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검은 그림자
2016년 12월 24일 09:10,
서울시 종로구 외교부 장관실.
어젯밤 CIA 한국지부 정보요원이 가담한 기밀 유출 사건과 관련하여 김재학 장관은 주한 미 대사인 재키 로빈스 대사를 긴급 소환했다.
“어떻게 동맹국을 상대로 첩보 활동을 할 수 있단 말입니까, 로빈스 대사님?”
“김 장관님, 도통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습니다.”
“시치미 떼지 마세요. 국정원에서 CIA 한국지부 소행이라는 증거자료를 확보했습니다.”
증거까지 확보했다는 말에 잠시 말문을 닫은 재키 로빈스 대사는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조용히 대답했다.
“김 장관님! 1년 전 한국 쪽에서 미 정부의 기밀 기관에 대한 해킹 사건이 있었습니다. 기밀 문건도 몇 건 유출되었고요. 아마도 그 해킹 사건에 대한 배후를 찾기 위해 CIA에서 움직인 듯합니다.”
“뭐라고요? 그럼 한국 정부에서 미국의 기밀 기관에 대해 해킹을 했단 말입니까? 무슨 증거로요?”
“일단 해킹 발신지가 한국이었고, 또한 그런 해킹을 보유한 건 일개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로빈스 대사님, 설령 그런 사건이 있었다고 칩시다. 국가 간 공조수사를 통해 확인하면 되는 것을 동맹국을 대상으로 첩보 활동을 한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군요.”
“음, 국가 간 공조수사를 하기엔 해킹으로 유출된 문건의 보안등급이 매우 높았던지라···. 그만큼 미국으로서는 중대한 자료였습니다. 미 정보기관으로써는 어쩔 수 없는 행보라 봅니다.”
“어쩔 수 없는 행보라? 동맹국으로써 그 정도의 신뢰를 갖지 못한 게 한국의 실정이군요. 안 그렇습니까, 로빈스 대사님?”
“그 부분은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김 장관님.”
“이번 사건에 대해서 대통령님께서는 단호히 원칙에 따라 처리하라는 지시입니다. 이번 기밀 유출 사건에 관련된 CIA 요원들은 오랫동안 국정원에 수감 될 것입니다.”
“얼마 동안 말입니까?”
“정확히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5년 이상은 수감 될 듯합니다.”
“5년 이상이라니요? 동맹국으로써 너무한 처사라고 봅니다.”
“너무한 처사라? 동맹국을 상대로 이러한 첩보 활동은 괜찮고요?"
“그렇게 말씀하시니 뭐라 할 말은 없습니다. 대신 부탁 하나만 하겠습니다.”
“말해보세요.”
재키 로빈스 대사는 몸을 회의 탁자에 밀착시키고 조용히 말했다.
“이번 사건에 대해선 미국 정부와 상관없는 일로 처리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동맹국 간에 이런 불미스러운 일이 대외적으로 알려진다면 국제 정서를 생각했을 때 좋을 게 하나도 없습니다. 또한, 미한 관계에서도 상당한 악재로 이어질 것입니다.”
“저 또한 이 일이 대외적으로 크게 알려지는 것은 좋을 거 없다고 봅니다. 하지만 최종 결정은 대통령님께서 하실 겁니다. 그리고 그 대답은 금일 오후 국정원에서 있을 기자회견에서 알게 되겠지요.”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김 장관님.”
“저도 부탁 하나 하겠습니다. 로빈스 대사님, 이 시간 이후로 한국에 대한 그 어떠한 첩보 활동을 중단해 주시기 바랍니다. 약속해줄 수 있습니까?”
“제가 결정할 상황은 아니지만, 제 명예를 걸고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약속드리겠습니다.”
“좋습니다. 그럼 이만 가보셔도 됩니다.”
아침부터 TV에서는 어젯밤 세종로사거리 총격전과 청주 제17전투비행단 근방에서는 일어난 총격전에 관한 기사가 봇물 터지듯 수많은 언론매체를 통해 전파되었다. 지금까지 이러한 총격전 사건이 없었던 대한민국 국민은 상당한 충격을 받았으며 사건에 대한 경위에 관해서도 관심 또한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이에 국가정보원에서는 오후 1시에 사건 경위에 대해 기자회견을 할 예정이었다.
