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부전선
2020년 11월 4일 10:00 (중국시각 09:00),
중국 선양시 서남단 32km S102 도로.
선양 외곽을 벗어난 후 편도 6차선인 S102 도로에 접어든 지 30여 분이 지날 때쯤 도로 남단 대 평원은 지난 4일 전 벌어졌던 기갑전이 얼마나 치열하고 이 일대를 황폐하게 하였는지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끝없이 펼쳐진 평원에는 천여 대의 전차와 장갑차가 화염에 타다만 고철 덩어리 신세로 이곳저곳에 너부러져 있었고, 인간이라고 생각하기엔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된 주검들이 차디찬 땅바닥에 아무렇게나 누워 있었다. 그리고 마을 곳곳의 건물과 주택들은 3일이 지났는데도 불에 타고 있거나 검붉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오 중사님, 보고 계시죠.”
포탑 위에서 8mm 레이저 미니 건의 손잡이를 잡은 상태로 며칠 전 벌어졌던 교전 장소를 바라보던 김영주 하사가 헤드셋으로 물었다.
“저곳에 우리가 있었다니, 참혹하다 못해 못 보겠다야.”
전차 안에서 현시경 모니터로 살피던 오영택 중사가 눈살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그렇게 말입니다. 아직도 당시 교전 장면이 생생하게 생각납니다.”
“이제 시작이다! 마음 단단히 먹고 끝까지 살아남아 고향으로 가자.”
이때 중대 통신망으로 중대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 8중대부터 도로 이탈하여 9시 방향으로 전환한다. 평원으로 진입 후 횡대 대형으로 기동한다. 이상!
26전차대대의 첫 번째 목표인 랴오중이 가까워지자 전투 대형으로 바꾸라는 중대장의 명령이었다.
투캉! 투캉! 투캉! 쿠르르르르릉~
선두에서 기동하던 8중대 전차부터 도로 난간을 뭉개듯 뛰어넘으며 논바닥으로 펼쳐진 평원으로 기동하며 얼어붙은 논바닥을 가로지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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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1월 4일 13:00,
서울시 용산구 B2 벙커(국군 합동지휘통제소 상황실).
제7기동군단의 모든 부대가 3일간의 길지도 그렇다고 짧지도 않은 정비시간을 갖는 동안 합동참모본부의 참모진들은 합동지휘통제소에서 하루하루가 모자랄 정도로 바쁘게 지냈다. 특히 군부대에 보급할 전장 물자가 빈틈없이 수송되는지부터 앞으로 전개될 작전 중 수정할 세부 사항이 있는지 검토하는 일까지 쉴 틈 없이 하루하루를 보냈다.
식사를 마치고 돌아온 강이식 합참의장은 바로 회의실로 각 참모진과 각 군 참모장을 소집했다.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서부전선 구축 작전과 동북 삼성 점령 작전에 맞춰 중국의 목구멍을 한 번에 조를 수 있는 한 가지 추가 작전을 점검하기 위해서였다.
“9사단의 다롄시 진공은 언제쯤 가능합니까.”
강이식 합참의장이 바로 본론으로 넘어가며 말을 꺼냈다.
“현재 9사단은 다롄 진공에 앞서 좡허과 왕팡덴 점령 작전에 들어갔으며 현재 도시 곳곳에 숨어있는 패잔병 소탕 작전 중입니다. 생각보다 저항이 심해 진공 속도가 늦어지고 있습니다.”
단상에 서 있던 작전본부장 김용현 중장이 대답했다.
“전쟁이 우리가 생각한 대로만 움직인다면 좋겠지만 어쩔 수 없지요.”
“네, 합참의장님! 중국군도 지리적으로 다롄시의 중요성을 알고 있는지라 예상했던 병력보다 더 투입된 것으로 파악됩니다.”
“어느 정도입니까.”
이번엔 육군참모총장 신성용 대장이 물었다.
“현재 파악한 정보로는 제40집단군 예하 사단인 제118보병사단과 2개의 예비사단이 다롄 일대를 방어하고 있으며 제65집단군 중 선양 대기갑전에 참전하지 않은 보병사단 1개 정도가 다롄시 방어 라인 구축에 증원된 것으로 판단됩니다. 지도를 봐주시기 바랍니다.”
