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음모
2020년 11월 16일 15:00,
서울시 용산구 B2 벙커(국군 합동지휘통제소 상황실).
상황실에는 북한군 부참모장 최호일 대장과 제620포병군단장 김기윤 중장이 참관한 가운데 방사능 제거 임무를 맡은 포병부대로부터 보고가 이어지고 있었다.
“합참의장님! 서부전선 일대 현 시간 기준 방사능 수치 현황입니다. 2번 스크린입니다.”
전술통제관의 보고와 함께 2번 스크린에는 핀잔을 비롯해 푸신 등 중국군으로부터 핵포탄 공격을 받은 지역의 방사능 수치표가 일주일만도 92%였으나 지금은 0.2%로 표기되어 있었다.
“0.2%면 작전에 임하는 데 문제가 없겠나.”
“네, 그렇습니다. 0.2%면 자연방사능도 포함이기에 인체에 해로운 방사능은 모두 제거되었고 봐도 무관합니다.”
합참의장의 말에 작전본부장이 대답했다.
“알겠네, 그럼 서부전선 구축을 위한 제2차 진공을 시작할 때가 되었군, 현 시각 15:10분 모든 부대 진공 시작한다. 지시하도록.”
“알겠습니다.”
강이식 합참의장의 명령과 함께 작전본부장이 재차 명령을 내리자 통신담당 오퍼레이터들은 해당 담당 부대에 이와 같은 명령을 전달했다. 그리고 그런 대화를 듣고 있던 북한군 부참모장 최호일 대장이 궁금했는지 살짝 강이식 합참의장 옆으로 다가와 말을 걸었다.
“강 대장 동지! 방사능 제거라니? 혹시 남조선에서는 방사능을 제거하는 기술도 있는기야요?”
“네, 인체에 치명적인 방사능은 대략 7일 정도면 말끔히 제거할 수 있는 기술이 있습니다.”
“정말이기요? 이거 놀랍구만요. 그런 기술을 남조선에서 보유하고 있다니 말이디요.”
“앞으로 놀라실 일이 더 많을 듯합니다.”
“기대하겠시야요. 하하하.”
지난 11월 6일 중국군의 핵포탄 공격으로 잠시 서부전선에서 후퇴했던 제7기동군단과 제3기갑사단은 중국군의 대 반격전에서 승리한 후 일주일간의 꿀맛 같은 휴식과 정비시간을 마치고 해당 부대에서는 진공로를 향해 일사불란하게 기동 준비에 들어갔다. 특히 저번 핵포탄 공격으로 31%에 해당하는 피해를 본 수도기갑사단(맹호)은 중국군에 대한 철저한 응징을 다짐하며 다시금 지옥 같았던 푸신로 기동했다.
그리고 제20기갑사단 역시 핵포탄 공격으로 무주공산인 판진을 통과하며 바로 진전우 점령전에 투입했고 장우현으로 후퇴했던 제3기갑사단도 G2511 고속도를 타고 퉁라우로 고속기동에 들어갔다.
★ ★ ★
2020년 11월 18일 11:00,
서울시 기무사령부 대외정보수집과.
대외정보수십과 회의실은 매우 심각한 분위기였다. 지난 지린 사린가스에 대한 여러 증거자료를 분석했고 오늘 마침내 수상한 범인들의 정황이 포착된 것이었다.
“암호문을 판독한 내용입니다, 과장님.”
정보수집1팀장 안동원 대위가 판독한 내용이 적힌 문서를 테이블 위에 내밀었고 그것을 집어 들어 읽어가던 이윤규 중령의 얼굴은 서서히 굳어갔다.
“이게 정말 그 내용인가.”
본인이 읽고도 내용이 믿기 어려웠는지 이윤규 중령이 되물었다.
“네, 맞습니다.”
암호문을 판독한 내용은 알 수 없는 누군가가 내린 지령으로 필리핀과 태국 용병을 사들여 지린에서 사린가스를 살포하라는 내용이었다. 이런 충격적인 내용을 읽어간 이윤규 중령은 이쪽 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베테랑답게 흥분보다는 침착성을 유지하며 사건 정황을 정리해갔다.
“중국군이라면 이런 암호로 된 지령을 내릴 필요는 없을 것이고 대체 어떤 놈들이 이런 짓을 명령했느냐가 문제군. 범인을 확인할 만한 다른 정황은 있나.”
“이 자료가 도움이 될 거 같습니다.”
분석지원팀장 오원전 대위가 보안 표기가 된 대봉투를 가방에서 꺼내어 이윤규 중령에게 건넸다.
“이것은?”
