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서막
2020년 10월 16일 04:30,
서울시 종로구 청와대 대통령 관저.
영부인 오은하 여사가 깰까 봐 조용히 침대에서 빠져나온 대통령은 관저 앞뜰 정원에 나왔다. 그리고 10여 년 전에 끊었던 담배 하나를 입에 물었다. 어제 낮 합동참모본부 지휘소에서 청와대로 올 때 비서진을 통해 구해온 담배였다.
어둠이 깔린 정원 사이로 쌀쌀한 바깥 공기는 막혀 있던 가슴을 속 시원히 뚫어주는 느낌이 들었다. 한동안 입에 물고만 있던 담배에 불을 붙이고 한 모금 깊게 들이마신 대통령은 초롱초롱 빛나는 샛별들을 보며 담배 연기를 내뱉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임기에 대한민국을 전쟁의 불구덩이 속으로 끌고 들어가야 하는지, 아니면 두 눈 뜨고 중국이 북한을 먹어치우는 것을 바라만 봐야 하는지.’
번뇌에 빠질 수밖에 없었던 대통령은 답답함을 달래고자 이렇게 홀로 새벽녘 앞뜰 정원에 나와 담배를 피우고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사실 답은 정해져 있었다. 전쟁뿐이라는 것을. 그렇기에 마음은 답답할 뿐이었다. 국민에게 전쟁의 당위성을 설명하고 지지를 호소해야만 하는 자기 자신을······.
‘두렵다. 정말 두렵고 무섭다. 한반도에 전쟁을 일으킨 원흉이다. 한민족을 전쟁으로 말살시키려는 악의 화신이다. 얼마 남지 않은 임기를 연장하기 위해 전쟁이라는 악수를 둔 파렴치한 인간이다. 나는 결코 이런 비난과 비판이 두려운 것이 아니다. 단지 이 전쟁으로 누구의 아들, 누구의 아빠, 누구의 남편, 즉 무고한 수많은 생명이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이 나로서는 두렵고 무섭다.’
이런 생각이 들자 대통령의 눈시울은 붉게 물들었다. 그리고 1시간 동안 정원을 이리저리 걸으며 복잡한 생각들을 하나하나 정리해갔다.
★ ★ ★
2020년 10월 16일 09:30,
서울시 용산구 B2 벙커(국군 합동지휘통제소 작전회의실).
20여 평의 합동참모본부 작전회의실에는 대한민국 4군 참모총장부터 각 군의 지휘관들이 모두 모였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작전회의실에는 수많은 별이 모여 있었다. 이유는 건국 이래 처음으로 타국을 향한 선제공격 작전을 수립하기 위함이었고 또한 공격 대상이 새롭게 떠오르는 신흥 군사대국인 중국이었다.
“이번 작전명은 ‘고구려의 기상’으로 정했습니다. 또한, 오늘부터 합참에서는 중국 인민해방군을 중국군으로 명칭을 통일합니다. 이점 유념해 주시기 바라며, ‘고구려의 기상’ 작전을 수립하기에 앞서 현재 중국군의 상황부터 간단히 브리핑하도록 하겠습니다.
합동참모부 작전기획본부장인 나태윤 중장이 서문을 열었다.
“스크린을 주목해 주시기 바랍니다. 현재 기준으로 만주와 압록강 주변에 배치된 중국군의 각 집단군 직할 및 예하 부대의 위치 및 편성 자료입니다.”
스크린에 불이 들어오자 어제 대통령에게 보여줬던 여러 모양의 표기들이 표시된 디지털 지도가 보였다.
“먼저 합참에서 분석한 정보를 간단하게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현재 상황으로 볼 때 압록강을 기준으로 침공하려는 주공 부대는 제39집단군이며, 백두산부터 두만강 일대로 침공하려는 2차 주공 부대는 제16집단군입니다. 두 주공 부대를 후방에서 지원하는 부대로는 제40집단군과 전장의 상황을 보고 신속하게 투입할 중국군의 전투력 서열 1위인 신속대응군 제38집단군으로 확인하였습니다. 총 4개의 집단군으로 우리 군으로 비교하자면 6개 군단 규모라 판단됩니다.”
작전기획본부장은 레이저 포인트로 이리저리 여러 곳을 가리키며 간단명료하게 설명해 나갔다.
“그럼 먼저 중국군의 주공인 제39집단군 예하 부대에 대한 설명입니다. 현재 압록강 줄기를 따라 70km 근방까지 이동한 제39집단군의 모든 예하 부대는 기계화로 구성된 기동부대라 볼 수 있습니다. 지도에 표기된 것과 같이 직할 부대인 제9육군항공여단, 예하 부대인 제115차량화보병사단, 제116차량화보병사단, 제117기계화보병사단, 제190기계화보병사단, 제3기갑사단, 포병여단, 방공여단입니다.”
