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검은 그림자
2016년 12월 23일 17:00,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국토교통부 건물.
오후 6시가 되자 강만호 비서실장은 약속이 있는 듯 급히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가 자기 승용차를 몰고 청사에서 막 빠져나오고 있었다. 이때 건너편 갓길에 세워둔 차에서 지켜보는 사내가 조용히 헤드셋을 통해 어디론가 보고하였다.
- 여기는 고추밭, 방금 강만호가 청사 지하주차장을 빠져나감,
“여기는 농장주인, 고추밭 잠시 대기. 참외밭, 현재 안상태 장관 위치 확인 바람,”
비서실에서 안상태 장관의 경호 임무를 맡은 이자성 자신의 암호명이 불리자 옆에 있는 비서실 직원들을 살짝 쳐다보고는 이에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작은 목소리로 귀에 꽂은 통신 장비를 통해 대답했다.
- 여기는 상추밭, 현재 안상태 장관은 장관실에 있음.
“여기는 농장주인, 상추밭 강만호 비서실장 외출 사유를 알 수 있나?”
- 여기는 상추밭, 서울에 일이 있어 오늘은 칼퇴근한다고 함.
“여기는 농장주인, 고추밭은 은밀히 미행하도록 하고, 배추밭은 그대로 지하주차장에서 대기, 상추밭은 안상태 장관 계속 경호 및 감시할 것.”
- 여기는 고추밭. 확인.
- 여기는 배추밭, 확인.
- 여기는 상추밭, 확인.
“안 주임, 조용히 따라가자.”
암호명 고추밭인 정보수집1과의 1팀장 이동규 일행은 강만호의 하얀색 승용차와 거리를 유지하고 따라갔다. 경부고속도로에 진입한 강만호 비서실장은 평소보다 빠른 속도로 서울을 향해 운전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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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2월 23일 17:10,
서울시 강남구 국가정보원 정보수집국 상황관제실.
“2팀 상황 어떤지 확인해봐.”
상황관제실에서 1과장과 함께 작전을 지켜보고 있던 정보수집국의 우형성 국장이 윤수길 과장에게 지시했다.
“여기는 농장주인, 수박밭 그쪽 상황은 어떤가?”
- 여기는 수박밭, 별다른 움직임 없음.
“여기는 농장주인, 그럼 계속 주시하고 조금이라도 수상한 부분이 있으면 바로 연락 바람.”
- 여기는 수박밭. 확인.
2시간 후.
- 여기는 수박밭, 방금 미 대사관 번호판의 검은 밴 1대가 주차장에서 나옴.
“여기는 농장주인, 차량 1대인가? 수박밭은 은밀히 미행 바람, 참외밭은 계속 주시하기 바람.”
- 여기는 수박밭. 확인.
- 여기는 참외밭. 확인.
잠시 후 양화로에 들어선 미 대사관 번호판을 단 검은 밴 차량은 양화대교를 건너 잠실 올림픽대로 진입하고 있었다.
- 여기는 수박밭, 검은 밴 차량 잠실 방향 올림픽 도로로 진입 중.
“여기는 농장주인, 눈치채지 않도록 조용히 미행 바람.”
- 여기는 수박밭. 확인.
검은 밴은 올림픽대로를 따라 이동하다가 강일IC에서 서울외곽고속도로를 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그대로 중부고속도로를 타고 내려갔다.
- 여기는 수박밭, 검은 밴은 서울외곽고속도로를 탄 후 현재 중부고속도로를 타고 이동 중.
“여기는 농장주인, 절대 놓치지 말고 끝까지 미행 바람.”
- 여기는 수박밭.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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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2월 23일 20:00,
서울시 마포구 합정동 CIA 한국지부 건물.
신문을 읽고 있던 아널드 지부장은 손목시계를 한번 쳐다보고는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약속 시각이 다가오는군, 슬슬 출발해볼까? 로빈, 이만 가지.”
“네, 지부장님. 차량 준비하겠습니다.”
잠시 후 합정동 CIA 한국지부 건물에서 검은 승용차 한 대가 천천히 주차장에서 빠져나왔다.
- 여기는 참외밭, 방금 미 대사관 번호판을 단 승용차 한 대가 지하주차장에서 나옴.
“여기는 농장주인, 미행 바람.”
- 여기는 참외밭. 확인.
