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7화 (147/605)

국제정세

2020년 12월 15일 07:20,

제주도 남동단 120km 해역.

새벽 별빛마저 먹구름에 가려 컴컴했던 제주도 남단 겨울 바다는 동쪽에서 떠오르는 태양과 함께 서서히 밝아지고 있었다. 이에 어둠 속에 가려져 있던 전쟁의 참혹한 장면이 해상 위에 펼쳐져 보였다.

시꺼먼 기름을 유출한 채 한쪽으로 기울어진 중국 구축함 곳곳에는 꺼지지 않은 붉은 화염이 화려한 춤을 추며 타들어 가고 있었고 반쯤 침몰 된 또 다른 중국 구축함 주위에는 중국 수병으로 보이는 시체와 부유물들이 떠 있었다. 침몰한 수상함을 제외하고도 이렇게 처참한 모습으로 바다 위에 떠 있는 수상함들은 수십 척에 이르고 있었다.

이 중 120도로 기울어져 함수 일부분만 해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항모 허베이함의 주변에는 살기 위해 바다로 뛰어들었던 중국 수병들은 뼈까지 시리도록 차가웠던 바닷물을 이기지 못하고 모두 사망했다. 수백에 이르는 시신은 구명조끼의 부력에 의지한 채 축 늘어진 상태로 떠다니고 있었다.

한편 중국 방향 수평선 넘어 대한민국 해군 제7기동전단 제72기동전대 소속의 호큘라 구축함인 숙종대왕함(DDG-1005)이 검붉은 연기를 내며 제주도 방향으로 천천히 항해 중이었다.

40분 전, 중국 대함군을 향해 고속기동으로 다가가 홍상어A 어뢰 미사일 20기로 마지막 공격을 감행했던 숙종대왕함(DDG-1005)은 끝내 중국 상륙함 4척을 침몰시켰다. 숙종대왕함(DDG-1005)에서 쓸 수 있는 모든 공격수단을 다 쏟아 붓이었다.

하지만 CIWS(근접방어체계)의 라스트 샷인 22mm 레이저 벌컨 빔밖에 없었건 숙종대왕함(DDG-1005)은 반격하는 중국 대함미사일을 요격하였지만 12기 중 1기를 놓쳐 피격당하고 말았다. 다행인 것은 피격당한 부분이 함수 우현 부위였기에 전사자 없이 부상자 5명만 발생했고 중국해상에서 벗어나 무사히 회항할 수 있었다.

★ ★ ★

2020년 12월 15일 07:40,

제주도 남동단 45km 해역.

중국 대함군이 닝보 해군기지를 향해 함수를 돌려 회항에 들어가자 해군작전사령부에서는 제3함대와 제1함대를 구조하기 위해 수십 대의 해군 소속 구조헬기와 대잠헬기 그리고 119 구조헬기까지 긴급 투입했다.

가장 먼저 바다에 빠져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던 수병 구조가 시작되었다. 다행히 모든 수병에게 지급된 보호 슈트 덕분에 겨울 날씨의 차가운 바닷물에서도 체내 온도를 유지해 저체온으로 인해 전사하는 수병이 없었던 게 천만다행이었다.

그리고 제주도에서는 해군 구조함은 물론 민간 선박까지 출항하여 수백 명에 이르는 해군 수병들을 구조하는 데 최선을 다했다.

두두두두두두.

해수면 위로 구조 헬기 여러 대가 호버링을 하며 UDT 요원들이 바다에 뛰어들었다. 구조는 물론 전사한 수병들의 시신을 찾아 수습하기 위해서였다. 넓고 넓은 해역에서 자칫 시간을 끌면 유수와 파도에 떠밀려 영영 시신 수습이 어려울 수도 있었기에 합동참모본부에서는 시신 수습도 동시에 진행하라고 강력한 지시가 내려졌기 때문이었다.

“야! 빨리빨리 움직여.”

대함미사일 여러 발을 맞고 불행 중 다행인지 침몰만은 모면하고 불에 타고 있는 대전함(FF-825) 갑판 위로 여러 명의 해군 구조 요원들이 올라왔고 그중 선임인 듯한 대위 계급의 장교 한 명이 소리쳤다.

“1조는 함교 쪽으로 이동! 2조는 전투지휘실 쪽으로, 3조와 4조는 기관실로.”

대위 계급의 장교는 각 조 선임에게 투입할 곳을 일일이 지시를 내렸고 임무를 부여받은 구조원들은 각자 투입할 곳으로 아직도 꺼지지 않은 불길을 잡으며 함 내 안으로 들어갔다.

★ ★ ★

2020년 12월 15일 08:30,

서울시 용산구 B2 벙커(국군 합동지휘통제소 상황실).

합동참모본부 상황실에 근무 중인 백여 명의 부사관과 장교, 그리고 모든 걸 지휘하는 장성들은 금일 새벽에 시작된 제주도 남단 해상전을 지켜봤고 지금은 구조작전과 피해 현황을 파악하느라 더욱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의장님, 잠시 눈이라도 붙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작전본부장이 강이식 합참의장 곁으로 다가와 염려되는 말투로 말을 건넸다.

