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 반역자
1944년 7월 12일 6:00 일제강점기,
일본 규슈 나가사키현 하시마(군함도) 탄광.
6시가 되자 감독관이 복도를 따라 숙소 철문을 곤봉으로 치며 깨우기 시작했다.
“일어나란 말이야! 늦으면 아침밥도 없어!”
종구는 감독관이 2호 숙소 복도를 지나갈 때쯤 철문 창살에 얼굴을 내밀고 사정하듯 말했다.
“감독관님! 제 동생 찾을 수 있게 어제 무너진 갱도 쪽으로 배정해주세요.”
“뭐야? 거긴 당분간 채굴 금지다. 오늘부터 반대편 갱도 쪽으로 다들 배정되었으니 그렇게 알아.”
“감독관님, 제발요! 제 동생 시신이라도 찾아야 한단 말입니다.”
“이 조센징 놈이 한번 말하면 들어 처먹질 않네? 너 나와.”
감독관은 철문을 열고는 종구를 복도로 끌어내고는 그대로 곤봉으로 내려쳤다.
“아이고, 감독관님. 제가 잘 타이를 텡게 그만 봐주쇼잉.”
우진 아재가 감독관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사정했다. 하지만 감독관은 분이 안 풀리는지 우진 아재를 발로 걷어차고는 종구를 향해 다시 곤봉을 휘둘렀다. 종구는 웅크린 자세로 머리를 감싸고 계속 외쳐댔다.
“감독관님, 제발, 제 동생 시신이, 찾을 수 있게 해···.”
맞으면서도 끝까지 울고 불며 사정하며 매달리자 더 화가 난 감독관은 종구의 머리를 있는 힘껏 세차게 곤봉으로 내려쳤다.
파악!
머리에 제대로 맞았는지 둔탁한 소리와 함께 사방으로 피가 튀겼고 더는 아무 말 없이 종구의 몸은 그대로 축 늘어져 버렸다.
“너! 그리고 너! 이 새끼 들고 나 따라와.”
그날 종구는 반 평도 안 되는 우물에 갇혀 4일간 먹지도 못한 상태로 갇혀 있다 풀려났고 동생 종식이의 시체는 그 이후로 영원히 찾을 수 없었다.
* 하시마 일명 군함도라 불리는 이 섬은 1890년 석탄자원이 발견되자 미쓰비시중공업은 이 섬을 사서 탄광으로 개발하여 결국 일제강점기 때 강제징용을 앞세워 악랄한 수탈기업이 되었다. 74년에 완전히 폐광하였고 40년간 무인도 상태였던 이 섬은 20세기 일본 근대화-메이지유신의 상징이며 위대한 일본 산업화 산물의 결정체로 둔갑하여 일본 근대화산업을 이끈 혁혁한 유산이 되어 현재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었다.
이곳에서 희생당한 수많은 조선 노동자 혼령들의 한이 무섭지도 않은지 인간으로서 차마 할 수 없는 온갖 악행을 저질렀던 강제 노역의 산 증거인 군함도마저 세계인의 눈과 귀를 속이며 세계문화유산등록까지 한 일본 정부는 거짓된 역사로는 미래의 일본 역사는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후회하는 날이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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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9월 28일 09:00,
전남 나주시 빛가람동 한국전력공사 유기태 전무실.
한 사내가 유기태 전무실 문이 부서질 정도로 세차게 걷어차며 들어왔다. 한참 전력공사 주식 변동 그래프를 보며 싱글벙글하던 유기태 전무가 깜짝 놀라며 들어온 사내를 바라보며 소리쳤다.
“뭐, 뭐야?”
“국가비리암행원 강철중 팀장이다! 유기태 전무, 지금부터 당신을 불공정주식조성죄 및 뇌물수수죄, 그리고 불법청탁 혐의로 긴급 체포한다. 여기 체포영장이다.”
놀란 토끼 눈으로 쳐다보는 유기태 전무 얼굴에 체포영장을 들이 내민 강철중 팀장은 죄목을 하나하나 읊어주며 밝은 미소를 보이고는 다른 한 손으로 수갑을 흔들어 보였다.
“양손 앞으로.”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그런 겁니까, 대체?”
“그건 암행원가면 내가 A4용지 수백 장 분량의 증거자료 보여줄 테니 얌전히 갑시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고 바로 전에까지 전력공사 주식 가격이 오르고 있어 기분 좋게 시작하려던 하루 일가를 한순간 수갑 채워져 끌려가는 신세로 바뀌어버린 유기태 전무는 회사 복도로 나서자, 벌써 반대편 복도에는 예전에 함께했던 이사진들이 수갑 찬 상태로 끌려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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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9월 28일 11:30,
경북 포항시 북구 용두리 양지 고개 아래(이명본 자택).
