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6화 (66/605)

위기

2020년 2월 10일 17:00,

경기도 파주시 통일민족관 3층 접견실.

김영철을 쏘려 했던 호위대장은 얼굴에 주먹만 한 구멍이 뚫린 채로 외마디 비명도 못 지르고 그대로 쓰러졌다. 그리고 호위대장이 쏜 총알은 다행히도 쓰러져 있던 김영철의 왼쪽 바닥에 맞았다. 다급히 일어난 안연우 과장은 김영철을 확인했다.

“괜찮습니까?”

안연우의 목소리에 그제야 바닥에 쓰러져 꼼짝도 안하던 김영철이 고개를 좌우로 돌려 살핀 후 일어섰다.

“뭐기메? 호위대장 이 간나새끼래, 지금 이게 뭔 짓이네?”

쓰러져 있는 호위대원과 보좌관의 시신을 둘러보고는 어정쩡한 자세로 쓰러져 있는 호위대장을 향해 일갈했다.

“김영철 당비서님, 다친 데는 없습니까?”

“괜찮습네다. 총 맞은 것도 없고 쓰러질 때 살짝 탁자에 머리 찧은 거 빼곤 없시야요.”

이때 오기석 주임이 헐레벌떡 뛰어왔다.

“괜찮습니까? 안 과장님?”

“괜찮아.”

안연우 과장은 조금 전 충격이 전해졌던 가슴과 허벅지를 살피며 말했다. 옷에는 분명히 총알구멍이 있었지만, 보호 슈트 덕분에 관통되지 않고 튕겨 나간 것이었다. 안연우 과장은 보호 슈트의 뛰어난 방탄 효과 덕을 본 최초의 사람으로 기록되었다.

“그런데 이 새끼 네가 쏜 거야?”

안연우 과장은 호위대장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게 급해서요. 안 과장님이 늦으실 거 같아 어쩔 수 없이 쏴버렸습니다.”

“오 주임, 어쨌든 잘했어.”

오기석 주임은 접견실 출입문을 지키던 4명의 호위대원을 쏘고 나서 인버터 비전 모드로 내부를 주시하다가 호위대장이 보좌관 4명을 죽이고 김영철 당비서까지 쏘려는 찰나 벽에 대고 그대로 쏴버린 것이다. 며칠 전 KS5를 받았을 때 관통력에 관한 설명을 들었던 오기석 주임은 충분히 벽을 통과하고 호위대장을 맞출 수 있다는 생각으로 벽 너머 호위대장을 쏜 것이었다. 만약 일반 권총이었으면 생각지도 못할 일이었다.

잠시 후 다른 경호원들이 접견실로 몰려왔고 추가 테러에 대한 경호를 위해 각자 사주경계를 철저히 하는 상황에서 안연우 과장이 무선통신기로 말했다.

“3층 접견실 상황 종료, 하지만 추가 위험이 있으니 1팀은 건물 밖 북한 호위대원들 모두 체포 바람, 반항 시 총기 사용 허가.”

- 1-1 확인.

10여 분 후 김영철 당비서와 같이 온 모든 호위대원이 체포되어 감금되고 김영철 당비서 또한 4층 다른 접견실로 옮겨졌다. 그리고 오승태 장관이 직접 접견실로 찾아왔다.

“김 당비서님 괜찮습니까?”

“보시다시피 멀쩡합네다.”

김영철 당비서는 이제 조금 여유가 생긴 것인지 양팔을 벌리며 말했다.

“다행입니다. 다행이에요.”

“다행이긴 합네다만, 이게 뭔 일인지 도통 정리가 안되는구만요. 호위대장 이 새끼는 나를 죽이려하고 말이디요.”

“김 당비서님, 그건 제가 설명하겠습니다. 안 과장과 다른 경호원들은 잠시 밖으로 나가주세요.”

★ ★ ★

2020년 2월 10일 17:20,

서울시 종로구 청와대 대통령 회의실.

