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화 (12/605)

죄와 벌

2016년 1월 30일 13:30,

서울시 국가정보원 안전가옥병원 입원실.

남궁원의 입원실은 아침부터 국정원 직원들로 북적거렸다. 바로 오늘이 국정원 사무실로 이전하는 날로, 남궁원이 사용하던 컴퓨터와 여러 기계 장비들을 옮기기 위해서였다. 이혜진 대리 또한 토요일인데도 아침 일찍 출근하여 남궁원의 짐을 싸주며 도와주고 있었다.

“남궁! 어젯밤에 안 과장님께서 나한테만 살짝 얘기해주셨는데 너 조만간 상 받는다더라?”

“제가요?”

“응, 저번 주에 네가 찾아낸 그 방산비리 브로커 말이야. 이름이 찰스 리? 어제 체포했다는데? 오늘 오전에 국내로 송환한다고 하더라.”

“아, 그거요? 저는 그냥 안 과장님께서 지시한 업무라 한 건데······.”

“어쨌든 축하해! 국정원장님뿐만 아니라 국암원장님도 너 꼭 한번 보고 싶다고 하셨대. 그거 때문에 요새 안 과장님 어깨에 힘 좀 들어가셨다. 호호호.”

“이게 다 이 대리님 덕분입니다. 옆에서 항상 응원해주시고 도와주셔서.”

“오, 정말? 그럼 상 받으면 한턱?”

“하하하. 물론이죠!”

남궁원은 자기 일처럼 해맑게 웃으며 기뻐해 주는 이혜진 대리의 모습을 보며 크게 웃었다. 어느 사이엔가 남궁원의 마음에 이혜진은 직장 상사에서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 자리를 잡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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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월 30일 21:00,

전남 목포시 어느 여관방.

목포 외곽에 있는 30년도 넘을 듯한 허름한 건물의 여관방 302호실 낡은 TV에서는 한참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한 해군 방산 납품 비리 사건에 대한 보도가 연일 방영되고 있었다.

“국가비리암행원은 열흘 전, 해군 이지스 시스템 도입 및 구축함의 방산 납품 비리에 대해 발표를 한 후 그 어느 때보다 신속하고 빠른 수사로 연루된 용의자들에 대한 긴급체포 성과를 이루고 있는데요, 취재기자 연결해서 더 자세한 내용 알아보겠습니다. 한희원 기자.”

“네! 국가비리암행원에 있는 한희원 기자입니다. 이틀 전 남태규 전 방위사업청장 및 정오경 전 비서관, 김현필 전 구매사업담당관의 체포된 거에 이어 어제는 방산비리 사건의 중심에 있는 브로커 찰스 리가 필리핀 세부에서 긴급 체포되어 오늘 오전에 국내로 송환되었습니다. 그리고 체포 당시 숙박하고 있던, 호텔 방을 필리핀 수사기관과 공조하여 압수수색은 물론 해외로 빼돌린 재산에 대에 추적 조사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찰스 리는 해군 장비 납품업체와 방위사업청과의 중간 다리 역할을 해온 인물로 이번 사건 외에도 여러 방위사업 납품 건과 연관되었을 것을 추정하고 추가 혐의를 조사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한희원 기자, 며칠간 긴급 체포되는 인물들로 인해 국민이 적잖이 놀라고 있는데요. 추가로 체포 용의자에 대해 신상정보 발표는 없나요?”

“네. 국가비리암행원 대변인의 말에 따르면, 이번 방산비리 사건의 체포영장만 스무 건이 넘는다고 합니다. 하지만 용의자에 대한 그 어떤 신상정보에 대해서는 아직 발표는······”

뚜우~

순간 TV 전원이 꺼졌다.

곰팡내가 진동하고 방바닥엔 소주병들이 너부러져 있는 작은 방한 구석에 벽을 의지하고 앉아 반쯤 취한 멍한 눈으로 TV를 쳐다보던 50대 후반의 사내가 리모컨을 들고 있었다.

3선 국회의원으로 지금도 국회의원 신분인 이윤박 의원이었다. 이런 그가 낡고 외진 여관방에 틀어박혀 있는 이유는 바로 TV에서 보도된 긴급체포 용의자 중 한 명이었기 때문이었다. 19대 국회 때만 해도 이런 사건에 휘말려도 불체포 특권으로 국회에서 체포 동의안이 통과되어야 체포영장이 나왔지만, 20대 국회에서부터 국회의원 특권 내려놓기 운동으로 불체포 특권이 제외되는 법안이 통과되었기 때문이다.

지난주 국가비리암행원의 발표 후 잠적하여 여러 도시를 걸쳐 중국 밀항을 하기 위해 이곳 목포의 외진 곳까지 온 이윤 박 의원은 엊그제 밀항을 시도했던 전 방위사업청장의 체포 소식을 듣고 밀항을 포기하고 자포자기한 상태로 있던 것이었다.