양지 고개 아래 넓은 공터에는 푸른 동해가 한눈에 보일 수 있게 지어진 현대식 한옥 한 채가 자리 잡고 있었다.
“끝내주는데요?
국가비리암행원 수사1과 요원 중 2팀장 나동균이 대궐 같은 한옥을 보고는 감탄사를 연발하며 말했다. 이에 장수일 과장이 살짝 미간을 좁히며 불편한 음성으로 대꾸했다.
“일제강점기 때 선량한 같은 민족 사람들의 고혈을 짜낸 돈으로 이렇게 떵떵거리면 잘살고 있는 친일파 새끼들 때문에 억울함을 넘어 매우 화가 나는군.”
“그렇습니다. 저희도 매일 반민족행위자들의 재산명세를 조사할 때마다 치밀어오는 분노는 이뤄 말할 수 없었습니다.”
장수일 과장과 함께 타고 온 반민족행위조사처 집행1실장인 나원호가 말했다.
“저도 친일파 놈이 이런 집에서 생활하는 걸 직접 보니 나 실장님 심정이 어떤지 조금은 이해가 갑니다. 자! 가시죠.”
한옥 현관문에 들어서자 아까부터 CCTV로 보고 있던 검은 정장을 입은 사설 경호들이 나왔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이에 나동균 팀장이 앞에 나서며 사설 경호원들에게 신분증을 보여주며 길을 열라는 손짓을 했다.
“국가비리암행원에서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비키라고.”
“영장 없이는 들어갈 수 없습니다.”
“우리가 영장 없이 온 거 같아? 여기 수색영장, 그리고 체포영장.”
나동균 팀장이 두 장의 영장을 막아서는 사설 경호원 이마에 닿을 정도로 내밀었다?
“지금부터 막거나 방해하면 공무집행 방해죄로 죄다 처넣을 거야!”
이에 사설 경호원들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물러섰고 이때 나원호 실장이 서류 가방에 뭔가를 꺼내 현관문 왼편에 떡하니 붙였다. 그것은 조그마한 현판이라고 해야 할까? ‘친일반민족행위자’라는 큼지막한 글씨 밑으로 이규준과 그 아들 이복덕의 친일행위에 대한 핵심적인 내용이 작은 글씨로 소상하게 적혀 있었다.
“나 실장님, 이거 무지 맘에 드는데요?”
“저희 직원들 아이디어입니다. 반민족행위자 중 재산환수 대상자들에게 소정의 선물로 들리고 있습니다.”
“정말 굿 아이디어입니다.”
이때 안채에서 큰 목소리로 호통치는 소리가 났다.
“대체 어떤 놈들이 아침부터 소란이야?”
호통치는 목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이명본이었다. 잘난 친일파 아버지를 두어 어렸을 때부터 부족함 없이 떵떵거리며 살아온 이명본, 자기가 누려왔던 모든 부귀영화가 수천, 수만 명의 조선 노동자의 생명 값으로 이렇게 살고 있다는 걸 전혀 모르는 뻔뻔한 친일파 후손 이명본, 바로 그자였다.
“거참, 나이 드시고 목소리 한번 크십니다.”
조금은 비아냥거리는 말투로 다가서는 나동균 팀장을 본 이명본이 눈을 부라리며 더 큰 목소리로 호통을 쳤다.
“이런 쌍놈 새끼들! 여기가 어디라고?”
“쌍놈? 이 인간 참 분위기 파악 못 하고 나대시네.”
“뭬야? 너 내가 누군지 알아?”
“누구긴, 친일파 아버지를 둔 친일파 후손 놈이지? 그리고 재산은닉 및 불법주식거래혐의자이기도 하고.”
친일파란 말을 나름의 치부로 생각하고 있던 이명본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는지 사설 경호원에게 소리쳤다.
“너희 뭐 하는 거야? 저놈들 당장 집 밖으로 끌어내.”
“아까부터 이 인간이 화통을 삶아 먹었나? 뭔 목소리가 이렇게 커?”
안하무인 이명본의 발악하는 모습이 보기 싫었던 장수일 과장이 나섰다.
“나 팀장, 저 인간 더 큰 소란 피우기 전에 연행해.”
“네, 과장님!”
나동균 팀장은 아까 사설 경호원에게 보여줬던 체포영장과 수색영장을 동시에 보여주며 약 올리듯 웃으며 말했다.
“지금부터 이명본 당신을 재산은닉 및 불법주식거래 혐의로 긴급 체포하며, 반민족행위조사처의 국고 환수 대상자로 결정됨에 따라 당신의 모든 사유재산에 대해 압수수색 및 국고 환수 절차에 들어간다.”
