레이더에 여러 발의 레이저 빔이 착빔이 되자 내부 폭발이 일어났고 엄청난 속도로 돌아가던 6연장 개들링건은 이내 멈춰버리고는 더는 움직이지 않았다.

“좋아! 이제 하나 남았다.”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도 신이 난 최영호 소령은 조종간을 당기며 기체를 90도에 이르는 각도로 하늘로 치솟는 기동을 펼쳤다. 하지만 함교 앞부분에 탑재된 펠링스가 사격 각도를 잡았는지 주작 전투기를 후미를 노리며 기관포탄을 뿌렸댔다. 이에 펠링스 주위에는 20mm 탄피가 수북하니 쌓여갔다.

드르르륵~ 드르르륵~ 드르르륵~

하늘로 고기동을 펼치는 주작 전투기의 후미 부위에 가끔 스파크가 튀기기는 했지만, 다행히도 플라즈마 엔진 안쪽으로 들어오는 직격탄은 없었다. 잠시 후 일정 고도에 오른 주작 전투기는 이내 속도를 줄이고 전투기의 기수를 앞으로 꺾으며 저돌적인 하강 기동으로 공고함의 상부를 향해 추락하듯 하강했다. 그리고 12mm 레이저 벌컨 빔을 사정없이 뿌렸다.

수많은 하얀 빛줄기가 공고함의 상부 부위에 명중하며 불꽃 향연이 연출됐다. ‘적어도 50mm 정도의 레이저 벌컨이었다면 침몰은 아니더라도 반파 정도는 시킬 수 있을 텐데’라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조종간을 쥐어 잡은 오른손 검지에 더욱 힘을 주었다.

쮸웅쮸웅쮸웅쮸웅쮸웅~

파팟파파파파파팟~

공고함(DDG-173)의 마스트를 비롯한 연돌과 각가지 레이더 등이 레이저 벌컨 빔에 벌집이 되며 너덜너덜해졌고 마지막으로 주작 전투기를 격추하기 위해 불꽃을 터뜨리며 기관포탄을 뿌려대는 두 번째 펠링스에 조준점을 맞추고 재차 사격을 가했다.

쮸웅쮸웅쮸웅쮸웅쮸웅~

파팟파팟팟팟팟

쿠아앙~ 콰앙아~

수십 발의 레이저 빔이 펠링스에 꽂혔다. 그리고 이내 내부 유폭과 함께 펠링스 전체가 폭발하며 파편들이 사방으로 날아가는 가운데 주작 전투기는 L형 형태로 공고함(DDG-173)을 비스듬히 스치며 앞으로 날아갔다. 이지스 구축함을 잡았다고 생각한 최영호 소령은 신이 난 나머지 조종 중에 양 주먹을 들어 흔들며 포효했다.

“좋아! 이제 네놈은 손발 잘린 장애자닷! 하하하.”

CLWS(근접방어체제) 공격 수단인 펠링스 2문이 모두 파괴된 공고함(DDG-173)은 주작 전투기를 공격할 수단은 없었다. 이에 공고함(DDG-173)과 최대한 가깝게 근접거리에서 해수면 위로 낮게 날며 크게 선회 기동을 펼친 최영호 소령은 이지스 구축함의 눈이라 할 수 있는 3차원 고정밀 위상배열 레이더를 부위를 조준점에 지정했다.

쮸웅쮸웅쮸웅쮸웅쮸웅~

팟팟팟팟

함교 아래 두 곳의 이지스 레이더 외부 벽면에 수백 개의 레이저 벌컨 빔이 꽂히자 불꽃이 튀기며 파편들이 사방으로 튀겼다. 그리고 검은 연기가 서서히 피어올랐다. 이렇게 최영호 소령은 몇 분간 공고함을 선회하며 더 이상의 이지스 레이더를 운용할 수 없을 정도로 레이저 벌컨 빔의 출력을 다 사용할 때까지 벌집을 만들어버리고는 고도를 높였다.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공고함 곳곳에서는 작은 폭발들이 연이어 일어났고 검붉은 연기가 공고함(DDG-173) 선체를 덮을 정도로 피어올랐다.

