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 반역자
2018년 9월 20일 10:00,
서울시 강남구 어느 카페.
한국전력공사 서울지역본부장인 오진호 본부장은 오늘따라 앞에 앉아있는 사내 앞에서 여유 있는 웃음기를 보이며 조금은 거만한 목소리로 대화를 시작했다.
“강 팀장님, 이게 말이죠.”
오진호 본부장은 양복주머니에서 조그마한 USB를 꺼내 보이며 살짝 몸을 뒤로 젖히며 말했다. 이런 행동에 못마땅한 표정을 지은 강철중 팀장은 말보다 먼저 오른손을 내밀어 USB를 달라는 손짓을 했다.
“저 이거 구하느라 죽을 뻔했습니다. 그리 쉽게 드리기엔···.”
“오 본부장님, 지금 나랑 딜을 하자는 겁이니까?”
“아니 무슨 그런 섭섭한 말씀을요? 전 단지 저번 약속 부분에 대해 정확히 듣고 싶은 거뿐입니다.”
“정보 값어치에 따라 결정하겠다고 했는데요?”
살짝 강철중 팀장의 얼굴을 살핀 오진호 본부장은 심각해지는 표정을 보고선 더 나갔다가는 좋아질 게 없다고 판단했는지, 슬쩍 USB를 밀어서 건네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로디콜에서 주식 매입 당시 유기태 전무가 자기 사람으로 포섭했던 이사진들의 2015년 9월 이후 주식 지분 변동 정보입니다. 나중에 보시면 알겠지만, 이사진 7명 모두 2년 동안 0.01%에 해당하는 어마어마한 지분이 늘어났다는 거죠. 그리고 유기태 전무 또한 2016년 8월에 로디콜로부터 0.02%의 지분에 대해 무상 양도받은 증거도 있습니다.”
“그게 답니까?”
예상보다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자, 이젠 버릇이 되었는지 주위를 살짝 살핀 오진호 본부장은 강철중 팀장 옆자리로 이동하고는 속삭였다.
“오만한 민정수석 있죠? 그 양반 가족 친가, 처가 등 가족 전체가 로디콜로부터 양도받은 지분이 다 합치면 0.1%입니다. 대충 현재 주식 시가로 계산해도 380억 원이 넘습니다.”
방금까지 별 반응을 보이지 않던 강철중 팀장은 380억 원이라는 말에 살짝 흥미가 발동하였는지 미간을 살짝 좁혔다. 이것을 놓칠 일 없는 오진호 본부장은 기회는 이때다 싶었는지, 강철중 팀장에게 몸을 한층 더 밀착하고는 또 다른 USB를 건넸다.
“이거면 강 팀장님 특진은 따놓은 당선입니다.”
“이건 뭡니까?”
“방금 말한 오만한 전 민정수석의 친척들 지분 증거자료입니다.”
강철중 팀장은 USB를 낚아채듯 받고서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도움이 됐습니까, 강 팀장님?”
“나름 만족합니다.”
“그럼 저번 건 지워주는 거죠?”
“그러죠. 약속대로 없던 것으로 하겠습니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강철중 팀장은 걸어가던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보고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는 카페에서 나갔다.
“오 본부장님, 이제 정직하게 사세요, 한 번 더 그런 일이 있으면 그때는 이런 카페가 아닌 국암원 취조실에서 뵐 겁니다.”
끝까지 재수 없게 말하고 사라지는 강철중 팀장을 바라본 오진호 본부장은 저런 진드기 같은 놈은 다시 보지 말자고 다짐했다.
★ ★ ★
1943년 5월 12일 17:00 일제강점기,
경성 종로구 어느 골목.
종구는 고향 강원도 춘천에서 3남 4녀 중 장남으로 태어나 남의 집 머슴살이하는 아버지와 어머니 밑에서 걸음마를 뗀 후부터 일하기 시작했다. 15살이 된 종구는 더 는 이곳이 가망이 없다고 생각이 들자 2살 어린 동생을 데리고 돈 벌어 오겠다는 쪽지 하나 남기고 무작정 서울로 상경했다. 하지만 돈은커녕 아는 사람 없는 경성에서 노숙 생활을 하며 닥치는 대로 일거리를 찾아 생활한 지 언 5년이 지나서야 종로구 일대에 작은 방을 구하고 짐꾼 일을 하며 하루 벌어 하루 사는 하루살이 삶을 이어갔다.
