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0화 (30/605)

빛과 검은 그림자

2016년 12월 01일 15:05,

충북 청주시 외곽 야산.

왼편으로는 청주시가, 오른편으로는 제17전투비행단이 훤히 보이는 탁 트인 야산의 바위 위에 하얀 입기를 내뿜으며 두꺼운 점퍼를 입는 두 명의 사내가 차가운 바닥에 엎드린 자세로 뭔가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중 한 명은 망원렌즈가 장착된 카메라로 어느 한 곳을 향해 연신 셔터를 누르고 있었다.

“스티븐, 오늘은 뭐 좀 특별한 움직임이라도 있어?”

스티븐이라는 사내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흑인 사내 루이가 물어보자 몇 번 더 셔터를 누르고는 이내 카메라를 내려놓으며 짜증 섞인 말로 대답했다.

“제기랄! 별거 없어. 어제랑 다를 게 없다고. 이거 오늘도 허탕인 거 같단 말이야. 루이, 감청은 어때?”

“군부대라 그런지 뭔 놈의 전파 교란이 이리 심한지 먹히질 않아! 지직거리는 소음 때문에 내 고막이 터져버릴 거 같아!”

루이 역시 짜증 섞인 어조로 대답했다. 루이와 스티븐은 지금 하는 일에 불만이 많았다. 하지만 상사의 명령에 따라야 하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한겨울 야산에서 개고생하는 상황이었다.

“추운 날씨에 이게 뭔 짓거리인지. 대체 아널드 지부장은 뭘 찾아내라는 거야?”

다시 카메라를 들고 셔터를 누르던 스티븐은 한층 더 짜증 섞인 말투로 투덜거렸다.

“그렇게 말이다. 군부대만 아니면 어떻게 침투라도 하겠는데 말이야. 답답하군, 답답해.”

루이는 감청 이어폰을 귀에 대고 수박만 한 크기의 수신 안테나를 제17전투비행단 쪽으로 이리저리 가리키며 키보드를 조작했다. 하지만 들려온 건 지지직거리는 잡음뿐 원하는 부대 내 감청 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았다.

“스티븐, 나 이번 일 끝나면 은퇴하고 고향에서 조그마한 술집이나 하련다.”

“정말?”

“이 짓도 지겨워서 못 해 먹겠어, 매년 외국에 나와서 여자도 못 사귀어보고.”

“하하하. 이해한다.”

1시간 내내 투덜거리던 루이가 감청 이어폰을 벗어던지며 말했다.

“스티븐! 날도 추워지는데 이만 철수할까?”

루이의 말에 스티븐이라는 사내는 곧바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카메라와 렌즈를 분리하고는 빠른 속도로 카메라 가방에 넣기 시작했다.

“지금도 추워죽겠는데 앞으로 더 추워지면 어쩌지? 이거 너나나나 고생문이 열렸다, 열렸어! 가자고, 루이.”

“그래! 이만 철수하자고.”

해도 서산을 넘어 서서히 어두워지자 스티븐과 루이는 가지고 온 장비를 신속하게 가방에 집어넣고는 빠른 걸음으로 왔던 길을 따라 조용히 야산을 내려갔다. 그리고 한적한 도로 갓길에 세워둔 검은 승용차에 몸을 싣고는 그대로 서울로 가는 도로에 올라탔다.

★ ★ ★

2016년 12월 2일 11:50,

충북 청주시 제17전투비행단 지하연구소 X-2 연구소(남궁원 연구실).

미확인 비행 물체의 메인 시스템인 호큘라와 상호 연동이 가능해진 남궁원은 좀 더 진보적인 상호 연동 프로토콜을 만들기 위해 호큘라의 도움을 받아 기존 방식보다 한층 더 쉽고 편리하게 연동할 수 있는 프로토콜 프로그램 개발에 열중했다. 이것만 완성된다면, 현재 미국이나 중국 그리고 여러 서방국가가 가지고 있는 그 어떠한 슈퍼컴퓨터 보다 수십 배, 아니 수백 배의 고성능 슈퍼컴퓨터를 보유하게 되는 의미이기도 했다.

또한, 단순 빠른 연산 방식이 아닌 상호 연동이 가능한 인공지능 슈퍼컴퓨터이었다. 현재 호큘라의 시스템 오류로 인해 가동률이 32%뿐이지만 앞으로 기술발전을 바탕으로 시스템 오류를 복구하여 가동률을 더욱더 끌어올린다면 지금까지 인류가 생각하지 못한 최첨단과학기술을 선보일 것이며, 그 어느 나라보다 진보된 과학기술로 대한민국이 21세기 첨단과학 분야를 이끌어갈 일이었다.

