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화 (9/605)

비극의 아픔

2015년 12월 28일 15:30,

서울시 국가정보원 안전가옥병원 입원실.

똑똑.

“네, 들어오세요.”

일주일 동안 병원에서 동고동락하며 친해졌는지 입원실 문을 열고 들어온 이혜진 대리는 밝은 목소리로 인사하며 양손에 무겁게 들고 온 비닐봉지를 내려놨다.

“오늘 맛있는 거 많이 사 왔어, 어제 먹고 싶다던 바나나우유도 사 왔어.”

“고맙습니다.”

힘들어하는 김인직을 지켜보며 모성애가 발동했는지 처음엔 사무적으로 대하던 태도가 어느 순간 이웃집 누나처럼 대하는 이혜진 대리는 봉지에서 바나나우유를 꺼내 김인직에게 건네면서 말했다.

“먹어.”

“네.”

이혜진 대리는 침대에 앉아 바나나우유를 먹는 김인직을 바라보며 자꾸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뺐다 하며 뭔가를 망설이고 있는 자세를 취하고 있는 모습을 본 김인직은 궁금했는지 이혜진 대리에게 물어봤다.

“어디 불편하세요?”

“아, 아냐!”

이렇게 어색하게 몇 분이 지난 후 뭔가를 결심했는지, 이혜진 대리는 주머니에서 SD 카드를 꺼내며 김인직에게 보여주며 말했다.

“자, 받아······. 너희 부모님과 동생 장례식 동영상이야, 그리고 친구 장례식 동영상도 있어.”

그제야 김인직은 이혜진 대리가 왜 머뭇거렸는지 알 수 있었다.

“고마워요, 혜진 누나, 정말로······.”

“그럼 나는 나가볼 테니까 보고 싶을 때 봐. 알았지?

“네.”

이혜진 대리는 김인직이 맘 놓고 울면서 볼 수 있게 하려고 일부러 자리를 피했다. 생각 같아선 옆에서 위로해주며 같이 보고 싶었지만, 불편해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밖으로 나갔다.

밖으로 나온 이혜진 대리는 오늘도 어김없이 지키고 있는 현장 요원 두 주임에게 잠시 밖에 나가서 쉬다 오라고 지시를 하고 혼자 입원실 밖을 지켰다. 어느덧 10여 분이 지났을 즘 입원실 안에서 서글픈 목소리의 통곡 울음소리가 복도를 가득 메우며 멀리 퍼져나갔다.

★ ★ ★

2015년 12월 28일 17:30,

서울시 국가정보원 안전가옥병원 입원실.

“저기, 밖에 있나요?”

한 번도 먼저 부른 적 없던 김인직의 목소리가 흘러나와 밖에서 대기하던 이혜진 대리는 깜짝 놀라 입원실로 들어갔다.

“어! 왜? 뭐 필요한 거 있어?”

“아니요. 그게 아니라 안 과장님과 통화 좀 했으면 해서요.”

“그래? 잠깐만.”

이혜진 대리는 스마트폰을 꺼내 전화를 걸고는 김인직에게 건넸다.

- 여보세요?

“저 김인직입니다.”

- 그래, 무슨 일이야?

“저번에 말씀하신 내용 생각해봤습니다······. 일 해보겠습니다.”

- 그래? 잘 생각했어. 금요일에 방문할 때 새로운 신분증 준비해서 갈 테니 그때 얘기하자고. 그럼 푹 쉬면서 기다려.

“네, 알겠습니다.”

통화를 끝내고 스마트폰을 건네는 김인직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던 이혜진 대리가 말했다.

“내가 선배가 되는 거네? 호호호, 나 엄청 무서운 선배로 소문나있는데.”

“정말요? 안 그럴 거 같은데요?”

“밖에 있는 직원들한테 물어봐, 내가 어떤 사람인지. 엄청 무섭다고 할걸?”

어느 때보다 가장 슬프고 힘들었을 김인직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풀어주고자 성격에도 맞지 않는 농담을 하던 이혜진 대리는 연민인지 연정인지 알 수 없는 마음의 동요가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 ★ ★

2015년 12월 30일 13:10,

서울시 국가정보원 안전가옥병원 입원실.

입원실 문이 열리면서 컴퓨터를 포함해 한 번도 보지 못한 장비들이 줄줄이 입원실로 들어오고, 뒤따라 안연우 과장과 이혜진 대리도 들어왔다.

