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1화 (21/605)

동북아 군비경쟁

2016년 5월 12일 05:00 (미국시각 11일 18:00),

미국 메릴랜드주 베데스다 록히드마틴 회장실.

대리석 바닥에 고급 실내 장식으로 꾸며진 넓은 회장실의 접대용 가죽 소파에 편안한 자세로 다리를 꼬고 앉아있는 젊은 여성은 맞은편에 앉아있는 록히드마틴의 최고경영자 클레이튼 커쇼를 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보였다.

록히드마틴의 최고경영자 앞에서 저런 여유로운 행동을 보이는 이 젊은 여성은 둘 중의 하나였다. 비밀리에 만나는 애인이거나, 아니면 클레이튼 커쇼만큼 경제적이든, 정치적이든 무시할 수 없는 힘을 가진 젊은 여성이라는 것, 하지만 후자에 가까울 수밖에 없었다. 애인이라면 이런 공개적인 회사 회장실이 아닌, 호텔이나 아니면 개인 소유의 별장에서 만나기 때문이다.

“이번 일로 작년 매출의 3배에 달하는 1,300억 달러를 달성했습니다. 그것도 상반기 실적으로요.”

클레이튼 커쇼가 젊은 여성에게 말한 첫마디였다.

이태리 고급 찻잔의 향긋한 커피 향기를 음미하며 한 모금 마시고 천천히 탁자에 내려놓으며 젊음 여성이 말했다.

“이번 프로젝트는 위험 요소가 매우 컸는데 생각보다 일이 잘되어 위에서는 이쯤에서 1차 프로젝트를 영구 종료한다고 합니다.”

“벌써 말입니까? 리지 안?”

클레이튼 커쇼가 말한 리지 안이란 이름은 바로 몇 개월 전 대한민국을 들었다 놨다 했던 해군 방산비리 리베이트의 주선자인 한국계 미국인 리지 안 그 여자였다. 그 당시 미국의 정치적 입김으로 국가비리암행원의 긴급체포 대상에서 제외되었던 그 여자가 록히드마틴의 최고경영자인 클레이튼 커쇼를 만나고 있는 것이었다.

“성과는 생각보다 기대 이상이지 않았나요?”

짧게 대답한 리지 안은 자신의 루이뷔통 백에서 CD 케이스를 꺼내 클레이튼 커쇼 회장에게 내밀었다.

“이번에 새로 연구가 완료된 차세대 스텔스 레이더 시스템의 개발 자료입니다. 앞으로 2차 프로젝트 사업의 주 아이템이죠.”

CD 케이스를 건네받은 클레이튼 커쇼 회장은 추상화가 걸려 있는 벽면으로 걸어가 비밀 개인금고에 집어넣으며 말했다.

“2차 프로젝트 사업의 요지는 무엇입니까?”

개인금고에 CD 케이스를 넣고 돌아온 클레이튼 커쇼 회장이 질문하자 리지 안은 소파에서 일어나 베세즈다 시내가 한눈에 보이는 창가로 걸어가며 입을 열었다.

“앞으로 4년 안에 동북아는 F-35를 비롯해 각국의 스텔스 전투기들이 판을 치는 시대가 올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당연히 스텔스기를 탐지할 수 있는 레이더 시스템의 수요가 늘겠지요. 안 그래요? 그 시점에 맞춰 록히드마틴에서 스텔스기를 탐지할 수 있는 차세대 레이더 시스템을 개발했다는 발표를 하세요.”

넓게 펼쳐진 베데스다 시내를 바라보며 잠시 감상을 하던 리지 안은 다시 말을 이어갔다.

“그렇게 되면 가만히 있어도 록히드마틴의 스텔스 탐지 레이더 시스템을 사고자 우리 미국의 동맹국은 물론 수많은 국가가 앞다퉈 구매 요청을 할 것입니다.”

“창을 팔았으니 이제 그 창을 막을 방패를 팔겠다는 말이군요?”

“회장님 말씀 그대로입니다.”

“그럼 문제가 되는 게, 기존에 개발한 우리 F-35나 F-22 전투기 등 우리 미국이 보유한 전략무기까지 탐지가 된다면 이것 또한 문제이지 않을까요?”

클레이튼 커쇼 회장의 질문을 예상했는지 리지 안은 몸을 돌리고는 살짝 미소를 보여주며 대답했다.

