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1화 (61/605)

2019년 10월 14일 18:30 (중국시각 17:30),

중국 상해시와 연결된 고속도로.

“젠장, 받지 않는군!”

이원호 팀장이 중국전용 핸드폰을 꽉 쥐고는 일갈했다.

“이 팀장님, 1팀과 연락이 안 됩니까?”

그런 이원호의 행동을 보고는 뒷좌석에 앉아있던 박기웅이 물었다.

“전화를 안 받아. 1호 상황으로 간주한다. 각자 가지고 있는 핸드폰 모두 버려.”

“설마 당한 건 아니겠죠?”

운전하던 윤태진 주임이 염려 섞인 말로 중얼거렸다.

“재수 없는 소리 할래?”

윤태진 주임과 입사 동기인 박기웅 주임이 소리쳤다.

“진정해, 박 주임. 과장님과 지 팀장이 쉽게 당할 분들이 아니야. 일단 우리는 무조건 상해 총영사관까지 간다. 거기서 연락을 기다려보자. 윤 주임 속도 좀 더 내.”

“미안하다.”

괜한 소리에 미안했는지 윤태진 주임은 박기웅 주임에게 짧게 사과하고는 가속 페달을 힘주어 밟았다.

★ ★ ★

2019년 10월 15일 12:30 (중국시각 11:30),

중국 상하이시 총영사관.

밤을 새워 중국 상하이 총영사관에 도착한 이원호 팀장은 즉각 한국 국가정보원에 보고했고, 연락이 끊긴 지동철 팀장 일행의 연락만 오기만 기다렸으나 끝내 연락은 끝내 오지 않았고 그날 점심 뉴스엔 충격적인 내용이 방송되었다. 후난 모 호텔에서 정체불명의 괴한들끼리 총격전이 일어났고 시신 5구가 발견되었다는 뉴스가 연신 화면에 비췄다.

그리고 사건 현장에 나온 영상은 모자이크 처리를 하였지만 쓰러져 있는 시신이 동료들이었다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뉴스를 접한 박기웅과 대외정보1과 요원들은 망연자실하며 동료의 죽음에 흐느껴 울며 심통한 분위기에 빠져버렸다.

이에 대외정보1과 2팀장은 즉시 대외정보국장에게 시신 수습에 대해 요청을 하였지만, 비공식 첩보 활동으로 국가 차원에서 나설 수 없지만, 최대한 비공식으로 시신들을 본국으로 수습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박기웅은 총영사관 침대에 누워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제길, 나도 남았어야 했는데.”

자책 아닌 자책을 하면 울부짖는 박기웅의 머릿속에는 입사 때부터 지금까지 지동철 팀장과 함께 지내왔던 4년간의 기억들이 영화 필름처럼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 ★ ★

2019년 10월 25일 11:30,

서울시 강남구 국가정보원 하나원 입원실.

김순희는 총영사관에서 3일을 지낸 후 대한민국 여권을 가지고 무사히 중국을 빠져나와 하나원에 머물고 있었다. 그리고 일주일 후 몸이 어느 정도 회복되어 김기수와 관련된 상황에 대해서 몇 가지 조사를 받았다.

“몸은 나아졌습니까?”

대외정보국장인 윤호일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많이 좋아졌습네다.”

“몸도 불편한 상황이지만 중대한 일이라 몇 가지 물어보려고 왔습니다.”

“말씀 하시라요. 아는 내에서 내래 말하갔습네다.”

윤호일 국장이 의자를 침대 쪽으로 끌어 앉았다.

“평양 폭탄 테러 한 달 전, 친오빠 김기수 씨가 상해로 김순희 씨를 찾아갔었죠?”

“맞습네다.”

“저희가 확인한 내용으론 그때 김기수씨가 백만 위안을 건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커다란 여행 가방으로 받았슴네다.”

“그때 돈을 건네며 다른 말은 하지 않았습니까? 중대한 일이니 꼭 말씀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때 김순희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러면서 양손으로 이불자락을 붙들고는 뭔가 고민하는 느낌을 보였다.

“이곳은 대한민국입니다. 곧 사촌오빠도 만날 것이고 무서워하지 마세요.”

“그게···.”

눈시울에 눈물까지 맺히며 불안해하던 김순희가 결심했는지 숨을 길게 한번 쉬고는 윤호일 국장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네, 아는 데로 다 말하겠슴네다.”

윤호일 국장은 주머니에서 녹음기를 꺼내 들고 김순희에게 보여주며 말했다.

“녹음해도 될까요?”

김순희는 고개를 한번 끄덕거리고 말하기 시작했다.

“그때 오라버니가 상해에 직접 찾아와가 백만 위안을 건네면서 무서운 얘기를 해줬습네다. 한 달 후 8월 15일에 김정은과 남조선 수장을 암살할 계획이라며, 성공만 하면 우리 가족은 북조선에서 떵떵거리며 살 수 있다고 했습네다.”

