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심
2021년 2월 03일 09:30,
서울시 종로구 청와대 국가위기상황센터 지하 벙커(대통령 집무실).
일본의 첫 반격을 상황실에서 지켜보며 날밤을 꼬박 새운 강이식 합참의장은 국방부 장관과 함께 국가위기상황센터 지하 벙커를 방문했다. 총체적인 제주도의 피해 현황을 보고하기 위함이지만 더 중요한 것에 상의하기 위해서였다. 그것은 중립을 표방한 미국이 간접적으로 일본을 지원하는 문제였다. 이에 대통령 집무실에는 고위 관료들이 참석한 가운데 강이식 합참의장의 한일전과 관련된 여러 보고가 이어졌다.
그리고 강이식 합참의장의 보고가 끝난 후 대통령은 깊은 고뇌에 빠져 있는지 창밖 넘어 하얀 눈으로 뒤덮인 북악산 정상을 바라봤다. 그리고 잠시 후 침묵을 깨고 외교부 김재학 장관을 바라보며 넌지시 질문을 던졌다.
“김 장관!”
“네, 대통령님!”
“미국이 왜 이렇게까지 일본을 지원하는 이유가 무엇이라 생각합니까?”
어려운 질문이었다. 하지만 김재학 장관 이내 뒷머리를 한번 쓰다듬고는 간단하게 대답했다.
“돈입니다. 대통령님! 예전 이데올로기 때에는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공산주의와 대립하는 구도였다면 지금은 이데올로기는 사라지고 자본주의에 입각한 오직 자국의 이익에 따른 관계로 국제정서는 흘러갑니다. 이에 한국보다는 일본이 미국에 있어서 돈이 된다고 판단했을 것입니다.”
“현시점에서 경제력으로 보자면 우리 대한민국이 일본을 추월하지 않았습니까?”
“네, 대통령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경제력으로 보자면 이제 일본은 우리 대한민국과 비교 대상이 아닙니다.”
의아해하는 표정으로 대통령은 재차 질문했다.
“그렇다면 강 장관 말대로 미국은 우리 대한민국과 동맹 관계를 더 우선으로 해야지 않겠소이까?”
“대통령님! 한 가지 놓친 것이 있습니다. 우리 대한민국은 2019년 한미전시작전권은 물론 주한 미군까지 모두 철수하였습니다. 경제적 발전과 더불어 군사력까지 증강되어 이제 미국의 군사 무기가 필요치 않은 상황입니다. 하지만 일본은 그렇지 않습니다. 세계 순위에 드는 경제력의 자본을 바탕으로 지금까지 무수히 많은 미국 군사 무기를 수입하면 미국의 돈줄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즉, 경제 대국인 두 국가 중 자국의 무기를 수입하는 국가와 자국의 무기는 필요치 않고 도리어 자국의 군사력을 능가하려는 국가, 어느 국가를 선택하겠습니까?”
단편적인 이유이긴 했지만 현 미국의 입장을 제대로 분석한 말이었다.
“미국이 그 정도까지 자본주의에 빠져 있을 거라고는 생각되지 않지만, 그렇다고 아니라고 말하기도······.”
“대통령님! 김재학 장관의 말에 동의합니다.”
나강수 안보실장이 상체를 앞으로 숙이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현 국제정세는 오직 자본주의에 입각합니다. 이데올로기는 이제 옛말이며 이제는 얼마나 자국의 이익에 반하느냐에 따라 각 나라의 국제정세는 순식간에 정책을 바꾸고 있지 않습니까? 특히 미국은 2017년 트럼프 정권이 들어서며 전 정권과는 반대로 미국 우선주의에 빠져 있습니다.”
“그래요. 나 실장! 무슨 말인지 잘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한일전을 중립입장에서 보겠다며 뒤로는 일본을 지원하는 미국에 대한 방안을 찾아야겠군요. 무슨 좋은 의견들 있습니까?”
대통령의 질문에 다시 한번 대통령 집무실은 잠시 침묵이 흘렀으나 이내 여러 고위 관료들의 의견이 오가며 뜨거운 열기로 바뀌었다.
★ ★ ★
2021년 2월 2일 10:00,
일본 도쿄 내각 비상안전상황실.
반은 성공, 반은 실패인 일본의 첫 반격작전! 이것이 통합막료감부의 이번 반격작전에 대한 결론이었다.
아베 총리는 양에는 차지 않았지만 나름 성과를 거둔 통합막료감부의 지휘관에게 격려의 말을 전했다.
“마사키 통합막료장! 수고했소이다. 하지만 조센징에 대한 나의 분노는 이것으로는 만족하지 못하오. 무슨 말인지 알겠소?”
“네, 알겠습니다. 아베 총리님의 기대에 저버리지 않도록 적극적인 공세를 취하겠습니다.”
