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8화 (68/605)

통일로 가는 길

2020년 4월 27일 16:20,

경기도 파주시 판문각.

서현우 대통령과 김여정 제1부위원장은 1차 회담을 마치고 잠시 차 한잔하는 휴식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20분 후 2차 1대1 비밀 회담을 하기 위해 다시 판문각 회담장 회의 탁자에 마주 앉았다.

“김여정 부위원장님, 이제부터 허심탄회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러디요. 서현우 대통령님.”

“2019년 대한민국은 GDP 4,900조 원대로 세계 4위에 올랐으며 올해는 일본을 따라잡을 경제적 성장력을 보입니다. 인구대비로 보자면 일본은 벌써 따라잡은 상황이라 보셔도 무방합니다.”

서현우 대통령은 인자한 표정으로 자세를 편히 잡고는 김여정 제1부위원장을 바라보며 서슴없이 말하기 시작했다.

“그렇쿠만요. 같은 한민족인 남조선의 발전이 기정도라니 축하드리겠시야요.”

“별말씀을요. 제가 자랑하고자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름 아닌 이 말을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연방제 남북통일입니다.”

김여정은 남북통일이란 말에 흠칫 놀라는 표정을 그대로 들어냈다. 남북이 화해 분위기로 전환한 지 1년도 안 된 상태에서 서슴없이 통일이란 단어를 사용하는 서현우 대통령의 말에 김여정으로서는 여간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었다.

“통일이라 하셨시야요? 고런 말 하기에는 아직 이르디 않습네까? 우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김정은 위원장 동지를 필두로 아직 건재하단 말이디요.”

단호한 말투에 밀리지 않겠다는 의지의 눈빛을 보이며 김여정 제1부위원장은 불편한 기색을 감추려는 듯 자세를 한번 바꾸며 대꾸했다.

“알고 있습니다. 당장 통일을 하자는 논지가 아닙니다. 조금 전 1차 회담 내용처럼 북한에 대한 대대적 지원 즉, 도로, 철도, 산업 기반 시설과 북한 인민들을 위한 병원과 학교 건설 지원정책처럼 기간을 두고 정치적, 군사적 통합을 진행했으면 합니다. 이에 저는 정식으로 김여정 부위원장님에게 연방제 통일을 요청하는 것입니다.”

“서현우 대통령님, 너무 서두르디 마시라요. 아까도 말했듯이 우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통일을 아쉬워할 만큼 어렵지 않습네다.”

서현우 대통령은 역시나 예상했던 반응이 나오자 이번엔 좀 더 강한 어조로 말했다.

“그렇다면 한 가지 질문 좀 하겠습니다. 김여정 부위원장님, 북한 정권을 확실히 잡았다고 생각하십니까?”

김여정 제1부위원장은 서현우 대통령의 말에 약점을 잡힌 사람처럼 불편한 감정을 드러내며 말을 잇지 못했다. 사실 그랬다. 2015년 김정은 위원장이 테러로 의식불명에 빠지고 여러 측근으로 인해 제1부위원장으로 추대되면서 북한 실세 서열 1위로 올라서며 4년간 나름 문제없이 정치를 해왔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엄밀히 보자면 리병철 같은 자들의 손아귀에 놀아난 꼴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

또한, 이번 리병철 반란 사건은 다행히도 남조선에서 미리 사실을 알려줘 무사히 진압에 성공하였지만, 앞으로 제2의 리병철 같은 자들이 또 나오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었다. 이로 인해 김여정으로서는 언제 반란이 일어날까 노심초사하며 권력욕에 눈이 먼 늙다리 같은 고위 인사들과 함께 북조선을 이끌고 가기엔 심성이 강하지 못한 30대 초반의 여성인 김여정으로서는 하루하루가 힘든 시간이 될 것은 뻔한 일이었다.

하물며 믿고 있는 김정은 위원장은 의식불명 속에 언제 깨어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기에 김여정의 심적 불안감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상황이기도 했다. 이런 단편적인 김여정의 심정을 찌르는 서현우 대통령의 말은 그야말로 비수 아닌 비수로 들렸던 것이었다.

“무슨 말입네까? 전 김정은 위원장 동지를 대신하여 잠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이끄는 상황입네다. 그런 질문은 저를 우습게 보는 처사라 생각합네다. 삼가시기 바랍네다.”

사람이라는 게 자기의 약점을 들키지 않기 위해 더 부정하며 화를 내는 게 다반사였다. 이에 김여정 또한 격한 음성으로 서현우 대통령의 질문에 따지듯 반문했다.

“기분 나쁘셨다면 사과드립니다. 김여정 부위원장님.”