그날도 2환을 벌기 위해 2살 아래 동생인 종식이와 40kg 달하는 땔감을 지게에 매고 10km를 걸어 영등포에 있는 오진상회에 배달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동생 몫까지 4환을 벌어 콧노래를 하며 막 종로 큰길에 들어선 이종구 형제는 허름한 벽에 붙여진 벽보 한 장에 시선을 고정됐다.
“종식아?”
“왜 형?
“저거···.”
종구가 가리킨 벽보를 종식이는 천천히 읽었다.
“일할 사람 모집! 신체 건강한 남자 15세 이상 가능.”
민족번영회라는 회사에서 일본 탄광에서 일할 사람을 구한다는 내용이었다. 자격조건도 신체 건강한 15세 이상 남자면 끝이었다. 그리고 더욱 눈에 들어왔던 건, 일본 탄광에 파견 시 선금으로 인당 10원을 주고, 매달 월급으로 5원을 준다는 것이었다. 하루 내내 짐꾼으로 일해 봤자 많이 벌면 하루 3환에서 4환이었다. 그것도 형제 둘이서 말이다. 그걸 하나도 쓰지 않고 한 달 내내 모아야 100환이고 한 명으로 계산하면 50환이었다. 즉 열 배인 인당 5원을 준다니, 그것도 재워주고 먹여주고······.
뚫어지라 벽보를 보고 있는 종구를 동생인 종식이 물어봤다.
“형, 저거 하게?”
“선금으로 10원을 준다잖아, 그리고 매일 월급으로 5원씩 주고.”
“저거 하려면 일본으로 가야 하는데?”
종구는 걱정하는 동생 종식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뭔가 결심한 듯 힘주어 말했다.
“종식아? 넌 내일 고향으로 돌아가. 형이 일본에서 열심히 일해서 몇 년 안에 돈 많이 벌어서 올게, 그때까지 부모님 잘 모시고 있어. 알았지?”
“싫어! 형이 가면 나도 따라갈 거야! 나도 조건 되거든?”
“탄광일 쉽지 않을 거야. 넌 그냥 고향으로 가라.”
“싫다니까?”
같이 가겠다고 떼쓰는 종식이가 사랑스러웠는지 종구는 종식이 손을 잡고 건너편 주먹밥 가게에 들러 가장 싼 강냉이 주먹밥 1개를 사서 종식이게 건넸다.
“형은 안 먹어?”
“괜찮아, 너나 먹어.”
“형이 무슨 천하장사인 줄 알아? 자! 이거 먹어.”
종식이는 강냉이 주먹밥을 반으로 쪼개 양이 많은 오른손을 내밀었다. 그걸 본 종구는 살짝 미소를 보이며 왼손에 있는 반쪽짜리 강냉이 주먹밥 집어 들고는 한입 물었다.
“맛있지?”
“그래 종식아.”
그렇게 종구 형제는 뭐가 그리 좋은지 가는 내내 웃으며 청계천 다리 움막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 ★
1943년 5월 13일 08:00 일제강점기,
경성 종로구 민족번영회 회사.
민족번영회 회사 현관 앞에는 아침 일찍부터 나잇대도 천차만별이 남자들이 회사 현관문이 열리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 인파 속에 종구 형제도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며 서성거렸다. 1시간 후 민족번영회 회사 현관문이 열리자 순간 그쪽으로 우르를 몰려갔다. 민족번영회 회사 안의 1층 사무실은 은행처럼 여러 개의 창구가 있었다. 종구 형제도 차례가 되어 3번 창구 앞에 섰다.
“이름은?”
“이종구입니다. 옆에 있는 애는 동생 이종식이고요.”
“둘 다 신청할 거야?”
“네!”
“그런데 너희들 고아냐?”
머리에 기름을 발랐는지 번지르르 2대 8 머리를 한 30대 초반의 3번 창구 직원이 두 형제를 쳐다보며 물었다.
“아니요. 부모님은 춘천에 계셔요.”
“그럼 너희 여기에 있는 건 알고?”
“아뇨. 경성에 올라간 건 아는데, 이곳에서 일하고 있는 건 모르세요.”
“알았다. 여기 신청서 두 장 줄 테니 저기 가서 작성한 다음 제출해.”
“네, 고맙습니다.”
십여 분 후 종구 형제는 2장의 신청서를 작성한 후 3번 창구 직원에게 제출 후 직원으로부터 몇 가지 설명을 듣고 나갔다. 그리고 그때 말짱한 검은 정장을 입은 한 사내가 들어왔다. 그 남자는 곧장 창구 옆을 지나 계단을 통해 2층으로 올라갔다. 바로 민족번영회 사장인 이복덕이었다.
