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정세
2020년 12월 15일 13:00,
서울시 종로구 청와대 국가위기상황센터 지하 벙커(회의실).
국방부 장관과 합참의장 일행은 오전에 국가위기상황센터에 방문해 금일 새벽 제주도 남단에서 발발했던 해상전 현황과 향후 대책에 대한 방안에 대해서 2시간에 걸쳐 대통령에게 브리핑 시간을 가졌고 지금은 점심을 먹은 후 회의실에 모여 일본에서 일어나고 있는 험한 시위와 극 우익 정치인들이 늘어놓는 왜곡된 방송을 시청하며 티타임을 가졌다.
TV 화면에서는 각가지 피켓을 들고 전쟁 상대국인 한국을 섬멸하자는 구호를 외치는 시위대 앞에서 자민당 소속 중의원 한 명이 인터뷰하고 있었다. 사실관계는 뒤로 한 채 무조건 한국의 일방적 침략이라며 입에 거품을 물고 말하고 있었다. 이런 장면은 오전부터 시작하여 오후로 넘어가는 시간까지 계속해서 방송되었다.
“대통령님!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있습니다.”
강현수 국방부 장관이 TV 방송을 보다가 문득 생각이 났는지 대통령에게 물었다.
“뭘 말입니까?”
“그것이. 저번 지린시 사린가스 관련해서 UN 안보리 회의 당시 일본 정부의 만행에 대해 정식으로 항의하는 것을 반대하셨잖습니까? 저 지랄 맞을 방송을 보니 생각이 나서 말입니다.”
“하하하, 강 장관.”
“네, 대통령님.”
“그 당시 중국과 일본이 비밀리에 체결한 문서 하나만으로도 UN 안보리에서 일본 함대를 공격한 우리의 정당성을 이사국에 이해시키지 않았습니까?”
“네,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그런 아까운 걸 그렇게 쉽게 까발려 써먹을 필요가 있겠습니까?”
“네? 그게 무슨 말씀인지요?”
“저 일본 방송을 보세요. 지금 일본은 과거 역사에 대한 반성은커녕 왜곡된 역사교육으로 아직도 군국주의 늪에 빠져 정신을 못 차리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대통령님.”
“나는 이번 기회를 통해 일본에 대해 확실한 응징을 하고자 합니다.”
“그렇다면, 일본 응징에 있어 히든카드로 남겨두셨다는 겁니까? 대통령님?”
“네, 맞습니다. 히든카드지요. 자국의 이익을 위해 UN에서 금지한 사린가스를 그것도 전쟁 상대국으로 위장하여 살포하는 짓은 범죄 중에서도 가장 악랄한 범죄이지 않습니까? 이 정도 히든카드는 쥐고 있어야 앞으로 일본과의 전쟁에 있어서 국제사회의 눈치 같은 건 보지 않아도 되지 않겠습니까?”
대통령의 말이 끝나자 강현수 장관을 비롯해 합참의장과 비서실장은 놀란 얼굴로 대통령을 바라봤다.
“뭘 그리 놀란 얼굴로 봅니까? 다들.”
“대통령님 정말 대단하십니다. 그런 묘책을 위해 아껴두실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그냥 UN 안보리에서 지린 사건을 까발려 일본에 대한 국제사회의 제재만을 생각했을 뿐인데 말입니다.”
짝짝짝!
찻잔을 내려 논 국방부 장관은 급기야 박수까지 쳤다.
“저도 놀랐습니다. 대통령님! 하하하.”
합참의장도 온몸이 들썩일 정도로 웃으며 말했다.
“조만간 저런 쓰레기 같은 방송은 더는 보지 않아도 되겠습니다.”
볼살이 늘어질 대로 늘어진 70대 일본 정치인이 카메라 앞에 나와 온갖 거짓말을 서슴없이 내뱉으며 인터뷰하는 장면을 바라보는 비서실장 또한 웃으며 말했다.
“맞습니다. 저런 방송을 볼 때면 피가 거꾸로 솟구쳐 오릅니다. 겉과 속이 다른 일본은 조만간 그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할 겁니다.”
박수를 치던 국방부 장관도 TV 방송을 보고는 이내 불편한 기색을 비취며 말했다.
“그러려면 강 장관과 강 의장이 고생 좀 하셔야 할 겁니다.”
“그건 걱정하지 마십시오. 일본 원정이든, 일본본토 공격이든 대한민국 남자라면 누구라 할 거 없이 지원할 것입니다. 저 또한 의장직 내려놓고 원정군 사령관으로 직접 가고 싶은 심정입니다.”
“무슨 그런 말을 하십니까? 강 의장이 합참을 떠나면 누가 합참을 책임집니까? 하하.”