50대 중반의 대한민국 정치인답게 경험의 관록이 묻어 있는 화술로 먼저 상대방의 약점을 건드려 흔들어 놓고 회담에서 우위를 선점하려는 서현우 대통령의 의중이 먹혀들어 가고 있었다. 회담 전 김여정의 심리상태를 충분히 파악하고 노린 한 수였다.

“저의 염려와 다른 게 김여정 위원장님께서 확고히 정권을 잡고 계신다면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북한 인민을 위한 연방제 통일에 대해서는 얼마든지 얘기해볼 수 있지 않습니까?”

말을 잇지 못하는 김여정을 보고는 회담의 선점을 잡았다 생각한 서현우 대통령은 좀 더 여유 있는 자세를 취하며 한층 더 강력한 미끼를 던지려 했다.

“연방제 남북통일에 있어 최대한 북한의 정치 인사들의 자리 또한 보장을 약속드립니다. 즉, 노동당의 존재를 인정하겠습니다. 단지 정치체계는 민주주의 방식으로 바뀌긴 해야겠지요. 그리고 현재 대한민국의 경제력은 당장은 아니더라도 최소 10년 안으로 북한 전 지역을 대한민국처럼 발전시킬 수 있는 역량을 가지고 있음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이것이 연방제 통일에 대한 구체적 자료들입니다. 돌아가시면 충분히 검토해 주시기 바랍니다.”

서현우 대통령은 가방에서 한 줌의 서류를 꺼내 김여정 제1부위원장에게 내밀었다.

이날 남북 정상 1대1 비밀 회담은 밤 8시가 넘어서야 끝이 났다. 남북 정상들의 4시간 동안의 1대1 비밀 회담은 국내 언론은 물론 세계 언론까지 과연 무슨 얘기가 오갔는지 초유의 관심사로 떠오르며, 추측성 보도와 여러 가지 되지도 않은 근거자료를 내세우며 저급 기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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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4월 27일 22:30,

북한 평남 평양개성고속도로.

관용차에 몸을 실은 김여정 제1부위원장은 불빛 하나 없는 창문 밖 풍경을 바라보며 정리되지 않은 여러 생각을 하고 있었다. 숨기고 싶고 감추고 싶었던 내적 불안감이었다. 리병철의 반란 사건으로 인해 주위 측근들에 대한 신뢰가 사라진 상태였다. 누가 아군이고 누가 반란을 꾀하고 있는 적군인지. 도통 감이 오지 않았다. 실로 리병철 사건은 이런 감정을 만들기에 충분했다. 자기 측근이라 생각했던 인물이었기 때문이었다. 복잡한 심경을 정리하지 못하고 생각만 깊어가는 그때 김여정을 태운 관용차와 수십 대의 호위 차량이 평양 시내로 들어서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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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4월 30일 17:00,

경기도 안산시 플라즈마 초광자발전소 준공.

지난 2018년 11월에 시공한 안산 플라즈마 초광자발전소가 1년 6개월 만에 준공하게 되었다. 기존 설비용량 8GW였으나 계획을 수정하여 12GW급의 대규모 설비용량 발전시설로 건설하느라 준공 시점이 조금 늦어졌다. 이번 안산 플라즈마 초광자발전소의 12GW 설비용량은 인천과 안산 등 서부 일대의 도시권에 충분한 전기를 제공할 수 있는 전략량이었다.

2024년까지 전국 곳곳에 12GW급 플라즈마 초광자발전소 10개를 건설하여 대한민국 모든 가정에 무상 전기 제공과 산업용 전기 사용료는 기존대비 80% 싸게 제공하는 장기 프로젝트가 이제 첫 삽을 뜨는 역사적인 순간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날 준공식은 최소의 정부 관계자만 참관하여 조촐하게 준공식을 진행하였고 외부 언론에는 일절 공개하지 않았으며, 보안 또한 웬만한 군부대 저리 갈 정도로 삼엄한 경계를 유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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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5월 3일 09:00,

북한 평양시 주석궁 회의실.

주석궁 회의실에는 북한 실세들이 회의 탁자를 중심으로 여러 서류를 확인하며 분주히 회의가 진행되고 있었다. 이 서류들은 서현우 대통령으로 건네받은 연방제 통일에 대한 구체적 사항이 담긴 서류들이었다.

“대충 확인했으면 의견들 내보시라요.”

평소 때보다 조금은 진중한 목소리로 김여정 제1부위원장이 말문을 열었다. 이에 제일 먼저 김기남 최고인민회의 의장이 손을 들었다.

“김기남 의장 말해 보시라요.”

“이것은 흡수통일 아니메? 우리 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으로서 이런 흡수통일을 받아 들러야 할 때가 아니지 않으메? 아직 김정은 위원장 동지도 깨어나지 않은 상태에서 이런 흡수통일은 절대 아니된다 생각하메.”