“그건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때쯤 되면 새로운 스텔스 기술이 개발되어 우리 미국의 보유한 모든 스텔스 형태의 군사 장비에 적용이 될 것입니다.”

말을 마친 리지 안은 다시 소파로 돌아와 자기 백을 들고는 다시 말했다.

“커쇼 회장님? 이번 1차 사업 건에 대한 이익배분 데이터는 5월 안으로 정리하시고 그중 30%는 다음 달 말일까지 기존 스위스 계좌로 송금하라는 지시입니다. 그럼 저는 전 할 말은 다 했으니 이만 가보도록 할게요.”

클레이튼 커쇼 회장도 리지 안을 배웅하기 위해 출입문 쪽으로 함께 걸어가며 말했다.

“아! 그 부분은 시간 잘 시켜서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조심히 가세요.”

“다음에 또 뵐게요. 그럼 전 이만.”

가볍게 인사를 하고 회장실에서 나온 리지 안은 복도에서 대기하고 있던 검은 정장 차림을 경호원의 경호를 받으며 회장 전용 엘리베이터 앞으로 걸어갔다.

★ ★ ★

2016년 6월 20일 09:00,

서울시 국가정보원 국가테러수사국 1과 사무실.

“안녕하십니까? 수사1과의 영원한 루키! 남궁원이 집체교육을 무사히 받고 돌아왔습니다.”

남궁원은 6월 18일 날 3개월 집체교육 수료식을 마치고 토요일 오후에 서울에 올라왔다. 강원도 교육장에서의 만남 이후 연인 사이로 발전한 이혜진 대리와는 일요일에 만나 영화도 보고 맛있는 맛집도 찾아가 데이트를 하며 3개월간 지옥 같은 훈련의 스트레스를 푸는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월요일 국가정보원으로 3개월 만에 출근했다.

“오, 남궁원 피부색도 까무잡잡한 게 남성미가 넘친다?”

가장 먼저 출근한 오기석 주임이 반갑게 맞아줬다.

“안녕하십니까, 오 주임님. 저 없는 동안 정말 잘 지내셨다고 들었습니다?”

“어라? 네가 교육 중에 누구한테 우리 얘기를 들어?”

‘아차! 이혜진 대리가 교육장에 온건 비밀로 하라고 했는데.’

깜박한 남궁원은 다른 말로 둘러댔다.

“아, 아닙니다. 꿈속에서 매일 보였거든요? 저 없이 즐겁게 지내시는 거.”

“그래? 으하하 그래 잘 지냈다. 어쩔래? 하하하.”

언제 왔는지 김나운 주임이 남궁원의 뒤쪽에서 다가와 장난치듯 목을 조르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 이에 본능적으로 집체교육에서 배운 호신술 기술을 이용해 쉽게 풀고는 그대로 김나운 주임의 팔을 살짝 비틀었다.

“어쩌긴요, 김 주임님. 이렇게 하지요. 헤헤헤.”

“야, 야! 이거 남궁원이 교육 제대로 받고 왔는데? 저번에 갈 때 배웅 못 해줘서 미안하다.”

“신경 쓰지 마십시오. 업무 때문에 그런 건데요.”

남궁원은 자세를 풀고는 김 주임이 내민 손을 잡고는 악수를 했다. 그리고 안연우 과장이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이에 남궁원은 허리까지 고개를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안 과장님. 교육 무사히 받고 돌아왔습니다.”

“그래, 고생했다. 어디 다친 곳은 없고?”

“그럼요. 사나이 남궁원이 교육을 받는다고 다치겠습니까?”

“이거 남궁원이, 허풍 교육만 받고 온 거 아니야?”

“네?”

“하하하.”

3개월 만에 돌아온 남궁원 때문인지 월요일 아침 수사1과 사무실은 웃음바다로 변해버렸다. 그런 와중에 이혜진 대리가 사무실에 들어왔다.

“앗! 우리 이혜진 대리님 오랜만입니다.”

남궁원은 3개월 만에 보는 것처럼 능청스럽게 연기를 하며 이혜진 대리에게 인사를 했다.

“돌아왔구나? 보고 싶었어, 남궁원.”

“저도 매일매일 보고 싶었습니다, 이 대리님.”

“저놈 봐라! 우리한테는 잘 지냈다고 뭐라 하고는 이 대리님한테는 매일 보고 싶었다네?”

