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멸의 시작!
2021년 2월 05일 01:15,
서울시 용산구 B2 벙커(국군 합동지휘통제소 상황실).
10분 전, 해군작전사령부로부터 믿을 수 없는 비보를 전해 받았다.
아폴론 정찰위성으로 촬영된 연합함대는 그야말로 지옥과 같았다. 12척에 달하는 구축함과 호위함 중 현재 바다 위에 떠 있는 수상함은 총 9척으로 3척은 이미 바닷속으로 침몰한 상태였다. 그리고 9척 중에서도 4척은 검붉은 화염과 연기를 피어오르며 당장에라도 바닷속으로 침몰할 수 있는 잔인한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다행히 전략요격위성인 제우스 1호를 긴급 투입해 정체불명의 극초음속 금속물체를 요격하여 더 이상의 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
하지만 한중전과 2차례의 일본 해상자위군과의 해전을 통틀어 이렇게 참혹하게 대한민국 해군이 당한 건 처음인지라 이 광경을 지켜본 합동참모본부의 참모진들은 뭐라 말할 수 없는 암담함과 분노가 치밀어 올랐고 상황실 전체 분위기는 그야말로 찬물을 끼워진 듯 싸늘했다.
여러 참모진 중 합참차장인 최호일 차수가 허벅지를 주먹으로 치며 고성을 지르며 욕을 퍼부었다.
“어떻게 저리 당한단 말이오, 이런 종간나 새끼들!”
“20분 전만 해도 별 피해 없이 제4호위대군을 격파하고 있었던 연합함대가 이렇게 당하다니······.”
작전본부장인 김용현 중장도 참혹한 장면에 어이없어하는 가운데 통신관이 합동참모본부 상황실 전체에 울릴 정도로 크게 말했다. 이에 상황실에 있는 모든 참모진의 모든 시선이 통신관에 쏠렸다.
“현재 아폴론 3호로부터 정체불명의 수상함 포착했다는 보고입니다. 현재 데이터 링크 중입니다.”
잠시 후 운용오퍼레이터의 손놀림이 순간적으로 빠르게 키보드를 쳤다.
“2번 스크린에 띄우겠습니다. 화면에 보이는 위치는 오키섬 남동단 18km 북위 36° 1'27.16" 동경 133°37'35.21"입니다.”
통신관이 재차 큰 소리로 말했고 2번 스크린에 화면이 바뀌며 뭔가의 영상이 보였다. 고도 36,000km에서 고해상도 초정밀 광학렌즈와 여러 비전 모드로 탐색하던 아폴론 3호가 촬영하여 보이는 화면이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의 해수면 위로 자기장 비전 모드로 보이는 조금은 이색적인 형태의 물체 4개가 1km 간격으로 하얀 거품 파도의 항적을 그으며 저속으로 항진 중이었다.
“확대 가능한가?”
강이식 합참의장이 말했다.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대답과 동시에 통신운용관은 아폴론 3호 관제실에 확대 요청을 하자 2번 스크린의 분할된 화면 중 한 개 화면이 점점 더 확대되더니 수상한 물체를 뚜렷하게 보였다.
자기장 비전 모드로 수십 개의 색상으로 물체 외형이 표현되자 누군가가 소리쳤다. 그는 해군 전술보좌관 안형국 소장이었다.
“저, 저건 줌왈트급 구축함 같습니다.”
미 해군의 이지스 체계의 차세대 구축함으로 2016년 미국 동부 메릴랜드주에 있는 볼티모어항의 노스 로커스터 포인트에서 줌왈트급 구축함의 초도함인 줌왈트(DDG-1000)가 공식적으로 취역했다.
줌왈트함(DDG-1000)은 미 해군이 지금까지 운용한 구축함을 비롯한 해상 전투함에서 가장 강력하고 최첨단 기술을 적용한 새로운 차세대 구축함으로 완벽한 스텔스 설계와 도가름선형 텀블홈 선체, 함급 대비 147명이라는 가장 적은 승조원 운용과 함께 혁신적인 IPS 전기추진체계, 250km 사거리에 달하는 128MJ급 레일건과 최신예 장거리 미사일 등의 무장을 갖춘 각종 첨단기술이 집약된 미 해군의 강력한 해상전력으로 부상했다.
현재 줌왈트급 구축함은 총 12척이 정식으로 취역한 상태였고 이 중 8척이 태평양함대에 배치되었고 미 7함대에 4척이 배속되었다.
“줌왈트?”
“줌왈트면 미 해군의 차세대 구축함?”
“저게 왜 여기에?”
안형국 소장의 말에 여기저기에서 웅성거리는 가운데 강이식 합참의장이 재차 물었다.
“확실한가, 안 소장?”
“네, 확신합니다. 현재 자기장 비전 모드로 보이는 건 도가름선형 텀블홈 선체 모습입니다. 이러한 형태는 줌왈트급 수상함 외는 없습니다.”
“기레티면 미제 놈들이 이번 한일전에 끼어들었다는 얘기가 아닙네까?”