사장실에 들어서자 비서 겸 경리인 20대 초반 여직원이 차를 가져왔고, 이복덕은 그런 여직원의 허벅지를 은근 주무르며 거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김 부장 오라고 해.”
여직원은 반항하고 싶었지만, 행여 사장한테 밉보여 직장에서 쫓겨날까 봐 아무 말도 못 하고 수치심을 느꼈는지 붉어진 얼굴을 가리면 소심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사장님.”
잠시 후 건장한 체격의 한 사내가 사장실에 들어왔다.
“부르셨습니까, 사장님?”
“김 부장, 이번 일본 탄광 모집현황은 어떻게 돼가나?”
“네, 사장님이 시키신 대로 선금 10원을 준다는 내용을 써서 올려서 그런지 저번 조선공장 모집하고 비교도 안 되게 몰려들고 있습니다.”
“흐흐흐, 그러게 사람은 머리를 써야 한다고 안 그래, 김 부장?”
“역시 사장님이십니다.”
“내일까지 모집 인원은 얼마 될 것 같나?”
“저희가 목표로 하는 5,000명은 충분히 넘을 듯합니다.”
이복덕은 탁자 위에 구둣발을 올려놓으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번엔 일본기업으로부터 인당 30원씩 받기로 했으니, 5,000명이면 15만 원이군.’
짧게 돈 계산을 끝낸 이복덕은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고 불을 붙이며 김 부장에게 지시했다.
“최대한 고아 출신이나 주변 가족들이 없는 사람들로 최종 선별해서 이번 달 말일에 문제없이 보낼 수 있도록 하라고.”
“걱정하지 마세요, 사장님, 확실히 하겠습니다.”
이복덕은 1931년 3월 아버지인 이규준으로부터 남작 작위를 승계받고 일본에서 유학 생활을 하면서 일본의 여러 기업과 깊은 유대관계를 이어갔다. 이후 1942년 12월 민족번영회라는 회사를 설립한 후 일본기업들로부터 필요로 하는 인력을 모집하여 파견하는 사업으로 떼돈을 벌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사업의 실체는 돈 벌게 해주겠다는 감언이설로 조선인들을 모집하고 일본기업으로 팔아먹는 강제징용의 한 수단으로 써먹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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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3년 6월 01일 17:00 일제강점기,
인천시 외항 부두.
5,000여 명의 젊은 조선 노동자들이 커다란 여객선에서 승선한 한 후 항구를 향해 손을 흔들었고 항구 부두엔 이들을 배웅하기 위해 온 노동자 가족들이 떠나는 아버지, 오빠, 아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이날 일본의 탄광과 산업현장으로 떠나는 조선 노동자들의 마음속엔 5년간 피땀 흘려 일한 후 충분한 돈을 모아 다시 조국으로 돌아오는 상상을 하며 가족과 떠나는 슬픔을 억누르고 있었을 것이다.
“막둥아, 니 어무이 잘 모시고 있어라잉? 아부지가 금방 갔다 오꾸마, 알았제?”
40대로 보이는 사내 한 명이 부두 왼편에서 엄마 손을 잡고 크게 손을 흔드는 어린아이를 보고 크게 소리쳤다. 이에 어린아이도 양손을 입에 모아 있는 힘껏 외쳤다.
“아부지, 걱정하덜 마셔요. 제가 어무이 잘 모시고 있을랑게. 아부지나 몸 건강하게 다녀오셔라.”
그런 아들의 외침에 옆에 있던 엄마는 하얀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며 울기만 했다. 나라를 잃고 일제 탄압에 힘든 삶을 살아가던 조선의 가장들은 가난에 허덕이고 하루하루 배고픔에 고통스러워하는 처자식을 위한 마음 이 한 가지로 사랑하는 가족과의 생이별의 아픔을 이겨내고 있었다. 잠시 후 5,000여 명의 조선 노동자들을 태운 여객선이 커다란 뱃고동을 울리며 출발하려 했다.
“형, 우리 엄마 아빠도 배웅 왔으면 좋았겠다.”
멀어져가는 부두를 보며 자기와는 아무 상관 없는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며 종식이가 혼잣말하듯 말했다.
“종식아 나중에, 아주 나중에 다시 고향으로 가는 날을 생각하며 참자.”
“그때는 내가 엄마 아빠 조그마한 땅이라도 사줄 수 있겠지? 그렇지?”
그렇게 말하는 종식이 머리를 흔들며 종구는 푸른 바다를 보며 크게 말했다.
“당연하지. 그때는 우리도 고향에서 우리 땅으로 농사짓고 끼니 걱정 안 하면서 살 수 있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