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의 아픔
2015년 12월 23일 15:30,
서울 국가정보원 안전가옥병원 입원실.
이연우 과장은 입원실 앞을 지키고 있는 현장 요원 2명과 이혜진 대리에게 가지고 온 커피와 함께 인사를 건넸다.
“수고들 많아. 이 대리는 집에는 갔다 오고?”
“새벽에 잠깐 들렀습니다. 여기 오 주임과 김 주임은 어제부터 지키고 있었고요.
“그래, 수고들 많다.”
“별말씀을요.”
건장한 체형에 말쑥한 검은 정장 차림을 하고 검은 선글라스를 쓴 2명의 현장 요원은 양쪽 문 앞에서 미동도 하지 않고 짧고 굵게 대답했다.
“김인직 학생은 어때?”
“조금은 나아진 거 같은데······. 가끔 울기도 하네요.”
“이 대리, 여자인 자네가 좀 위로 좀 해줘”
“안 과장님! 전 여자가 아니라 대테러 수사1과 요원이라고요.”
“아, 미안. 좀 들어갔다 올게”
이혜진 대리가 가장 싫어하는 게 남자, 여자 구분하는 것. 그걸 깜박한 안연우 과장은 미안하다고 말하며 입원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인직 학생, 나 왔어.”
“안녕하세요.”
“그래 좀 어때?”
“괜찮습니다.”
“다행이군. 마음 편히 먹고, 빨리 털고 일어났으면 좋겠어.”
“네.”
이연우 과장은 간이의자를 끌고 와 침대 옆에 놓고 앉았다.
“이번 사건은 청와대까지 보고가 됐어. 이제 국가적 차원에서 처리할 거야. 김인직 학생은 이번 건물 폭발사고로 사망한 것으로 할 거고, 자네 친구는 이번 사고와 별개로 교통사고로 사망한 것으로 됐어.”
“네? 그럼 경호 부모님은 진실을 모르게 되는 거잖아요······.”
“어쩔 수 없네, 자네가 살아있다는 걸 미 정보기관 쪽에서 알게 되면 끝까지 추적하려고 할 거야. 현재 이번 폭발사고의 범인으로 의심되는 2명을 추적 중이야, 아직 국내에 머무는 것으로 파악했어. 그래서 자네는 새로운 신분을 받게 될 거고, 조만간 그 신분으로 살아가야 하니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어. 알았지?”
“새로운 신분이라······.”
김인직은 경호 대신 자신이 죽었어야 했는데 이제 24년간 사용했던 이름을 버리고, 지금까지 알고 있던 모든 사람을 잊고 살아가야 한다는 게 너무 괴롭고 자신이 없어 보였다.
“인직 학생, 산사람은 죽은 사람을 위해 더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 그리고 인직 학생에 대해서 조금 알아보니 이쪽 컴퓨터 분야에서는 유명인사더군. 각종 화이트 해커 대회에서도 여러 번 입상도 하고 실력이 상당한 듯한데, 이쪽에서 일해 보는 건 어떤가?”
“네?”
순간 당황하는 김인직을 본 안연우 과장은 너무 성급했다고 생각하며 말을 이어갔다.
“자네 같은 실력자가 우리 쪽에서 일하는 게 현재 자네 입장이나 국가적 차원에서 서로 도움이 되는 거 같아서 말이야. 이곳에서 적어도 1개월 정도는 있을 예정이니, 그때까지 잘 생각해보고 말해줘. 그리고 저번에도 말했듯이 밖에 있는 이 대리한테 필요한 거 있으면 뭐든지 말하고, 알았지?”
“네,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방금 하신 얘기는 신중히 생각해보겠습니다.”
“그래, 난 이만 가볼게. 몸조리 잘하고.”
“네.”
입원실 밖으로 나온 안연우 과장은 이혜진 대리 옆에 바짝 앉으며 조용히 말했다.
“이 대리, 저 친구랑 자주 얘기 좀 해. 우리 쪽 일하는 것도 좋게 표현하고, 알겠어?”
“네? 왜요?”
“저 친구 우리 쪽으로 끌어들이려고, 컴퓨터 분야에서 알아주는 실력자야.”
“그렇다고 끔찍한 사건을 당한 친구한테 그러면 돼요?”
“왜? 능력 좋은 친구를 저렇게 썩히는 것도 아깝지······.”
“안 과장님!”
“미안, 미안해. 이 대리, 진정하라고.”