“그럼 암살 계획을 지시한 사람에 대해서 들었습니까?”

김순희는 잠시 망설이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그때 당시 일이 잘못돼서 오라비나 가족에게 문제가 생기면 무조건 돈 가지고 도망치라 하믄서 나중에 리병철 동지에게 도움을 청하라 했슴네다.”

“리병철이요?”

“그렇습네다.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입네다.”

“그럼 리병철이 암살 계획의 배후라는 건가요?”

“죄송합네다. 그건 오라버니가 직접적으로 지시한 사람에 대해 말한 게 아니고 도망치게 되면 도움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리병철이라고 해서리.”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왜 김순희 씨는 리병철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습니까?”

“오라버니는 물론 어바이, 어무이가 하루도 안 돼서 총살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너무 겁이 났습네다. 그래서 도움 요청은 꿈에도 생각을 못 하고 있었다가 사촌 오라버니와 연락이 되면서 한국으로 오려고 했습네다. 그러다···.”

끝내 김순희는 울고 말았다. 잠시 잊고 있었던 부모님과 친오빠의 죽음이 다시 생각난 것이었다.

“그 정도면 됐습니다. 말씀 감사합니다. 그럼 푹 쉬시고 몸조리하시기 바랍니다. 며칠 안에 사촌 오빠도 만날 수 있을 겁니다.”

원일호 국장은 녹음기를 들고는 입원실 문을 나섰다. 그리고 밖에서 대기하던 요원에게 몇 가지 지시하고는 그대로 국가정보원 건물로 향했다.

★ ★ ★

2019년 10월 25일 11:30,

서울시 강남구 국가정보원 원장실.

원장실에는 나봉일 원장을 포함해 각 소속 국장들이 원일호 국장이 가져온 녹음 내용을 듣고 있었다. 잠시 후 녹음기가 꺼져다.

“리병철, 현재 김여정의 측근으로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있는 인물입니다. 나이는 61세에 호전적 성격으로 현재 핵심 권력층에 있는 사람 중 한 명입니다. 강경파의 한 사람으로 예전 연평도 해전부터 백령도 포격 사건 등 배후에서 진두지휘한 인물로 대한민국을 바라보는 시선은 부정적 경향이 큰 것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대북정보국장인 김나윤이 리병철에 대해 간단명료하게 설명했다.

“리병철이라.”

나봉일 원장은 잠시 생각에 잠기며 회의 탁자를 손가락으로 몇 번 툭툭치고는 옆에 앉아있는 중년 사내에게 물었다.

“그렇다면 리병철이 평양 폭탄 테러의 배후인물로 개연성은 어떻습니까?”

“암살 임무를 지시받은 실행자들은 실패했을 경우 가족들에 대한 보호나 안전에 대해 약속을 받으려는 게 일반적입니다. 특히나 김정은과 한국 대통령을 암살하는 임무라면 충분히 약속됐을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김기수가 김순희에게 도망치게 되면 리병철에게 도움을 요청하라는 얘기를 하지 않았나 추측해볼 만합니다.”

정보분석실 이길준 실장이 나름대로 설득력 있는 이유를 대며 설명했다.

“듣고 보니, 이 실장 말대로 다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봅니다.”

김순희와 얘기했던 대외정보국 원일호 국장이 맞장구를 쳤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대테러수사국 허영준 국장까지 말을 거들자, 여기저기 국장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하였다.

“다들 그렇게 생각하는 거 같군요. 그럼 이 실장은 분석 요원들 통해 신중히 분석한 후 정식보고서로 제출 바랍니다.”

“네, 알겠습니다.”

며칠 후 리병철과 관련하여 정보분석실에서 최종 분석결과를 내놨다. 처음 이길준 실장이 말한 대로 리병철 부위원장을 평양 폭탄 테러 배후인물로 잠정적 결론을 내렸다. 이에 나봉일 원장은 청와대에 정식으로 보고했고, 청와대에서는 3여 년간 수수께끼로 남았던 평양 테러 사건의 배후인물이 밝혀짐으로써 현재 진행 중인 여러 대북정책 방향에 대대적 수정이 불가피하게 되었다.

★ ★ ★

2019년 10월 25일 11:30,

서울시 종로구 청와대 대통령 집무실.

대통령 집무실에는 국가안보와 대북 관련 책임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북한 리병철과 관련된 상황에 대해서 회의가 막 시작되고 있었다.

“큰일입니다.”

오장수 안보실장이 이마에 손을 짚은 채로 고심하듯 말했다.

“죄송합니다. 대북 관련 상황에 대해서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우리 국정원 불찰입니다.”

나봉일 원장이 정중한 태도로 고개를 숙이며 사과의 말을 올렸다.

