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둥반도 점령전
2020년 12월 22일 15:00 (중국시각 14:00),
중국 칭다오시 북단 44km.
기습적인 함대지 순항 미사일 공격에 대공 방어 능력을 상실한 방공포여단과 포병여단은 이어진 송골매 공격헬기와 기동헬기대대의 공격을 받고는 초토화가 되었다. 이에 중국군 제2기갑사단을 지원하려던 포병전력과 대공 방어 부대가 사라진 칭다오와 핑두 사이 대평원에서 치러진 한중간 기갑전은 일방적인 한국 해병대의 승리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먼저 긴 사거리 능력을 보유한 해병 포병대대에서 소나기와 같은 포격을 가해 수적 유리함에 의기양양하며 야지 기동을 펼치며 북서진하던 중국군 제2기갑사단의 96식 전차와 99식G 전차들은 전차포 한 발 쏴보지 못하고 진흙탕으로 얼룩진 눈밭 위에서 검은 연기와 붉은 화염에 휩싸인 채 주저앉은 전차가 무려 칠십여 대가 넘었다.
그리고 이어진 기갑부대의 대항마인 KA-11P 봉황 지상공격기 24기가 제2기갑사단 전방에 출현하여 지상의 중국 전차들을 짓밟았다. 고속 저공비행을 하며 지상으로 쏟아지는 50mm 플라즈마 활성탄에 직격당한 중국 전차들은 여지없이 화염을 토해내며 폭발했다. 또한, 22mm 레이저 벌컨 빔에 전차 외부에 장착된 광학 장비들이 파손되며 전투능력을 상실했다. 일부 중국 전차들은 22mm 레이저 벌컨 빔에 주 포탑 상부장갑이 뚫리며 전차 내부를 휩쓸기도 했다.
이렇게 봉황 지상공격기 24기는 무장했던 모든 무기를 소진한 후 그대로 옌타이 임시기지로 귀환했다. 50%에 해당하는 전력을 상실한 중국군 제2기갑사단에 다음으로 맞이한 건 한국 제3해병기동사단의 제11기갑여단 K-3 백호 전차였다.
수적 우위만 믿고 밀어붙이던 중국 전차는 초반 심각한 타격을 입고 전력의 50%가 상실하자 전차 수는 대략 비슷한 상태에서 K-3 백호 전차를 맞이했다. 기껏 3세대급 전차로 분류되는 중국 전차들은 5.5세대급으로 분류되는 K-3 백호 전차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앞서 있었던 기갑전과 같은 양상으로 시간이 갈수록 중국 전차들은 불타는 고철 덩어리로 변했고 선봉 역할을 하던 중국 전차 수가 급격히 줄어나가자 양쪽 측면에서 지원 온 차량화보병사단의 장갑차들 또한 지리멸렬하며 전장에서 이탈해갔다.
제3해병기동사단이 주축이 된 이번 칭다오 진공 작전은 중국 기갑군과의 교전에서 가장 짧은 시간에 가장 큰 피해를 준 역사에 남을 교전이었다. 제3해병기동사단의 가공할 전투력과 적절한 순간에 가용할 수 있는 다양한 공격수단을 쓴 것도 있었지만, 중국 중앙군사위원회 총참모부의 방어전술 명령을 어기고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독단적인 진공 명령을 내린 제12집단군 우 웨이안 사령원이 이번 교전에서 패전한 가장 큰 이유였다.
교전이 시작된 지 3시간 만에 제2기갑사단의 전차는 고작 30여 대, 즉 1개 전차대대만이 살아남아 칭다오 후방으로 물러났고 후방 양 측면에서 진공 하던 제34차량화보병사단과 제36차량보병사단 또한 재무장하고 나타난 송골매 공격헬기의 공격과 K-3 백호 전차의 공격에 뿔뿔이 흩어져버렸다.
이제 칭다오와 근접 도시인 지모를 지킬 전력은 제12집단군 직할 부대와 제35보병사단과 제179보병사단이 전부였다. 그리고 지모 시내에는 보기에도 단단해 보이는 중갑 슈트를 입은 한 무리의 군인들로 인해 도심 전체가 혼란에 빠진 상태였다. 도시 수비연대와 무장한 공안과의 교전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이들의 정체는 바로 육군 제2작전사령부의 직할 부대인 제2중갑강습여단 대원들로 제12집단군이 교전에 들어가자 미리 파악하고 있던 루트로 지모 시내로 투입한 것이었다.
“시가전을 준비해야 합니다. 사령원!”
교전 시작 후 3시간 내내 패전 소식만 보고를 받던 우 웨이안 사령원에게 작전참모 가오 린 중장이 다가가 힘주어 말했다.
하지만 우 웨이안 사령원의 귀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제12집단군의 대표 전력인 3개 사단이 3시간 만에 괴멸 수준까지 내몰렸기 때문이었다.
“사령원!”
흐리멍덩한 표정으로 전술 모니터만 보고 있는 우 웨이안 사령원에게 소리치듯 가오 린 중장이 재차 불렀다.
“지금 당장 패전한 부대를 모두 칭다오로 불러들여 시가지 전을 준비해야 합니다.”