김용현 중장이 말이 끝나자 스크린에 다롄 일대의 확대된 지도가 비췄고 지도 안에는 중국군이 배치된 정보가 표기되고 있었다.
“현재 이곳부터 이곳까지 직선거리 32km에 해당하는 거리의 방어 라인을 구축한 상태입니다.”
레이저 포인트로 가리킨 곳은 다롄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푸란덴부터 동부 해안이었다.
“32km에 해당하는 전선에 4개 사단이 지키고 있다면 9사단만으로는 다소 위험이 따르겠군요.”
다롄 방어 선전을 유심히 바라본 강이식 합참의장이 말했다.
“그렇습니다. 합참의장님, 그래서 이번 9사단을 통한 다롄 진공 작전을 해군과의 양공 작전으로 작전을 약간 수정하였습니다.”
“양동 작전이라, 좋군요. 계속하시오.”
“네, 현재 제10상륙함대는 인천항에서 정박 중이며 제2해병사단의 승선작업에 들어간 상태입니다. 그리고 제10상륙함대를 호위하기 위해 제7기동전단 소속 호큘라 구축함 7척과 제2함대 21구축함전단의 구축함 4척도 인천항구에 정박 중입니다. 그리고 제9잠수함전단의 91잠수함전대와 92잠수함전대 소속 214급 잠수함 6척이 다롄 항으로부터 100km 이내까지 침투하여 대잠 초계임무 중입니다.”
“제10상륙함대의 출항 시점은 언제입니까.”
“내일 오전 11시에 제9기보사가 다롄으로 진공 할 예정이므로 제10상륙함대의 출항은 금일 오후 7시입니다.”
잠시 생각에 잠긴 강이식 합참의장은 다롄에서 왼쪽에 있는 톈진으로 눈을 돌렸다. 대략 거리는 300여km 미터로 25노트 속도로 8시간이면 도착할 만한 거리였다. 그리고 톈진은 중국 수도인 베이징까지 65km밖에 안 걸리는 아주 가까운 거리의 도시였다.
“어떻게 보면 이번에 수정한 작전 안이 중국의 약점을 파고들 수 있는 절묘한 묘수가 될 수 있겠군요.”
“그렇습니다. 합참의장님! 만약 한국 지상군만으로 선양에서 베이징까지 진공 한다면 직선거리로만 630km이며 속전속결로 교전을 치르며 진공을 하더라도 최소 30일 이상의 시간이 걸릴 것으로 판단됩니다. 하지만 다롄에서 해상로를 이용해 톈진으로 진공 한다면 상륙함 속도를 고려하더라도 8시간이면 충분합니다. 즉 한국군은 지상군으로 20일 이상 걸리는 거리를 해상로를 통해 톈진에 상륙만 한다면 하루 만에 베이징을 한국군의 공격 범위에 들게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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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1월 4일 13:30,
인천 제2함대 예하 인천해역방어사령부.
인천해역방어사령부 항구에는 김포에서 출발한 제2해병사단의 전차와 장갑차 등 최신예 장비들이 줄줄이 늘어선 채로 선적하고 있었고 제2해병사단 장병들도 완전군장을 맨 채로 대대별로 할당된 상륙함에 승선하기 위해 길게 줄을 서고 있었다.
한국군 중 장병 전투력으로 보자면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는 해병대는 제일 먼저 전장에 투입한 제1해병사단의 활약에 힘입어 해병대 전체의 사기는 매우 높았다. 하지만 막상 전장에 투입되는 제2해병사단 해병들의 얼굴에는 긴장감이 뚜렷이 서려 있었다.
“무적해병대!”
“악!”
갑자기 제2해병사단 사단장인 안강준 소장이 지프 위에서 확성기를 통해 해병들을 부르자 승선을 위해 줄을 서며 대기 중이던 제2해병사단 장병들이 일제히 대답했다.
“우리는 지금 중국군과 싸우러 간다, 두려운가!”
“아닙니다!”
“그럼 무서운가!”
“아닙니다!”