“네, 저번에 제17전투비행단 지하연구소에 보내졌던 핸드폰 복원 자료입니다.”
“복원되었단 말이지, 먼저 확인은 해봤나.”
“아닙니다. 오늘 아침에 도착하여 바로 가지고 왔습니다.”
이윤규 중령은 대봉투를 개봉하여 안에 있는 서류 몇 장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천천히 읽어가기 시작했다.
“일본? 이 새끼들이!”
조금 전까지 신중하게 정황을 파악하던 이윤규 중령의 표정이 일그러졌고 욕설을 내뱉으며 서류를 탁자에 던져버렸다. 이에 안동원 대위와 오원전 대위도 서류를 집어 들어 읽고는 이윤규 중령과 마찬가지로 표정이 험하게 일그러졌다.
서류 내용에는 일본에서 발신한 전화번호 몇 개와 일본어로 된 문자 내용이었다. 그리고 문자 내용은 필리핀과 태국 용병들의 연락처, 신상정보, 은행 계좌 정보가 담겨 있었다.
“이것은 엄연히 한국에 대한 일본의 전쟁 도발 행위입니다. 과장님.”
안동원 대위가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소리치며 말했다.
“지금부터 시작이다. 과연 누가? 아니면 어느 기관에서 이런 짓을 했는지 찾아내는 것이 관건이야. 오 팀장은 국정원과 공조해서 이 핸드폰으로 연락한 발신번호 모두 추적하고 안 팀장은 동남아 두 국가의 용병단체를 찾아서 접촉해봐! 나는 지금 사령관님에게 보고를 드려야겠다.”
“네 알겠습니다.”
“네.”
★ ★ ★
2020년 11월 20일 14:00,
일본 도쿄 내각 총리 회의실.
“하하하, 수고 많았네.”
“아닙니다, 총리님! 맡은 바 임무에 충실했을 뿐입니다.”
“이 친구 협상 실력도 대단하지만 말하는 것도 제법이야.”
아베 총리는 방금 미국에서 돌아온 야구마치 켄조의 협상 성과를 듣고는 기분이 매우 좋았다. 조건부 승인이긴 했지만 원하던 대로 핵미사일을 개발하고 보유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조건부 승인이란, 핵미사일 수량은 20기 이하로 하며 사거리 5,000km를 넘기지 않는다. 그리고 1년에 한 번씩 미군의 실사를 받고 핵미사일 사용 여부는 사전에 미 정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조건이었다.
어떻게 보면 미군의 통제 속에 핵미사일을 보유하는 것이지만 아베 총리에게는 지금 그런 조건은 중요치 않았다. 단지 일본이 실제로 핵미사일을 보유하고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할 뿐이었다. 그리고 그런 조건들은 향후 언제든 물밑 협상으로 조건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시바사키 대신.”
“네, 총리님.”
“이참에 야구마치 이 친구를 총리 비서실에 둬야겠어. 어떤가, 괜찮겠지?”
“총리님께서 필요로 하는 인재라면 저는 괜찮습니다.”
“그래, 야구마치 켄조 협상관.”
“네, 총리님.”
“내일부터 총리 비서실로 출근하게나 직책은 전략비사관으로 임명하겠네.”
“감사합니다, 총리님! 앞으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제 총리실 전략비서관이 된 야구마치 켄조는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 깊숙이 고개를 숙이며 감사의 인사를 올렸다.
이런 야구마치 켄조의 행동을 흐뭇하게 바라본 아베 총리는 앉으라는 손짓을 하며 시바사키 방위성 대신을 바라보며 말했다.
“내일 오후에 있을 방위회의에 야구마치 켄조 전략비서관과 와타나베 청장도 회의에 참석시키게.”
“그렇게 하겠습니다.”
- 내각정보실 이나모토 준이치 실장입니다. 총리님!
기분 좋은 상태에서 갑자기 내각정보실장의 방문에 아베 총리는 살짝 인상을 쓰며 인터폰에 답했다.
“들어오라고 하세요.”
- 네, 알겠습니다.
출입문이 열리고 이나모토 준이치 실장이 총리실로 들어왔다. 표정으로 봐서 그리 좋은 소식이 아니란 것을 직감한 아베 총리는 시바사키 대신에게 이쯤 회의를 끝내자는 손짓을 했다.
“그럼 저희는 이만 나가보도록 하겠습니다.”
눈치 빠른 시바사키는 이내 일어나 인사를 하고는 야구마치 켄조 협상관과 출입문으로 향하며 이나모토 준이치와 눈인사를 하고는 밖으로 나갔다.
“앉으세요.”
“네, 총리님.”
“그래. 무슨 일입니까.”
