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와 벌
2016년 2월 09일 14:00,
서울시 종로구 외교부 장관실.
“어서 오세요. 재키 대사님”
“네 반갑습니다. 김 장관님, 저번 임명식 때보고 오랜만에 뵙는군요.”
“그러게요. 자주 봬야 하는데, 바쁘다는 핑계로 이제야 뵙습니다.”
큰 키에 조금은 마른 말쑥한 재키 로빈스 주한 미국대사는 김재학 외교부 장관과 악수를 한 후 자리에 앉았다. 10여 분간 따뜻한 차를 마시며 여러 담소를 나누던 김재학 장관이 본론으로 넘어가려는지 뭔가의 서류를 내놓으며 말하기 시작했다.
“재키 대사님, 이것 좀 보시기 바랍니다.”
김재학 외교부 장관이 내놓은 건 록히드마틴과 리지 안과의 리베이트 관련 자료 및 전 국방부 장관의 입출금 정보였다. 재키 주한 미국대사는 자료를 보고는 조금은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일일이 자료들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 재키 주한 미국대사는 자료를 내려놓으며 짧게 말했다.
“음······. 자료가 상당하군요.”
“록히드마틴으로부터 도입한 이지스 시스템과 구축함 장비 도입가격이 리지 안의 로비로 인해 1조 원 이상의 큰 손해를 보며 구매를 했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통령님께선 미국 정부의 리지 안과 록히드마틴사 임직원에 대한 송환 절차를 정식으로 요청하시려고 하고 있습니다.”
“김 장관님, 사실 미국 정치계에서도 한국에서 수사하고 있는 방산비리 사건에 관해 관심이 매우 큽니다. 이유인즉, 자국의 록히드마틴은 미 정계 쪽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또한, 리지 안의 양부도 미 의회 상원이자 동료 상원에게 나름 상당한 입김을 내고 있고요. 이 사건이 미국 쪽까지 번진다면, 한국 정부로서도 그리 좋지는 않을 것입니다.”
“협박입니까?”
“당치 않습니다. 저는 단지 미 정부의 상황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다행입니다만, 대통령님께서는 이번 방산비리 사건에 대한 척결 의지가 완고하십니다.”
처음엔 서로의 안부와 가벼운 담소를 나눴던 회의실이 지금은 무거운 공기가 감도는 어색한 자리로 변하고 있었다. 잠시 후 말문을 닫고 차를 마시던 재키 로빈스 주한 미국대사가 찻잔을 내려놓으며 입을 열었다.
“김 장관님, 그럼 제가 제안 하나 하겠습니다.”
“제안요? 네, 말씀해보세요”
“록히드마틴이나 리지 안이 방산비리 사건에 연루되었다는 사실을 외부로 알려지는 것을 미 정치계에서는 매우 우려하고 있습니다. 반대로 서현우 대통령님께서는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가 확고하시고요. 그래서 말인데요. 한국 정부에서 이번 건에 대해 조용히 넘어가신다면, 손해 본 금액만큼 록히드마틴사를 통해 원하는 무기에 대한 무상 제공과 앞으로 신규 무기 구매 건에서도 제재 수위를 낮추도록 하겠습니다. 이 정도면 어떻겠습니까?”
재키 로빈스 주한 미국대사의 제안에 김재학 외교부 장관은 곰곰이 생각했다.
‘손해난 금액만큼 무기에 대한 무상 제공과 앞으로 있을 신규 무기 구매 건에서도 항상 발목을 잡던 미 의회의 제재 수위를 낮춰 구매할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건 미국과의 관계다. 현 비상체제인 안보 위협이 있는 상황에서 미국과의 동맹 관계가 조금이라도 틀어진다면, 그것보다 치명적 손해는 없다.’
잠시 후 생각을 정리한 외교부 장관이 재키 로빈스 주한 미국대사를 보며 말했다.
“한 가지 더 추가해줬으면 합니다.”
“무엇을 말인가요?”
“한미 미사일지침 개정을 원합니다. 미사일 사거리를 지금보다 두 배로 하고 싶습니다.”
