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화 (7/605)

비극의 아픔

2015년 12월 21일 21:10,

서울시 국가정보원 안전가옥병원 입원실.

“엄마? 거기서 뭐 해?”

안개가 잔뜩 낀 음침하게 보이는 넓은 호숫가에 아빠, 엄마, 동생 영직이가 작은 나룻배를 타려고 하고 있었다. 멀리서 그 모습을 보던 김인식은 큰 소리로 불렀지만,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지 부모님과 동생 영직이는 나룻배에 타고 천천히 노를 저어 호수 중앙으로 움직였다. 안개는 조금씩 더 짙어지고 떠나가는 가족의 나룻배가 사라지려 하자, 목이 터져라. 더 큰 목소리로 불렀지만, 끝끝내 나룻배는 시야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아빠! 엄마! 영직아!”

풀썩 주저앉은 김인직 옆에 언제 왔는지 친구 강경호가 어깨동무하며 조그맣게 말했다.

“걱정하지 마. 이 형이 너희 부모님과 영직이 잘 보살필게.”

강경호의 말에 옆으로 고객을 돌린 김인식은 순간 비명을 지르며 놀랐다.

“으아악!”

얼굴은 온통 피범벅에 살은 녹아내려 허연 뼈가 보이고 머리카락은 다 타 없어진 흉측한 몰골을 한 강경호를 본 것이다.

“안 돼!”

눈을 떴다. 천장의 조명 불빛이 서서히 보이고 조용한 분위기 속에 인기척이 느껴져 주위를 둘러보니, 침대 옆에 중년의 사내와 여성 한 명이 앉아있었다. 중년의 사내는 깨어난 김인직을 내려다보며, 옆에 있던 여성에게 의사를 부르라는 손짓을 하고 김인직에게 말을 건넸다.

“김인직 학생, 괜찮나? 이틀 동안 자고 있었어.”

김인식은 상체를 일으켜 앉고 중년의 사내에게 질문했다.

“누, 누구시죠? 여긴 병원인가요?”

“난 국정원 대테러 수사1과 안연우 과장이라네.”

중년의 사내는 지갑에서 신분증을 꺼내 김인직에게 보여주며 다시 말을 이어갔다.

“이틀 전, 자네 자취방 폭발사건과 부산 부모님의 아파트 폭발사건은 단순 가스 폭발이 아닌 테러에 의한 범행이라는 여러 정황이 포착되어 일반 병원에 있던 자네를 이곳으로 데리고 왔어. 이곳은 국정원이 운영하는 안전가옥 병원이야.”

안연우 과장의 말에 잠시 잊고 있었던 부모님과 동생의 죽음, 그리고 친구의 죽음이 떠올랐는지 김인직은 울기 시작했다.

“흑윽윽윽윽”

뭔가 위로의 말을 해주고 싶었으나 흐느껴 울고 있는 김인직을 보고는 뭐라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아 잠시 어색한 시간이 흐르는 사이, 문이 열리고 하얀 가운을 입은 박형우 박사가 들어왔다.

“다시 누워보게.”

박형우 박사는 김인직을 다시 눕히고 동공 및 체온 등 여러 가지 확인을 하고선 안연우 과장에게 고개를 돌려 말했다.

“안 과장, 이 학생 지금 매우 큰 정신적 충격을 받았어. 당분간은 안정을 취해야 해. 적어도 하루 정도는 더 쉬게 하는 게 어떤가?

“알겠습니다, 박형우 박사님. 조사는 내일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이만.”

안연우 과장은 잠시 고민을 한 후 박형우 박사에게 인사말을 하고 입원실을 나왔다.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이혜진 대리가 커피를 건네며 안연우 과장에게 말했다.

“안 과장님, 정말 저 친구와 연관된 사건일까요?”

“이 대리 상황으로 봐선 연관될 확률이 커······. 먼저 저 학생 집이나 부산에 있는 부모님 아파트 폭발이 국내에선 볼 수 없는 고성능 폭약으로 인한 폭발이었고 같은 시간대에 일어난 점이 그래. 대외정보과에 확인하니 1급 경계 대상자 2명이 국내로 들어왔을 확률이 크다는 정보가 있어. 아, 내가 지시한 건?”