“그게. 저번에 말씀드린···.”
“지린시 건입니까.”
“네, 그렇습니다. 한국에서 눈치를 챈듯합니다.”
“뭐라고요? 무슨 일을 이따위로 합니까!”
“죄송합니다.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아니 어떻게 한국에서 모두 다 알게 된 것이오?”
“그렇진 않습니다. 현재 한국 국정원과 군 정보부인 기무사령부에서 동남아 용병단체를 파헤치고 있으며, 일부 국정원 몇 명은 일본으로 넘어와 비밀리에 뭔가를 찾고 있다는 정보입니다.”
이나모토 준이치 실장은 죽을죄를 지은 사람처럼 연신 고개를 숙이며 보고하듯 말했다.
“이나모토 실장.”
“네, 총리님.”
아베 총리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향하며 조용히 말했다.
“이번 일 목숨 걸고 막으시오. 만약 한국 정부에서 이 모든 사실을 알게 된다면 그땐 옷 벗는 건 둘째 치고 이나모토 실장 혼자서 모든 걸 책임져야 할 것이오.”
“네, 총리님! 절대 누가 되는 일 없도록 하겠습니다.”
★ ★ ★
2020년 11월 20일 15:00 (중국시각 14:00),
중국 베이징시 일대 X-2 벙커.
벙커 한편에 마련된 주석실에 취지량지 대장이 시진핑 주석과 독대를 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묻겠소이다. 정녕 이 방법밖에는 없는 겁니까.”
며칠간 깊은 고민을 했는지 시진핑 주석의 얼굴은 매우 초췌해 있었다.
“주석님,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현재 전쟁 상황을 판단했을 때 이번 전쟁에서 우리 인민해방군이 이길 가망성은 매우 희박합니다.”
“인민해방군 총사령관으로서 어떻게 그런 말을 하는 것이오!”
흥분한 나머지 탁자를 두드리며 시진핑 주석이 소리쳤다.
“죄송합니다, 주석님. 하지만 이것이 현실입니다. 현재 인민해방군의 보급품과 장비를 책임지고 있는 여러 군수공장이 저번 한국군 공습 공격에 큰 피해를 본 지금은 지속적인 군수품 보급을 받을 수 없는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전쟁이 길어진다면 한국보다는 우리 중국이 분명 불리해질 것입니다.”
아직도 흥분이 가라앉지 않았는지 거친 숨소리를 내며 시진핑 주석은 다시 물었다.
“그럼 승인한다면 그 이후는 어떻게 돌아가는 것이오.”
“네, 주석님! 우리 인민해방군은 충분한 시간을 벌 수 있을 것이며 반대로 한국군은 전력 분산으로 상당한 혼란을 겪을 것입니다. 이때를 기회로 총공세를 펼친다면 한국은 한반도에서 지워질 것입니다. 장담하겠습니다.”
당당하게 말하는 취지량지 대장의 말에 잠시 두 눈을 감고 생각에 잠긴 시진핑 주석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알겠소. 승인하겠소. 그리고 앞 전에 요청한 것들은 모두 조치해놨으니 연락이 올 것이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번 건은 중앙정치국에서 신중하게 결정한 것이니 최선을 다해 주시오.”
“감사합니다. 주석님.”
★ ★ ★
2020년 11월 20일 16:00 (중국시각 15:00),
중국 베이징시 일대 X-2 벙커.
주석실에서 돌아온 취지량지 대장은 참모진과 중앙군사위원회 소속 장성들을 긴급 소집 명령을 내렸고 3시간 후 회의실에는 100여 명의 장성이 모여 있었다. 그리고 전선에 투입된 모든 부대에 지금까지 전개되고 있는 모든 작전을 취소하고 무조건 동북 삼성에서 후퇴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특히 동북 삼성에서 유일하게 집단군 전력을 보유하고 창춘시에서 방어 전선을 구축하고 있는 제16집단군을 후룬베이얼시까지 후퇴하여 전력을 보존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한마디로 이러한 명령은 동북 삼성 전체를 한국군에게 통째로 받치는 듯한 명령이었다. 이에 반발하는 참모진들도 있었으나 취지량지 대장이 새롭게 입안한 작전을 듣고는 다들 입을 닫은 채 더 이상의 반대 의사를 내놓지 않았다.
회의가 끝난 후 여러 장성은 취지량지 대장을 두고 제갈량에 버금가는 최고의 지략가라며 칭찬 일색이었고 이날부터 동북 삼성의 전쟁 양상은 한국은 물론 관심을 두고 지켜보고 있던 여러 국가까지 의아해할 정도로 비정상적으로 흘러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