순간 얼굴까지 올라오는 이 대리의 주먹을 피하며 황급히 일어나 미안하다는 손짓을 보인 안연우 과장은 지갑에서 신용카드를 꺼내주며 말했다.
“이걸로 인직 학생 필요한 거 사주고, 자네들도 배고프면 맛있는 거라도 사 먹으면서 고생 좀 해.”
“네, 알겠어요”
“그래, 난 다시 들어가. 수고해”
★ ★ ★
2015년 12월 24일 13:30,
서울시 종로구 청와대 NSC(국가안전보장회의).
청와대 회의실에서는 국가안전보장회의가 진행되고 있었다.
대통령을 포함하여 국방부 장관, 안보실장, 국정원장, 비서실장 등 4명은 회의실 옆면에 설치된 100인지 TV 스크린을 보고 있었고 TV 스크린 너머엔 강이식 합참의장과 삼군 사무총장, 그리고 20여 명의 장성이 뒤편에서 합참의장의 보고내용에 귀를 기울이고 보고 있었다.
“현재 육군은 모든 휴전선 일대의 경계 상태를 ‘데프콘 2’ 발령 상태 그대로 유지하고 있으며, 한미연합사의 조인트스타즈(J-STARS) 정찰기와 정찰위성을 통해 휴전선 일대의 북한군 부대 움직임 및 북한 내부 장거리 미사일 기지에 대에 24시간 감시체제에 있습니다. 또한, 해군은 동해와 서해 NLL 지역에 해상초계기와 각 함대의 초계함을 전진 배치해 해심 및 해상 침투의 어떠한 움직임도 주시하며 감시 중이며 마지막으로 공군의 조기경보기도 최대 가용시간으로 투입하여 적 항공기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습니다.”
합참의장의 군 전반적인 경계 태세에 대한 보고를 마치자 오장수 안보실장이 말했다.
“합참의장님! 조만간 전시작전 통제권에 대해 미국으로부터 인수하는 협상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그렇게 되면 지금까지 한미연합사의 정찰기 및 정찰위성에 대한 지원이 중단될 수도 있습니다. 이 부분에서 미리 대비책을 세워야 합니다.”
“네, 이에 대해 대비책을 마련하여 감시경계에 허점이 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대비책이 마련하는 대로 보고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합참의장님?”
“네, 대통령님.”
“현재 의무복무 중인 군인 중 복무 만료가 된 병사들은 어떻게 되고 있죠?”
갑작스러운 대통령의 질문에 잠시 멈칫하다 옆에 있던 부관의 말을 듣고는 합참의장은 말을 이어갔다.
“죄송합니다. 대통령님, 현재 ‘데프콘 2’ 발령으로 모든 복무 기간이 1개월 연장된 상태입니다.”
“그렇다면 연장된 1개월의 월급도 기존 받았던 월급 수준 그대로인가요?”
“네 그렇습니다. 대통령님,”
“뭔가 개선이 필요하군요. 국가비상사태라고는 하지만 대한민국 20대 젊은이들한테만 이런 책임을 전가할 순 없을 듯합니다.”
대통령은 옆의 국방부 장관을 보며 말했다.
“강현수 장관님, 1개월 연장 복무에 한해서라도 월급 수준을 사회통념 최저임금의 1.5배로 계산해서 당장은 아니더라도 예산 마련하는 대로 모두 지급하시기 바랍니다.”
“알겠습니다. 대통령님.”
국방부 장관의 대답을 들은 대통령은 다시 질문을 이어갔다.
“김정은 국방위원장은 현재 어떤가요?”
대통령의 질문에 듣기만 하던 국가정보원 나봉일 원장이 입을 열었다.
“현재까지 별 차도는 없는 듯합니다.”
“음······. 그렇다면 북한군 수뇌부의 움직임은요?”
다행히도 김정은 국방위원장의 핵심 세력들이 권력 다툼에서 우위를 보이며 어느 정도 안정화가 된 상황이며, 특히 김정은 위원장의 여동생인 김여정이 권력의 핵심으로 부상하고 있다고 합니다.”
북한은 김정은 국방위원장이 혼수상태에 빠지면서 평양과 각 군 수뇌부의 권력 다툼이 심각했으나, 김정은 위원장의 핵심 세력과 김여정의 신속한 조치로 현재 잠잠해진 상황이었고, 이후 핵심 세력의 지지를 기반으로 김여정이 북한 실세로 떠오른 상태였다. 북한 방송에서는 김여정에 대한 찬양 방송들이 하루가 멀다고 매일 방송되고 있었다.
