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화 (10/605)

죄와 벌

2016년 1월 22일 15:30,

서울시 중구 국가비리암행원 국가비리수사국 2과 취조실.

대한민국의 방송사를 포함한 모든 언론매체는 어제 국가비리암행원 안창길 원장이 발표한 해군 이지스 시스템과 구축함 방산 납품 비리 연루 커넥션으로 종일 화제가 되고 있었다. 국가비리암행원이 신설된 지 3개월여 만에 사상 최대의 방산비리 연루 커넥션 발표는 이전 정권에서 만행했던 온갖 비리 부정부패자들의 죄에 대한 정의의 심판의 내려질 일대 사건이었고, 대한민국의 썩은 뿌리를 도려내는 출발점이기도 했다.

당당한 체구에 검은 정장 바지에 하얀 와이셔츠를 입고 짧은 머리 스타일을 한 사내가 탁자에 서류뭉치를 던지며, 거만한 자세로 앉아있는 60대의 노인과 잠시 눈빛 교환 후 강한 어조로 말하기 시작했다.

“전오근 전 국방부 장관님, 여기 좀 보세요.”

탁자에 던진 서류뭉치 중 통장 입출 금액 내용이 인쇄된 자료를 가리키며, 강한 어조로 밀어붙이는 사내는 국가비리암행원의 국가비리수사국 2과 1팀장 강철중이었다.

“전오근 전 국방부 장관님? 아, 예전 직위까지 붙여서 얘기하려 하니 너무 기네. 그냥 전오근 씨라고 하겠습니다. 아셨죠, 전오근 씨?”

강철중 팀장의 강한 어조의 말에도 꿈쩍 않고 뻣뻣이 고개 들고 있던 전 오근 전 국방부 장관이 살짝 미소를 보이며 말하기 시작했다.

“강 팀장, 이게 무슨 짓인가? 5공 때도 아니고 무슨 안기부 흉내 내면서 이런 짓을 해도 괜찮을 것 같은가, 자네?”

강철중은 전오근 전 국방부 장관의 어이없는 말에 순간 화가 치밀었지만, 꽉 매여 있는 넥타이를 풀며 말을 이어갔다.

“말 한번 잘하시네! 그럼 전오근, 당신은 5공 때도 아닌데 권력을 앞세워 이따위 비리를 저질렀습니까? 국민의 혈세를 가지고 한두 푼도 아닌 수천억의 거액을 당신 똥구멍에 쑤셔 박으셨어요?”

평소 정권의 정보기관이라면 이런 형식의 취조는 법으로 허용된 선을 넘었고, 자칫 명예훼손까지 당할 수 있는 언사와 강한 압박이었다. 하지만 현재 대한민국의 국가 비상체제인 상황과 국가 비리 수사를 전담하는 정보기관이었기에 취조 압박 수준이 높았다.

강철중 팀장의 언사에 매우 기분이 나빴는지 뻘겋게 달아오른 전오근 전 국방부 장관은 의자를 박차고 일어서며 수갑 찬 손으로 손가락질하며 소리를 질러댔다.

“뭐야? 이 자식이 겁도 없이! 너 그러고도 무사할 거 같아?”

순간 강철중 팀장은 탁자를 양손으로 강하게 내려치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앉아! 개새끼야! 이 새끼가 지금 분위기 파악 못 하고 예전만 생각하는 거야? 이 버러지 같은 새끼야?”

“이 자식, 결코 가만두지······.”

파악!

“허억!”

치를 떨며, 강철중 팀장에게 말대꾸하던 전오근 전 국방부 장관은 갑자기 날아온 주먹에 얼굴을 맞고는 의자에 걸려 뒤로 나가떨어지고 말았다. 팔을 걷어붙인 강철중 팀장은 넘어진 전 오든 전 국방부 장관에게 다가가 그대로 걷어차기 시작했다.

퍽! 퍽! 퍽!

“그, 그만. 제발······. 그만!”

몸을 웅크린 채 그만 때리라며 손짓 발짓 애걸복걸하는 전오근 전 국방부 장관을 강철중은 그제야 발길질을 멈추고 뒤로 돌아서 앉았다. 씩씩대던 강철중은 입술에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전오근 전 국방부 장관에게 일어서라고 손짓했다. 잠시 후, 힘겹게 앉는 전오근 전 국방부 장관에게 담배 한 개비를 건네며 강철중 팀장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전오근 씨, 분위기 파악 제대로 합시다. 아셨죠? 이거 한 대 피우면서 좀 쉽시다.”