파주시 남북 실무자 회담 암살 건은 바로 청와대로 보고가 올라왔고 이에 사태 파악 후 앞으로 해결 방안을 위한 회의가 진행되었다. 먼저 암살당할 뻔한 김영철 당비서가 리병철 부위원장과 관계없는 사람으로 판단하여 오승태 장관을 통해 지금까지의 사건 일말의 대해 설명하라고 지시했다. 그리고 두 번째로 주한 미 대사관 관련해서는 가용 수단을 전부 투입해 추가 테러에 대한 경계 태세를 강화하였고 김재학 외교부 장관이 주한 미 대사관을 방문하도록 조치했다.

“미 대사관 폭탄 테러 후 10분 만에 북한에서 알고 있었다는 건 미리 계획을 알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그렇지 않고 어떻게 10분에 그 사실을 알 수 있겠습니까?”

오장수 안보실장이 현재 사태 파악의 핵심적인 부분을 지적하며 말했다.

“오 실장님 말에 충분히 공감합니다. 또한, 미 대사관 폭탄 테러를 일으켜 회담장까지 혼란스럽게 만든 다음 김영철 당비서를 암살하려는 계획이었던 거 같습니다. 그리고 암살 후 암살범도 자살한다면, 김영철 암살 사건은 오리무중으로 빠질 것이고 이를 기회로 북측 강경파인 리병철은 무조건 한국 측 잘못으로 몰아가 남북 관계를 악화시키려는 것이 아니었는지 추측해 봤습니다.”

나봉일 원장이 간단명료하게 테러 및 암살 계획 의도를 말하자 회의에 참석한 모든 관료가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하는 듯하였다.

“그래요. 충분히 일리 있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어떻게 해결하느냐가 중요할 때입니다. 의견들 있으면 말씀하세요.”

이번에도 나봉일 원장이 먼저 입을 열었다.

“대통령님 말씀대로 지금부터 어떻게 하느냐가 매우 중요한 순간입니다. 제 생각으론 김영철이 김여정과 직접 통화를 하여 이 사실을 알리고 리병철이 암살 실패를 알기 전에 처리해야 한다고 봅니다. 만약 리병철이 실패한 것을 먼저 알게 되어 선수를 친다면 평양에 큰 혼란이 생길뿐더러 한반도가 다시 전쟁 위기로 빠질 수 있다고 봅니다.”

“다른 분 의견은 없습니까?”

“나 원장님 의견이 현재로선 가장 현실적인 방안이라 생각합니다.”

이영호 국무총리가 나봉일 원장의 말에 공감했는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습니다. 오장수 실장님, 오승태 장관에게 내용을 즉시 전달하세요.”

“알겠습니다.”

“그럼 두 번째 미 대사관 테러 건은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요?”

76년간 전쟁 휴전상태라는 악재 속에서도 대한민국은 지금까지 테러 청정국가라는 타이틀로 치안이 매우 안전한 나라로 알려져 왔다. 하지만 오늘 주한 미 대사관의 자살 폭탄 테러로 이제 테러 청정국가라는 타이틀은 사라지고야 말았다. 먼저 국가 브랜드의 실추와 관광산업의 위축, 그리고 연계적으로 수출까지 타격을 입음으로써 다시금 경제불황으로 빠질 수 있는 중대한 사건이었다.

오장수 안보실장이 한 손을 팔에 대고 다른 한 손은 턱을 만지며 대통령의 질문에 가장 먼저 의견을 내놨다.

“미 대사관 자살 폭탄 테러범이 죽었기에 사실 배후세력을 찾아낼 방도가 없습니다만, 지금 상황 이에서 우리는 북한의 강경파 리병철과 연관성을 찾아 밝혀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솔직히 그 방법 외는 없을 것 같습니다.”

오장수 안보실장의 말이 끝나자 나봉일 원장이 비장한 음성으로 오장수 안보실장의 이어 말했다.

