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화 (5/605)

새로운 국면

2015년 12월 17일 02:00 (미국시각 16일 12:00),

미국 네바다주 넬리스 공군기지(제51구역) 국장실.

널찍한 사무실에 20여 명의 사내가 침울한 표정으로 앞에서 험악한 인상을 쓰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120kg의 거구의 사내를 바라보며 아무 말도 못 하고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앉아있었다. 제51구역 지하연구소 총책임자 아워드 할리 국장이었다. 방금 51구역 지하연구소 비밀문서가 해킹으로 유출되었다는 보고를 받고 해당 책임부서장과 요원들을 불러놓고 보고를 받는 상황이었다.

“대체 당신들 무슨 일을 이따위로 하는 거야? 스티븐, 해킹 시점과 유출된 자료는 정확히 파악은 한 건가?”

아워드 할리 국장은 보안팀장 스티븐에게 손가락질하며 당장 총이라도 있으면 망설임 없이 쏘고도 남을 분노를 표출하며 소리를 질러대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해킹 시점은 정확한 날은 알 수 없으나, 적어도 2개월 전으로 파악하며, 유출된 자료는 SS급 15건과 SSS급 1건입니다.”

사건의 심각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스티븐 보안팀장은 인생을 다 산 사람처럼 힘없는 목소리로 눈치를 보며 보고를 하였고, 아워드 할리 국장은 보고를 듣자마자 고개를 뒤로 젖히며 지그시 눈을 감고 한동안 아무 말 없이 생각에 잠겼다.

‘무엇보다 지금은 해킹범에 대한 추적과 유출된 비밀문서를 신속히 확보 및 소멸시키는 것······. 그 후 저 사람들을 어떻게 처리할지는 그때 생각해도 늦지 않다.’

이렇게 생각이 정리되자 조금은 차분해진 목소리로 스티븐 보안팀장에게 질문하였다.

“대체 무슨 방법으로 자체 내부망으로 이뤄진 이곳을 해킹할 수 있단 말입니까?”

“현재까지 파악한 내용에 따르면, 해킹범은 항공우주국 네트워크망에 20여 개국을 우회하여 침투하였고 재수 없게도 우연인지 실력인지 모르겠지만, 저희와 항공우주국의 H-SC01 인공위성과의 접속되는 시점에 네트워크를 타고 내부망에 침투한 것으로 분석하였습니다.”

“그럼 해커집단에 대해서 파악은 된 건가?

“현재 주요 해커집단에 대해서 위치 파악 중이며, 항공우주국 측 보안팀과 공조하여 해킹 경로에 대해서 역추적 중입니다. 하루만 더 시간을 주시면, 어느 해커집단인지와 대략적 위치까지 잡아내겠습니다. 할리 국장님!”

잠시 고민에 빠진 아워드 할리 국장은 오른손 검지를 들어 올리며 스티븐 팀장에게 조용히 말했다.

“좋아! 딱 하루 주지. 지금부터 1급 보안체제로 전환하고 내일까지 내가 원하는 정보를 얻지 못하면 자네를 포함해 여기 있는 모든 요원, 다시는 햇빛을 못 볼 줄 알라고.”

스티븐 팀장을 포함해 20여 명의 요원이 나간 후 아워드 할리 국장은 LED 모니터로 만들어진 가상의 창밖을 보며, 안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어디론가 문자를 보냈다.

- 코드 CH321 K급 상황, 스콜피온 소집.

- 코드 AX001 접수 완료.

간단한 문자를 주고받은 후 아워드 할리 국장은 유출된 문서를 생각하며 깊은 고민에 빠졌고, 푹신한 소파에 몸을 의지하며 눈을 감았다.

‘SS급 문서는 그렇다 쳐도, SSS급 1건이 문제란 말이야. 그 문서는 국내에서도 다 적용하지 못한 신기술이 담겨 있는데, 하필 내가 국장으로 있을 때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미치겠군. 어쨌든 1주일 안에 처리해야 해, 1주일 안에.’

★ ★ ★

2015년 12월 18일 09:00,

서울시 강북구 수유동 김인직 자취방.

