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7화 (77/605)

전쟁의 서막

2020년 10월 05일 14:00,

북한 평양시 외무성 외무상 접견실.

주조선 중국대사인 리진쥔이 양 눈 사이의 미간을 좁히며 북한 강동규 외무성을 째려보듯 보면서 말했다.

“언제부터 조선이 중국을 무시하고 한국과 이런 일을 꾸민 것이오?”

“일을 꾸미다니? 무슨 말을 그따위로 한단 말임메?”

“조선과 중조우호조약을 체결한 지 벌써 59년이 넘어가고 있습니다. 그런 최우방국에 일체 상의도 없이 한국과 통일이라니? 당신들은 지금 중조우호조약 제4조를 위반하는 행위라는 거 알고 있는 거요?”

회의 시작부터 거만한 태도로 이리저리 손을 휘저으며 말하는 리진쥔 대사는 중조 우호조약 내용이 쓰여 있는 문건을 들이대며 아까보다 한층 더 높은 소리로 말했다.

“제4조 말임메? 한국과의 통일문제는 국제문제가 아니지 않슴메, 같은 민족끼리 통일하겠다는데 그게 어찌 국제문제라 함메? 그리고 지금 리진쥔 대사는 조중우호조약 제5조를 무시하는 행위인 것을 명심해야 할 것임메, 이게 바로 내정간섭임메.”

“내정간섭? 언제부터 주권국가 간 통일합의 사항이 국제문제가 아니라고 하는 것이요? 자꾸 이런 식으로 나온다면 중국은 조선에 대해 가만있지 않을 것이오.”

쿵!

리진쥔 대사는 주먹으로 탁자를 내려치며 협박성 말을 날렸다.

“리진쥔 대사, 조만간 인민회의에서 조중우호조약에 대한 개정을 진행할 것임메. 그렇게 되면 이제 조중 우호조약의 효력은 상실될 것이니 그렇게 알고 더는 이 일로 시끄럽게 하지 말았으면 좋겠으메.”

“개정? 지금 내가 하는 말이 허투루 들리는가 본데, 조선은 지금부터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할 것이오.”

콰앙

조약 개정에 대한 말까지 나온 마당에 더 이상의 대화는 무의미하다고 생각한 리진쥔 대사는 자리에서 박차고 일어나 강동규 외무상에 삿대질하며 큰소리로 일갈한 후 문을 박차고 나가버렸다. 이에 리진쥔 대사가 나가버린 출입문을 힐끔 보고는 미소를 보인 강동규 외무성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거, 간나새끼, 목소리 한번 크다.”

★ ★ ★

2020년 10월 12일 11:00,

대한민국.

10월 1일 남북 연방제 통일합의에 대한 담화 발표 후 국회 비준안을 통과한 대한민국에서는 신속하고 체계적으로 연방제 통일 절차를 밟아가고 있었다. 이러한 일이 가능했던 건 9개월 전 국가비전전략위원회에서 미리부터 연방제 통일에 따른 여러 정책을 수립해 놨기 때문이었다. 또한, 북한 지도부의 적극적인 협조 덕분이기도 했다.

남과 북, 한반도 연방제 통일 합의사항을 보자면 첫째로 정치이념은 자유민주주의며 국호는 한글로 ‘대한민국’으로 영문은 ‘Republic of Corea’로 합의했다. 중앙정부 체제에 북한을 북주, 남한을 남주로 정하여 각각의 연방 주정부가 들어서게 되며 북주의 주청 도시는 평양으로, 남주의 주청 도시는 세종으로 정했다. 그리고 현 서울을 중앙정부의 수도로 결정했다.

둘째 삼권분립에 따라 행정부는 현 대한민국의 대통령제를 그대로 반영하며 추가로 부통령을 북한의 제1부위원장인 김여정을 내정하기로 했다. 그리고 행정부서는 현 대한민국의 행정부 부서를 기본으로 남과 북의 해당 부서끼리 통합하는 방식으로 진행하되 장관급 인사는 기존 남한의 장관을 그대로 임명하기로 하였고 차관은 북한 인사를 임명하기로 했다.

그리고 통일부를 통일정책부로 명칭을 변경하여 연방제 통일에 따른 모든 일을 주관하는 부서로 업무를 전환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산하에 북주복구사업청을 신설하여 북한 전 지역에서 필요로 하는 산업시설, 교통시설, 그리고 사회기반시설인 학교, 병원 등 즉 전반적인 인프라 구축사업을 총괄하기로 했다.

셋째 삼권분립에 입각한 국회는 현 국회 제도를 그대로 반영하되 1년 안으로 북주 지역의 국회의원 100명을 선거를 통해 선출하기로 하였다.