“차장님! 그건 섣불리 판단할 수는 없을 거 같습니다.”
“아니면 뭐갔습네까?”
“엊그제 제주도를 공습한 B-1B 랜서를 보더라도 현재 일본에 주둔 중인 미군의 모든 군사 장비가 일본 자위대에 대여형식으로 전달되어 운용되고 있습니다. 아마도 줌왈트급 구축함 역시 일본 해상자위대에서 운영할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강이식 합참의장이 조용한 어조로 대답하자 최호일 합참차장이 바로 받아쳤다.
“이거이 말만 중립적 입장이디 한일전에 참전한 거나 마찬가디 아닙네까? 확실한 조치를 취해야디요. 지금 미루고 있는 미제 위성에 대한 공격을 당장 감행해야 해야 된다고 생각합네다.”
지난 3일 서현우 대통령의 위성 공격 지시 이후 합동참모본부에서는 1차 일본 군사위성에 대한 공격을 감행했고 미국 군사위성을 공격하는 결정은 참모진들의 의견에 따라 일본과의 전쟁 양상을 지켜본 후 결정하기로 했다. 그만큼 합동참모본부의 참모진들은 미국 군사위성을 공격한 이후 후폭풍에 대한 부담감이 매우 컸다.
“그 건은 이후 회의를 통해 결정합시다. 지금은 연합함대의 안전과 대응방안이 우선입니다.”
최호일 차수의 말에 얘기가 삼천포로 빠지자 강이식 합참의장은 현 시급한 상황을 주지시키고는 이내 정보본부장에게 질문했다.
“줌왈트급 구축함에 대한 정보 확인되는가?”
“네, 기본적인 정보는 확인됩니다.”
“좋아! 스크린에 띄어주게.”
정보본부장의 부관인 이내 상황실 콘솔로 이동하여 뭔가를 조작했고 이내 3번 스크린에 줌왈트급 구축함에 대한 제원 정보가 상세히 올라왔다.
줌왈트급 구축함의 무장 중 강이식 합참의장의 눈에 띄는 항목이 있었다. 바로 128MJ급의 레일건이었다.
“저 레이건의 상세 정보를 알 수 있는가?”
“네, 정보에 의하면 128MJ급 레일건은 2019년부터 모든 줌왈트급 구축함에 AGS 155mm 62구경장 함포를 대신해 교체한 차세대 초전자포로 사거리와 탄속은 비밀에 싸여 있습니다.”
“대략적으로 말한다면 어느 정도 성능일까?”
“음! 대략 사거리는 200km 내외일 것이고 탄속은 마하 6 이상은 충분합니다.”
“연합함대에서 보내온 정보로는 마하 8 이상의 작은 금속물체라 했지?”
“네,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저 레일건으로 우리 연합함대가 당한 거 같군!”
“아무래도 그런 듯합니다. 의장님!”
“현재 충무공함은 어디에 있나?”
이에 상황실 메인 스크린에는 충무공이순신함(CG-1101)을 표기한 붉은 점이 깜박였다.
“제12호위대(구레지방대)를 괴멸시킨 후 혼슈 해안지대의 방공 부대를 공격하던 중 긴급 명령을 받고 현재 연합함대 방향으로 최대속도로 항진 중입니다. 대략 5분 정도면 연합함대의 대공 방어 인계점 안에 도달합니다.”
“다행이군, 최대한 침몰한 함정의 승조원들을 구출한 후 후방으로 최대한 후퇴하라고 전하게.”
“알겠습니다.”
12호위대(구레지방대)를 괴멸시킨 충무공이순신함(CG-1101)은 바로 연합함대를 지원하려 했으나 혼슈 해안지대의 방공 부대와 연합함대를 공격한 제7지대함미사일연대를 공격하기 위해 잠시간 위치를 고수한 채 함대지 미사일 공격을 퍼붓던 중 연합함대가 공격당했다는 소식에 급히 선회하여 최고속도 60노트로 항해 중이었다.
★ ★ ★
2021년 2월 05일 01:20,
울산시 동단 121km 해역(충무공이순신함(CG-1101)).
“함장님! 전투지휘실로부터 라스트 샷 요격 사거리에 진입했다는 보고입니다.”
“즉시 요격절차에 들어가도록!”
부함장의 보고 소리에 안윤준 함장은 초조한 음성으로 명령을 내렸다.
“네, 요격절차 들어가겠습니다.”
연합함대로부터 50km 이내로 진입한 충무공이순신함(CG-1101)은 제우스 1호와 더불어 연합함대로 쏟아지는 레일건의 금속탄 요격에 들어갔다.
총 6문의 22mm 라스트 샷은 작동 기계음을 울리며 마하 8에 달하는 속도로 날아오는 금속탄을 향해 하얀 빛줄기를 방출했다. 어두운 밤하늘로 뿌려지는 6개의 빛줄기는 그야말로 화려하게 보였고 빛줄기에 격추당한 금속탄은 사방으로 흩어지며 불꽃 쇼가 연출했다. 이런 불꽃 쇼는 연합함대의 전방위 상공에서 계속해 이어졌다. 이런 와중에 안윤준 함장은 통신 수화기를 들었다.