꺼진 TV를 한동안 보고 있던 이윤박 의원은 잠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내가 뭐가 아쉬워서 그런 돈을 받고 이렇게 인생의 막장에 오게 되었을까? 돈도 있을 만큼 있었고, 국회의원 3선으로 명예도 있었고, 행복한 가정에 사랑스러운 두 딸까지 있는 내가 왜······. 그놈의 돈, 돈 욕심은 한계가 없는 것이구나.’

18대 3선 국회의원 당시 국방위원회 위원장을 맡으며 방위사업 관련 업체로부터 수차례 수십억 원의 뇌물을 받던 때를 생각하는지, 잠시 흐느끼기 시작했다.

몇 시간이 지났는지 모를 새벽 시간 의원은 비틀거리며 일어나 굳게 닫혀있던 창문을 열었다. 외진 곳답게 몇 개의 가로등 불빛 말고는 적막한 어둠 속에서 이윤박 의원을 반겨주는 건 세찬 새벽 공기뿐이었다. 한동안 눈을 감고 새벽 공기를 마시던 이윤박 의원은 천천히 주머니에서 수첩과 볼펜을 꺼내 쓰기 시작했다. 잠시 후 몇 줄의 글을 남긴 수첩을 낡은 TV 위에 놓고는 화장실로 들어가 욕조에 물을 틀었다.

‘여보, 미안하오. 나로 인해 앞으로 받을 고통을 조금이라도 가지고 가면 좋으련만, 그럴 수 없다는 게 너무나도 미안하고 미안하오. 그리고 혜영아, 혜수야······. 이 못난 아빠를 용서해 주기 바란다.’

다음날, 이윤박 의원의 자살 소식은 국내와 해외로 긴급속보로 전해졌다. 그동안 성실하고 정직한 3선 국회의원으로 알고 있던 수많은 국민은 자살 동기가 이번 방산비리 사건에 연루되어 심리적 압박감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한 것으로 알려지며 대한민국 국민을 한 번 더 경악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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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2월 1일 09:00,

서울시 국가정보원 대테러수사국 수사1과 사무실.

남궁원의 국가정보원 첫 출근, 이혜진 대리는 남궁원을 데리고 여기저기 직원들에게 소개하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수사1과는 인사 다 했고, 옆 사무실은 수사2과야. 이곳엔 좀 무식한 아저씨들이 많아. 호호호.”

또 남궁원을 약 올리려는 듯 험한 인상을 쓰며 겁을 주는 이혜진 대리 옆으로 거구의 한 사내가 다가왔다.

“어라? 이 대리, 사무실에서 웃기도 하고 며칠 안 본 사이에 많이 변했네?

대테러 수사2과 2팀장 마동석이 성큼성큼 다가오며 말한 것이다.

“네? 제가 언제 안 웃었다고 그러세요? 가끔······.”

이혜진 대리는 자기가 생각해도 웃었던 적이 별로 없었던지 말하다가 멈추고 말았다.

“이 친구 신입이야? 잘 생겼는데? 아하! 혹시 이 친구 때문에? 크크크.”

“안녕하십니까. 이번에 입사한 남궁원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어! 그래, 반갑다. 나는 수사2과 2팀장 마동석이다”

“팀장님! 야, 남궁원. 인사할 필요 없어! 가자!”

이혜진 대리는 황급히 남궁원의 팔을 당기며 마동석 팀장의 시선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왜요? 2과는 인사 안 해도 돼요?

“다음에 해.”

능청스럽게 웃고 있는 마동석 팀장을 뒤로하고 남궁원을 끌고 가다시피 하는 이혜진 대리의 얼굴은 벌써 붉게 물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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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2월 4일 09:30,

서울시 중구 국가비리암행원 국가비리수사국 회의실.

근래 국가비리암행원의 행보는 대단했다. 신설된 지 3개월도 안 되어 5년 전 수조 원대의 방위사업 비리를 파헤쳐 확실한 증거자료 확보 및 연루된 용의자들을 신속하게 체포한 것은 실로 대단한 성과라 할 수 있는 국가비리암행원의 국가비리수사국 회의실은 성과와는 반대로 어두운 분위기 속에 회의가 진행되고 있었다.

“이번 해군 구축함과 구조함 방위사업 비리고 관련 용의자는 어제 체포한 방위사업자 한로 그룹 안효진 대표이사, 구진욱 전무, 안동길 상무까지 리지 안과 고인이 된 이윤박 의원을 뺀 25명 모두 체포되었습니다.”

안경훈 국가 비리수사국장의 중간보고 발표가 끝나자 안창길 원장이 말을 했다.

“리지 안이라······. 위치는 확보되어 있습니까?”

안창길 원장의 질문에 수사 2관 장수원 과장이 대답했다.

“현재 리지 안은 LA 자택에 머무는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현재 수사2과 2팀이 현지에서 감시 중입니다. 언제든지 지시만 주시면 긴급체포할 수 있습니다.”

장수원 과장의 대답에 이어 안창길 원장은 바로 안경훈 국장을 쳐다보며 재차 질문했다.

“안 국장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만약 미 정부의 협조 공문 없이 리지 안을 긴급 체포하여 한국으로 데리고 올 수 있겠습니까?”

잠시 생각하던 안경훈 국장이 대답했다.