“네, 김인직 외삼촌이라는 분에게는 요원 2명을 붙였고요. 김인직 학생이 위험한 상황이니 생사에 대해 일절 모르는 것으로 해달라고 했고, 외삼촌이라는 분도 사태의 심각성을 아는지 적극적으로 협조한다고 하셨어요. 김인직 부모님 장례도 국과수 검사 끝나는 대로 알아서 잘 치르겠다고 했고요. 그리고 엊그제 통화 내역도 통신사를 통해 완전히 삭제했어요.”

“방송국은?”

“방송국 및 언론매체엔 일반적 가스 폭발 사고로 축소 보도하게끔 조치해놨어요. 아마도 내일 정도면 관심이 사라질 거예요.”

“잘했어. 인직 학생은 안정을 더 취해야 한다니까 내일 오후에 다시 오자고.”

“네, 과장님.”

안연우 과장과 이혜진 대리는 짧은 대화를 마치고 병원 주차장으로 향했다.

새벽 5시. 안정제를 맞았다지만 오래 잠들었던 탓에 새벽에 잠을 깬 김인직은 창문을 열고 차가운 새벽 공기를 들이쉬었다.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일들이 자기 자신에게 일어난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자꾸 부모님과 동생, 친구가 생각났고, 가장 괴로운 건 해킹으로 인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나 스스로에게 드는 원망이었다. 하루아침에 인생의 판도가 뒤바뀌어버린 김인직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몰라 흐느끼며 울었다.

★ ★ ★

2015년 12월 22일 18:00,

서울시 국가정보원 안전가옥병원 입원실.

침대에 앉아있는 김인직을 보며 안연우 과장은 설명을 시작했다.

“김인직 학생, 몸은 좀 괜찮은가?”

“네. 조금 나아졌습니다.”

“음······. 다행이군. 앞으로 여기 이혜진 대리가 병원에 있으면서 도와줄 거야. 필요한 거 있으면 언제든 말하도록 해”

“네.”

“그럼 본론으로 넘어갈게. 이번 사건은 단순 폭발사고가 아니라는 몇 가지 증거가 있어. 먼저, 폭발되었던 건물들은 가스 폭발이 원인이 아니라 국내에서 볼 수 없는 고성능의 폭발물이 원인이라는 거야. 그리고 자네 자취방이나 부모님 아파트가 같은 시간에 사고가 났다는 거지. 이 정도만 봐도 이번 사건에 자네가 연관이 있다는 증거는 충분하거든. 혹시 뭐 집히는 거 없나?”

김인직은 국가정보원 안연우 과장의 말을 듣고는 심히 고민했다. 해킹에 대해 말을 해야 하는지, 아니면 모른척해야 하는지. 아무 말 없이 한참 고민하던 김인직은 결심했는지 안연우 과장과 옆에 있는 이혜진 대리를 한번 보고는 입을 열었다.

“사실······. 저 때문에 그런 것 같아요.”

“그게 무슨 말인가?”

“제가 2개월 전에 NASA를 통해 51구역 데이터망에 침입해서 자료 몇 개를 내려받았어요. 그게 문제가 된 것 같아요.”

“뭐? NASA를 해킹했단 말이야?”

김인직의 말에 안연우 과장과 이혜진 대리는 서로의 얼굴을 보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폭탄 사고의 실마리가 해킹으로 인한 미 정보기관의 소행? 이 정도면 김인직 학생이 빼돌린 자료가 엄청난 파문을 가져올 수 있는 중요한 자료라는 것까지 생각이 든 안연우 과장은 이어 재차 질문했다.

“해킹한 자료는 가지고 있어?”

“네. USB에 저장해놨어요.”

“나한테 USB를 줄 수 있나?”

“네. 가방 안에 빨간 USB입니다. 가져가세요.”

이혜진 대리는 김인직의 가방에서 빨간 USB를 꺼내 안연우 과장에게 건넸고, 안연우 과장은 USB를 주머니에 넣은 후 이혜진 대리에게 지시했다.

“이 대리, 나는 지금 국장님께 가야겠어. 자네는 현장 요원 더 배치하고, 학생 잘 지켜”

“네, 다녀오세요.”

