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6화 (36/605)

빛과 검은 그림자

2016년 12월 23일 22:30,

충북 청주시 제17전투비행단 공군기지 200여 미터 근방.

스파이 드론은 제17전투비행단 지하연구소 지하 2층까지 환풍구 통로를 이용해 침투한 후 각종 실내 내부의 모습을 모니터 화면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월터, 이거 무슨 냄새가 나는데?”

화면을 통해 보이는 지하 2층 모습은 얼핏 봐도 연구실처럼 보였다. 이에 루이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월터에게 속삭였다.

“그렇게 말입니다. 아주 진한 냄새가 나는데요. 공식적으로는 차세대 무기 보관소로 등록되어 있는데 말이죠. 제가 보기에도 연구소 성격을 가진 건물 내부 같습니다.”

월터 역시 자신과 같은 생각을 말하자 설계도면과 화면을 번갈아 가며 확인하던 루이는 한 곳을 가리키며 월터에게 지시했다.

“월터 지하 3층 중앙홀에 있는 구간으로 들어가 봐.”

“알겠습니다.”

루이의 지시에 월터는 조종 손잡이를 움직여 지하 3층으로 통하는 환풍구를 찾아 스파이 드론을 이동시켰다. 잠시 후 스파이 드론은 지하 3층 복도로 빠져나와 각종 CCTV나 감지기 위치를 피해 중앙홀 구간 입구까지 이동하는 데 성공했다.

“그래 저기, 다른 곳보다 아주 넓게 만들어진 구역이야! 저곳으로 이동해봐.”

그때 운전석에서 주변을 살피고 있던 스티븐이 맞은편에서 다가오는 차량 불빛을 보고는 급히 자세를 낮추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루이! 차량 1대가 다가오는데?”

“월터, 모니터 화면 불빛 가려!”

“오케이.”

모니터 화면의 불빛이 새 나가지 않게 모니터 화면을 벗은 윗옷으로 덮은 월터를 비롯해 루이와 스티븐은 숨죽은 듯 차가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봉고차 한 대가 경적 한번 울리고는 그대로 지나쳤다. 봉고차가 경적을 울리며 지나칠 때 뭔가를 떨어뜨리고 간 것을 알아채지 못한 루이 일행은 멀어지는 차량을 보고는 다시 작업에 착수했다.

“월터! 계속 진행해!”

루이의 지시에 다시금 드론 조종기를 잡고는 중앙홀 구간과 연결된 환풍구를 찾아 들어가려는 그때, 검은 밴 옆에서 커다란 폭발음이 울리며 검은 밴이 크게 들썩였다.

꽝앙!

폭발 충격에 검은 밴은 휘청거리며 창문은 깨졌고 또한 그 충격에 루이와 월터는 중심을 잃고는 쓰러졌다. 스티븐만 운전석에서 핸들을 잡고 있었기에 충격이 덜했는지 본능적으로 권총을 집어 들고는 사방을 확인했다.

“뭐, 뭐야?”

“모르겠어! 뭔가 터진 거 같은데? 노출된 거 아니야?”

“이런 제길! 작전 취소다! 스티븐, 밟아!”

검은 밴은 급출발로 도로에 들어서고는 이내 속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방금 폭발로 인해 타이어가 터졌는지 한쪽으로 기울어진 검은 밴은 덜컹거리며 원하는 속도를 내지 못하고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뒤쪽에서 총성이 울리기 시작했다.

탕! 탕! 탕! 탕! 탕! 탕!

조금 전 지나쳤던 봉고차가 언제 되돌아왔는지 검은 밴을 따라붙으며 총알을 퍼붓고 있었다. 이에 루이와 월터도 M416 소총을 들고는 깨진 좌우 창문에 몸을 내밀고는 응사했다.

타타타타타탕! 타타타타타탕!

봉고차와 검은 밴에서는 쏟아지는 총알들로 인해 불꽃 향연이 일어나며 만신창이가 되는 상황에서 루이가 소리쳤다.

“스티븐! 속도 좀 내란 말이야!”

“타이어가 터져서 속도가 안 나! 저, 저거 뭐야? 전방 막혔어!”

설상가상으로 전방 100m 부분에서 눈부신 서치라이트가 켜졌고 제17전투비행단 소속 공군 헌병 대원들이 바리케이드를 치고 기다리고 있었다. 이에 놀란 스티븐은 급하게 왼쪽으로 핸들을 꺾어 얼어붙은 밭으로 검은 밴의 방향을 돌렸다. 하지만, 타이어가 터지면서 걸레짝이 돼버렸기에 휠만으로는 아무리 얼어붙은 밭이라 하여도 푹푹 빠지자 검은 밴의 속도는 현저히 줄어버렸다.