“안보실장님?”
“네, 대통령님.”
“북한도 어느 정도 안정화가 되었다면, 지금 시점이 남북 긴장 완화를 할 때인 듯합니다. 조속히 북한과 연락을 취해보세요.”
“네 알겠습니다.”
“자 그럼 다음 의제로 넘어갑시다.”
★ ★ ★
2015년 12월 24일 17:30,
서울시 종로구 청와대 대통령 집무실.
3시간의 국가안전보장회의를 마치고 청와대 집무실에 돌아온 대통령은 안보실장, 국가정보원장과 차를 마시며 잠시 담소를 나누면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인직이라는 학생은 잘 지내고 있나요?”
담소를 나누다가 대뜸 인직 학생의 안부를 물어보는 대통령의 말에 나봉일 원장이 대답했다.
“네, 현재 국정원 안전가옥 병원에서 안정을 취하고 있습니다. 대테러 수사1과에서 신변 보호 및 지원을 하고 있습니다. 건강상 문제는 없는데 일시에 부모와 형제, 그리고 친구를 잃어서 그런지 정신적으로 매우 힘들어하는 상태라고 합니다.”
“그렇겠지요. 한순간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를 잃은 고통을 어디 보통 사람이 상상할 수 있겠습니까? 그 학생은 국가에서 책임을 지고 보호해줘야 합니다. 나 원장님이 특히 신경 써주시기 바랍니다.”
“최선을 다해 보호하도록 하겠습니다.”
조용히 차를 마시며 대화를 듣고 있던 오장수 안보실장이 서류 가방에서 서류 한 뭉치를 꺼내 대통령 앞에 내려놓으며 대화에 들어왔다.
“그 학생이 해킹한 자료, 과기원에서 지금 당장 적용 가능 여부에 대해 검토한 일부 보고서입니다. 상상을 초월하는 자료들로 스텔스 칠감 도료 및 설계 구성 자료는 KF-X 개발사업에 바로 적용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와 기존 원자력발전소를 대처할 수 있는 차세대 핵융합 발전소 기술 자료까지 정말 엄청난 자료들입니다. 특히, 이 서류를 보시기 바랍니다.”
오장수 안보실장이 가져온 서류를 대통령과 나봉일 원장이 읽어보며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중에 오장수 안보실장이 내민 서류에 시선이 모여졌다.
“대통령님, 이 기술은 현재 산업경제에 바로 적용해도 무방한 신기술입니다. 이것이라면 현재 침체한 한국 경제를 회복시키고도 남을 정도입니다.”
안보실장이 내민 서류는 극 전지저장기술 자료였다. 전기자동차의 배터리와 전자기기 그리고 모든 산업시설에서 사용할 배터리에 이 극 전지저장 기술이면, 초소형 크기에 기존 30배 이상의 수명 효율을 가질 수 있는 차세대 기술이었다.
“하나 아쉽게도, 이 기술은 그림의 떡인 거 같습니다, 오 실장님.”
“그게 무슨 말인가요. 나 원장님?”
생각지 못한 대답에 의아한 표정으로 쳐다보는 오장수 안보실장에게 나봉일 원장은 이유에 관한 설명하기 시작했다.
“현재 이 자료 때문에 미 정부는 조직원까지 한국에 보내 관련된 사람들을 암살까지 하는 상황입니다. 현재 국정원에서는 김인직 학생을 사망으로 처리 및 해킹자료에 대해서도 소멸한 것으로 미 정보기관의 눈을 속인 상황인데, 이 자료를 기반으로 국가적 차원에서 산업기술로 적용한다면, 미 정부에서 보자면 해킹 또한 한국 정부에서 한 것으로 공식화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미 정부와의 관계는 최악으로 바뀔 것이고, 지속적 압박을 받을 것입니다.”
나봉일 원장의 말을 듣고는 대통령은 미국과의 관계에 대해서 잠시 고민하기 시작했다. ‘어쨌든 해킹한 자료를 국가 차원에서 사용한다면, 해킹에 대해 한국이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꼴이며, 이것을 빌미로 한국은 지금보다 더 미국의 종속적 식민지가 되거나, 아니면 경제적, 군사적, 제약을 받을 수 있다.’ 여기까지 생각한 대통령은 단호하게 말했다.
“언젠간 대한민국에 기회는 올 것입니다. 그때를 위해 잠시 봉인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