둘의 대화를 듣고는 김나운 주임이 장난으로 약오른 듯 말했다. 그런 김나운 주임을 보고 남궁원은 웃으며 말했다.

“김 주임님! 삼겹살에 소주 사셔야 합니다.”

“내가? 맞다, 배웅 못 해서 돌아오면 쏜다고 했었지?”

“저 힘든 교육받을 때마다 돌아가면 삼겹살에 시원한 소주 생각하며 버텼습니다.”

“오늘 퇴근 후 모두 가시죠? 제가 쏩니다. 하하하.”

“그건 김 주임이 따로 날 잡아 쏘고, 오늘은 우리 수사1과 전담팀 회식으로 하자. 다들 오케이?”

“네, 과장님.”

★ ★ ★

2016년 7월 24일 14:30,

충북 보은군 회남면 법수리 대청호.

평생을 대청호에서 살아온 이경춘 할아버지는 이젠 만성이 되어버린 할머니의 잔소리를 뒤로하며 오늘도 대청호의 민물고기를 잡으러 낚싯대를 어깨에 메고 자전거를 탔다.

“날씨도 더운데 오늘은 나가지 말고 그냥 집에 있어유. 몇 마리 잡아 오지두 무터면서 이런 날씨에 고기 잡으러 간다고 뭔 난리를 친데유.”

김옥자 할머니 고향은 충남 부여 출신으로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로 잔소리하였지만, 할아버진 그러려니 하며 대꾸도 없이 자전거의 페달을 천천히 밟으며, 속으로 ‘내가 이렇게 고기 잡아 1남 1녀를 대학까지 공부시켰어.’ 하며 할망구 잔소리에 맞받아치고 싶었으나, 그래 봤자 돌아오는 건 끝없는 잔소리밖에 없다는 걸 알기에 관두었다. 예전에는 나룻배로 그물을 쳐서 고기를 잡았으나, 지금은 상수도보호 구역으로 지정되어 낚시금지구역으로 낚시할 수 있는 회남대교 서단 밑으로 자전거를 타고 작은 길로 들어섰다.

‘오늘은 큰놈 한번 잡아 볼까나?’

항상 낚시할 때마다 월척을 잡고픈 생각에 혼잣말하며 자전거에서 내린 후 낚싯대 짐을 풀었다. 오늘은 ‘여기가 명당자리로다’라며 혼잣말을 하며, 예전에 팔뚝만 한 송어를 잡았던 자리에 앉아 낚싯대를 들어 올려 힘차게 내질렀다.

대청호의 잔잔한 물결은 햇빛에 반사되어 은빛 구슬처럼 반짝반짝 빛나고 고요함 속의 시원한 바람은 이곳에서 70여 년을 산 할아버지에게도 멋진 하나의 풍경화 같았다. 오늘은 날씨가 더워서 그런지 낚시하는 사람은 할아버지 외엔 인기척 없는 한가로운 여름 오후의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다.

어느덧 중천에 있던 해가 앞산 국사봉에 반쯤 모습을 감춘 시간이 되었다. 할아버진 물고기를 많이 잡진 못했지만 바람대로 팔뚝만 한 송어 두 마리 잡아 기분이 좋았다.

‘이제 슬슬 집에 가야겠구먼,’

집에 가기 위해 낚시용 의자에 일어나 허리를 펴며 하늘을 보는 순간, 남쪽 하늘에서 검은 물체가 붉은 불꽃을 내며 빠른 속도로 떨어지고 있었다.

피슈슈슈슈슝.

쿠웅! 촤아와~

검은 물체는 공교롭게도 할아버지가 낚시했던 자리 백여 미터 앞에 떨어지면서 거대한 물기둥이 솟아올랐고 잔잔했던 물결은 거대한 파도로 바뀌어 큰 원을 그리며 퍼져나갔다. 충돌 여파로 할아버지는 의자에 걸려 뒤로 넘어졌고, 몇 초인지 몇 분인지 알 수 없는 시간이 지난 후 정신을 차린 할아버지는 몸을 일으키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언제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물결은 다시 잔잔해졌고 주위도 조용했다.

“어이쿠, 이게 뭔 조화랴? 대체 뭐가 떨어진겨?”

아직도 어리둥절한 상태에서 넘어질 때 삐끗했는지 허리를 부여잡고 검은 물체가 떨어진 곳을 바라보던 이경춘 할아버지는 신고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자, 그제야 호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112를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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