“어쩔 수 없지요. 리병철 그 인간이 그만큼 철두철미하게 계획하여 성공했다는 것이니, 지금은 그것보다 이제 앞으로 대북정책에서 지금까지의 모든 정책을 뒤로하고 이제 어떠한 방법으로 북한과의 관계를 맺어가야 하는가와 리병철 현재 의중이라고 봅니다.”

통일부 오승태 장관이 헛기침 몇 번을 하고는 핵심적인 부분만 꺼내 들어 말했다.

한국 정부에서 가장 먼저 파악해야 할 사항은 리병철의 속내였다. 김정은과 한국 대통령을 왜 암살했는지, 솔직히 이유는 뻔하다. 3대째 내려오는 김씨 왕조를 몰아내고 새로운 권력을 쟁취하려는 의도, 하지만 어떻게 철저히 준비하여 실행했냐는 것 또한 의문이었다. 과연 외부 세력의 도움 없이 단독으로 계획 했느냐. 이 부분이 의문으로 남았고, 두 번째로 얼마나 많은 리병철 측근들이 권력층 속에 숨어 활동하고 있느냐가 당장 한국 정부가 풀어야 할 숙제로 남게 되었다.

현재 겉으로 보이는 북한 정세는 김여정 제1부위원장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보였지만, 실상 극악한 범죄를 저지르고 가면 뒤에 숨어 기회를 엿보며 북한 정권을 전복시키려는 위험인물인 리병철의 실체에 대해 각 권력층에서 활동하는 측근들로 인해 김여정 제1부위원장에게 온전히 전달할 방법 자체도 어려운 상황이 되고야 말았다. 과연 누굴 믿고 누구에게 이 엄청난 사실을 전달할 수 있느냐는 것인데, 현재 한국 정부에 가장 호의적인 인사가 남북 실무자 회의 대표 김영철 당비서이긴 하지만, 100% 믿을 수도 없는 상황이고 혹, 김여정 제1위원장에게 전달되기 전 리병철에게 이러한 사실이 알려지게 된다면 리병철의 극단적 행동으로 북한 정세에 큰 사건이 일어날 수 있으며 이는 한반도에 다시 한번 전쟁 위기로 이어져 안정화되어 가는 대한민국에 2차 경제적 치명상을 줄 수 있었다.

“맞습니다. 이제 북한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과 같은 상황이라는 것을 알게 된 이상 접근방식부터 바꿔야 할 듯합니다. 그래서 말인데. 오승태 장관님?”

“네, 대통령님.”

대통령은 자리에서 일어나 잠시 의자 주위를 배회하듯 왔다 갔다 하더니, 뭔가 결심한 듯 회의 탁자에 앉아있는 관료들을 쭉 둘러보고는 오승태 장관 자리에서 시선을 멈추고는 비장한 말투로 짧게 한마디를 내뱉었다.

“제가 직접 김여정을 만나봐야겠습니다.”

이에 오승태 장관을 비롯한 여러 관료가 눈을 크게 뜨며 놀라는 표정을 보였다.

“안됩니다. 아직은 대통령님이 직접 만나기엔 시기적절하지 않다고 봅니다.”

오장수 안보실장이 깜짝 놀라 일어서서 만류했다.

“그렇습니다. 오장수 실장 말대로 대통령님께서 나서기에는 위험부담이 크다고 봅니다. 일단 제가 먼저 김여정 제1위원장을 만나보도록 하겠습니다.”

오승태 통일부 장관도 일어나서 적극적으로 만류하며 대통령의 마음을 돌리려 했다. 이에 나머지 장관들과 국정원장도 일어나서 반대의 목소리를 높였다.

“다들 앉으세요. 여러분들이 왜 그러는지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김여정과 직접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은 저라고 봅니다. 제가 직접 평양에 갈 수 있도록 진행해 보세요.”

여러 관료의 만류에도 고집 피우는 대통령 때문에 더는 말은 못 하고 좌불안석 되는 상황이었다.

“통일부에서 연결해주실 거라 믿고 기다리겠습니다. 그리고 나봉일 원장님?”

“네, 대통령님.”

대통령은 일어선 채로 나봉일 원장으로 시선을 옮기고 아까보다는 차분한 어조로 물었다.

“중국에서 순직한 국정원 요원들 시신은 현재 어떻게 되었습니까?”

대통령의 물음에 순간 집무실은 조용해졌다.

“현재 비공식 루트를 통해 요원들 시신을 한국으로 호송 중입니다.”

“다행입니다. 중국이라 힘들지 않을까 했는데.”

“죄송할 따름입니다.”

“그런 소리 하지 마세요. 그보다 순직한 요원과 가족에게 국가에서 해 줄 수 있는 최고의 예우와 보상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대통령으로서 이 말밖에 해줄 말이 없다는 게, 참 서글프군요.”

대통령은 천장을 바라보곤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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