담배 한 개비 피우는 시간이 흐르자, 강철중 팀장은 뒷주머니에서 몇 장의 사진을 꺼내 전오근 전 국방부 장관의 얼굴 가까이 가져다 보였다.

“이 사진, 잘 나왔죠?

“이, 이걸 어떻게!”

전오근 전 국방부 장관은 사진을 보고는 충격에 빠졌는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몸을 떨며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사진 속 그림은 록히드마틴과 연관된 로비스트 리지 안과 설악산 콘도의 침대에서 찍힌 사진이었다.

“이런 협박을 하는 건 내 스타일은 아니지만, 당신이 자꾸 분위기 파악 못 하니까 그런 거 아닙니까? 전오근 씨! 비리 관련 모든 증거자료는 지금 이 앞에 있는 서류에 다 있는 거고, 차명계좌로 입금된 사람들 명단만 넘기세요. 그럼 이 사진은 절대 공개하지 않겠습니다. 그 연세에 비리 범죄는 그렇다 쳐도 성 접대까지 추가되면 좋겠습니까? 가족들 생각은 하셔야죠?”

한참 고민을 하던 전오근 전 국방부 장관은 떨리는 목소리로 담배를 하나 더 달라 했고, 강철중 팀장은 담뱃갑을 던져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전오근 전 국방부 장관님, 천천히 피우면서 생각 좀 하시고, 저기 하얀 종이에 명단만 써주시면 됩니다. 그럼 1시간 후에 오겠습니다.”

말을 마친 강철중 팀장은 취조실 문을 닫고 나갔다.

혼자 남게 된 전오근은 한때 장관의 자리까지 올라 방위사업 관련 수십조 원의 금액을 좌지우지며 권력과 부를 누리며 세상 부러울 게 없었던 때를 생각했다. 그러고는 어둡고 습한 지하 취조실에서 수갑 찬 손으로 담배를 피우는 모습이 자기가 생각해도 너무 처량했는지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얼마 전 방위산업 비리 이적죄 처벌 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면서 이전보다 형량이 늘어 최고 사형까지 집행이 가능해진 상황에서 다른 사람들의 명단을 밝힌다고 한들 빠져나갈 방법도 없고 더는 잃을 게 없었으나, 성 접대는 얘기가 달랐다. 뇌물수수나 비리 사건은 본인만 죗값만 받으면 된다 생각했지만, 성 접대가 세상에 알려지게 되면 부인과 자식들에게도 똥물을 튀기게 된다.

담배 한 갑을 30여 분 만에 다 핀 전오근 전 국방부 장관은 볼펜을 들어 새하얀 종이에 이름들을 써 나가기 시작했다.

★ ★ ★

2016년 1월 23일 9:30,

서울시 종로구 청와대 대통령 집무실.

“이게 사실입니까?”

국가비리암행원의 첫 번째 성과인 해군 방위산업 납품 비리 보고서를 보고 있던 대통령은 생각보다 심각한 보고서 내용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국가비리암행원 안창길 원장에게 재차 물어봤다.

“네, 대통령님, 이번 해군 방산비리 관련 사건의 중심에 있는 전오근 전 국방부 장관을 통해 입수된 차명계좌 명단입니다.”

서현우 대통령은 명단에 적힌 이름이 많기도 했지만, 대통령과 친분이 있던 지인들의 이름도 있었기에 충격이 더 컸다. 옆에서 보고서를 함께 확인하던 나성태 비서실장도 놀람을 넘어 화가 났는지 강한 어조로 말했다.

“정말 기가 막힙니다. 총사업비의 1/3에 달하는 금액이 리베이트라니, 이 작자들은 얼마를 해 처먹은 겁니까? 이러니 국민의 혈세로 예산 만들어 사업 추진해도, 중간에서 이렇게 처먹는 작자들 때문에 세금은 세금대로 낭비고 납품된 방산무기나 장비는 성능 저하로 국방의 의무라며 고생하는 젊은 친구들에게 생명의 위협이나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래요. 국가의 혈세를 가지고 장난치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중죄인지를 제대로 알려줘야겠지요.”

명단을 일일이 확인하던 대통령은 서류를 탁자에 내려놓으며, 안창길 원장을 보며 다시 말을 이어갔다.