“내가 뭐한 것이 있다고 쉬나?”

“그러다가 쓰러지십니다.”

합참의장은 12일 베이징 진공 이후 3일 동안 하루 한두 시간 소파에서 잠시 눈을 붙인 게 다였다.

“지금 전장 곳곳에서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는 우리 국군 장병들이 들으면 서운해하네. 그런 소리 말고 부관에게 시켜 진한 블랙커피 한 잔만 갖다 달라고 전해주겠나.”

“의장님···.”

“부탁하네.”

“알겠습니다.”

의자에 앉아 구조작전을 펼치고 있는 영상을 바라보고 있는 합참의장의 얼굴에는 피곤함이 가득했다. 합참의장 2년 임기 중 2개월을 남겨두고 한중전 발발과 함께 원수로 진급하고 대통령으로부터 군수통제권 권한 전체를 위임받은 강이식 합참의장은 현 나이 63세로 그의 어깨에 주어진 책임과 권한은 나이를 고려할 때 너무나도 무겁고 힘겨웠다. 특히 한국 국군 장병들의 희생이 커질 때마다 그 무게는 배가 되어 강이식 합참의장의 어깨를 짓눌렀다.

“여깄습니다.”

작전본부장 김용현 중장이 직접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피잔을 들고 와 합참의장에게 건넸다.

“이런, 김 중장이 직접 가져오나. 미안하게.”

“무슨 이런 거로 그러십니까. 의장님.”

“아무튼, 잘 마시겠네.”

합참의장은 인자한 표정을 지으며 커피잔을 받아 한 모금 마셨다. 쓰디쓴 커피가 입안으로 들어와 목으로 넘어가자 쓴맛에 살짝 인상을 썼지만 몽롱했던 정신은 조금은 맑아지는 느낌이었다.

“맛이 괜찮군.”

“다행입니다. 의장님.”

“그나저나 제3함대가 괴멸 수준이라 걱정이 크군.”

“네, 의장님, 하지만 중국 또한 당분간 해군 전력으로 한반도로 진격할 전력을 상실한 상태입니다.”

“그렇긴 하지. 정확한 피해 현황은 언제쯤 나오나?”

“네, 지금 한 참 취합 중입니다. 중국 피해 현황까지 모두 정리되면 바로 보고 드리겠습니다.”

“알겠네.”

합참의장은 커피를 한 모금 더 마신 후 탁자에 내려놓고는 의자에서 몸을 일으켜 일어났다.

“요새 운동을 안 했더니 예전 같지 않구먼그래! 난 정신 좀 차릴 겸 찬물로 샤워 좀 해야겠어. 이따가 식당에서 보자고 그동안 구조작전 상황 좀 지켜봐 주게.”

“알겠습니다. 의장님.”

합참의장은 김용현 중장의 어깨를 툭 한번 치고는 상황실 출입문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러한 합참의장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김용현 중장의 표정에는 만 가지 감정이 담겨 있었다. 처음 합동참모본부에서 기획했던 한중전 작전 안은 일본과 러시아의 갑작스러운 참전으로 시나리오는 어긋나기 시작했고 지금까지 모든 전투에서 승리를 이끌고는 있었지만 갈수록 늘어나는 한국 장병들의 희생과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전장 상황에 합동참모본부의 지휘부는 보이지 않는 압박과 싸우고 있었다.

이러한 압박은 먼저 ‘고구려의 기상’ 작전의 마지막 단계인 베이징 진공 작전이었다. 3곳의 루트를 통해 베이징 함락을 위해 펼치고 있는 제7기동군단과 제5군단 예하 부대인 제3기갑사단은 예상보다 강력한 중국 각 집단군의 처절한 방어 작전에 3일째 애를 먹으며 치열한 교전을 펼치고 있었다. 이는 중러 국경선 모든 전선에서 진공 하는 러시아군을 막기 위해 한국군의 전력이 분산되어 베이징 진공에 투입할 전력 여력이 없다는 것이 가장 아쉬웠다.

두 번째로 중러 국경선 일대의 러시아군과 크고 작은 국지전 전투였다. 지난 12일 쇵야산 일대에서 러시아의 제57차량소총사단이 크게 패한 후 러시아군은 수동적 태세로 전환하여 소규모 국지전을 일으켰다. 하지만 아무리 국지전이라 하여도 한국입장에서는 여간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 없었다. 언제 대공세로 전환하여 한 번에 밀고 들어올지 모르기 때문이었고 가장 중요한 것은 세계 핵 보유 1위 국가로 전술핵과 핵전략을 사용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었다.

세 번째로 일본과의 해상전이었다. 지난 12일 독도해전을 시작으로 금일 새벽 남해 대해전까지 이제 일본 해상자위군과의 충돌은 단순 해상전을 떠나 국가 총격전으로 번질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었다.

★ ★ ★

2020년 12월 15일 09:30,

일본 도쿄 내각 비상안전상황실.