아널드를 태운 검은 승용차는 양화로에 진입 후 바로 홍대 입구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20분이 지나 무전이 왔다.
- 여기는 참외밭, 검은 승용차 방금 미 대사관으로 들어갔습니다.
“여기는 농장주인, 현 위치에서 대기.”
- 여기는 참외밭.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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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2월 23일 20:20,
서울시 강남구 국가정보원 정보수집국 상황관제실.
“여기는 농장주인, 고추밭 위치 확인 바람.”
- 여기는 고추밭, 현재 강북 북로에서 막 한강대로 진입 중.
“여기는 농장주인, 현재 교통상황이 복잡하니 미행에 신경 쓰도록.”
- 여기는 고추밭. 확인.
현재 미행 중인 차량 위치가 표시된 지도화면을 뚫어지게 보던 윤수길 과장이 중얼거리듯 말했다.
“저 차량도 목적지가 미 대사관인가?”
“무슨 말인가, 윤 과장?”
“아! 죄송합니다. 국장님 현재 고추밭이 미행 중인 차량 목적지가 아마도 미 대사관일 듯합니다. 내비게이션을 보시면 진행 방향 몇 킬로만 위로 올라가면 미 대사관입니다.”
“뭐야? 접선 장소가 미 대사관이면 이거 문제인데? 치외법권 지역인 미 대사관으로 일부러 잡았다는 거군. 제길!”
“국장님, 지금이라도 강만호를 잡을까요?”
“증거 없이 섣부르게 잡았다가는 역풍 맞을 수 있어. 일단 지켜보자고.”
“네, 알겠습니다.”
10여 분 후 윤수길 과장의 예상에 맞게 강만호의 차량은 별다른 제지 없이 그대로 미 대사관 건물로 들어섰다.
- 여기는 고추밭, 강만호 비서실장 미 대사관 진입.
“여기는 농장주인, 고추밭도 그곳에서 대기 바람.”
“수박밭 위치 확인해 윤 과장.”
“네, 국장님.”
“여기는 농장주인, 수박밭 위치 확인 바람.”
- 여기는 수박밭, 현재 청주 시내로 진입 중.
“청주?”
“이것들이 무슨 꿍꿍이지?”
답답했던지 우형성 국장은 넥타이를 풀어헤쳐 버렸다. 이에 옆에서 지켜보던 윤수길 과장이 가까이 다가가 귀에 대고 조용히 말했다.
“국장님, 혹시 제17전투비행단과 연관 있지 않았을까요?”
“뭐? 그럼 저놈들이 벌써 제17전투비행단 지하연구소에 대해 알고 있다는 말인가?”
“현재 의심할 부분은 그곳밖에 없습니다.”
“이거 문제가 아주 심각하군.”
그때 다급하게 상황관제실로 4팀장인 오연호가 뛰어왔다.
“국장님, 저번 청담동 요정 감청 내용 분석 완료했습니다.”
오연호 팀장이 건네는 감청 파일을 낚아채듯 받은 우형성 국장은 빠른 속도로 대화 내용 글들을 읽어 내려갔다. 잠시 후 다 읽은 파일을 윤수길 과장에게 건네며 탄식의 신음을 내며 말했다.
“드디어 수수께끼가 풀렸어. 안상태 개자식.”
건네받은 윤수길 과장도 마저 다 읽고는 사태의 심각성이 상상 이상인 걸 직감하고는 바로 마이크를 입에 대고 각 팀장을 호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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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2월 23일 21:00,
서울시 종로구 세종로 미 대사관 회의실.
“어서 오세요.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회의실에서 미리 기다리고 있던 아널드 지부장이 강만호를 보고는 반갑게 맞아주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안상태 장관을 모시고 있는 강만호 비서실장입니다.”
“잘 알다마다요. 어서 앉으세요.”
“네, 감사합니다.”
“그럼 준비하신 자료는 가지고 오셨습니까?”
“네, 그전에 한 가지 추가적인 부탁이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저 또한 이번 일에 깊숙이 가담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말인데요, 안 장관님과 같은 조건을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아널드 지부장은 다 된 밥에 콧물 빠뜨리기 싫었는지 호탕하게 웃으면 대답했다.
“당연한 거 아니겠습니까? 걱정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지부장님. 자료는 이것입니다.”