“네? 그건 좀 곤란한······.”
“대사님! 지금 한국은 언제 전쟁이 터질지 모르는 비상체제 상태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미사일지침 개정 요청은 저희로선 명분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단호하게 말하는 김재학 외교부 장관의 말을 들은 재키 로빈스 주한 미국대사는 일리 있는 말에 반박할 이유가 없든지 당황한 눈빛을 보였다. 잠시 생각에 잠겨 차를 다시 한 모금 마신 재키 로빈스 주한 미국대사가 짧게 말했다.
“1,200km로 하시지요.”
“좋습니다. 문서로 만들 수 있습니까?”
“그렇게 해야겠지요.”
재키 로빈스 주한 미국대사의 협상 체결이 되고서야 무거웠던 회의실의 분위기는 처음의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돌아갈 수 있었다.
재키 로빈스 주한 미국대사는 한국 외교부 장관을 만나기 전에 미리 미국 국무부로부터 이번 방산비리 사건에 대한 한국에 제안할 카드를 준비하고 있었지만, 미한 미사일지침 개정에 따른 사거리 연장 개정 건은 아니었다. 하지만 재키 로빈스 주한 미국대사는 미 국무부의 조건 없는 완만한 해결을 하라는 지시에 수락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이는 록히드마틴과 이 리지 안의 양부가 미 정치계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증거기도 했다.
한편 김재학 외교부 장관은 이번 방산비리와 관련 재키 로빈스 주한 미국대사와의 협상에서 20여 년간 외국을 돌며 쌓은 외교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했고 마지막엔 순간 재치로 한미 미사일지침 개정까지 끌어들인 성공적 협상이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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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2월 10일 10:30,
서울시 종로구 청와대 회의실.
대통령 회의실에서는 이번 방산비리 사건 중 마지막 관문인 리지 안과 록히드마틴의 임직원에 대한 국내 송환 건을 포함한 최종 보고를 하는 회의가 진행되고 있었다.
“리지 안과 록히드마틴 임직원에 대한 송환을 빼고는 모든 혐의자에 대해 구속 조처가 되었고 현재 검찰과 공조하여 법원으로부터 공판 기일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몇 주간 국암원의 놀라운 성과에 저 또한 대통령 이전에 국민의 한 사람으로 매우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과찬이십니다. 대통령님, 아직 리지 안과 록히드마틴사 쪽은 해결 못 한 상황이라 부끄럽습니다.”
“그래요. 리지 안과 록히드마틴사······. 큰 걸림돌이 남아 있긴 하지요. 김 장관님? 어제 미 대사와 협상한 내용에 대해서 간략하게 보고 바랍니다.”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김재학 외교부 장관은 재키 로빈스 주한 미국대사와의 체결된 협상 문서를 보여주며 말을 열었다.
“결론만 말씀드리자면, 방산비리 사건에 있어 록히드마틴과 리지 안의 비리 혐의는 완전히 폐기, 이에 록히드마틴은 한국이 손해 본 1조 6천억 원에 대한 무상 무기 제공과 앞으로 있을 신규 무기 구매 건에 대한 미 의회의 제약 완화를 약속하였습니다. 여기 문서를 보시면 구매 가능 물품에 대해서 적혀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미 미사일지침 개정으로 현재 800km에서 1,200km로 사거리 연장하기로 최종 합의했습니다.”
“이번 비리의 온상을 완전히 뿌리 뽑진 못했지만, 이 정도의 협상 내용이라면, 나쁘지 않군요. 수고했습니다.”
“감사합니다. 대통령님,”
“대단합니다. 한미 미사일지침까지 이번 협상에서 이뤄내다니요. 하하하.”
“무슨 말씀을요. 저보단 안 원장님이 더 대단하시지요.”
옆에 있던 오장수 안보실장까지 거들며 칭찬 릴레이를 이어갔다.
“제가 볼 땐 안 원장과 김 장관님 두 분 다 대단하십니다.”