“김인직 안녕! 아니지, 이제부터 남궁원 요원이지······.”

“네? 남궁원요?”

이혜진 대리는 작은 가방에서 국정원 신분증을 꺼내 김인직 얼굴 앞에 흔들어 보이며 말했다.

“그래! 남궁원 요원, 너의 새로운 신분이야. 그리고 이건 신분증, 스마트폰, 그리고 이건··· 와, 내부 직원에게도 권총이 지급되나요?”

이혜진 대리는 작은 가방에서 이것저것 꺼내다가 K5-A1 권총까지 있는 걸 확인하곤 안연우 과장에게 질문했다.

“상황이 상황인 만큼 당분간 조심해야지, 그래서 특별히 국장님한테 말해서 준비했다.”

안연우 과장은 가져온 여러 장비를 직원들과 준비하다가 말해주곤 바로 다시 작업에 열중했다.

“그렇단 말이지? 어이, 남궁 요원. 너 권총 쏴봤어?”

“쏴보진 않았지만 어려울 건 없을 것 같은데요?”

“얘 봐라, 근거 없는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 거지?

“저 대한민국 현역 만기 복무에 1개월 더 복무한 예비역입니다.”

“그래? 나중에 사격장에서 내기 한 번 하자. 소원 들어주기, 콜?”

“후회하지 마세요.”

작업 열중하고 있던 안연우 과장이 짧게 한마디 했다.

“남궁원, 이 대리는 작년에 국정원 권총 부분 사격 우승자야. 그것도 3년 연속으로.”

“헐.”

이혜진 대리는 권총을 자유자재로 빙글빙글 돌리면 급기야 총을 분해 후 조립까지 1분도 안 걸리는 퍼포먼스를 보여주면서 남궁원을 약 올렸다.

★ ★ ★

2015년 12월 30일 15:00,

서울시 국가정보원 안전가옥병원 입원실.

장비 세팅을 마친 안연우 과장은 여러 서류와 자료들을 보여주며 설명하기 시작했다.

“아까도 말했지만, 이제부터 너는 남궁원이다. 그리고 신상정보는 여기 서류에 다 있다. 무조건 숙지해야 해!”

태어난 순간부터 지금까지의 인생 이야기란 말에 남궁원은 서류를 천천히 읽어보았다.

이름: 남궁원

주민등록번호: 900507-1******

나이: 26세(만 25세)

주소: 서울시 송파구 잠실본동 XXX 번지 효성 오피스텔 910호

학력: 신라대학교 정치외교학과

혈액형: 0형

키: 182cm

몸무게: 73kg

시력: 1.5(좌) / 1.5(우)

성격: 차분한 성격에 욱하는 성격이 있음.

태어난 곳: 충남 서천에서 태어남. 어렸을 때 부모님이 교통사고로 사망, 대전 명성 보육원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한참 서류를 살피며 읽던 남궁원은 실제 나이보다 두 살이나 많아진 것을 확인하고 이혜진 대리를 보며 물어봤다.

“이 대리님은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어쭈? 풋내기가 벌써 선배 나이를 물어보네? 신고식 제대로 받아볼래?”

장난 반 진담 반으로 대하는 이혜진 대리를 보며 뭔가 수상하다는 생각이 든 남궁원은 재차 물어봤다.

“알려주세요. 이 대리님, 아니 선배님······. 몇 살이세요?

“어이~ 풋내기! 국정원 요원의 나이는 1급 비밀이다. 특히나 여자 나이는 S급 비밀이라고,”

“26살, 며칠 후면 27살이······.”

“아! 과장님 정말 이러기에요?”

“나이가 뭔 비밀이라고 후배가 물어보는데 대답도 안 해 주냐?”

이혜진 대리는 팔을 걷어붙이며 안 과장을 잡아먹을 듯한 분노의 눈빛을 발산 후 바로 남궁원을 향해 주먹 감자를 보이며 무언의 폭력을 행사하였지만, 남궁원의 중얼거리는 소리에 거품을 물고 쓰러질 뻔했다.

“그럼 나랑 법적으로 동갑이네? 사석에선 혜진이라고 해도 되나?

“야! 남궁원, 너 죽을래?”

“농담이에요. 죄송해요. 하하하.”