이연우 과장은 이혜진 대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황급히 입원실 문을 나서면서 전화를 했다.

“국장님! 대테러 1급 상황입니다.”

★ ★ ★

2015년 12월 22일 22:00,

서울시 종로구 청와대 대통령 집무실.

“나봉일 국정원장, 이 시간에 무슨 일입니까?”

이제 막 쉬려고 하는 차에 급히 국정원장의 방문으로 다시 직무실로 들어선 대통령은 미리 기다리고 있는 나봉일 국정원장과 옆에 있는 대테러수사국 김성일 국장과 대테러수사 1과 안연우 과장을 보며 인사말을 나눴다.

“죄송합니다, 늦은 시간에. 급히 보고드릴 일이 있어 찾아뵈었습니다.”

“그래요, 앉으세요. 무슨 일입니까?”

“네, 대통령님도 아시겠지만, 이틀 전 서울 강북구 다세대 주택 폭발사건과 같은 시간에 부산에서 일어난 아파트 폭발사건 일입니다.”

“내용은 보고받았습니다.”

“대테러수사 1과에서 수사한 결과, 단순 폭발사고가 아닌 미 정보기관이 개입한 테러 사고로 확인되었습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자세히 말해보세요”

“자세한 내용은 대테러수사 1과 안연우 과장이 보고 드리겠습니다.”

국정원장의 손짓에 옆에 앉아있던 안연우 과장이 보고서를 꺼내 설명하기 시작했다.

“대테러수사 1과 안연우입니다. 지금부터 이번 사건에 대한 미 정보기관의 개입 건에 대해 보고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서울 폭발사고와 부산 폭발사고는 연관성이 있습니다. 바로 김인직이라는 학생입니다. 그 학생의 부모도 이번 부산 아파트 폭발사고로 사망하였고, 서울 다세대 주택도 김인직이 자취하던 주택이었습니다.”

“그래요? 연관은 있어 보이는군요. 미 정보기관의 개입은 뭔가요?”

“저희 대테러수사 1과는 이번 폭발사고가 단순 사고가 아닌 테러 성격의 사고로 짐작하여 바로 수사에 착수하였고, 이에 김인직 학생이 이 사건과 매우 깊은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여 신병확보 후 조사를 한 결과 김인직 학생으로부터 중대한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연우 과장은 서류 중에 김인직 학생의 사진과 USB를 꺼내 말을 이어갔다.

“2개월 전, 김인직 학생은 NASA의 네트워크를 통해 제51구역을 해킹하여 몇 가지 자료를 내려받았습니다.”

“해킹요? 정말 미국 51구역을 해킹했다는 건가요?”

“네, 대통령님. 지금 보시는 USB 안에 그 당시 내려받은 자료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미 정보기관에서 해킹범을 죽이기 위해 이런 짓을 했다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아니, 해킹범을 찾기 위해 우방인 국가에 정보요원을 보내서 테러를 일으킨단 말입니까?”

듣고만 있던 대테러수사국장 김성일 국장이 말문을 열었다.

“대통령님, 보통 이런 일은 해당 정보기관과 서로 공조하여 해결하는 게 원칙이고 관례이긴 합니다. 하나, 유출된 자료가 매우 중요하다면 그런 관례는 무시되며, 미 정보기관의 단독작전으로 이것보다 더 심한 일도 발생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이런 일은 미국과의 정치적 관계도 심각해질 수 있는 상황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해킹한 자료는 대체 무엇에 대한 자료인가요?”

대통령 앞에 놓인 서류 중 뒤쪽에 있는 서류를 빼내 김성일 국장이 설명하기 시작했다.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이 서류는······.”

긴급회의는 3시간 동안 진행되었고, 해킹자료에 대한 중대성으로 국가적 차원에서 대응하기로 결정되었다. 그리고 TV에서는 이번 서울과 부산의 폭발사고는 단순 우연한 가스 폭발에 의한 사고로 정부에서 공식 발표하였으며, 김인직은 폭발사고 당시 사망한 친구 강경호 대신 사망한 것으로 사건을 종결시켰다. 그리고 강경호의 사망은 이번 폭발사고와 무관한 교통사고로 사망한 것으로 처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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