나름 중도입장이라 생각했던 김기남 의장이 반대의 의견을 제시했다.

“저는 생각이 다르다 생각합네다.”

김여정의 측근 중 친한파라 생각해도 무방한 김영철 당비서가 찬성의 의미를 품은 말을 꺼내 들었다.

“현재 남조선은 예전 남조선하고 다릅네다. 먼저 경제적으로 볼 때 세계 5위 안에 드는 경제대국으로 바뀌었습네다. 이번 연도 국방비만 해도 8백억 달러입네다. 2016년보다 2.5배에 해당됩네다. 하디만 우리 북조선은 어떻습네까? 나아지기는커녕 더 힘들어지고 있습네다. 다들 알고 계시디 않습네까? 믿고 있는 건 핵미사일뿐이디 인민들의 삶은 갈수록 쪼그라들고 있디 이말입네다.”

통일부전선부장이며 노동당 비서인 김영철이 북한 현실에 있어 불편한 진실을 신랄하게 딱 꼬집어 말했다.

“그래서메? 그렇다고 지금 와서 흡수통일이내 뭐네 하자는거메? 남조선이래 자주 만나더만 물들었으메?”

김기남 의장이 성난 말투로 바뀌며 김영철에게 삿대질까지 했다.

“김기남 의장 동지? 인민을 생각해야지 않카슴네까? 남조선에서 제시한 통일 지원정책을 보시라요. 어마어마 합네다. 우리 북조선이 백년을 때려부어도 모지랄 엄청난 재정지원을 한단 이말입네다.”

“뉘는 인민걱정 안하메? 혼자 인민 걱정하는 척 하디 말라메.”

“김기남 의장 동지 이젠 세상이 바뀌고 있음을 우리는 더 늦기 전에 인정하고 순리에 따라야 한단 이말임네다.”

“내가 그걸 모르고 있다 생각함메?”

“김기남 의장 동지, 흥분을 가라 앉으시라요. 지금 각자 의견을 말하는 중이니끼니 다른 동무들 얘기 들어보고 다시 말하시라요.”

“알겠습메, 김여정 동지.”

역시 김기남 의장은 최고령자로서 옛 사상에 물들어 있는 세대였기에 흡수통일을 대하는 감정이 좋지 않은 듯하였다.

“내도 한마디 하갓습네다.”

오춘환 총비서가 입을 열었다.

“고저, 남조선과는 무력이든 평화든 통일은 하야갔디요. 하디만 김영철 동무말대로 이젠 무력으로 남조선을 상대하기엔 힘들 듯합네다. 또한, 남조선에서 건넨 연방제 통일 조건은 우리로서 나쁘지 않다 생각합네다. 노동당 체제 보장도 있디 않습네까? 이 정도 조건으로 인민들을 위한다면 충분히 수긍할 수 있다고 생각합네다.”

회의 때마다 항상 제일 먼저 의견을 내놓았던 박봉주 총리가 여러 고위관료의 의견을 듣고는 대화에 끼어들었다.

“내도 한마디 올리겠습네다. 김여정 제1부위원장 동지.”

“하기요, 박봉주 총리 동무.”

“저는 현실적인 문제에서 몇 가지 말씀드리겠습네다. 현재 김정은 위원장 동지께서 깨어나지 않은 상태입네다. 이런 상태에서 통일 부분을 진행하는 것은 바람직 않다 생각합네다. 중국과의 조중보호조약에 따른 여러 가지 제약이 따를 수 있음을 간과했도 안니됩네다. 연방제 통일이든 흡수통일이든 먼저 중국과 얘기가 되어야 합네다. 그리구 과연 남조선에서 연방제 통일안에 따른 여러 조항을 100% 지킬 수 있느냐는 것도 확띠리 따져봐야 할 듯합네다.”

박봉주 총리는 찬성이냐 반대냐의 의견보다 먼저 해결해야 할 부분과 놓치고 있는 부분에 대해 간단명료하게 말했다.

이날 회의는 오전 9시에 시작하여 오후 5시가 돼서야 끝이 났다. 점심 1시간을 빼고도 7시간이라는 긴 마라톤 회의를 거치며 남북 분단 이래 처음으로 한반도 통일이라는 주제로 찬성과 반대의 수많은 의견이 오갔다. 딱히 결정된 것은 없었으나, 과거를 생각했을 때 남북통일이란 문제로 주석궁에서 그것도 북한 지도부 입에서 흘러나왔다는 자체만으로도 북한은 서서히 한반도 변화의 흐름 속에 빠져들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한 단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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