답답함에 소리치듯 말한 가오 린 중장의 말에 그제야 우 웨이안 사령원이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렇게 하도록 하게, 그런데 말이야. 후미를 공격하기로 한 제26집단군은 왜 공격하지 않은 거야?”
“확인한 바로는 제26집단군도 한국 제2해병사단과의 교전에 애를 먹고 있는 상황에서 추가로 지원할 부대가 없다는 연락입니다.”
“제길! 알았네, 패퇴한 부대를 모두 칭다오 시내로 이동하라고 전하게.”
“알겠습니다.”
30분 후 제12집단군의 사령원이 명령을 어기고 진공 명령을 내려 패퇴했다는 보고를 받은 총참모부에서 명령 불복종에 따른 우 웨이안 사령원을 파면함과 동시에 긴급체포 명령을 내렸다. 이에 서열 2위인 작전참모 가오 린 중장이 임시 사령원 직책에 올라 제12집단군을 지휘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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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2월 22일 15:00 (중국시각 14:00),
중국 창리현 쟈오딩산 동단 27km.
10일째 엎치락덮치락 중국군과 밀고 밀리는 교전을 치르고 있는 제20기갑사단(결전)은 제38집단군의 출현으로 인해 쟈오딩산 서단까지 물러났으나 3일 전 제25경갑보병사단의 지원에 힘입어 다시 북경으로 거칠게 진공하고 있었다.
하지만 북경에 이르는 160km 안에는 제38집단군을 중심으로 제65집단군과 제27집단군, 그리고 베이징 시내를 방어하는 4개의 수비사단이 버티고 있었다. 병력으로만 따진다면 총 28만에 달하는 병력과 4,000여 대의 전차와 장갑차 그리고 5개의 공격헬기연대가 버티고 있는 전력이었다. 베이징 서단 대평원은 이렇게 대규모의 병력이 집중되어 치열한 교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다행인 것은 베이징 북동단과 북단에서 진공하고 있는 수도기갑사단(맹호)과 제3기갑사단(백골)이 진공 속도는 느리지만, 서서히 남진 중이라는 것이었다.
제20기갑사단(결전)은 장병들의 피로감을 줄이고자 제7기동군단 직할 부대인 제7기갑여단을 투입해 제60기갑여단 그리고 제61기갑여단이 3교대로 번갈아 가며 교전에 들어갔고 제26기계화보병여단은 그 뒤를 받쳐줬다.
간혹, 중국군의 전술 탄도탄 미사일과 지대지 순항 미사일 공격, 그리고 공격헬기의 공격이 있었지만 그럴 때마다 제7기동군단의 직할 부대인 제7방공여단을 중심으로 각 부대 자체 대공 능력으로 방어해나갔다.
제7기동군단 임시 막사.
“합참에서 마지막 히든카드를 꺼내 들었군.”
이곳 제7기동군단의 군단 지휘부의 임시 막사에는 베이징 동단으로 진공하고 있는 장성 지휘관 대부분이 참석한 가운데 회의가 진행되고 있었다.
“시점이 언제입니까?”
양민춘 군단장의 말에 제20기갑사단 사단장인 안국진 소장이 되물었다.
“시점은 크리스마스 다음 날인 26일이네. 자! 이 자료들 나눠주게.”
대답과 동시에 한 뭉치 서류를 회의 탁자에 올려놓으며 부관에게 지시했다.
그 서류 표지에는 S급 보안 로고가 선명하게 각인된 군사기밀문서로 합동참모본부로부터 전송된 ‘북경몰락’ 작전 안 군사기밀문서였다. 중령 계급의 부관이 참석한 장성들에게 일일이 기밀문서를 나눠줬다.
“읽어보면 알겠지만, 이번 작전은 북주군 제8특수군단이 투입되는 작전이야. 우리는 이 시점에 대공세로 밀어붙이면 되는 거고.”
미리 작전 안을 읽었던 양민춘 군단장이 나눠준 작전 안 군사기밀문서를 읽고 있는 장성들을 보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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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2월 24일 11:00 (중국시각 10:00),
중국 칭다오 시내.
제12집단군의 사령원이 가오 린 중장으로 바뀌고 칭다오 시가지 전투로 전환하여 방어에 나섰지만, 교전 초반 제12집단군의 주전력이 괴멸되었기에 칭다오 방어는 이틀 만에 무너지고 말았다. 그리고 지금 칭다오 시내 곳곳에는 한국군 공수부대와 중갑강습여단 그리고 제3해병기동사단의 예하 부대들이 속속들이 투입되어 막바지 잔존 병력을 소탕하며 공공기관을 차례대로 장악해 나갔다.