“그렇습니다. 실제 증거를 찾기가 어렵다면, 가짜 증거를 만들어서라도 리병철을 배후인물로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가짜 증거라도 만들어야 한다라···.”

대통령은 나봉일 원장의 말을 되새기며 깊은 고민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 ★ ★

2020년 2월 10일 17:30,

경기도 파주시 통일민족관 회담실.

“그게 정말입네까? 리병철이. 이 종간나 새끼래, 지금까지 떠들어댄 거 위선이고 거짓이었구만! 하디만, 증거는 있슴네까? 말로만 따지기에는 일이 잘못될 수도 있습네다.”

김영철 당비서는 오승태 장관이 모든 사실을 얘기해주자 펄펄 날뛰며 매우 흥분했지만 이내 이성을 찾고 진지하게 말했다.

“여기에 증거가 될 만한 자료들이 있습니다. 리병철이 뭔가 계획하고 있다는 전화통화 내용입니다.”

오승태 장관은 조그마한 녹음장치를 꺼내 들었다.

“그렇단 말이디요? 이리 주시라요. 내래 당장 평양으로 가야겠슴네다.”

“그건 안됩니다.”

“거 왜 안된다는 말입네까?”

“리병철이 만약 당비서님에 대한 암살이 실패한 것을 먼저 알게 된다면 평양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릅니다. 현재 리병철의 측근들이 중요 직책에 많이 배치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맞죠?”

“그건 맞습네다.”

“아까 회담 중 전화는 어디서 온 것입니까?”

“보위부에서 온 전화입네다.”

“한국에서 일어난 일을 10분 만에 알고 전달해줬는데 그게 가능한 겁니까?”

“10분은 무리입네다. 아무리 빨라도 몇 시간이지요. 기러타면 그 보위부 이기영 간나새끼도 리병철이와 손잡고 있다는 거구만?”

“가능성이 큽니다.”

“이거이 난리났구만기래.”

김영철 당비서는 안절부절못하며 의자에 앉지도 못하고 접견실 안에서 왔다 갔다 하기만 했다.

“김 당비서님?”

“말씀하시라요.”

“김여정 제1위원장님과 핫라인 가능합니까?”

“가능은 합네다. 하디만, 보위부에서 감청할 수 있디요.”

“그렇다면 김여정 제1부위원장의 핸드폰 번호는 알고 있으시지요?”

“알고 있습네다만, 이것 또한 분명 감청 할껍네다.”

“방법이 있습니다. 이걸 사용하시면 됩니다.”

오승태 장관은 지구 광대역 터키온-X 무선 통신을 사용하는 핸드폰을 김영철 당비서에게 건넸다. 북한에서 사용하는 무선통신체계에도 접속할 수 있었으며 외부에서의 무선 감청이 불가능한 핸드폰이었다.

그리하여 김영철 당비서는 김여정 제1 부위원장에게 전화를 걸어 현재 일어나고 있는 사실에 대해 모두 보고했고 감청한 전화통화 내용까지 들려줬다. 이에 김여정 제1부 위원장은 호위대사령부와 보위사령부에 리병철에 대한 긴급체포를 지시했다.

★ ★ ★

2020년 2월 10일 18:30,

북한 평양시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관사.

리병철 부위원장은 관사에서 여러 측근과 김영철 당비서의 살해 소식만 기다리고 있었다.

“지금쯤이면 북쪽으로 소식이 전해질 텐데 깜깜무소식이구만 기래.”

기다리는 게 지루했는지 리병철 부위원장은 탁자 위에 다리를 올려놓은 상태에서 기지개하듯 양팔을 벌리며 말했다.

“리병철 부위원장 동지, 역사적인 순간이니끼니 느긋하게 기다리시라요. 핫라인 통해 올라오는 소식 바로 감청해서 알 수 있으니끼니 말이디요.”

“이기영 부장 동무, 그렇긴 한데 말이디 시간상 너무 늦구만기래.”