★ ★ ★
2016년 12월 24일 11:00,
서울시 종로구 청와대 대통령 집무실.
“이번 CIA 한국지부 기밀 유출 사건에 대한 브리핑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국가정보원은 강도 높은 심문을 통해 진술 내용과 증거자료를 확보하여 나봉일 원장이 직접 대통령에게 사건 경위에 관한 보고를 했다.
“3년 전 미국 CIA 한국지부 아널드 지부장과 2명의 요원이 한국에서 활동 중 2015년 8월 15일 평양 테러 사건 이후 8명이 추가로 한국지부로 파견됨. 주요 임무는 한국 정부와 북한과의 관계 개선에 대한 정치적 동태 파악이었으나, 작년 말 나사 해킹 사건 이후 국가정보원 및 국내 대기업들의 감시 역할로 전환됨. 이후 제17전투비행단의 지하연구소에 대한 정보를 미국 CIA로부터 입수 후 안상태 장관을 통해 건물 설계도 확보 및 스파이 드론이라는 침투 드론을 통해 지하연구소에 대해 첩보 활동을 하려 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설명을 듣던 대통령은 브리핑을 잠시 중단시켰다.
“나 원장님?”
“네, 대통령님.”
“미국 CIA는 어떻게 제17전투비행단의 지하연구소에 대한 정보를 알아냈습니까?”
“현재 아널드 지부장이 중태에 빠져 본인에게 직접 정보를 확인할 수 없었으나, 이번에 체포된 인원 중 한 명에게 대략적 정보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미 정찰위성에서 지속적 국내 군사기지에 대한 정찰 활동 중 제17전투비행단에서 건물 공사현장을 확인한 듯합니다.”
“미국 정보력은 실로 대단하군요. 알겠습니다, 계속하세요.”
“네, 대통령님! 이번 사건을 해결할 수 있었던 것은 안상태 장관을 경호하던 이자성 요원의 순발력으로 아널드 지부장과 안상태 장관의 비밀 접촉을 알아냈고, 이에 국정원에서 대대적 감시 활동을 통해 이번 기밀 유출에 대한 사건을 종료시킬 수 있었습니다.”
옆에서 팔짱을 끼고 묵묵히 듣고 있던 오장수 실장이 질문했다.
“현재까지 CIA로 넘어간 정보는 어느 정도입니까?”
“안상태 장관을 통해 넘어간 정보는 제17전투비행단 지하연구소 내부 설계도 외에 그 어떠한 정보도 유출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정말입니까? 그렇다면 다행이군요.”
“그렇습니다. 그리고 지하연구소에 침투하여 영상 촬영을 한 스파이 드론과 녹화된 영상 메모리 카드도 국정원 수사1과 요원이 확보하였고, 용의자들이 이용했던 차량도 폭발과 함께 완전히 소멸하였습니다.”
삐익~
- 대통령님! 외교부 김재학 장관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네, 연결하세요.”
잠시 후 수화기를 든 대통령은 외교부 김재학 장관과 몇 마디 주고받고는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는 한 손으로 턱에 대고는 말하기 시작했다.
“방금 미 주한대사와 얘기를 마친 듯합니다. 예상대로 미 정부는 이번 일에 대해 대외적으로 알려지는 게 꺼려지나 봅니다. 그리고 앞으로 한국에 대한 첩보 활동도 전면 중단한다는 약속도 받았다고 합니다. 나 원장님?”
“네, 대통령님.”
“오늘 기자회견에서 미국에 대한 언급은 피하시고 사전에 준비한 내용으로 발표하시기 바랍니다. 미국이 약속을 끝까지 지키진 않겠지만 당분간 한국에 대한 첩보 활동을 중지한다면, 그만큼 우리는 시간을 벌 기회이니 미국 요청을 수용하는 게 나을 듯합니다. 또한, 이번 사건을 복차지계(覆車之戒) 삼아 모든 인원에 대한 보안 교육과 기밀 유출에 대한 감시를 철저히 하시기 바랍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 ★ ★
2016년 12월 24일 13:00,
서울시 강남구 국가정보원 기자 회견장.