이에 제12집다군 수뇌부는 좁혀오는 포위망를 벗어나가기 위해 바다 건너 항다오구로 가려 했으나 중갑강습여단 대원에게 생포 당하고 말았다. 당연히 긴급체포되었던 우 웨이안 상장까지 신병확보를 했다. 한중전 발발 이후 상대국의 상장급 장성을 생포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철통같은 경계를 펴고 있는 칭다오 외곽의 한 건물은 제3해병기동사단의 사단본부가 주둔 중인 임시 건물로 십여 대의 장갑차가 막 건물 앞에 도착하고 일렬로 주차했다. 그리고 장갑차에서는 포승줄에 묶인 채 중국 장성 여러 명이 끌려 나왔다. 바로 제12집단군의 사령원인 가오 린 중장과 참모진 장성들이었다. 그리고 맨 마지막에는 우 웨이안 상장도 끌려 나왔다.
건물에 들어온 10여 명의 중국 장성들은 임시로 만들어진 조사실에 계급순으로 1명씩 들어갔고 나머지 장성들은 대기실에서 대기했다. 그리고 잠시 후 제3해병기동사단 사단장 조규홍 소장이 여러 헌병대의 호위를 받으며 나타났다.
임시로 만든 6개의 조사실에는 체포된 장성 1명과 사단 정보부 영관급 장교 1명만이 들어가 각각 조사를 시작했다. 이러한 장면은 CCTV를 통해 조규홍 사단장이 지켜봤다.
제1 취조실에는 가오 린 중장이 중령 계급 장교의 질문을 시작으로 막 취조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몇 번의 질문에도 가오 린 중장은 굳게 입을 다문 채 묵비권을 행사하는지 아무 말도 안 했다. 나머지 취조실 또한 마찬가지였다. 전쟁 포로라도 인권문제도 있고 해서 강압적인 취조를 하지 못한 상황에서 대기실을 비추고 있는 CCTV 모니터를 보던 조규홍 사단장이 운용 요원에게 물었다.
“대기실 말이야, 상장급 장성인데 왜 먼저 취조 하지 않는 건가?”
조규홍 사단장의 질문에 CCTV 운용 요원 중 상급자인 대위계급의 장교가 대답했다.
“네, 사단장님. 확인한 바로는 이번 칭다오 교전에서 상부 지시를 어겨 명령 불복종 죄목으로 파면당했다고 합니다.”
“명령 불복종으로 파면?”
“네, 그렇습니다. 칭다오 교전 당시 총지휘했던 제12집단군의 사령원이었던 우 웨이안입니다.”
“어! 저 친구 덕에 쉽게 칭다오를 점령할 수 있었군그래. 저 친구는 내가 직접 취조해야겠군. 취조실 하나 준비하게, 내가 직접 취조해야겠어.”
“직접 말입니까?”
“그래. 준비하게”
“알겠습니다.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10분 후, 임시로 만든 조사실에는 조규홍 사단장과 제12집단군 전사령원 우 웨이안 상장 그리고 통역병 한 명이 앉아있었다.
“파면당했다지요?”
조규홍 사단장의 첫 질문은 우 웨이안 상장의 치부를 건드리는 질문으로 시작되었다. 이에 우 웨이안 상장은 두 눈을 감은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파면 사유가 상부의 명령 불복종 맞습니까?”
이번에도 우 웨이안 상장은 듣는 척도 하지 않았다.
“대답을 안 하시겠다?
통역병은 조규홍 사단장의 말 그대로 통역해나갔다.
“그럼 어쩔 수 없군요. 우리와 대화 자체를 원하지 않으니, 더군다나 파면당한 민간인 출신이니 풀어드리겠습니다.”
지금까지 묵묵히 두 눈을 감고 있던 우 웨이안 상장은 통역병의 말을 듣고는 두 눈을 번쩍 뜨고는 조규홍 사단장을 바라봤다. 이에 조규홍 사단장은 이때다 싶어 한 번 더 의미심장한 말을 전했다.
“그걸 원하시는 거 아닙니까? 민간이 신분이고 하니, 풀어드리겠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오?”
풀어준다는 말을 되풀이하는 조규홍 사단장의 말에 우 웨이안 상장이 입을 열었다.
“무슨 말이긴요. 파면당한 민간인을 군인 신분으로 취급해 취조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이 되어서 말입니다.”
우 웨이안 상장의 머릿속에서는 여러 생각이 빛처럼 돌아갔다. ‘지금 상황에서 혼자만 풀려난다면 명령 불복종 죄는 둘째 치고 혹시나 한국군에 정보를 제공하여 풀려났다는 의심을 받게 된다. 그렇다면 중한전에서 중국이 승리하든 패하든 나의 목숨은 죽은 목숨과 같다’라는 생각이 들자 우 웨이안은 조심스럽게 되물었다.
“원하는 게 뭡니까?”
“별거 없습니다. 현재 중국군의 행보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추진할 작전 안 뭐 이런 것들이지요.”
“그런 정보를 내가 불 거 같소?”
정색하며 큰소리치는 우 웨이안 상장, 하지만 조규홍 사단장의 눈에는 뭔가 불안한 행동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불지 않을 거 같아서 풀어준다고 한 겁니다. 하하하.”
호탕하게 웃지만 내심 상대방의 약점을 깊숙이 파헤치는 한국 해병대 장성의 말에 우 웨이안 상장은 결국 버티지 못하고 본심을 내비쳤다.
“나의 안전을 책임져 줄 수 있습니까?”
“당연합니다. 제 계급을 걸고 약속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