“그럼 즐거운가!”
“악!”
“좋다! 나는 무적해병대 너희들을 믿는다. 전체! 팔각모 사나이 하나! 둘! 셋! 넷!”
사단장의 팔각모 사나이 군가 제창 명령에 만 명이 넘는 해병대가 일제히 양손을 머리부터 배꼽까지 손뼉을 치며 부르기 시작했다.
팔각모 얼룩무늬 바다의 사나이 검푸른 파도 타고 우리는 간다.
내 조국 이 땅을 함께 지키며 불바다 헤쳐 간다. 우리는 해병.
팔각모, 팔각모, 팔각모 사나이 우리는 멋쟁이 팔각모 사나이.
엄청난 목소리로 제창하는 해병대의 군가는 항구 전체를 휘감듯 울려 퍼졌고 이러한 모습을 지켜본 사단장 안강준 소장은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하늘 높이 팔을 뻗었다. 그리고 군가를 부르기 전까지 밀려오는 긴장감에 어두운 표정을 지었던 해병대는 서서히 해병 특유의 독기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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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1월 4일 14:00,
서해 북위 38° 50’ 동경 122° 55’ 심해.
다롄시로부터 100km까지 접근한 214급 잠수함 손원일함(SS-072)은 3일 전 인천항에서 출항해 심도 60을 유지한 채 10노트 속도로 천천히 잠항 중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해심방어위성인 포세이돈 2호의 탐지영역이 닿지 않는 심해까지 도달하여 중국 잠수함에 대한 초계 탐지를 위해 신경을 곤두선 채로 임무를 다하고 있었다.
이곳 심해에는 손원일함(SS-072)과 동일한 임무로 출항한 잠수함은 총 6척으로 포세이돈 해심방어위성의 음파 탐지영역을 벗어나자 각자 연락을 끊은 채 임무 완수를 위해 조용히 대잠전 잠항에 들어갔다.
어두운 바닷속을 천천히 항해하는 손원일함(SS-072)의 오용현 함장이 별다른 반응이 없는 상황이 따분했는지 음탐관에게 조용히 말했다.
“잡히는 거 없나.”
“지금까지 조용합니다, 함장님.”
음탐관의 대답에 잠시 생각에 잠긴 함장은 다시 명령을 내렸다.
“조금 더 들어가 보자. 0-1-0 우현 잠항각 하향 15도 심도 80까지, 속도는 이대로 유지.”
“방위각 0-1-0 우현 잠항각 하향 15도 심도 80, 현재 속도 유지.”
손원일함(SS-072)은 잠항 각도를 내리며 사방이 어두운 서해 바닥을 향해 깊숙이 잠수해 갔다.
“분명히 이곳에는 다롄에서 출항한 잠수함들이 있을 거야. 음탐관은 SLSU 소나만 활성화한 채로 계속 확인하도록.”
“알겠습니다.”
* 한국 해군은 2018년에 제17전투비행단 지하연구소에서 개발한 액티브소나 형태의 M-SUSL(Ultra Super Sound Wave Light)소나를 214급의 모든 잠수함에 장착했다. 호큘라 잠수함에 적용된 SUSL-01MP 소나보다는 음탐 거리가 짧았지만, 아군의 음파 발신음이 적 잠수함의 소나에 음탐에 걸리지 않고 동시다발적으로 액티브 소나형 탐신 음파를 쏠 수 있었다.
핑~ 핑~ 핑~
이십여 분 후 다롄시 방향으로 80km 이내까지 접근한 손원일함(SS-072)의 M-SUSL 액티브소나에서는 계속해서 탐신 음파를 쏘아댔고 30여 분이 흐른 후 드디어 뭔가가 걸렸다.
“적 잠수함입니다. 방위각 3-5-0 상방 20, 거리 32300.”
“잠수함 종류는?”
적 잠수함을 찾았다는 음탐관의 말에 오용현 함장은 반사적으로 되물었다.
“아직 파악이 안 됩니다. 앗! 또 있습니다. 우현 0-0-5, 거리 33,900.”
“2척이란 말이지.”
“네, 현재 2척 모두 본 함을 향해 15노트 속도로 남서진 중입니다.”
