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검은 그림자
2016년 12월 20일 10:00,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국토교통부 장관실.
똑똑똑
“들어오세요”
“장관님, 청와대에서 오후 3시에 긴급회의에 참석하라는 연락이 왔습니다.”
“긴급회의?”
“네 장관님, 이번 한국제약공사 건물 및 부지 관련 회의안건입니다.”
“음······. 오후 3시라? 그렇다면 지금 올라가서 서울에서 점심을 하고 청와대 회의에 참석하면 되겠군, 강 비서실장 올라갈 준비 하지?
“네 차량 준비하겠습니다.”
잠시 후 장관실에서 나온 강만호 비서실장은 비서관 두 명에게 짧게 뭔가의 지시를 하고는 비서관실에 경호업무를 맡은 이자성에게 다가갔다.
“이 경호관,”
“네 비서실장님”
“오늘 청와대에서 긴급회의 소집이야. 그래서 말인데······. 올라가는 동안 오늘 회의안건에 대한 대비책에 대한 회의를 차 안에서 진행하려고 하네. 담당자인 이 비서관도 같이 올라갈 거야······. 그러니 자네는 다른 차량을 이용해 따라오도록 해”
“네? 죄송합니다만, 강 비서실장님, 경호 원칙 중 저는 장관님 차량에 타야 합니다. 근접 경호가 우선입니다.”
“허허 친구······. 정말 꽉 막혔구먼? 지금 긴급회의 소집이라고, 오늘 회의안건에 대한 대비책을 가지고 장관님이 회의에 참석하셔야 한단 말이야······. 시간이 없어서 그런 거라고? 매번 그런 것도 아니고, 이런 때는 좀 유통성 있게 행동하면 안 되나?”
강만호 비서실장은 다른 때보다 더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며 이자성을 몰아붙였다. 이에 이자성은 잠시 고민하는 척하다 살짝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저는 다른 차량으로 뒤따라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먼저 주차장으로 내려가서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요. 잘 생각했어요. 이 경호관, 제발 우리 물 흐르듯 융통성 있게 잘 좀 지냅시다. 뭐 할 때마다 이러면 정말 곤란······.
“그럼, 이만!”
이자성은 강만호 비서실장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살짝 고개 한번 숙이고는 주차장으로 내려가기 위해 엘리베이터 방향으로 몸을 돌려 걸어갔다.
“허허! 저, 저,”
이자성의 행동에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며, 생각 같아서는 앞에 두고 시원하게 욕 한번 해주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국정원 소속의 경호 요원이기에 차마 입 밖으로 뱉을 순 없었다.
‘아호! 정말 저 자식 어떻게 해야지 원, 내가 이러다가 제 명에 못 살 거야!’
십여 분 후 안상태 장관 일행이 지하주차장에 내려왔다. 관용차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이자성은 차량 뒷문을 열었다.“
“허허 고맙네. 이 경호관,”
“아닙니다. 장관님,
이자성은 안상태 장관이 뒷좌석에 탑승하는 순간 몸을 살짝 밀착시키며 오른쪽 양복 주머니에 작은 뭔가를 집어넣었다. 그리고는 자연스럽게 뒷문을 닫으며 강만호 비서실장에게 말했다.
“그럼 전 뒤 차량으로 가서 따라가겠습니다.”
“그래, 조심히 따라오게나······.”
강만호 비서실장이 뒤 자석에 탑승하자 안상태 장관이 물었다.
“이자성 저 친구 따돌릴 계획은 준비되었나?”
“네 장관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고속도로에 진입하면 차 고장이 날 수 있게 우리 쪽 직원이 손봐놨습니다.”
“음, 그래? 알겠네. 그럼 출발하지!”
“네 장관님,”
서서히 관용차가 움직이자 이자성도 뒤편에 대기하고 있던 검은 밴에 탑승 후 바로 시동을 걸었다. 30여 분 후 논산천안고속도로에 진입하며 2차선으로 관용차와 검은 벤 차량이 달리고 있었다.