강만호 비서실장은 가방에서 보안 기능이 있는 조그마한 USB 하나를 건넸다.
“여기 USB에는 제17전투비행단 지하연구소에 대한 설계도면이 들어있습니다.”
“그거뿐인가요? 제가 요청한 것 중에는 현재 한국 정부에서 비밀리에 진행하고 있는 여러 정책에 대한 자료도 요청했습니다만?”
“네, 알고 있습니다. 안 장관님께서 아직 자료 정리가 덜 되었다고 오늘은 일단 이것만 드리고, 추후 자료가 정리되는 대로 모두 드리겠다고 하셨습니다.”
“음, 그런 이유라면 어쩔 수 없지요. 잘 알겠습니다.”
아널드 지부장은 강만호로부터 건네받은 USB를 옆에서 대기하고 있던 수행원에게 건네자 수행원은 바로 밖으로 나가버렸다.
“오시느라 식사도 못 했을 텐데 저희가 준비한 식사나 하시면서 앞으로 있을 일에 대해서 서로 간 생각을 공유했으면 합니다. 식당으로 가시지요.”
“감사합니다. 지부장님.”
아널드 지부장으로부터 USB를 건네받은 수행원은 바로 옆방에 있는 컴퓨터실로 들어가 USB 자료를 실행했다. 이후 몇 번의 키보드를 조작하고는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루이! 방금 설계도면 전송했으니 확인해봐.”
- 알았어, 조니 뎁.
“그럼 수고하게, 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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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2월 23일 21:30,
충북 청주시 시내 골목길.
30분 전부터 골목길에 주차 후 대기하던 루이와 스티븐, 그리고 스파이 드론을 조종할 4팀 요원인 월터 존슨, 이렇게 3명은 조니 뎁으로부터 기다리던 자료가 도착하자 바로 스파이 드론의 프로그램에 자료를 업로드 시켰다.
“업로드 완료됐습니다. 루이 팀장님.”
“수고했어, 월터.”
“스티븐? 슬슬 움직이자고.”
“오케이.”
검은 밴은 시동을 켜고는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에 멀리서 지켜보던 암호명 수박밭 차량도 천천히 따라가기 시작했다.
20여 분을 달리고 검은 밴 이 도착한 곳은 제17전투비행단 기지로부터 200여 미터 떨어진 도로 갓길이었다.
“루이, 어때? 이곳에서 시작하는 게?”
운전하던 스티븐의 말에 창문 밖을 보던 루이는 다른 주변보다 어둡기도 하고 침투할 지하 건물과 가깝기도 하기에 이네 대답했다.
“나쁘지 않군.”
“좋아! 현재 시각 22시 05분, 슬슬 시작해볼까? 월터, 준비해!”
“네, 알겠습니다.”
루이의 말에 뒷좌석에서 짧게 대답한 월터 존슨은 조그마한 상자를 열었다. 그 상자에는 어린이 엄지손톱만 한 벌 형태의 작은 스파이 드론이 들어있었다. 스파이 드론의 정식 명칭은 SPY-X로 조종 거리 5km에 무음으로 날아갈 수 있으며, 고해상도의 카메라가 장착되어 영상 촬영과 녹음을 할 수 있었다. 침투하고자 하는 건물의 설계도면만 업로드가 되면 자동으로 최상의 루트를 찾아 자동으로 침투할 수 있는 최첨단 스파이 드론이었다.
“준비 끝났습니다, 팀장님!”
“좋아! 바로 날려.”
“알겠습니다.”
월터 존슨이 스파이 드론의 전원을 켜고 조작 레버를 움직이자 아주 조그마한 소리를 내며 이내 열린 차량 창문 밖으로 빠져나와 상공 20m 높이까지 날아갔다. 이에 월터는 탑재된 카메라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는지 몇 가지 테스트를 걸친 후 이내 제17전투비행단 공군기지로 날려 보냈다.
벌만 한 크기의 스파이 드론은 입력된 최상의 투트를 따라 제17전투비행단 기지로 진입했다. 여러 곳에 설치된 초소와 각종 CCTV가 비추는 각도를 피해 지하연구소와 연결된 본관 건물 앞까지 도달한 스파이 드론은 건물 주위를 몇 번 돌고는 이내 환풍구를 통해 본관 내부로 진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