“힘들 것 같습니다. 리지 안은 미국 시민권자로 저희가 체포할 사법권이 없는 상황입니다. 체포하였다고 해도 미 정부 모르게 한국까지 정상 루트로 송환하기도 힘들고 말입니다. 정식으로 미 사법부에 협조 공문을 보내 정상적인 방법으로 송환 요청하는 게 어떠신지요?”

대답과 질문을 섞어 말하는 안병훈 국장에 말에 안창길 원장은 의자에 몸을 깊게 저치고 잠시 고민에 빠졌다.

로비스트 리지 안은 미국 시민권자로 이지스 시스템 납품업체인 록히드마틴을 비롯해 미국의 주요 방위사업체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었다. 또한, 리지 안의 양부도 미 의회의 상원의원으로 상당한 실력을 행사하는 미 정치계의 거물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록히드마틴의 임원진 및 로비스트 리지 안에 대해 리베이트 건으로 미국 사업부에 정식으로 송환 요청은 미 정부의 국익으로 봤을 때 전혀 먹히질 않을 상황이었고, 되려 한미 관계나, 앞으로 있을 미국의 방위사업체 군사 장비 구매 건에서도 상당한 제약을 받을 수 있다는 국가비리암행원 대외정보실의 판단이었다.

이런 사실을 미리 전달받은 안창길 원장은 회의 탁자에 상체를 숙이며 양손을 모아 턱을 괴고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건 어렵습니다. 우리나라 상황이 리지 안까지 손대기엔 아직 부족한 듯합니다.”

“그럼 리지 안과 록히드마틴 쪽은 보류입니까?”

“대통령님을 찾아뵙고 결정하도록 하겠습니다. 이 왜건에 대해선 모든 증거자료 및 용의자들을 검찰과 공조하여 최대한 빨리 공판 일정 잡을 수 있도록 진행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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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2월 5일 05:30(미국시각 4일 16:30),

미국 워싱턴 D.C 외곽 어느 건물.

검은 복장과 검은 가면을 쓴 13명의 사람이 반원형 원탁에 앉아있었고 그 반대편에 한 사내가 앉아있었다. 바로 제51구역 총책임자 아워드 할리 국장이었다.

온통 검은 벽에 보일 듯 말 듯 한 어두운 조명은 검은 복장과 검은 가면을 쓴 사람들을 마치 지옥에서 온 사자처럼 보였고, 원탁 중앙에는 ‘United States Supreme Security Council’이라고 쓰여 있었다.

“할리 국장, 저번 해킹으로 유출된 국가 비밀 SS 급 28건과 SSS 급 2건에 대한 처리는 보고서를 들어 알고 있으나, 확실히 마무리된 것이 맞습니까?”

아워드 할리 국장은 거대한 덩치에 맞지 않게 심한 압박감과 불안감을 보이며 앞에서 말하고 있는 검은 복면의 사람과 눈도 마주치지 못하며 절절매며 대답했다.

“네, 확실히 처리했습니다. 이번 해킹 사건은 한 국가기관이나 해커집단에서 목적을 두고 해킹한 게 아닌 한 개인이 우연히 성공한 해킹 사건으로 그 당사자와 가족까지 모두 제거하였으며, 유출된 자료 또한 폭발과 함께 소멸시킨 것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국지부 CIA 요원들을 통해 행여 남아 있을 유출된 자료가 있는지 한국 정부나 한국의 모든 기업에 대해 정보분석 및 각 기업에 잠입한 요원들이 철저한 감시를 하고 있습니다.”

이번엔 왼쪽 끝 편에 있던 검은 가면을 쓴 사람이 말을 했다.

“할리 국장, 이 사건으로 인해 제51구역의 보안에 대한 대책을 한층 더 강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추후 한국에서 유출된 자료로 인해 신기술이 나온다면 이는 할리 국장, 당신의 목숨으로 책임져야 할 것입니다.”

조금은 강한 어조로 쏘아붙이는 검은 가면의 목소리에 떨리는 목소리로 아워드 할리 국장은 대답했다.

“죄송합니다. 현재 보안팀에서 대책으로 접속 프로토콜에 대해서 이중으로 감시하는 시스템을 운영 중 있습니다. 그리고 절대 그런 일은 없겠지만, 행여 유출된 자료로 한국에서 신기술이 나온다면 사전에 차단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이번엔 정 중앙에 앉아있던 검은 가면의 사람이 여성인듯한 목소리로 말을 했다.

“말은 쉽게 하는 게 아닙니다. 70여 년 동안 지켜온 비밀 문이 열린 것입니다. 심각해도 매우 심각한 상황입니다. 하지만 이번 사건에 대한 책임은 잠시 보류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위원회에서도 적극적 지원을 할 것이니, 감시에 필요한 물적 자원 및 인원에 대해서 필요한 보고서를 올리세요.”

“감사합니다. 위원장님”

서늘한 건물 안의 분위기와는 다르게 아워드 할리 국장의 등줄기엔 굵은 땀방울이 폭포수같이 흘러내렸고 머릿속에는 당장에라도 뛰쳐나가고 싶은 생각만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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