넷째 연방제 통일에 있어 가장 민감한 행정부 조직 중의 하나인 군대를 담당하는 국방부는 남한의 국방부와 북한의 인민무력부와의 통합이 기본 토대였으나, 현 북한군대 수가 필요 이상으로 많아 대대적인 축소와 구조조정이 절실한 상황이었기에 해체를 통한 재편성을 하는 형식으로 가닥을 잡았다. 그리고 북한군대의 해체로 인해 전역하게 되는 수많은 군인은 통일에 따른 북주의 복구사업 현장에 투입하는 산업 일꾼으로 전환 시키고 특수부대와 장기 복무를 원하는 군인들만 재편성하여 군대에 재입대하는 것으로 정했다.

★ ★ ★

2020년 10월 15일 09:30,

서울시 용산구 B2 벙커(국군 합동지휘통제소 작전회의실).

남과 북 연방제 통일까지 앞으로 2개월하고도 15일이 남은 상태에서 최근 들어 국방부로부터 청와대에 보고 횟수가 늘어나고 있었다. 바로 중국 인민해방군의 움직임 때문이었다. 지난 5일 북한으로부터 중국대사가 북한 외무상에게 협박성 엄포를 하고 대사관 전체 직원과 함께 북한에서 철수했다는 보고를 전달받은 대한민국 정부는 아폴론 1호와 2호를 통해 중국 북부 전구와 서해 일대를 통합적으로 정찰하라는 임무를 내렸다. 이에 북부 전구 소속의 각 집단군이 동시다발적으로 훈련을 재기하였고 훈련을 핑계로 남쪽으로 부대 이동이 늘어나고 있다는 보고가 올라왔다.

이에 대통령은 국방부 장관과 함께 아침부터 합동참모본부 지휘실인 용산 B2 벙커에 직접 방문하여 아폴론 정찰위성으로부터 수집한 중국군의 움직임에 대한 보고를 받았다.

“지금 보시는 디지털 지도는 10일 전 북부 전구 소속의 각 집단군 예하 부대의 위치입니다.”

합동참모본부 작전처장인 황대훈 준장이 각 스크린에 여러 모양으로 표기된 곳들을 가리키며 설명하기 시작했다.

“다음 지도를 보시겠습니다.”

작전처장의 말과 동시에 스크린에 새로운 디지털 지도가 보였지만 표기만 약간 다를 뿐 같은 지도였다.

“이 사진은 어제 아폴론 정찰위성에서 촬영한 디지털 지도입니다. 그럼 두 지도를 비교해 보겠습니다.”

서서히 스크린에 두 개의 지도가 겹쳐지며 약간씩 다른 표기들이 별표 모양으로 깜빡이기 시작했다.

“깜빡이는 별표가 보이실 겁니다. 이 별표는 10일 전 사진과 어제 사진을 비교했을 때 각 부대 위치가 다른 경우 별표로 표기된 것입니다. 특히 랴오닝성의 제39집단군과 제40집단군 소속의 각 부대, 그리고 지린성의 제16집단군 소속 예하 부대들이 압록강 방향으로 남진 이동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스크린에 보인 디지털 지도에는 수백 개의 깜빡이는 별표들이 9일 전에 비해 북한과 중국 국경인 압록강 방향으로 이동되어 있었다. 특히 중국 집단군에서도 전투력 서열 2위라는 제39집단군 소속 예하 부대가 압록강 줄기를 따라 골고루 분포되어 있었다.

“현재 위치한 각 군부대의 특성을 보자면, 현재 압록강 줄기를 따라 분포된 제39집단군의 예하 부대는 직할 부대인 제9육군항공여단과 예하 부대인 기갑사단 1개, 차량화보병여단 2개, 기보사단 2개, 경기보사단 2개, 중기보여단으로 모두 기동부대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언제든 급속 기동으로 압록강을 넘어 남진할 수 있다는 방증이라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이곳을 보시기 바랍니다.”

작전처장이 가리킨 곳은 북경에서 북동 방향으로 140km 떨어진 청더시 일대였고 별표 또한 수십 개가 빼곡히 모여 깜빡이고 있었다.

“바로 신속대응군이라 불리는 집단군내 전투력 1위인 38집단군입니다. 그럼 이곳을 정찰한 영상을 보시겠습니다. 시간은 어제 오전 11시에 촬영한 것입니다.”

깜빡이는 별표들이 차례대로 확대되면서 스크린은 여러 개의 칸으로 나뉘어 영상들이 보였다. 그리고 모든 영상에는 기계화사단임을 암시하는 전차와 장갑차, 자주포, 그리고 수많은 차량으로 구성된 부대의 모습이었다.

“다음 사진은 아폴론 2호에서 정찰한 북해함대와 동해함대 영상입니다.”

스크린에 영상이 바뀌고 북해함대와 동해함대의 구축함과 잠수함 그리고 각종 수상함이 해당 해군기지로 귀항하여 연료 보급 및 미사일과 탄약을 보급받고 있는 영상이 화면에 그대로 비쳤다.