- 블랙문1, 컨택 블랙문3, 임무 완수했나?

- 블랙문3, 컨택 블랙문1, 헬기 모두 격추 완료! 카피!

- 블랙문1 컨택 블랙문3, 기지로 복귀한다. 고도 20,000.

- 편대장님, 이지스 구축함까지 작살을 내셨습니까?

- 내가 누구냐? 대한민국 공군 조종사 중 Best of the best 아니냐?

최영호 소령은 입이 찢어질 정도로 웃으며 윙맨인 오길성 대위와 함께 나란히 비행하며 애프터 버너를 실행했다.

★ ★ ★

2021년 2월 05일 11:00,

서울시 종로구 청와대 국가위기상황센터 지하 벙커.

1시간 전, 합동참모본부의 상황실에서 일본 대공습 작전을 지켜보던 대통령은 청와대로부터 미국 대통령이 핫라인으로 통화 요청이 왔다는 보고를 받고 급히 청와대 국가위기상황센터에 돌아와 트럼프 대통령과 영상통화를 했다.

“그게 대체 무슨 말입니까? 일본에 대한 공습을 중지하라니요?”

“말 그대로입니다. 서 대통령.”

“저번에 미국은 이번 한일전을 중립입장에서 지켜보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네, 그랬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릅니다.”

“뭐가 다르단 말입니까?”

대통령은 간신히 화를 누르며 최대한 침착한 음성으로 되물었다.

“이번 한국 공군의 공습에 우리 미군 기지까지 피해를 보았다는 보고가 계속해서 올라오고 있으며 현재 펜타곤에서 이번 건에 대한 비상회의가 소집되었습니다.”

“이 부분은 저번에도 정중히 말하지 않았습니까? 중립적 입장이라면 미군 기지에 주둔 중인 일본 자위군을 모두 내보내달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렇다고 같은 동맹인 미군 기지에 공격을 가하면 어떻게 합니까? 이것은 자칫 동맹 파기는 물론 우리 미국과의 전면전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화면상 보이는 트럼프 대통령의 자세나 표정은 매우 거만했다. 이에 대통령은 탁자를 치며 반박했다.

“동맹 파기라고 했습니까? 미국이 지금까지 우리 대한민국을 일본만큼 동맹 취급을 해줬습니까?”

“아니, 서 대통령! 우리 미국이 동맹 취급을 안 해준 건 또 뭐가 있다고 그러는 겁니까?”

“그래요? 한 가지만 묻겠습니다. 동맹이라서 일본에 주일 미군 전략 무기까지 대여해 주며 운용 능력까지 전수해줬습니까? 같은 동맹 공격하라고요?”

서현우 대통령은 급기야 자리에서 일어나 따지듯 물었다. 이에 살짝 당황한 트럼프 대통령의 동공이 흔들렸다. 이를 간파한 서현우 대통령은 더 세차게 밀어붙였다.

“B-1B 랜서는 물론 줌왈트급 구축함과 F-22 전투기까지 대여해 준 것에 대해 우리 대한민국은 미국에 그 어떠한 불평 한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서 대통령! 그것은 미·일 군사강화조약에 따른 조치입니다. 아무 문제 될 게 없습니다.”

뻔뻔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트럼프 대통령의 말에 서현우 대통령은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고 뭔가를 결심했는지 힘주어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님! 일본에 무슨 꼬투리나 약점을 잡혔습니까? 아니면 자본주의의 돈에 휘둘려 이렇게 나오시는 겁니까?”

“말이 심하지 않소? 무슨 우리 미국이 일본에 약점을 잡히거나 돈에 휘둘리다니요?”

“아닙니까?”

양 국가 최고 지도자의 영상통화는 시간이 갈수록 더욱 험악해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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