★ ★ ★
2020년 12월 15일 15:00 (중국시각 14:00),
중국 베이징시 일대 X-2 벙커.
현재 중국은 한마디로 풍전등화의 갈림길에 서 있었다.
한국의 ‘치우천황의 형벌’ 보복공격을 당한 이후 인민해방군의 총사령관에 오른 취지량지 대장은 불리한 전쟁 상황을 한 번에 뒤집고자 시진핑 주석을 설득하여 러시아와 일본에 거부할 수 없는 미끼를 던져 아군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두 국가를 이용해 한국을 압박하고 그 틈을 이용해 전세를 역전하려는 취지량지 대장의 야심 찬 계략은 처음부터 빗나가버렸다.
먼저 일본 해상자위군이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계획대로라면 독도를 점령하여 한국 해군의 전력을 분산했어야 했다. 그래야만 중국 해군이 제주도 상륙은 물론 한반도 본토에 대한 상륙으로 이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상륙은커녕 제주도 남서단 바다에서 한국 해군 2개 함대에 패배하고 수상 상륙함을 포함한 50여 척만이 닝보 해군기지로 회항하고 말았다.
또한, 러시아도 처음에는 의기양양 중러 국경선을 넘어 동북 삼성으로 진공 했다가 한국 기갑부대와의 첫 교전에서 크게 패배하자 진공을 멈추고 소심한 국지전 성격으로 끌고 가고 있었다. 이에 한국 육군전력을 원하는 만큼 동북 삼성 쪽으로 분산시키지도 못하고 가장 중요한 베이징 진공을 멈추게 할 수 없었다.
취지량지 대장의 계략은 한국입장에서 보자면 허를 찔리는 매우 위험한 수였다. 하지만 취지량지 대장의 계략을 따르는 말들이 제 역할을 하지 못했고 이에 결과는 실패로 돌아간 것이었다.
“멍청한 일본 놈들 그 조그마한 섬 하나 점령하지 못하고 한국 해군에게 털리기나 하고. 그리고 큰소리만 쳐대며 자칭 불곰이라고 떠들던 러시아 새끼들은 한번 교전에서 패배했다고 겁먹고.”
시진핑 주석은 생각할수록 열이 났는지 꽉 쥔 양 주먹은 부르르 떨었고 상황실 모니터를 노려보며 분노를 표출했다.
이러한 시진핑 주석의 모습을 지켜보는 여러 중앙군사위원회 장성들과 정치국 위원들은 누구 하나 말을 꺼내 드는 이는 없었다.
“누가 말 좀 해보시오. 다들 꿀 먹은 벙어리처럼 가만있지 말고.”
모니터에서 시선을 돌린 시진핑 주석은 근거리에서 어정쩡 서 있는 여러 장성과 위원들을 흘겨봤다.
“취지량지 대장! 당신도 할 말이 없소?”
묵묵히 서 있기만 하던 취지량지는 무표정한 얼굴로 잠시 뜸을 들이고는 시진핑 주석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주석님! 이제는 중국이 주도적인 전략 전술로 한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할 가능성은 희박해졌습니다.”
“누가 그런 말을 듣고자 물었습니까? 대책을 강구 해야지요. 대책을.”
“주석님! 현재 우리 중국이 한국군에 수도까지 공격을 당하고는 있지만, 시간은 우리 편입니다.”
“그게 무슨 말이오?”
취지량지 대장은 시진핑 주석에게 가까이 다가와 말했다.
“한국 수뇌부는 처음부터 중한전을 속전속결로 끝내려고 했을 것입니다. 제 생각에는 빠르면 1개월, 늦으면 2개월로 작전 안을 구상했을 것입니다. 현재 전쟁은 2개월째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한국은 지금 겉으로는 표현을 안 하지만 속으로는 매우 조급해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칩시다. 그래서요?”
“현대전에서 장기전은 국력과 매우 연관되어 있습니다. 얼마나 오랫동안 지속적인 전쟁 수행능력을 갖추고 있느냐입니다. 이것은 자국의 영토 크기, 자국의 자원과 자체 생산량, 그리고 인구수입니다.”
“계속 말해보시오.”
시진핑 주석은 취지량지의 설득력 있는 말에 빠져들고 있었다.
“방금도 말씀했듯이 시간은 우리 편입니다. 이번 중한전이 장기전으로 이어진다면 한국은 우리 중국을 비롯해 일본과 러시아 즉, 3개국과 전쟁을 치러야 합니다. 작은 영토, 자원고갈, 그리고 적은 인구수로 한국은 장기전을 수행할만한 조건을 갖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한국 국력 소모는 급속도로 줄어들 것입니다.”