수많은 기자가 몰려온 상태에서 국가정보원 기자 회견장은 그 어느 때보다 시끌벅적거렸다. 잠시 후 국가정보원 대변인이 단상 위로 올라와 마이크에 입을 갖다 대며 기자회견을 시작했다.
“그럼 지금부터 어젯밤 세종로 총격 사건에 대해 간단한 브리핑과 기자님들의 질문을 받는 기자회견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대변인의 말에 웅성거리던 기자들은 일제히 카메라 셔터를 연신 누르며 기자회견에 집중하였다.
“이번 사건은 외국의 다국적 군사복합체 기업에서 한국의 군사적 기밀문서를 확보하기 위한 첩보 활동이었습니다. 현재 국내의 불안한 안보 상황을 고려하여 향후 있을 여러 무기 수입에 대한 정보를 사전에 입수하여 유리한 상황에서 무기를 판매하려는 의도로 이에 국정원에서는 사전에 이러한 첩보 활동을 간파하여 어젯밤 긴급체포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사건이었습니다.”
대변인의 간단한 브리핑이 끝나자 여기저기서 기자들이 손을 들며 질문 공세를 했다. 이에 대변인은 앞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앞줄 두 번째 남기자님 말씀하세요.”
“신라일보의 오길동 기자입니다.”
“네, 질문하세요.”
“그렇다면 청주에서 일어난 사건도 같은 맥락입니까?”
“네, 그렇습니다. 다국적 군사복합체 기업에서는 여러 군사기밀 중 제17전투비행단의 군사기밀도 포함되어 있었고, 이에 기밀 유출자를 진압했던 것입니다.”
“한마음 일보입니다. 이번에 유출된 기밀문서는 있습니까?”
“없습니다. 다행히 기밀이 유출되기 전에 범죄자들을 모두 체포하였습니다.”
“그렇다면 다국적 군사복합체 기업의 체포된 범죄자들의 국적은 어떻게 됩니까?”
“죄송합니다. 그 부분은 안보에 있어 앞으로 중요한 부분이기에 답변해줄 수 없습니다. 질문은 한 분만 더 받고 끝내도록 하겠습니다. 추후 국민 여러분에게 알려드릴 정보가 있다면 그때 다시 기자회견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저기요, CBS 김경희 기자입니다.”
맨 앞 편에 있던 여기자가 마지막 질문을 하고자 손을 번쩍 들었다.
“네, 김경희 기자님. 말씀하세요.”
“이번 사건에 한국 고위 공직자가 관여되었다는 정보가 있습니다. 오늘 기자회견에서는 그런 말 없으셨는데요? 사실대로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안상태 장관에 대한 체포 사실은 아직 비밀리에 붙여진 상태였다. 그런 사실을 여기자는 알고 있는 듯 질문하는 통해 대변인은 잠시 당황하는 기색을 보였으나, 이내 평정심을 갖고 대답했다.
“네, 있습니다. 조만간 다시 발표할 때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누구인지 지금 알려주시면 안 됩니까?”
집요하게 파고드는 여기자의 재차 질문에 대변인은 단호히 말했다.
“현재 조사 중이기에 섣부른 발표는 시기상조인 듯합니다. 때가 되면 다음 기자회견 때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기자회견은 이만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대변인님, 질문 한 가지만 더 받아주세요. 우리신문의 연문호 기자입니다. 용의자가 미 대사관 관용차를 이용했다는데 미국과도 연관된 거 아닙니까? 말씀해 주세요.”
“기자님들! 기자회견은 끝났습니다. 그만 돌아가 주세요.”
국정원 대변인은 기자 회견장 자리를 신속하게 빠져나갔고 연이어 질문 공세를 퍼붓는 기자들에게 국가정보원 경호원들이 제지하며 실랑이를 펴기 시작했다.
이에 밖에서는 여러 방송국 기자들이 이번 기자회견에 대한 보도를 실시간으로 내보내며 국가정보원에서 뭔가 숨기고 있지 않으냐는 뉘앙스를 풍기듯 국민적 관심을 고취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