푸득푸득
잠시 후 이자성이 운전하던 차의 엔진룸에서 요란하고 거친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엔진이 꺼져버렸다. 이에 이자성은 침착하게 차선을 이동해 갓길에 밴을 세웠다. 그리고 멀어져 가는 관용차를 보며 스마트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이자성입니다.-
-그래요, 이 경호관, 운전 중에 웬 전화인가?-
-차량에 문제가 생겨 갓길에 세웠습니다.-
-이런, 어쩌다가? 음, 장관님은 오후 청와대 회의 건 때문에 기다릴 수 없으니, 자네는 보험사에 불러 뒤처리 잘하고 다른 차로 알아서 올라오도록 하게-
-네 알겠습니다. 그럼 뒤처리하고 바로 따라 올라가겠습니다.-
-그래, 추운데 고생 좀 하게나 이 경호관-
-네,-
이자성은 통화를 마치고는 어디론가 또다시 전화를 걸었다.
-1급 상황으로 여겨집니다.-
-조치는 취했나?-
-네 과장님-
-섣부른 판단일 수도 있으니, 신중히 진행하게······. 그리고 서울에서 직원 2명이 지원 들어갈 거야-
-네 그럼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짧게 통화를 마친 이자성은 또 다른 스마트폰을 꺼내 들고는 뭔가를 조작하자, 화면에서는 내비게이션 지도화면이 비쳤고 빨간 점이 반짝거리며 논산천안고속도를 따라 서울 방향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위치 추적 장치가 이상 없이 작동하는 걸 확인한 이자성은 담배 한 개비를 꺼내 입에 물고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보이며 담뱃불을 붙였다.
서울로 올라오기 전 미리 10여 분 전에 지하주차장에 내려와 타고 갈 차량에 대해 검사를 한 이자성은 엔진룸 쪽에 인위적으로 뭔가를 작업한 흔적을 발견했고 이에 미리 상부에 보고하였다. 또한, 안상태 장관 주머니에도 위치추적장치를 몰래 넣었던 것이었다. 한편 관용차 안에서는 이자성과 통화를 마친 강만호 비서실장은 고개를 돌려 갓길에 서 있는 이자성의 검은 밴이 시야에서 벗어나자 살짝 미소를 머금고 안상태 장관을 보며 말했다.
“장관님, 이자성은 해결된 듯합니다.”
“역시 강 비서실장이야, 믿음직스러워.”
“과찬이십니다. 장관님, 그럼 바로 약속 장소로 가겠습니다. 장관님”
“윤 비서, 청담동으로······. 그리고 속도 좀 올리게나···.”
강만호 비서실장은 내심 자기가 생각한 대로 이자성을 따돌렸다는 착각 속에 빠른 게 스쳐 지나가는 새하얀 풍경을 바라보며 지금 달리고 있는 이 고속도로가 안상태 장관을 비롯하여 자기 인생까지 지옥의 가는 길이라는 것을 이 당시엔 꿈에도 생각 못 했을 것이다.
★ ★ ★
2016년 12월 20일 12:30,
서울시 강남구 청담동 어느 요정.
“오랜만입니다. 안 장관님”
“그러게 말입니다. 아마 작년 초에 미국에서 뵈었으니 거의 2년 만이군요 하하하.”
대한민국 정치인이라면 한 번쯤은 꼭 들린다는 청담동의 비밀 요정, 이곳에서 안상태 장관을 반갑게 맞아준 사람은 바로 CIA 한국지부장 아널드였다.
“오시는 길은 불편하지 않았습니까?”
“하하하 말도 마세요. 매일 달라붙은 매미 한 마리 떨쳐버리고 오느라 혼났습니다.”
“허허 이런, 요즘 한국 정부는 너무 비밀스러운 게 많은가 봅니다. 장관님?”
슬쩍 본론으로 넘어가기 전 찔러 보기식으로 건네는 아널드 장관의 말에 안상태 장관은 능청스럽게 대꾸했다.
“비밀입니다. 하하하 국가비상체제 상태이고 하니, 뭐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아~ 그렇군요. 오후에 청와대에 들어가셔야 하니 일단 식사부터 하시고, 그다음에 재미난 얘기 나누시죠. 장관님”
“그럽시다. 아널드 지부장님”
한편 요정 건너편 골목길엔 검은색의 박스 차량이 서 있었다. 이자성이 보험사를 불러 차량을 맡기고 바로 고속도로 순찰 차량을 이용해 서울로 올라온 후 미리 대기하고 있던 국정원 정보 수집과 1팀 이동규 팀장과 안현길 요원과 합류하여 안상태 장관의 위치 추적 신호를 따라 이곳으로 온 것이었다.