똑똑똑!

“네! 들어오세요.”

연구소 문이 열리고 이혜진 대리가 들어왔다.

“뭐해? 지금 점심시간이야. 밥 먹으러 가자!”

“시간이 이리되었나? 시간이 빨리도 가네요.”

남궁원은 손목에 찬 시계를 보고는 깜짝 놀란 눈으로 이혜진 대리를 바라보다 이내 방긋 웃었다. 하지만 이혜진 대리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앉아있는 남궁원에게 다가가 말했다.

“너 요새 일에 너무 빠져들어 있는 거 알아? 몸 생각하면서 일해, 알았지?"

“여기 이 대리님도 있고 또 재밌는 일만 하니 살맛이 나는데요? 전혀 힘들지 않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알았다, 알았어. 밥 먹으러 가자.”

“아차차! 잠시만요.”

의자에 일어서던 남궁원은 뭔가 생각났는지 컴퓨터 왼편에 있는 서류 더미에서 한 뭉치의 서류를 꺼내 들었다.

“그거 무슨 서류야?”

“저번에 외계 비행체에서 발견된 약물 있잖아요? 이수진 박사님 요청으로 요 며칠간 호큘라로부터 알아낸 약물에 대한 자료예요.”

“정말?”

“네, 이거 잘하면 굉장한 자료가 될 거 같아요.”

76년 전 첫 지구 탐사선 아킬루니아호의 외계인 3명은 지구에 도착하여 몇 달에 걸쳐 지구에 대한 여러 가지 정보를 수집 중 뜻하지 않게 지구의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모두 사망하게 되었다. 하지만 사망 전 지구에 현존하는 수많은 바이러스와 세균 등 외계인에 위험한 정보를 스플리스 행성으로 보내졌다.

이에 스플리스 과학자들은 지구의 여러 세균과 바이러스에 대한 항체 백신을 개발하여 두 번째 탐사선인 로즈페리호의 스플리스 승무원 4명은 지구 도착 3일 전에 백신을 투여하려 했으나 동면기 캡슐 고장으로 모두 사망하여 그 백신은 그대로 남게 된 것이었다.

이러한 정보를 알게 된 남궁원은 어젯밤 호큘라의 도움을 받아 외계인의 항체 바이러스 백신에 대한 효능과 성분 분석 자료들을 취합해 정리해 놨다.

“그렇구나.”

“식당가는 길에 이수진 박사님 연구실에 들러서 전해드려야겠네요.”

“그래, 내가 먼저 식당가서 준비해놓을게.”

“그러실래요? 고마워요.”

“고맙긴. 어서 가자!”

★ ★ ★

2016년 12월 6일 16:00,

대한민국.

NSC(국가안전보장회) 회의 소집 이후 기획재정부에서는 대외 명목상 현재 대한민국의 경제적 위기를 타파하고자 국가적 차원의 차세대 기술 연구단지 조성의 필요성을 들어 긴급 추가예산을 국회에 제출했다. 일부 야당 국회의원의 반대가 있었지만, 대부분 국회의원의 찬성으로 어렵지 않게 동의를 받을 수 있었다.

이에 차세대 기술 연구단지는 교통의 요충지인 청주 근처로 결정하였으며 용지 매입과 각 기업의 참여 관련 조사를 즉시 시행했다. 하지만, 실제 목적인 외계 비행 물체의 연구와 응용 기술 그리고 신기술의 개발 연구단지는 국가기밀 SS 급으로 분류하여 ‘올림푸스.’라는 연구단지로 지정하여 육해공군 공병부대와 일부 건설업체만 참여하는 방식으로 비밀리에 새로운 용지 매입과 건설을 위한 준비단계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또한, 차세대 기술의 연구 성과를 기업과 국가 간의 협력과 기밀 유출에 따른 감시 역할을 할 차세대기술협력부의 신규 행정부서 발표로 이어졌고, 이러한 국가 예산의 재정적 뒷받침을 하게 될 한국제약공사 설립은 최우선순위로 진행했다.