“루이! 더는 안 되겠는데? 타이어가 타 터져버린 거 같아.”

“각자 알아서 도망친다. 월터는 스파이 드론에서 촬영한 메모리 카드만 빼서 빠져나가, 나와 스티븐이 엄호해줄 테니까.”

“알겠습니다.”

급한 상황에서 짧게 대답한 월터는 스파이 드론 운영 장비에서 SD 메모리 카드를 빼 보관용 케이스에 담고는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검은 밴은 밭 한가운데 멈췄다.

“스티븐, 나가자.”

“알았어!”

루이의 외침에 스티븐이 제일 먼저 차 문을 열고 나와 다가오는 봉고차에 연사로 사격을 가했다. 또한, 루이도 뒷문을 통해 빠져나와 엄폐하고는 수류탄 하나를 까고 그대로 다가오는 봉고차를 향해 던졌다.

탕! 탕! 탕! 탕! 탕!

콰앙.

흙기둥이 솟아오르며 수류탄이 터지자 다가오던 봉고차는 급정거하며 멈췄고 여러 요원이 빠져나와 쏟아지는 총알을 피해 봉고차 뒤편으로 몸을 숨겼다.

“지금이야! 달려!”

루이의 외침에 월터는 그대로 검은 밴을 뒤로하고 반대편으로 전력 질주하기 시작했다. 한편 난무하는 총알 빗속에서 응사하던 스티븐의 머리가 순간적으로 수박 터지는 소리를 내더니 검붉은 살점이 사방으로 튀었고 몸은 그대로 뒤로 꺾이며 쓰러졌다. 이런 모습을 본, 루이는 몸을 낮춰 엄폐한 후 주먹으로 검은 밴을 치며 악 받치는 고함을 내질렀다.

“개 시발! 저격수까지, 제기랄 가망 없군.”

불리하게 돌아가는 상황을 직감한 루이는 멀어져 가는 월터를 보고는 주머니에서 C4 폭탄을 꺼내 들고 검은 밴에 부착하였다. 그리고 월터가 도망간 옆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이에 봉고차에서 응사하던 요원들도 다시 쫓아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앞만 보고 달리던 루이는 왼손에 쥐고 있던 격발 스위치의 버튼을 누르자 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검은 밴은 하늘로 치솟으며 폭발하고는 화염에 휩싸였다.

콰콰쾅! 팟르르르~

한편 월터는 밭에서 빠져나와 가건물 형태의 창고에 숨기고 잠시나마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2시간 전 국가정보원 정보수집1과에서는 제17전투비행단의 지하연구소가 목표라는 걸 안 그때부터 은밀히 정보수집1과 2팀과 3팀 요원들에게 예상되는 모든 퇴각 경로에 잠입을 시켰다.

‘여기서 어디로 빠져나가야지? 일이 꼬여도 너무 꼬였군.’

잠시 숨을 고르며 탈출 방법을 생각한 월터는 쉽게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일단 시내 쪽으로 가보자.’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고 무거운 몸을 일으켜 다시 달리려는 그때, 월터의 얼굴에 번쩍하며 강한 충격이 전해졌다.

퍽!

월터의 의식은 서서히 사라졌다.

“자식! 여기까지 도망치느라 수고했는데 어쩌나?”

권총 손잡이로 월터의 머리를 세차게 내려친 정보수집1과 2팀 강균호 팀장은 쓰러진 월터의 손을 뒤로 돌려 수갑을 채우고는 몸을 뒤지기 시작했다.

“여기는 수박밭, 1차 수확 완료.”

- 여기는 농장주인, 나머지 수확을 완료할 때까지 모두 조심 바람.

“여기는 수박밭. 확인”

한편 저격수 때문에 지그재그로 달리는 루이는 허름한 공장 건물 담벼락을 가볍게 넘고는 공장 자재가 쌓여있는 곳에 숨겼다.

“헉! 헉! 월터는 빠져나갔나···.”

자세를 낮추고 숨을 고르며 탄창을 확인한 루이는 모르고 있었다. 상공 100m 위에 제17전투비행단 정찰 드론이 떠 있는 것을. 정찰 드론은 적외선 카메라로 현재 루이가 숨어있는 곳을 주시하며 현장 투입된 요원들에게 위치를 확인해주고 있었다.