이때 밖에서 소총과 기관총 총성 소리가 연신 울리기 시작하더니 더욱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이에 깜짝 놀란 리병철은 엉거주춤 일어나 측근 중 한 명에게 말했다.

“뭐네? 네가 나가서 뭔 일인지 알아보라우.”

그때 밖에서 부관이 다급히 뛰어와 소리쳤다.

“리병철 부위원장 동지, 호위대사령부 애들이랑 보위사령부 경찰들이 꽉 깔렸슴네다. 피하시기요.”

“뭐네? 호위대사령부? 보위사령부? 이런 종간다, 들켰구만기래!”

뭔가 일이 틀어졌다 생각한 리병철은 오늘 참석하지 않은 인민무력부 박영식 부장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를 않았다. 사실 박영식 부장이 제일 먼저 체포되어 호위사령부로 끌려가는 중이었다.

“일단 자리를 피해야겠어.”

전화수화기를 집어 던진 리병철이 비상문으로 도망가려던 그때 들이닥친 호위대사령부 군인과 보위사령부 비밀경찰에게 체포되었고 함께 있던 측근들까지 모두 체포되었다.

“놓으라우. 내가 누군지 아네? 이 종간나 새끼들.”

퍽!

호위부사령부 소속의 상좌계급을 단 장교가 그대로 리병철의 얼굴을 가격했다.

“거 간나새끼, 뭔 말이 많네? 당장 끌고 가라우.”

★ ★ ★

2020년 2월 10일 21:30,

경기도 파주시 통일민족관 회담실.

“네, 김영철입네다. 다행입네다. 김여정 제1부위원장 동지. 알겠습니다. 전하도록 하겠습네다.”

전화를 끊은 김영철 당비서는 그제야 긴장감을 풀고는 환한 웃음을 보이며 오승태 장관에게 악수를 청했다.

“이거 우리 북조선이래, 신세 한번 크게 졌시야요. 평양에서 리병철과 함께 있던 아새끼들이래 죄다 체포했다 합네다. 간나 새끼들, 아직 더 있갔디만 오늘 낼이면 다 잡힐껍네다.”

“큰 사고 없이 해결돼서 정말 다행입니다.”

“그리고 김여정 동지께서 이번 일로 남조선에게 큰 신세를 졌다고 매우 감사하다는 말을 전해달라 했시요. 또한, 제 목숨도 살려줬으니 이 은혜 잊디 않겠슴네다.”

“은혜라니요. 다 한반도 평화를 위해서 한 일입니다.”

★ ★ ★

2020년 2월 12일 00:30 (미국시각 11일 11:30),

미국 워싱턴 D.C 외곽 USSC 별장.

“스핑크스, 대체 일을 어떻게 처리한 겁니까?”

여성 목소리의 검은 가면이 격앙된 목소리로 닉네임 스핑크스에게 따져 물었다.

“그게, 미 대사관 테러까지는 성공했는데 그다음 김영철에 대한 암살이 실패하는 바람에···.”

“지금 변명을 듣자고 묻는 게 겁니까? 우리는 미 대사관 직원들의 희생까지 감수하며 당신 계획에 재가를 해줬건만 일을 이따위로 만들다니.”

“사전에 한국에서 알고 있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알든 모르든 우린 무조건 성공했어야 했습니다. 이 모든 책임은 스핑크스 당신이 책임지세요.”

스핑크스라는 검은 가면에 화를 내던 여성 목소리의 검은 가면은 이내 자리에서 일어나 뒤편 커튼 사이로 사라졌다. 그리고 나머지 검은 가면들도 아무 말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혼자 남게 된 스핑크스 검은 가면은 한동안 움직이지도 않고 있다가 가면을 벗었다. 바로 리지 안의 의부이자 미 의회 상원의원인 토니 안이었다.

‘멍청한 리병철 때문에 모든 일이 엉망이 되어버렸어.’

토니 안은 깊은 사심에 빠지며 어두운 회의실에서 한 시간 동안 나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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