일본 모든 방송국에서는 금일 새벽에 있었던 한국군의 대마도 포격 사실만을 중점적으로 편성하여 방송을 내보내고 있었다.

제주도 남서단 해역에서 한국 해군과 중국 해군과의 해상전 중 중국으로부터 사전에 협공 요청에 따른 일본 해상자위군의 선제공격 사실은 쏙 빼고 저번 독도해전과 마찬가지로 일방적으로 한국이 일본을 공격했다는 왜곡된 방송으로 피해자 코스튬플레이를 자처했다.

오전 내내 이어진 방송으로 인해 우익단체 중심으로 험한 시위는 일본 도시 곳곳에서 일어났고 일반 시민까지 동참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익성향의 정치인들 또한 너나 할 거 없이 각종 언론매체를 통해 당장 미개한 한국을 응징하라는 주장들이 넘쳐나고 있었다.

이러한 뉴스 보도를 보며 알 수 없는 표정을 짓고 있는 사내가 있었다. 바로 일본 아베 신조 총리였다. 지난 12일 독도해전부터 전국적으로 확대된 군국주의만큼 아베 총리의 지지율 또한 급상승했고 그토록 아베 총리가 염원하던 일본 제국의 위상을 펼칠 기회였다. 하지만 세계 해군 전력 3위라고 치켜세웠던 해상자위군이 2번의 한국 해군과의 해전에서 괴멸 수준까지 밀리며 패배했다는 점에서 아베 총리는 마냥 좋아할 수는 없었다.

솔직히 일본은 한반도에 육군전력을 상륙시킬 상륙함대나 해병병력은 없었다. 단지 해상전을 통해 한국을 압박하고 해상 봉쇄령으로 한국 경제를 뒤흔들어 승리를 취하는 전략이었다. 그런데 이런 해상 전력이 보기 좋게 두 번이나 패했기에 아베 총리의 머릿속은 매우 복잡해졌다.

“이 기회를 최대한 살려야 합니다. 뭐 좋은 방법이 없습니까?”

TV에서 시선을 뗀 아베 총리가 앉아있던 여러 관료를 보며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누구 하나 먼저 입을 여는 관료는 없었다. 이에 답답했던지 아베 총리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당신들은 대체 관저에 오기 전에 생각이라는 걸 하고 오는 겁니까?”

다그치는 아베 총리의 말에 한 명의 사내가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저기 총리님.”

“말해보시오. 시바사키 대신.”

“네, 현재 한국도 이번 해상전으로 1개 함대 이상의 손실을 보았습니다. 아마도 우리 해상자위군을 상대할 수 있는 한국 해군 전력은 현재 괴멸 상태인 3함대 일부 함정을 1함대에 배속하여 전력보강을 할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전력을 보강하더라도 예전 1함대의 전력에 미치지 못할 것입니다. 이에 우리 해상자위군은 1항모전단과 2호위대군을 합치고 1호위대군과 4호위대군으로 한 번에 한국 1함대를 격파한 후 부산에 대한 대공세를 펼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독도해전 당시 제3호위대군을 전멸시켰던 그 충무공이순신함은 어쩔 겁니까?”

아베 총리는 생각도 하기 싫은 함 이름을 들먹이며 물었다.

“총리님! 부산 해역은 우리 본토와 아주 가깝습니다. 아무리 그 충무공이순신함이라도 넓게 펼쳐진 해상이 아닌 지상과 가까운 곳에서의 해상전은 많은 제약이 따릅니다.”

“그럴듯하군요.”

시바사키 방위성 대신은 해상자위군의 장성 출신이었다. 이에 해군 전략전술에는 어느 정도 능통한 자였다.

“또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게 무엇이오?”

“네! 현재 일본에 주둔 중인 미 해군과 육군의 장비를 이 기회를 통해 바로 수입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그게 가능하겠소? 현재 미국으로부터 각가지 무기에 대해 수입을 진행 중이지 않소이까?”

“지금은 시간이 문제입니다. 현재 일어나고 있는 여론은 언제 꺼질지 모릅니다. 최대한 이른 시간 안에 미국 무기를 건네받아 한국에 대한 대공세를 이어가야 합니다.”

“음, 그거 좋은 생각이오. 그렇다면 현재 일본에 주둔 중인 미군 장비는 무엇이 있습니까?”

“네, 먼저 F-22입니다.”

“그건 우리 일본에도 있지 않습니까?”

“현재 한국 스텔스 전투기의 성능을 가늠할 수 없는 상태입니다. 저번 독도해전 당시 우리 일본 F-35B와의 교전 결과를 봤을 때 더 뛰어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에 우리 일본도 최대한 F-22 전투기를 보유해야 합니다.”

“알겠소. 계속하시오.”

“네, 두 번째는 B-1B 랜서입니다. 현재 일본에 주둔 중이 미국 전략 폭격기 랜서는 총 8기입니다. 이 중 4기 정도만 우리 일본 공군이 보유한다면 언제든 한국 대공망을 뚫고 서울에 폭격을 가할 수 있습니다.”

“하하하, 그거 듣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군.”

“다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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