몇 분이 지나자 자재 틈 사이로 밖을 살핀 루이는 직감적으로 알았다. 자신의 위치가 노출되었고 포위망이 좁혀오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완전한 작전 실패군. 아주 난감한 상황이야.”

현실을 직시한 루이는 가지고 있는 장비를 점검했다.

‘장착된 탄창에 12발, 30발 탄창 2개, 그리고 수류탄 1개, 현재 무장상태로는 포위망을 빠져나간다는 건 틀린 거 같고, 어떻게든 월터만이라도 도망갈 수 있도록 시간이나 벌고 끝내자.’

이렇게 결심을 한 루이는 자재 틈 사이로 다가오는 검은 그림자에 총구를 내밀곤 그대로 방아쇠를 당겼다.

탕! 탕! 탕!

탕! 탕탕! 탕! 팟! 팟!

순간 루이를 향해 사방에서 총알이 빗발쳤다. 급히 움츠린 루이가 다시금 자세를 잡고는 재차 방아쇠를 당기려는 순간, 가슴과 허벅지에 참기 힘든 통증이 밀려왔고 붉은 피가 샘솟듯 자신의 옷을 붉게 물들어 갔다.

“으윽!”

가슴과 허벅지의 극심한 통증에 온몸의 힘이 빠진 루이는 소총마저 떨어뜨리고는 축 늘어졌다. 입에선 시커먼 피가 역류해 쏟아졌고 눈동자의 초점은 서서히 흐려져 갔다. 하지만 어디서 나오는 의지력인지 오른손이 굼틀거리며 뭔가를 뽑으려 안간힘을 냈다. 잠시 후 허리춤에서 수류탄 안전핀 하나가 뽑혔다.

‘스티븐···. 나도 따라가네.’

콰앙!

10여 분 후 상황이 종료된 수박밭으로부터 보고가 올라왔다.

- 여기는 수박밭, 사살 2명 생포 1명, 수확 완료.

“여기는 농장주인, 수박밭 수고했다. 수습 후 복귀 바람.”

- 여기는 수박밭. 확인.

그리고 그 시간 합정동 본거지 건물 또한 국가정보원 진압팀 투입으로 잔당 5명 중 1명 사살 및 4명을 체포하며 이번 국가기밀 유출 사건에 대한 대단원의 막은 서서히 내려가고 있었다.

★ ★ ★

2016년 12월 24일 09:10,

서울시 강남구 국가정보원 정보수십국 취조실.

“안 장관님?”

취조실 탁자에 엎어져 자고 있던 안상태 장관은 낯선 사내의 목소리에 잠에서 깼다. 수갑을 찬 상태로 상체를 일으키며 목소리의 주인공을 확인한 안상태 장관은 그만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안상태 장관 앞에 서 있는 사내는 국가정보원 나봉일 원장이었다.

어젯밤 체포된 강만호 비서실장은 밤새 강도 높은 조사를 당했고 이에 겁을 먹었는지 순순히 모든 사실을 자백하였다. 이에 정보수집1과는 새벽 5시쯤 이자성 요원과 동행해 관사에서 자고 있던 안상태 장관을 긴급 체포해 곧바로 국가정보원으로 연행해왔다.

“담배 피우시겠습니까?”

나봉일 원장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안상태 장관은 건네받은 담배에 불을 붙이고는 깊게 한 모금 빨았다. 그리고 몇 번 더 들이마신 후 나봉일 원장을 보고는 나지막이 물어보았다.

“저기, 나 원장님, 전 절대 기밀 유출을 하려는 의도로 그런 사람들을 만난 게 아닙니다. 단지 그쪽에서 연락이 와서 한 번 만난 것밖에 없습니다.”

“강만호 비서실장이 모든 걸 자백했습니다. 또한, 증거도 확보한 상태입니다. 아직 상황 판단이 안 됩니까? 대한민국의 고위 공직자로서 뭐가 부족하다고 선을 넘은 이유가 뭡니까? 답답하군요.”

안상태 장관은 벌벌 떠는 손으로 담뱃불을 끄고는 착잡한 표정을 지으며 물어봤다.

“앞으로 저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S급 기밀 유출입니다. 즉, 국가반역죄로 실형을 받겠지요. 아마도 무기징역은 피할 수 없을 듯합니다.”

“무기징역이라면 여생을 감옥에서 보내야 한다는 겁니까?”

그런 안상태 장관의 모습에 나봉일 원장은 한심한 듯 한마디 더 던졌다.

“사형보다는 낫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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