“감청 상태는 어때”
“감도가 그리 좋지는 않습니다. 팀장님”
검은색 박스 차량은 감청장비를 탑재한 차량으로 이자성이 안상태 장관에게 몰래 넣은 오십 원짜리 동전 크기의 물건은 위치 추적 신호뿐만 아니라 감청 기능도 있는 다기능 장치였다.
“이 정도 거리면 아주 깨끗하게 들릴 텐데?”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감청 방해 전파가 있는 듯한데요?”
헤드셋을 끼고 집중하여 들리는 소리를 이해해보려 했지만, 계속 지지직거리는 잡음 소리에 인상을 쓰는 안현길 요원이었다. 이에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이자성도 다른 헤드셋을 쓰고는 감청 소리에 집중해 보았다. 하지만 대화 목소리 중간마다 지지직거리는 잡음 때문에 정확한 대화 내용을 들을 순 없었다.
“안 요원, 지금 이거 녹음은 되고 있지?”
“네, 팀장님”
“그럼 대화 내용은 회사 들어가서 잡음 제거 작업을 통해 확인해보도록 하고 이자성은 지금 안상태 장관 비서실장한테 전화 한 번 해봐”
“네, 팀장님”
삐리리리~
-여보세요-
-이자성입니다.-
-아 그래요. 차량 뒤처리는 잘했습니까?-
-네 보험사 연락해서 견인시켰고, 저는 방금 서울에 도착했습니다. 지금 어디 십니까?-
-지금 장관님은 점심을 위해 청담동에 와 있습니다.-
-그럼 제가 그쪽으로 가겠습니다.-
-아닙니다. 이쪽으로 올 필요 없습니다. 조금 후 청와대로 출발하려고 하니 이 경호관은 바로 청와대로 오세요. 거기서 만나기로 합시다.-
-네, 알겠습니다. 비서실장님-
-자, 그럼 이따가 봅시다.-
이자성이 전화를 끊고 1시간이 지나서야 요정에서 2대의 차가 모습을 드러냈다. 먼저 나온 차는 안상태 장관의 관용차였고, 뒤따라 나온 차량은 한국 번호판이 아닌 미국 대사관 번호판을 단 검은 승용차였다. 이에 안현길 요원은 카메라를 들고는 수십 장의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안 요원 그 정도면 됐고 어서 운전대 잡아, 그리고 이자성은 지금 청와대로 움직이고 우리는 저 미 대사관 차량 따라간다.”
★ ★ ★
2016년 12월 20일 15:00,
서울시 종로구 청와대 대통령 회의실.
“안녕하십니까. 산업통상자원부 기획조정관 한길호입니다.”
깔끔한 밤색 슈트를 입은 40대 후반의 사내가 한국제약공사 기업 인수 관련 발표를 하기 위해 회의 탁자 반대편에 서서 인사를 하였다.
“한국제약공사 인수 대상 기업 선정은 산업통상자원부 주관으로 국내 여러 중소 제약 기업 중 재정적 건실성 및 경영진의 청렴성을 우선으로 동종업계 60여 개 업체 중 선발된 업체는 주로 고지혈증 및 각종 질환 치료제를 주요 제품으로 하는 주식회사 신오제약입니다. 신오제약은 연 300억 원 정도의 매출과 매년 15%대의 성장률을 보이며 가장 중요한 것은 중기업체로써는 보기 드물게 신약 개발 비중이 연 매출의 10%에 달하는 30억 원 정도의 연구비를 쓰고 있다는 점에서 가장 큰 선정 사유로 볼 수 있습니다.”
한길호 기획조정관은 스크린에 보이는 신오제약의 기업실적분석표를 가리키며 대통령을 포함하여 여러 고위 관료 앞에서 발표를 이어갔다. 하지만 국토교통부 안상태 장관만은 한길호 기획조정관의 발표 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고 있었다. 이유인즉, 1시간 전 CIA 아널드 지부장과 나눴던 얘기가 계속 귓가에 맴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