이명본은 나동균의 말에 콧방귀를 뀌며, 으름장 놓듯이 뒷짐을 지며 거만하게 말했다.
“긴급체포? 허허허, 사유재산에 대한 압수수색? 이 집은 내 집이 아니고 8촌 당숙의 집이다, 이놈들아.”
“어이쿠! 8촌밖에 안 되세요? 감사하네요. 반민족행위자 국고 환수 관련법이 바뀌신 거 모르시나? 당신의 32촌에 처가 쪽 16촌까지 모든 재산에 대한 조사가 이뤄진다는 거?”
“뭐여? 이놈들이?”
“잔말 말고 손 내밀어, 강제로 체포해서 돼지 새끼처럼 끌려가기 싫으면 새끼야.”
나동균은 뒷짐 지고 있는 이명본의 팔을 비틀어 붙잡고는 그대로 수갑을 채웠다.
“이거 안 놔? 너희들 내가 전화 한 통 하면 옷 벗게 되어있어 이놈들아!”
“끝까지 입만 살았네. 이따가 전화 실컷 시켜줄게. 일단 가자고?”
이명본은 70대 나이인데도 수갑에 채워져 나동균 팀장한테 질질 끌려가면서도 발악 거리며 발버둥 쳤다.
“지금부터 압수 수색한다. 하나도 빠지지 말고 철저히 수색해. 그리고 사설 경호원분들은 지금부터 집 밖으로 모두 나가세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난감한 상황에 빠져있던 사설 경호원들은 이명본이 잡혀 나가자 그제야 모두 집 밖으로 걸음을 옮겼고 국가비리수사1과 요원들은 숨겨놓은 재산 목록이나 비리 관련 증거를 찾기 위해 집 안 구석구석을 수색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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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9월 28일 16:00,
제주도 서귀포시 롯데 스카이힐 제주 CC(골프장).
롯데 스카이힐 제주 CC 17번 홀에 한 중년 남자가 드라이브를 날리기 위해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스윙 자세가 환상적입니다, 오만한 민정수석님.”
“허허, 민정수석 관둔 지가 언제인데 아직도 민정수석이라고 부릅니까, 정 회장님?”
“아니 무슨 말씀을요? 한번 민정수석은 영원한 민정수석이지요.”
“아! 그런가요? 하하하.”
오만한은 민정수석이라는 말이 싫지만은 않은지 캐디에게 드라이버 골프채를 건네며 털털한 웃음소리를 냈다.
“그럼요.”
“지금 생각하면 그때가 좋긴 했나 봅니다. 요새 매일 골프나 치고 여행이나 다녀도 민정수석으로 있을 때가 그 뭔가 내가 살아있다는, 뭐 그런 느낌?”
“맞습니다. 남자는 뭐니 해도 권력이 있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하잖아요? 그래서 말인데 다음 총선에 나가신다는···.”
두 번째 공을 치기 위해 함께 걸어가던 오만한이 정 회장의 말에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되려 물어봤다.
“그건 또 어디서 들으셨습니까?”
“명색이 그룹 총수입니다. 그 정도 정보력은 갖고 있지요.”
“이거 정 회장님 무서워서 뭘 못하겠는데요? 하하하, 맞습니다. 하도 야당에서 다음 유력 지역구 하나 줄 테니 나와 달라 해서 고민 중입니다.”
이렇게 시시콜콜한 얘기 중인 두 사람에게 미니카 한 대가 다가왔고 검은 정장을 입은 두 명의 사내가 내렸다. 그리곤 곧바로 오만한 전 민정수석에게 다가갔다.
“안녕하십니까, 오만한 전 민정수석님.”
“누구신데?”
검은 정장을 입은 사내 중 머리가 짧은 사내가 신분증을 보여주며 몇 마디 했다. 그리고 오만한 전 민정수석은 아무 말 없이 양손을 내밀었고 수갑이 채워졌다. 그리고 그런 상황을 지켜보던 정 회장이라는 사람은 혹시 자기도 뭔가 연결고리로 걸려든 게 아닌가 하는 제 발 저림에 긴장하자, 다른 검은 정장 사내가 한마디 해줬다.
“정 회장님?
“네?”
“18번 홀은 혼자 치셔야겠습니다.”
“아! 네, 네.”
요새 검찰이나 국가정보원보다 더 무섭다던 국가비리암행원의 직원에게 연행되어 가는 오만한 전 민정수석을 보며 정 회장은 그제야 긴장이 풀렸는지 들고 있던 아이언 골프채를 떨어뜨리며 주저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