제39집단군의 편제 규모가 우리 군의 군단 2개에 약간 못 미치는 규모였기에 여기저기 웅성거리며 대규모 편제에 놀라기도 했다.
“그럼 두 번째 주공인 제16집단군의 부대 설명입니다. 백두산에서부터 두만강 일대에 편성된 예하 부대로는 제9보병사단, 제32보병사단, 제46차량화보병사단, 제47차량화보병사단, 제48보병여단, 제68보병여단, 제4기갑사단, 포병여단, 방공여단, 통신여단, 공병여단, 대전차여단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험난한 산악과 평지 모두 침투가 가능한 부대입니다.”
이어 20여 분 동안 나머지 제40집단군과 제38집단군의 상세 부대 설명이 끝나고 합참의장이 스크린 옆 단상에 올랐다.
“현재 예상으로 14일 정도면 중국군의 각 집단군 예하 부대들의 편제와 배치가 완료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작전수립에 있어 몇 가지 전제조건을 말하고자 한다. 첫째 이번 ‘고구려의 기상’ 작전은 우리의 선제공격으로 시작한다. 둘째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북한지역에서의 전투는 있을 수 없다. 고로 모든 전투는 압록강 국경선 넘어 중국 내지에서 치러야 한다. 셋째 인정사정 볼 것 없다.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 그러니 어떠한 작전도 좋다. 과감하고 자율적인 작전을 입안해주길 바란다.”
합참의장이 단상에서 물러나고 드디어 ‘고구려의 기상’ 작전수립을 위한 각 군 지휘관들의 의견들이 쇄도했다. 지난 과거 이리저리 당하기만 했던 옛 선조들의 한을 이번 기회에 풀고자 하는 집념에서 나온 건지 50여 명의 각 군 지휘관들은 3일간 밤낮을 새며 훗날 역사에 길이 남을 ‘고구려의 기상’ 작전을 수립하였다.
★ ★ ★
2020년 10월 17일 04:30,
서울시 종로구 청와대 본관 2층 백악실.
대통령은 오랜만에 여야 당 대표를 초청하여 백악실에서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사실상 대선을 앞둔 시점이라 여야 총수들이 만나는 건 조금 부자연스럽긴 했지만 오랜만에 대통령의 초청인지라 불편한 기색을 감추며 담소를 나눴다.
“오랜만에 이렇게 모셔서 죄송합니다.”
요즘 관심사인 남북 연방제 통일안에 대한 여러 진행 상황과 코앞에 다가온 대선 이야기로 담소를 나누던 대통령은 식어버린 차를 마저 마시고는 찻잔을 내려놓으며 반대편에 앉아있는 여야 대표의 얼굴을 살폈다. 이에 여당 대표인 한마음혁신당 이재민 당 대표가 물었다.
“대통령님, 뭔가 진지하게 하고 싶은 말씀이 계신가요?”
오랫동안 같은 당에서 동고동락했던 사이 인지라 이내 대통령의 표정을 읽고는 물어봤던 것이었다.
“오늘 당 대표님들을 모신 건, 중대한 얘기를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에 통합국민당 구진혁 대표가 살짝 눈을 치켜뜨며 궁금했는지 바로 물었다.
“대통령님, 무슨 근심이 있는 것처럼 들리는군요. 시원하게 말씀해보세요.”
“그러지요. 현재 중국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습니다.”
“저번 불법 조업 사건 이후 중국 측 반응 때문에 그러십니까?”
이때 까지만 해도 단지 중국의 경제 및 외교적 문제와 사소한 군사적 충돌 건 때문에 그런가 하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당 대표들은 괜한 걱정을 한다는 식으로 쉽게 말했다.
“대통령님, 안하무인 중국놈들이 언제는 안 그랬습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 우리 대한민국도 예전의 대한민국이 아니지 않습니까?”
풍만한 체격에 각진 금테를 쓴 복지한국당 유현영 당 대표가 볼살이 흔들릴 정도로 웃으며 말했다.
“그 이상입니다. 현재 중국은 5개의 집단군을 북한 압록강 국경선까지 이동배치 중입니다.”
순간 백악실에 앉아있던 4명의 당 대표는 뭔가에 맞은 것처럼 멍한 표정을 지으며 대통령의 말을 정확히 판단하려는 듯 고개를 젓기도 하고 눈을 돌리기도 하며 각가지 행동을 취했다. 그리고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이재민 당 대표가 다급하게 물었다.
“국경선까지 병력을 배치했다니요? 그럼 북한을 공격하기라도 하겠다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합참의 분석으로는 전쟁 준비단계로 봐야 한다는 판단이며, 추가로 국정원 대외정보팀에서 올라온 보고에도 현재 중국 주석인 시진핑을 중심으로 강경파에 의해 10일 전부터 긴급 전시에 돌입했다는 정보입니다.”
“이 일을 어찌합니까?”
유현영 당 대표가 몸에 힘을 빼고 의자에 의지한 채 입을 벌리고는 천장을 바라봤다.