미래창조과학부, 산업통상자원부,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주관으로 인력 충원과 최소한의 시간 투자로 진행하고자 기존 국내 중소제약업체 중 발전 가능성과 건전성을 우선으로 하는 업체를 선정하여 국가에서 인수하는 형식으로 진행했다. 이뿐만 아니라 제17전투비행단 지하연구소에서는 국내의 생명공학 및 화학공학에 저명한 교수진을 선발하여 외계인의 백신 성분 데이터를 기초로 하여 인간에게 맞는 새로운 신약 개발에 총력을 기울일 수 있도록 모든 지원을 총동원했다. 세계 의학계를 깜짝 놀라게 할 수많은 신약이 대한민국에서 나올 날이 이제 멀지 않게 되었다.

★ ★ ★

2016년 12월 7일 09:00,

서울시 마포구 합정동 CIA 한국지부 건물.

회의실 안에는 건장한 사내 10여 명이 앉아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가운데에 앉아있던 한 사내가 책상에 여러 사진을 던지듯 뿌렸다.

“루이, 스티븐, 자네들 이런 사진밖엔 가져올 수 없나?”

바로 CIA 한국지부장 아널드였다.

“죄송합니다. 군부대라 딱히 침투할 방법도 없고.”

“내가 그런 소리 들으려고 자네들한테 일을 맡긴 거 같아?”

윽박지르는 아널드 지부장의 말에 딱히 할 말 없는 작전 1팀장인 루이는 천장을 보고는 한숨만 내쉬었다. 이에 같은 입장인 스티븐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럼 상부에 지원 요청하여 스파이 드론으로 정찰해보는 건 어떻겠습니까?”

스파이 드론, CIA에서 자체 개발 중인 손톱만 한 초소형 정찰 드론으로 인간이 침투하기 힘든 건물이나 지형을 정찰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개발명 SPY-X 드론으로 현재 테스트 중이었다.

“스파이 드론? 아직 개발 중인 것을 실전에 써보자는 건가?”

“방법이 없다면 이번 기회에 테스트 겸 실전 투입해보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그 방법밖에 없다면 시도는 해봐야겠지. 좋아, 상부에 요청은 해보겠네, 그리고 작전 2팀은 어떻게 돼가고 있나?”

아널드의 말에 왼편에 앉아있는 백인 사내가 여러 장의 서류를 가방에서 꺼내며 아널드 지부장에게 건넸다.

“현재 한국 정부에서 의심쩍은 움직임을 보이는 여러 정책 중 깊이 관여하고 있는 고위관료들 목록입니다. 이 중에 교섭 가능한 인물 중 가장 적합한 인물이 바로 이 사람입니다.”

백인 사내가 가리킨 서류에는 국토교통부 안상태 장관의 사진과 프로필 내용이 적혀 있었다.

“국토교통부의 안상태 장관? 이 친구는 내가 좀 알지. 친미 쪽 인사 중의 한 명이긴 하지.”

“그렇습니다. 그리고 현재 국가 안전보장위원이기도 하여 저희가 원하는 정보를 얻어낼 가능성이 큽니다.”

“좋아, 이 친구로 하자고. 수단과 방법 가리지 말고 교섭 성사시키고 알아낼 수 있는 정보 다 캐내도록 해. 하지만 최대한 조심스럽게 진행해야 하네. 행여 이번 일이 한국 정부에 알려지게 된다면 미‧한 관계에 크나큰 파장이 될 거야. 명심해야 해.”

“걱정하지 마십시오. 아널드 지부장님,”

“좋아. 그럼 당분간 3팀은 2팀 지원하고 4팀은 본토로부터 드론 장비가 오게 되면 1팀인 루이와 스티븐을 지원해주도록 해, 상부에서 압박이 장난 아니라고, 이번 연도 넘어가기 전에 뭔가 실마리는 잡아서 상부에 보고는 해야 한단 말이야. 알겠나?”

“네 알겠습니다. 지부장님.”

본국 CIA 국장으로부터 직접 임무를 부여받고 수 개월간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던 아널드 한국지부장은 급기야 한국 고위관료 중 친미 성향의 관료를 매수해 고급 정보를 캐내려는 작전을 구상 중 있었다. 이에 작전 2팀에서 국토교통부 안상태 장관을 지목했다.

회의가 끝나고 회의실에 홀로 남은 아널드 지부장은 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1번을 눌렀다.

“아널드입니다. 국장님”

- 일은 어떻게 돼가는가?

“아직, 이렇다 할 성과는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 아널드 지부장! 자네한테는 이 기회가 본국으로 올 수 있는 절호의 기회네.

“네, 알고 있습니다.”

- 어떻게든 뭐라도 하나 잡으란 말이야.

“네, 그러잖아도 다방면으로 공작을 진행 중입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 알겠네. 좋은 소식 기다려 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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