“이번 비리 사건에 연루된 사람들에게 엄중한 법의 심판을 받게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들에게 흘러간 세금이 전액 국고 환수가 되어야 합니다. 이점 꼭 유념해 주시고 더 고생해주시기 바랍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십 원 하나 빼놓지 않고 환수될 수 있도록 국세청, 금감원 등 모든 정보기관과의 공조뿐만 아니라 각 금융기관을 통해 재산 내용에 대해서 조사 중입니다.”

“그래요. 매번 생각하지만 안 원장님 말만 들으면 얼마나 든든한지 모르겠습니다.”

“별말씀을요, 대통령님,”

“그리고 나 실장, 내일 오전에 이재수 장관과 미팅 좀 잡으세요.”

“알겠습니다, 대통령님.”

서현우 대통령은 이번 해군 방산비리 사건과 관련하여 몇 주 전에 국회를 통과한 방산비리 이적죄 법안 관련하여 이번 사건에 적용 여부에 관해 확인코자 이재수 법무부 장관과의 미팅을 잡도록 한 것이었다.

현 야당과 여러 기득권 세력은 감사원이나, 국민권익위원회 등의 여러 기관이 있는데도 비슷한 기관을 추가로 만든다며 세금 낭비니 권력 남용이니 하는 이유로 격렬한 반대를 하였으나 그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대통령 의지로 단행한 국가비리암행원은 3개월여 만에 엄청난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

이후 회의는 1시간 정도 더 진행되었고 회의 중 간혹, 웃음소리가 들리는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회의를 마쳤다.

★ ★ ★

2016년 1월 25일 10:30,

서울시 국가정보원 안전가옥병원 입원실.

분명 입원실이었고 입원 침실도 있었지만, 평범한 입원실은 아니었다. 주위에는 여러 컴퓨터와 기기들이 즐비하게 설치되어 있었다. 컴퓨터 모니터를 보며 뭔가를 열심히 일하고 있는 뒷모습, 바로 김인식 아니, 국가정보원 남궁원 요원이었다.

“안녕! 남궁.”

남궁원은 모니터를 보며 열중한 나머지 누가 오는지도 모르고 이혜진 대리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며 뒤를 돌아봤다.

“언제 오셨어요?”

“너 말이야, 국정원 요원이 누가 왔는지 몰라? 그렇게 둔하다가는 이쪽 세계에서 쥐도 새도 모르게 훅 간다?”

“에이, 제가 무슨 현장 요원인가요?”

“가끔 너 같은 요원들도 현장 나간다, 뭐! 조만간 빡세게 훈련 좀 받으면 달라지겠지?”

“네? 저도 훈련을 받아요?”

“몰랐어? 안 팀장님이 얘기 안 해줬구나? 하기야 네가 지금 상황이 상황이니······. 국정원 신입은 입사 후 현장 요원은 6개월, 정보요원은 3개월간 지옥의 집체교육이 있어.”

“헐. 저 이거 안 할래요.”

“늦었단다, 남궁 요원. 호호호, 허튼소리 하지 말고 하던 거나 어서 해.”

이혜진 대리의 농담인지 진담인지 알 수 없는 말에 살짝 걱정되었지만, 국정원 입사 후 처음으로 부여받은 임무인 만큼 최선을 다하기 위해 다시 일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한 시간 동안 작업하던 남궁원은 모니터에 눈을 떼면서 기지개를 했다.

“오케이, 다 됐어요.”

의자에 앉아 책을 보고 있던 이혜진 대리가 돌아봤다.

“그래? 대단한데? 이렇게 짧은 시간에 끝내다니, 좋아. 정리된 데이터는 USB에 넣어줘.”

“뭐 이 정도쯤이야. 하하, 그리고 벌써 넣어놨습니다. 여기요.”

“남궁, 다음 주면 이곳 정리하고 국정원으로 들어갈 거야. 그렇게 알고 미리 짐이나 정리해. 뭐, 정리할 짐도 없겠구나?”

남궁원은 계속 약 올리는 이혜진 대리가 얄미웠는지, 총 쏘는 자세를 취하며 조금은 거만한 어조로 말했다.

“국정원 들어가면 저번에 하자던 권총 사격 내기하는 거죠? 그날로 국정원 1등 권총 특등사수는 저로 바뀔 겁니다.”

“호호호, 안 되겠다. 소원 들어주기에 딱밤 다섯 대 추가하자!”

“콜이요. 그런데 여자 이마에 딱밤 주기가······.”

“까불지 마세요. 난 이만 전달하러 간다. 내일 보자”

“네, 조심히 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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