멍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고 있는 두 남자, 판도라의 상자에 들어있는 내용을 밤을 지새우며 확인한 둘은 정신적 혼란에 빠진 상태로 잡념의 바다에 빠져 헤어 나오질 못하고 있었다. 온갖 소문만 무성했고 지구에서 가장 미스테리한 제51구역의 실체는 1940년에 미국 네바다주에 떨어진 외계 비행선과 외계인에 대한 수십 종의 연구 자료, 그리고 그러한 연구를 토대로 만들어진 정보지식, 20세기 이후 세계의 과학기술을 주도하였던 미국이 바로 이러한 외계인과 외계 비행선 때문이었다는 것. 더 놀라운 사실은 아직 세상 밖으로 나오지 않은 신기술이 지금 대한민국 서울의 조그마한 자취방 USB에 담겨 있다는 것이다.

“으하하, 다른 건 모르겠고, 그 뭐냐······. 요즘 전투기나 여러 기체에 적용된다는 스텔스 기능의 도료 기술이나 재질 말이야, 이것만 기업이나 정부에 팔아먹어도 너랑 나랑은 우리나라에서 최고 부자가 된다는 거다.”

“으하하하.”

강경호는 이 세상을 다 가진 사람처럼 두 팔을 벌리고 입이 찢어져라. 웃었다.

동네 떠나가듯 웃고 있는 강경호를 쳐다보는 김인직의 얼굴은 조금씩 인상이 깊어지다 급기야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괴로워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취미 삼아 해오던 해킹을 처음으로 후회하게 되었다. 단세포 같은 친구 강경호의 웃음소리가 더 커질수록 마음속 더 깊은 곳에서는 후회와 불안감, 아니 공포감이 엄습하자 냅다 강경호에게 소리쳤다.

“그만 웃어 단세포 새끼야!”

강경호는 웃음을 멈추고 놀란 눈으로 김인직을 쳐다보며 말했다.

“아, 왜?”

“넌 모르겠냐? 이건 그냥 단순한 고객 정보 그런 수준의 자료가 아니라고. 네 말대로 세상이 발칵 뒤집힐 정보들이야! 이런 어마어마한 정보들을 가지고 있는 건 언제 어디서 쥐도 새도 모르게 살해당하거나 체포되어 평생을 감옥에서 살 수 있다고, 그런데 너는 지금 웃음이 나와?”

단세포 같은 친구 놈의 웃음소리에 신경질적으로 반응하며 소리치던 김인직은 그대로 침대에 벌러덩 누워버렸다.

“살해? 감옥? 무섭게 왜 그래? 설마 네가 해킹한 걸 알까?”

그때야 심각성을 깨달은 강경호는 김인직 옆에 누우며 방금까지 부자가 되어 떵떵거리면 살아가는 상상을 했던 생각이 순식간에 불안감으로 바뀌었고 무서웠는지 재차 김인직에게 다시 물었다.

“설마 우리를 찾을 수 있을까? 너 실력 좋잖아? 못 찾을 거야. 뭔 수로 너를 찾아? 걱정하지 마!”

“그건 나도 모르지. 하지만 저 정도 자료라면 지구 끝까지 찾아다니지 않을까?”

“그럼 어쩌냐? 자수해야 해?”

“모르겠다. 생각 좀 해봐야겠어. 그리고 너 이거 누구한테도 말하면 안 된다?”

김인직은 상체를 일으켜 머리맡에 둔 노트북을 가져와 전원을 켜며 대답 없는 강경호를 쳐다보며 다시 물었다.

“말하지 말라고.”

강경호는 부자 된다는 생각에 엄청 좋았다가 김인직의 무서운 말에 살짝 짜증이 났는지 이불킥을 날리며 대답했다.

“내가 초딩이냐? 지금 분위기 파악 제대로 했거든? 그런데 노트북은 왜, 자료 지우려고?”

“아니, 혹시 해킹 당시 추적의 빌미가 될 만한 소스를 내가 놓친 게 있나 해서 확인해본다. 불안해서 말이야.”

“그래, 불안해도 자료는 지우지 마라!”

★ ★ ★

2015년 12월 17일 11:00 (미국시각 16일 21:00),

미국 네바다주 넬리스 공군기지(제51구역) 국장실.

죽을상이던 스티븐은 어제와는 다르게 조금은 밝아진 표정으로 아워드 할리 국장에게 독대하며 보고서를 보여주고 있었다.