“합참에서 분석한 결과로는 준전시체제의 준비단계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이상 현 중국 북부 전구 소속의 각 집단군과 중국 해군의 동향에 대한 브리핑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작전처장 황대훈 준장은 대통령을 향해 절도있게 거수경례한 후 단상 옆으로 발걸음을 옮기고는 부동자세를 취했다.

“수고했습니다. 나 같은 민간인이 보기에도 중국군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군요. 합참의장은 어떻게 보십니까?”

“그렇습니다. 현재까지 움직임만으로도 전쟁 초기 준비단계라 봐도 무관하다고 생각합니다.”

“합참의장이 그렇게 얘기하니 더 심각한 상황이라 인식이 되는군요.”

대통령은 상체를 뒤로 저치며 팔짱을 끼고는 스크린을 주시했다. 그리고 십여 초가 지난 후 합참의장에게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지금 상황에서 우리 군은 취해야 할 대책은 무엇입니까?”

“솔직하게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합참의장은 뭔가 심각한 말을 하려는지 자세를 바로잡고는 대통령을 똑바로 바라보면 말했다.

“당연하지요. 솔직하게 말해주세요.”

“그렇다면 솔직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선공입니다, 대통령님!”

순간 대통령은 잘못 들은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에 팔짱을 풀고 탁자 쪽으로 당겨 앉고는 되물었다.

“선공이라 했습니까? 뭘 선공한다는 겁니까?”

“중국입니다. 대통령님,”

“중국에 대한 선공이요? 선공이어야만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합참의장은 자리에서 일어나 부동자세를 취하며 진중한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먼저, 중국군이 압록강을 넘어 남침할 경우 북한지역에서 방어하기엔 상당한 어려움이 예상됩니다. 첫째로, 북한 주민입니다. 작전 수행 시 분명 북한 주민들의 피해가 예상됩니다. 이런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작전수립 시 상당한 제약을 받을 것입니다.”

합참의장은 사전에 준비해 왔는지 거침없이 말을 이어갔다.

“둘째, 현 북한군의 동요가 예상됩니다. 분명 중국에서는 침공 전 북한 군부의 지휘관에 대한 회유가 있을 것입니다. 이런 경우 우리 군은 언제 변심할지 모르는 아군을 곁에 두고 전쟁을 수행해야만 합니다.”

“합참의장! 아직도 북한 군부에 중국을 추정하는 지휘관들이 있다고 봅니까?”

“장담할 수는 없지만, 만에 하나라 생각합니다.”

“그래요. 계속하세요”

“마지막 셋째로 현대전은 화력전입니다. 전쟁 초반 중국군은 각종 미사일과 포병전력으로 막강한 화력을 퍼부을 것입니다. 만약 아군지역이 아닌 중국 진형에서 전쟁이 일어난다면 중국은 마음 놓고 화력을 퍼부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것은 제 개인 생각입니다만 우리 옛 선조들은 반만년 동안 수많은 침략을 당했으면서도 한 번도 타국을 향해 선공한 적이 없었습니다. 이것을 사람들은 싸움을 싫어하고 평화로운 민족이라 말합니다. 하지만 제 생각은 다릅니다. 힘없고 약했기 때문에 반만년 수많은 침략을 당하면서도 복수는커녕 선공 한 번 못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힘없고 약한 나라, 이제 그만하고 싶은 것이 제 심정입니다. 대통령님”

“그래요, 잘 들었습니다. 그럼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묻겠습니다.”

“네, 대통령님.”

“현재 기준으로 중국이 북한을 침략하기까지 우리가 대비할 시간적 여유는 얼마나 있다고 봅니까?”

“합참에서 분석한 결과는 적어도 15일 정도면 중국군은 북한을 침략할 군 편성이 완료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에 대통령은 허벅지를 손바닥으로 살짝 치고는 한숨 한번 내쉬곤 말했다.

“생각보다 시간적 여유가 없군요.”

“그렇습니다. 긴 시간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지금 대통령의 마음속은 뭔가에 의해 심하게 짓눌리고 있는 느낌을 받고 있었다. 국가의 수장으로서 국민을 전쟁의 소용돌이로 빠지게 하고 싶지 않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니 답답할 뿐이었고 정말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은 게 현재 대통령의 심정이었다. 하지만 어쩌랴, 국가의 수장은 결정해야만 하는 위치인 것을······.

잠시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번득 정신을 차린 대통령은 조금 전부터 서 있던 합참의장에게 다가가 악수를 청하며 말했다.

“지금 당장 결정은 못 내리지만, 합참에서는 최선의 작전을 수립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작전수립에 있어 최대한 자율권한을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대통령님.”

대통령은 악수하는 손에 힘을 주고 가볍게 흔들며 합참의장에게 살짝 몸을 기울이고는 귓속말하듯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전쟁이 불가피하다면 인정사정 두고 싶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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