“그렇다면 대통령님은 어떤 생각입니까?”
이재민 당 대표가 물었다.
“허심탄회하게 말하겠습니다. 중국이 북한을 침략하는 것을 저는 두 눈 뜨고 볼 수는 없습니다. 더군다나 지금 남과 북은 연방제 통일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전쟁입니까, 대통령님?”
지금까지 듣기만 하고 있던 민족하나당 김일호 당 대표가 핵심을 파고들 듯 물었다.
“부인하지 않겠습니다. 전쟁을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은 게 제 심정이지만, 그럴 수 없다면 저는 이기는 전쟁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그건 안 됩니다. 대통령님, 한반도에 전쟁이라니요? 지금껏 힘들게 쌓아 올린 모든 것이 망치게 됩니다.”
뚱뚱하면 겁이 많다고 했던가. 유현형 당 대표는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풍만한 몸을 이리저리 들썩거리며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그럼 중국이 북한을 침략하는 것을 두 눈 뜨고 지켜보고만 있을 겁니까?”
대통령이 하고 싶었던 말을 민족하나당 김일호 당 대표가 눈에 쌍심지를 켜고 호통치듯 말했다.
“그 무슨 말이오? 누가 언제 지켜보기만 한다고···.”
더는 말을 잇지 못하고 얼버무리는 유현형 당 대표를 향해 대통령은 그런 마음을 이해한다는 듯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유현영 당 대표님, 충분히 이해합니다. 저 또한 조금 전 말한 것처럼 피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북한을 포기한다면, 이제 통일 대상도 사라질뿐더러, 한반도 이북은 영원히 중국으로 넘어갈 것입니다.”
나머지 2명의 당 대표도 깊은 고뇌에 빠졌는지 입을 굳게 다문 채 아무 말 하지 않았고 그렇게 시간은 몇 분간 흘렀다. 그리고 가장 반대가 심할 거 같았던 통합국민당 구진혁 당 대표가 대통령을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
“대통령님, 저희가 어떻게 도와드리면 되겠습니까?”
통합국민당에서는 내세운 대선 후보자는 현 여당의 대선 후보자와 지지율 싸움에서 뒤지지 않는 차기 대통령 후보감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대선까지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었기에 대통령으로서는 통합국민당 대표는 무조건 반대를 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통합국민당 대표는 정권쟁취보다는 대한민국의 앞날을 더 생각했는지 진심 어린 눈빛으로 대통령에게 말한 것이었다.
“두 당 대표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나머지 당 대표님들,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대통령이지만 이렇게 부탁드립니다. 신속하게 전쟁동의안을 통과시켜 주셨으면 합니다.”
이날 여야 대표 4명과의 회담이 있고 나서 4일 후 국회에서는 여야 합의로 철저한 보안을 유지하며 신속하게 전쟁동의안을 통과시켰다. 이에 대한민국 정부는 곧바로 북한 김여정 제1위원장에게 핫라인을 통해 이러한 사실을 통보했고 국방부와 인민무력부와의 기밀한 협력으로 압록강 국경선 일대의 인민군 부대의 철수와 한국군의 빠른 이동을 위한 도로를 확보하는데 최우선 과제로 삼아 진행했다. 그리고 대통령과 국방부 장관은 합동참모부에서 입안한 ‘고구려의 기상’ 작전 안을 검토하기 위해 다시 합동참모본부에 방문하였다.
★ ★ ★
2020년 10월 23일 14:30,
서울시 용산구 B2 벙커(국군 합동지휘통제소 작전회의실).
합동참모본부 작전회의실 회의 탁자에는 A4용지 이백여 장으로 제본이 된 기밀문서 한 다발이 각각 대통령과 국방부 장관 앞에 놓여 있었다. 합동참모부의 전략기획실과 각 군 지휘관들이 3일간 날밤을 지새우며 수립한 ‘고구려의 기상’ 작전 입안 문서였다.
“생각보다 분량이 많군요?”
대통령은 표지에 ‘고구려의 기상’이라는 작전명이 선명하게 인쇄된 기밀문서를 천천히 읽어보며 생각보다 많은 분량이었는지 혀를 내두르며 말했다.
“그렇습니다. 대통령님, 입안 작전 문서에는 개전부터 종전까지 예상되는 모든 전술과 전략을 치밀하게 분석하여 수록하였습니다.”
자신감 넘치는 강이식 합참의장의 말에 믿음이 가는지 대통령은 고개를 끄덕이며 작전 기밀문서를 내려놨다. 이어 합참의장의 손짓에 부관이 스크린 콘솔을 조작하자 스크린이 환해지면서 ‘고구려의 기상’이라는 큼지막한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지금부터 ‘고구려의 기상’에 대한 간략한 작전 브리핑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합참의장은 직접 단상에서 레이저 포인트를 써가며 브리핑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