이제는 시진핑 주석을 포함해 중앙군사원회 장성과 정치국 위원들까지 취지량지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이런 이유로 한국은 전쟁 수행능력의 한계에 부딪힐 것입니다. 아마도 냄비근성인 한국인들은 곧바로 전쟁 반대 여론이 일어날 것이고 경제위기와 내부 분열이 일어날 것입니다. 연방제 통일도 금이 갈 것입니다.”
“들어보니 그럴듯하군요.”
리위안차오 부주석이 화색을 끼어들었다.
“부주석 말 끊지 말고 조용히 있으세요.”
중요한 대목에서 부주석이 끼어들자 시진핑 주석은 눈을 흘기며 질책했다.
“죄송합니다, 주석님.”
“계속해보시오.”
“네, 중국 전력으로 한국을 누를 수 없는 지금, 우리 중국은 한국과의 전쟁에 있어서 이기려는 것보다 최대한 장기전으로 끌고 가야 합니다. 지금 상황에서는 이 전술이 최선이라 생각합니다.”
“음, 자존심이 상하기는 하나 이 길뿐이라면 어쩔 수 없군요. 그렇다면 장기전이라 하면 어느 정도를 말하는 겁니까?”
“네, 적어도 6개월 이상입니다.”
“현재 한국군은 베이징을 함락하기 위해 총공세 중이오. 이것을 막아내고 6개월 이상 버틸 수 있겠소?”
시진핑 주석의 질문에 잠시 생각에 잠겼는지 말을 멈추고 있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사실 중국 또한 가장 위험한 순간입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수도인 베이징만큼은 막아야 합니다. 현재 재편성에 들어간 제38집단군을 오늘 중으로 본격적으로 투입할 예정입니다.”
개전 초기 한국의 기습 공격에 전투서열 1위인 제38집단군은 가장 먼저 큰 피해를 보고 괴멸 수준에 이르렀으나 각 집단군에서 엘리트 군인만을 소집하고 생산되는 최신예 장비를 충원하여 다시금 제38집단군을 재편성했다. 이후 동북 삼성의 수복 작전에 선봉으로 나서려 했으나 다른 집단군의 예상치 못한 패전으로 제38집단군은 베이징 근교에서 전력을 숨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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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2월 15일 15:30 (러시아시각 09:30),
러시아 모스크바 대통령궁.
러시아 푸틴 대통령은 호전적인 인물이기도 하면서도 구소련 당시 첩보조직인 KGB 출신이었다. 그만큼 냉철한 판단력과 앞을 내다보는 시야를 가진 인물이었다. 중국으로부터 뿌리칠 수 없는 조건에 ‘러중영토이양체결서’에 사인하고 그 대가로 동북 삼성에 러시아군을 진출시켰지만, 중국이 요청한 만큼 러시아군을 파견하지 않았다. 필요 이상의 러시아군 피를 흘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단지, 동북 삼성에 동시다발적 공세를 펼치면 한국군이 지레 겁을 먹고 물러날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푸틴 대통령의 예상과는 다르게 한국군은 러시아군의 공세에 적극적인 방어에 임했고 도리어 5군 57차량소총사단 예하 부대인 12전차연대가 패하기까지 했다.
이에 푸틴 대통령은 한국이 대체 무슨 배짱으로 러시아군을 상대했고 비록 연대급 규모였지만 한국군에 패한 사실에 신중해졌다. 이에 푸틴 대통령은 한국군 전력에 대한 본격적인 파악을 위해 정찰위성과 각종 정찰기를 대거 투입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현재 나토군을 상대하기 위해 동유럽 곳곳에 있는 최정예 병력과 최신예 전차 및 각종 군수 장비들을 동북 삼성 진공 부대에 보급하라는 명령을 내려 수많은 수송기가 밤낮을 가리지 않고 날아갔다.
“동부군구에 대한 항공기 수송은 차질 없이 잘 진행되고 있습니까?”
카리스마가 늘씬 풍기는 얼굴로 푸틴 대통령이 국방부 장관에게 말했다. 이에 미하일 이바노프 장관이 자세를 바로잡으며 대답했다.
“현재 200여 기의 수송기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수송 중이며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통해서도 각종 전차와 장갑차, 그리고 자주포를 보내고 있습니다.”
“이바노프 장관이 신경 써서 잘 진행하세요. 겁대가리 없이 우리 러시아를 건들면 어떻게 된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줘야 합니다.”
“네, 걱정하지 마십시오. 현재 4개의 정찰위성과 20여 기의 정찰기로 24시간 동북 삼성에 대한 감시 활동 중이며 15일 이내로 전력보강을 마치고 불곰국의 무서움을 한국군에게 보여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