김인직이란 이름으로 만났고 남궁원이란 이름으로 바뀔 때까지 어둡기만 했다. 남궁원이 처음으로 웃는 모습을 본 안연우 과장과 이혜진 대리도 서로 마주 보며 기분 좋게 웃었다.

“그럼 계속해서 이 서류들은 국정원 관련 서류들이니 시간 날 때마다 틈틈이 보고 숙지해. 그리고 여기 장비들은 앞으로 자네의 업무에 필요한 것들이야. 컴퓨터 분야에선 알아주는 실력이니 사용법만 알려주면 잘하겠지. 나중에 직원이 와서 교육할 거니까 그때 교육 잘 받고, 연말까지는 푹 쉬라고. 궁금한 건 이 대리한테 물어보고. 알겠어?”

“네, 알겠습니다. 안 과장님! 앞으로 열심히 하겠습니다.”

★ ★ ★

2015년 12월 30일 16:40,

부산광역시 부산항 국제여객터미널.

입국할 때와 똑같은 어두운 점퍼에 비니를 깊게 눌러쓴 동양 사내는 주차장에 주차한 후 천천히 국제여객 입국 심사대로 걸어가고 있었다.

이를 지켜보고 있는 검은 정장 사내는 어디로 가 무전을 보내고 있었다.

“여기는 새해, 새해, 그물망에 물고기 걸렸다. 이상.”

- 먹을 수 있는 물고기가 맞나? 이상.

“확실히 먹을 수 있는 물고기가 맞다. 이상.”

- 잠시 대기 바람. 이상.

“시간이 별로 없다. 이상.”

검은 정장의 사내는 언제든 체포할 수 있는 근거리를 확보하며 은밀히 동양 사내를 따라붙고 있었다.

- 여기는 둥지, 둥지, 물고기를 풀어줘라. 이상.

“여기는 흑새, 무슨 말인가? 이상.”

- 여기는 둥지, 물고기가 자유롭게 떠나는 것까지 확인하도록. 이상.

“여기는 흑새, 다시 한번 확인 바란다. 이상.”

- 여기는 둥지, 물고기가 떠나는 것까지 확인. 이상.

“여기는 흑새, 상부의 지시인가? 이상.”

- 여기는 둥지, 맞다 이상.

동양 사내는 입국 심사대에 도착한 후 몇 가지 확인을 받고는 심사대 자동문을 통해 사라지고 말았다. 검은 정장의 사내는 잡지도 않을 거면서 뭐하러 일주일 동안 잠 안 자며 추적했던 게 화가 치밀었는지 헤드셋을 집어 던지며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야! 지동철 이 새끼야! 대체 뭐야?”

전화를 받은 대테러수사 2과 2팀 정보요원 지동철 주임은 잔뜩 겁먹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 국장님 지시입니다. 테러 용의자가 부산항을 잘 빠져나가는지 확인만 하라고요. 죄송한데 물고기는 떠났습니까, 팀장님?

“그래, 새끼야! 떠났다. 떠났어! 아, 더러워서 못 해 먹겠네. 알았어, 끊어!”

국가정보원 대테러수사 2과 2팀장 마동석은 출국 심사대 자동문을 한참 동안 쳐다보다, 주차장으로 발길을 돌렸다.

★ ★ ★

2015년 12월 30일 19:15,

인천시 영종도 인천국제공항 대합실.

검은 정장에 험한 인상을 한 외국인 사내는 그랜드 하얏트 호텔에서부터 택시를 타고 인천공항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그 뒤를 조용히 따라붙은 또 한 명의 검은 정장의 사내는 대테러수사 2과 1팀장 차태식이었다. 일정한 거리를 두고 인천공항까지 따라간 차태식 팀장은 출국 수속절차를 밟을 때까지 빈틈없이 주시하였고, 출국 심사대를 빠져나가는 걸 본 후 헤드셋을 통해 보고하였다.

“여기는 황새, 강가의 물고기는 바다로 나갔다. 이상.”

- 여기는 어미 둥지, 확실히 바다로 나갔는가? 이상.

“여기는 황새, 이제는 바닷물고기다. 이상.”

- 여기는 어미 둥지, 복귀 바람. 이상.

이렇게 국내에 잠입한 스콜피온 조직원 2명은 암살과 해킹자료 소멸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달성한 것으로 오판하고 귀국하게 되었다. 이 오판으로 인해 한반도 역사는 새롭게 써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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