“이 정도 거리면 본 함을 발견하지 못한다. 첫 번째 잠수함을 목표1로 두 번째 잠수함을 목표 2로 지정!”
“1번, 2번 목표 지정합니다.”
“현재 속도 1/2로 감속.”
“속도 1/2로 감속합니다.”
오용현 함장은 잠수함을 탄 지 8년이 넘은 베테랑이었지만 막상 실전을 앞두고는 속이 울렁거릴 정도로 긴장감이 몰려왔다. ‘함장이 이 정도면 일반 부사관과 초급 장교는 어떨까? 아마도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겠다.’라는 생각이 들자, 정신을 바짝 차리고는 침착한 목소리로 다음 명령을 이었다.
“1번, 2번, 3번, 4번 발사관 주수! 우리는 이곳에서 기다리다 격침한다.”
“1번부터 4번까지 발사관 주수 들어갑니다.”
어뢰무장관이 복명복창하며 명령을 따랐다. 그리고 거리 30km 이내로 좁혀지자 적 잠수함의 소음이 뚜렷해졌고 이에 음문을 분석한 음탐관이 조용히 말했다.
“적 잠수함 정체 파악했습니다. 2척 모두 039G 개량형 쏭급으로 확인되었습니다.”
확인된 북해함대의 039G 개량형 쏭급은 지난 10월 31일 동중국해에서 호큘라 잠수함인 이봉참함(SSP-081)이 격침한 SS320과 동급인 잠수함이었다.
“좋아! 현재 거리는?”
“1번 표적 25500, 2번 표적 26100입니다.”
“1번과 2번 어뢰에 각 적 잠수함 음문 삽입.”
“1번과 2번 어뢰에 각 적 잠수함 음문 삽입합니다.”
“거리 10000에서 동시 공격한다.”
이럴 때 오용현 함장은 호큘라 잠수함 함장들이 부러웠다. '본 함에도 초공동 백상어A(K745) 어뢰가 있었다면 이렇게 피 말리는 시간을 보내지 않고 당장 발사했을 텐데.' 라는 푸념을 하며 거리 10km가 될 때까지 숨죽인 채로 기다렸다. 그리고 지루했던 20여 분이 흐르고 중국 잠수함은 10km까지 다가왔다.
“함장님, 1번 표적 거리 10,000 도달했습니다.”
“좋아! 1번, 2번 발사관 개방.”
어뢰무장관은 복명복창과 함께 1번과 2번 발사관을 개방했다.
“1번. 2번 발사관 개방했습니다.”
“1번, 2번 어뢰 급속 발사.”
함장의 발사 명령에 어뢰무장관이 발사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백상어(K-744) 어뢰 2발이 압축공기에 의해 발사관을 빠져나왔다.
뚜웅! 뚜웅!
사거리 30km에 이르는 백상어(K-744) 어뢰는 첨단 능동형 소나가 탑재된 어뢰로 표적으로 삼았던 적 잠수함의 음문을 탐지하기 시작했고 하얀 물거품 항적을 남기며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갔다.
한편 중국 잠수함은 갑자기 나타난 2발의 어뢰에 손원일함(SS-072)의 존재를 파악했고 즉시 하드 킬을 하기 위해 각각 중국 잠수함 두 척 모두 2개의 발사관에서 주수음을 내뿜었다.
“1번 표적, 2번 표적 주수음 탐지됩니다.”
“그래? 한번 해보자는 거구만.”
본격적인 실전에 돌입하자 조금 전까지 오용현 함장의 온몸을 억누르던 긴장감은 말끔히 사라지고 도리어 아드레날린이 분출하며 전열의 투지가 흘러나왔다.
“3번, 4번 음문 삽입 후 발사관 개방.”
“3번, 4번 음문 삽입 중. 완료했습니다. 발사관 개방합니다.”
“3번, 4번 발사.”
뚜웅! 뚜웅!
3번과 4번 발사관의 백상어(K-744) 어뢰도 마찬가지로 공기 압축의 힘에 발사관을 빠져나간 후 중국 잠수함을 향해 하얀 항적을 남기며 사라져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