“당연히 그래야지요. 한반도 본토는 아니더라도 제주도 정도는 점령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주시오.”
“네, 현재 상륙부대와 장비에 대해 대대적 정비 및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좋소이다. 제주도만 점령해도 10년간 막혔던 체증이 확 뚫릴 겁니다. 하하하.”
★ ★ ★
2021년 2월 03일 15:00,
서울시 용산구 B2 벙커(국군 합동지휘통제소 회의실).
“어떻게 되었습니까?”
하이퍼루프 모선을 타고 B2 벙커로 돌아온 강이식 합참의장에게 가장 먼저 들려온 건 작전기획본부장인 나태윤 중장의 질문이었다.
“하하! 이거 급하기는 나 중장! 숨 좀 돌리자고.”
“아! 죄송합니다. 너무 궁금한 나머지······.”
강이식 합참의장은 여부관이 건네는 커피잔을 받고는 이내 입에 갖다 댔다.
“커피 맛이 좋군!”
모락모락 피어나는 향긋한 커피 향을 음미한 합참의장은 부관에게 고맙다는 손짓을 하고는 말을 이었다.
“아직 확실히 정해진 건 없네. 오늘 밤 대통령님께서 직접 미국 트럼프 대통령과 통화를 마친 후 결정될 거 같아!”
“그거이 대통령님께서 직접 미제 대통령과 통화할 필요가 있습네까?”
언제 왔는지 최호일 대장이 다가와 퉁명스럽게 말했다. 이에 강이식 합참의장은 고개를 돌려 웃으며 말했다.
“최호일 차장님, 어쨌거나 통일 전 한국은 미국과 70여 년간 동맹 관계였습니다. 대통령님께서는 최소한 동맹국으로써 확인절차가 필요했겠지요.”
“그렇게 말한다면야 할 말은 없디요.”
통일 전부터 가지고 있던 미국에 대한 악감정이 남아 있었던 최호일 대장은 미국 대통령이란 말이 나오자 퉁명스럽게 말한 것이었다.
“부관!”
강이식 합참의장은 부관을 불렀다.
“네, 합참의장님!”
“오늘 밤 11시에 합참 참모진 모두 작전브리핑실로 소집하라고 전하게.”
강이식 합참의장의 부관인 안선희 중사가 곱상한 외모와는 다른 게 절도 있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알겠습니다.”
★ ★ ★
2021년 2월 3일 15:10,
서울시 종로구 광화문 주한 미 대사관.
김재학 장관은 청와대에서 나온 후 바로 주한 미 대사관을 찾았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김 장관님!”
전쟁 중인 상황에서 별다른 외부 행사가 없던 월리 골드 대사는 오늘도 대사관에만 있다가 김재학 장관이 왔다는 비서실의 통보를 받고 1층 접견실까지 내려와 인사말을 건넸다.
“긴히 전해드릴 얘기가 있어서 말입니다.”
‘대체 뭔 전할 얘기가 있단 말인가? 만난 지 24시간도 안 됐는데, 귀찮아 죽겠군.’
겉으로는 웃는 월리 골드 대사의 속마음은 이랬다.
“그러십니까? 이리 앉으시지요.”
월리 골드 대사는 2층 귀빈 접견실이 아닌 1층 접견실에서 김재학 장관을 맞이하려 했다. 보통 고위급 정부 인사는 2층 접견실에서 맞이하는 것이 보통의 관례였다. 특히나 그 나라 외교부의 장이라면 무조건 2층 접견실이었으나 이런 관례를 무시하고 1층 접견실에서 맞이한다는 건 월리 골드 대사의 현재 심리를 그대로 보여주는 방증이었다.
김재학 장관은 1층 접견실을 쭉 하니 둘러보고는 자리에 앉았다.
“전할 얘기가 무엇입니까?”
“말씀드리기 전에 어제 했던 얘기는 국무성에 전달했습니까?”
“그거요? 아직 전하지 못했습니다.”
월리 골드 대사는 대수롭지 않은 듯 무표정한 얼굴로 대답했다.
“우리 대한민국은 일분일초도 아쉬운데 월리 대사는 여유 있어 보입니다. 뭐 미국 입장에서는 급할 게 없겠지요?”
“여유라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처리할 일이 있어서 잠시 미뤄진 것입니다. 내일 국무성에 바로 전달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닙니다. 그러실 필요가 없을 거 같습니다.”
“네? 그게 무슨 말입니다.”
“오늘 밤에 대통령님께서 직접 트럼프 대통령께 연락을 드리겠다고 합니다.”
“핫라인을 통해서 말입니까? 제가 오늘 전하지 않아서요?”
“그것 때문은 아닙니다. 뭐 어제 얘기를 전하지 않았다면 오늘 대화에 그 내용도 들어가긴 하겠지만요.”
“그렇다면 무슨 일로 우리 대통령과 핫라인을······.”