“한 가지 의문점이 하나 있습니다.”
김재학 장관의 협상 보고 후 앉아있던 관료들의 칭찬 속에 분위기 한 것 오른 시점에 나성태 비서실장이 의문의 질문을 던졌다.
“무슨 의문점이요?”
“미국 관점에서 아무리 자국 군수업체가 연루되었다 하여도 이 정도까지 양보한다는 것이 좀 의아해서 말입니다.”
“제가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김재학 외교부 장관이 바로 대답했다.
“재키 대사 말로는 록히드마틴과 리지 안의 양부가 미 정치계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해 무마시키려 한다고 말은 하였으나, 실제적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현재 미국에는 록히드마틴이나 보잉 등 대형 군수업체만 2백여 개나 됩니다. 현재 이러한 군수업체들이 세계 각국에 무기 판매로 상당한 수입을 올리고 있으며, 한반도 위기라는 명분으로 일본과 대만에서도 미국으로부터 대량의 무기 수입을 하려고 한다는 정보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을 대표하는 록히드마틴이 수조 원 때의 방산비리에 연루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면 기업의 신뢰도는 추락할 것이고, 이에 록히드마틴으로부터 무기를 구매하려던 일본, 대만 등 자국민의 구매 반대 운동이 확산하거나 비리 의혹이 불거진다면 자칫 구매사업 자체가 무산될 수 있다는 판단하에 이런 협상에 응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김재학 외교부 장관의 말을 듣고는 서현우 대통령이 말을 이어갔다.
“일리 있는 말입니다. 국정원에서도 일본과 대만에서 미국으로부터 대량의 무기를 수입하려 한다는 정보를 보고한 적이 있습니다. 대만이야 그렇다 쳐도 일본이 이런 기회를 놓칠 일이 없는 나라죠. 김 장관님은 되도록 미국으로부터의 무기 제공 건에 대해 서둘러 진행해 주시고, 한미 미사일지침 또한 최대한 빨리 개정을 완료하여 사거리를 높인 미사일을 배치해야 합니다.”
한반도 긴장 속 위기가 지속하며 한동안 뜸했던 동북아 군비 경쟁이 다시 치열해지는 중심에 있는 대한민국으로써는 휘청거리는 경제위기 속에 첩첩산중으로 어려움이 더 커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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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3월 07일 13:30,
서울시 서초구 중앙지방법원.
“방금 이번 방산비리 혐의로 구속된 전 국방부 장관을 포함한 25명이 이제는 피고의 신분으로 첫 공판을 받기 위해 이곳 중앙지방법원에 도착하였습니다. 이번 방산비리 사건은 전 정권의 고위급 인사들이 다수 포함된 조직적 유착 사건으로 역대 최고 1조 원이 넘은 최악의 방산비리 사건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가운데 관심을 끌고 있는 것은 2개월 전에 국회를 통과한 방산비리 이적죄 적용 여부인데요. 만약 이적죄가 적용된다면, 지금까지의 형 집행에 있어서 가장 무거운 형 집행이 나올 수 있다는 점입니다.”
“박대길 기자! 이번 공판은 공개재판은 물론 방송까지 진행된다고 하는데요? 그 의미는 무엇일까요?”
“이번 공판은 공개재판은 물론 방송으로 방영할 예정입니다. 이에 일각에서는 모든 국민에게 심판의 방청을 허용하므로 법원의 절차를 국민의 감시와 사법의 공정을 보장하고 또한 모든 사람에게 방산비리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주기 위한 정부의 행보로 보고 있습니다.”
“그렇군요. 박대길 기자, 수고하셨습니다. 그럼 잠시 후 첫 공판 시간에 맞춰 저희 CBS에서 재판 모든 과정을 방영하도록 하겠습니다.”
30분 후 방송을 통해 이번 방산비리 사건의 첫 공판은 전국으로 방송이 되었고, 비리에 연루된 피고들의 모든 범죄 내용이 낱낱이 밝혀지며 정치에 관심이 없었던 젊은 세대들까지 치를 떨며 분노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