“전술통제관?”
“네, 함장님!”
“지금부터 4호위대군이든 합참에서 통보한 줌왈트급 구축함이든 레이더에 탐지되는 대로 아바리스 미사일로 모두 끝장낸다.”
“네, 알겠습니다.”
명령을 마치고 통신 수화기를 내려놓은 안윤준 함장은 수평선 넘어 검붉은 화염에 이글거리며 아수라장이 되어버린 연합함대가 있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리고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태조대왕함(DDG-995)의 김윤환 함장과 안윤준 함장은 8촌 간이었다. 길운석 제독 역시 안윤준 함장의 해군사관학교 선배이자 존경하는 인물 중의 한 명이었다. 이렇게 친했던 해군사관학교 선후배와 수많은 부사관을 포함한 수병들의 전사 소식에 안용준 함장의 마음은 매우 무거웠다.
“함장님! 현재 오키섬에서 방출하는 강력한 전파 교란에 레이더 탐지가 방해를 받는 상태입니다. 좀 더 거리를 좁혀야 가능할 거 같습니다.”
아폴론 3호의 정찰위성으로부터 데이터 링크가 된 충무공이순신함(CG-1101)은 현재, 줌왈트급 구축함 4척과 제4호위대군 함정 위치를 탐색하고 있었으나 오키섬에서 방출하는 강력한 전파 교란에 자체 레이더로는 확인할 수 없었다.
“알았네. 현재 적함과 거리는?”
“4호위대군는 227km, 줌왈트급 구축함전대와는 241km로 추정됩니다.”
“레이더에 탐지되면 추가 명령 없이 아바리스 미사일로 공격하도록.”
“알겠습니다.”
통신을 마친 안윤준 함장은 항해장을 바라보며 추가 명령을 내렸다.
“항해장! 방위각 0-9-5 우현 반 타! 최대속도로 항진!”
“방위각 0-9-5 우현 반 타! 최대속도 전속 항진!”
★ ★ ★
2021년 2월 05일 01:20,
일본 오키섬 남동단 18km 해역(줌왈트급 구축함전대).
조금은 생소한 형태로 하얀 거품 항적을 일으키며 유유히 항진 중인 4척의 수상함 함수에 장착된 레일건은 계속해서 서단 방향으로 쉬지 않고 금속탄을 발사하고 있었다.
이렇듯 실전 해상전에 투입되어 레일건을 발사하는 이 수상함은 바로 미 해군 7함대 소속이었던 줌왈트급 1번 함 줌왈트함, 2번함 마이클 몬수어함, 3번 함 룬던 B 존스함, 4번함인 앤더우디함이었다.
미·일 군사강화조약의 목적으로 미 제7함대로부터 줌왈트급 구축함 4척을 대여받은 해상자위군은 서둘러 인수·인계 절차를 걸쳐 운용 능력을 전수받은 후 혼슈와 홋카이도 해구를 통해 은밀히 이동한 후 오키섬을 방패 삼아 제4호위대군과 해상전을 치르고 있는 한국 연합함대를 향해 레일건으로 기습공격을 감행했다.
현재 줌왈트급 구축함 1번 함인 줌왈트함 함교에는 미 해군 장교 여러 명으로부터 운용 지원을 받으며 일본 해상자위군 제독이 지휘하고 있었다. 그는 바로 제1항모전단의 전단장인 야마모투 젠쥬르 제독이었다.
저번 독도해전에서 일본 해상자위군의 첫 제1항모전단이 충무공이순신함(CG-1101)에 괴멸 수준의 패배를 당하고 본인 역시 가까스로 살아남은 야마모투 젠쥬르 제독은 이내 줌왈트급 구축함전대 지휘관으로 보직을 바꾼 후 저번 독도해전의 패배를 만에 하고자 이를 갈고 있었다.
초반 레일건 기습공격은 제대로 먹혔다. 한국 연합함대의 대공망을 책임지는 이지스 구축함 3척이 피격당했고 그중 2척을 침몰시키는 대단한 전과를 올렸다. 이후 4척의 구축함과 호위함까지 반파 이상의 심각한 피해를 주었다. 이에 야마모투 젠쥬르 제독은 연합함대를 완전히 수장시키고자 계속해서 레일건 공격을 지시했으나 어찌 된 영문인지 어느 순간부터 레일건의 금속탄은 모두 요격을 당했다.
“대체 레일건 금속탄을 요격하는 게 무엇인가?”
야마모투 젠쥬르 제독은 알 수 없는 영문에 신경질적으로 반응했다. 이에 옆에서 지도하던 미 해군 장교들도 모르겠다는 듯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을 회피했다.
한국의 전략요격위성인 제우스 1호와 충무공이순신함(CG-1101)이 레일건의 금속탄을 모두 요격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들은 알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