“자세한 내용을 말씀드리기는 곤란합니다. 단지 오늘 밤에 대통령께서 핫라인으로 백악관에 전화를 드린다는 얘기입니다.”
“음,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일이 바쁘신 듯해서요.”
“아! 차라도 한잔하시고 가시지요?”
“죄송합니다. 이거 1층 접견실까지 내려오셔서 맞이해 주셨는데 제가 조금 바빠서 이만 가봐야겠습니다.”
김재학 장관은 1층 접견실에서 맞이한 걸 비꼬아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2021년 2월 03일 22:30,
서울시 종로구 청와대 대통령 집무실.
서현우 대통령은 핫라인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과 직접 통화의 시간을 가졌다.
“안녕하십니까? 트럼프 대통령님.”
“오랜만입니다. 서 대통령님! 이렇게 전화까지 주시고······.”
“다른 게 있겠습니까? 부탁이라면 부탁이고 요청이라면 요청을 드리고 싶어서 전화 드렸습니다.”
“부탁과 요청이라······. 제가 어떻게 듣느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질 수 있다는 말씀인가요?”
“네, 그렇습니다.”
“알겠습니다. 말해보시지요.”
“현재 미국이 간접적으로 일본을 지원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간접적 지원이요?”
“제 말을 다 듣고 대답해주시기 바랍니다.”
뭔가 강압적인 말투에 트럼프는 기분이 상했는지 침묵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현재 일본의 미군기지에 상당수 일본 자위군의 주둔을 허용하여 상태입니다. 즉 우리 국군은 그곳을 공격하지 못하지만, 미국기지에 주둔 중인 일본 자위군은 마음 놓고 한국을 향해 공격을 감행한다는 얘기입니다. 또한, 미 의회에서도 기술유출 문제로 수출제한이 걸린 군사 무기 상당수가 일본에만 판매되고 있습니다. 하물며 현재 일본에서 미군이 운용 중인 무기까지 일본에 제공되고 있다는 정보를 들었습니다. 이러한 것들이 미국에서 발표한 한일전의 미국의 중립적 태도입니까?”
전화상으로 들려오는 말투에 트럼프 대통령은 현재 서현우 대통령이 심리적으로 어떤 상태인지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심히 불쾌한 마음으로 전화통화를 하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서현우 대통령님! 그건 이번에 새롭게 강화된 ‘미·일 군사강화협정’에 의해 그렇게 된 것입니다.”
“미·일 군사강화협정이라고 하셨습니까?”
“네, 그렇습니다.”
“그 협정이 같은 동맹국일 때도 적용이 된다는 것입니까?”
“그거야······. 때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겠지요?”
“때에 따라서요? 동맹국 관계가 때에 따라 바뀐단 말입니까?”
따져 묻는 말에 트럼프 대통령이 잠시 주춤하자 서현우 대통령은 더욱 세차게 밀어붙였다.
“동맹국 간에 때에 따라 달라지다니요? 대한민국이 미국에 그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까?”
“서현우 대통령님!”
트럼프 대통령은 자꾸 밀리는 느낌이 들었는지 이 분위기를 바꾸고자 대답 대신 힘주어 서현우 대통령을 불렀다.
“먼저 제 질문에 대답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서현우 대통령은 밀리지 않고자 트럼프 대통령보다 더 큰 목소리로 말했다.
“한국은 2019년 한미전시작전권 회수는 물론 주한 미군에 대한 철수를 요청하지 않았습니까?”
“한미전시작전권은 상호 간 합의로 진행된 것이고 주한 미군 철수는 자주국방과 미국의 방위비 부담으로 인한 협정 때문에 철수를 진행한 것입니다. 일방적인 우리 대한민국의 요청이 아닙니다. 혹시 지금 그걸 핑계로 같은 동맹국인 대한민국을 일본보다 차별하는 겁니까?”
시간이 갈수록 서현우 대통령의 말속에는 냉기가 흘렀다.
“차별이라 하기보다는 현시점에서 우리 미국에 있어서 어느 국가가 더 중요한 동맹국이냐겠지요.”
“그렇군요. 일본이 대한민국보다 더 중요한 동맹국이라는 거지요?”
트럼프 대통령은 대답 대신 헛기침으로 대신하며 침묵으로 일관했다.
십 여분 후 트럼프 대통령과 통화를 마친 서현우 대통령은 의자에 몸을 깊게 묻고는 서랍에서 숨겨둔 담배 하나를 꺼내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그리고 한차례 담배를 깊게 빨아드리고는 담배 연기를 내뱉었다. 오랜만에 피는 담배에 약간 머리가 어지러웠지만 뭔가 막혀 있는 마음은 조금은 풀린 듯했다.
잠시 후 피다 만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끄고는 어디론가 전화를 걸기 위해 수화기를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