“해킹 시도 최종 위치는 한국으로 밝혀졌습니다. 현재 한국인 중 해킹이 가능할 만한 실력을 갖춘 인물들을 리스트업 중이며, 또한 해외 해커집단 중 한국으로 입국한 정보 또한 확인하고 있습니다.”

“한국? 러시아나 중국, IS 테러집단 쪽이 아니고?”

예상과는 다르게 생각하지 못한 한국이 해킹 장소라는 스티븐 보안팀장의 말에 의구심만 더욱 짙어진 아워드 할리 국장은 보고서를 꼼꼼히 읽기 시작했다.

‘대체 한국이 왜?’

아시아 동맹국 중 최우방국인 한국이 이런 심각한 상황을 만들 만한 이유를 아무리 생각해봐도 찾을 수가 없던 국장은 보고서를 다 읽고 나서 스티븐 보안팀장에게 말했다.

“한국의 정보기관은 물론 사설 보안 기업, 그리고 3개월 전부터 한국에 거주했던 해킹과 관련될 만한 모든 인물과 단체에 대해서 그 어떤 거라도 좋다. 단서를 찾아라, 1주일 안에 사건 종결시킨다.”

아워드 할리 국장은 불안하고 답답한 심정을 해소하고자 책상 위에 있는 고급 쿠바산 시가 1개를 상자에서 꺼내 입에 물고는 불을 붙였다. 몇 모금 깊게 빨며 연기를 내뿜던 어워드 할리 국장은 조용히 스티븐에게 말을 이어갔다.

“해커에 대한 정보가 최종 취합되면 스콜피온에서 처리할 거야.”

스콜피온이라는 말에 약간 놀란 보안팀장은 자기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심각한 상황이라는 것이 인지되었는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국장님. 보안담당부서 책임자로서 실수를 통감하고 있습니다. 최선을 다해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당연히 그래야 할 거야. 스콜피온까지 움직이게 되면 한국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까 말이야.”

스콜피온은 미국에서 비공식적으로 운영하는 암살조직으로 레인저와 델타포스 등 10년 이상의 경력을 가진 특수부대 출신과 정보기관의 요원 200여 명이 세계 곳곳에 활동 중이며, 미국의 국가 이익을 위해서라면 요주인물에 대한 암살은 물론 심지어 필요하다면 테러까지 일으키는 S급 암살조직이다. 이러한 조직을 움직이게 할 수 있는 고위관료는 미국 내 20여 명뿐이었고 아워드 할리 또한 스콜피온을 소집할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을 가진 관료 중의 한 명 있었다.

이번 제51구역 비밀문서 유출 해킹 사건에 스콜피온 조직이 맡게 되면서, 국가 간 정보기관의 협조와 공조로 해결하려는 게 아닌, 무차별적인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확실한 해결을 하고자 하는 아워드 할리 국장의 의지였다.

“오늘 저녁까지는 최종 보고서를 받아볼 수 있겠지?”

“네, 최대한 분석하여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알았어, 나가봐.”

스티븐이 문을 열고 나간 후 아워드 할리 국장은 시가를 재떨이에 비벼 끄며, 인터폰 1번을 누르며 말했다.

“항공우주국장 연결해.”

“네,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잠시 후, 미항공우주국(NASA) 국장 네이선 마이볼드가 전화를 받았다.

- 네이선 국장, 할리입니다.

- 네, 오랜만이군요. 할리 국장.

- 이번 해킹 사건에 대해 언론매체에 노출된 건 없으시지요?

- 그럼요. 뭐 좋은 일이라고. 외부로 알려지면 우리 역시 피곤해집니다. 그리고 내부 직원들 입단속도 철저히 하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그보다 보안팀 보고에 의하면 해킹범에 대한 단서는 찾았다고 하던데요?

- 해킹범에 대한 정보는 파악했습니다. 1주일 안으로 사건 종결시키려고 합니다.

- 그렇군요. 조속히 해결되었으면 합니다. 우리 쪽을 통해 침입했다는 게 매우 꺼림칙하고 난처한 상황입니다.

- 그래야지요. 그리고 당분간 항공우주국의 네트워크 연결은 없을 겁니다. 그럼 직원들 내부 단속 다시 한번 부탁드리고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래요. 다시 연락합시다. 할리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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