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화 (4/605)

새로운 국면

2015년 12월 1일 09:00,

서울시 종로구 청와대 국무회의실.

대한민국 19대 대통령 선거에 당선된 서현우 대통령은 19대 정부를 ‘쇄신 정부’로 정했다. 국가 내부 부조리 및 갈등 구조를 해결하는 혁신의 정부, 국민과 수평적, 쌍방향으로 소통하는 정부, 모든 국민에게 평등의 기회를 주는 희망의 정부를 지향하였다.

새로운 각 부의 장관들은 지역 타파 및 각계 전문성, 청렴성을 우선으로 하는 개혁적인 인사들을 두루 발탁하였으며, 국회의 인사청문회를 통해 큰 문제 없이 일사천리 진행되어 쇄신 정부의 국무회의가 시작되고 있었다. 기존에 몇 차례의 임시국무회의는 있었으나 공식적인 첫 정례국무회의는 오늘이었다.

국무회의실에는 대통령을 포함하여 국무총리, 각 부의 장관과 국정원장, 그리고 이번에 새로 신설된 국가비리암행원장 등 30여 명의 국가 고위관료와 수많은 취재진으로 인산인해를 이뤘으며, 이영호 국무총리의 주관으로 국무회의가 시작되었다.

“먼저 회의를 시작하기에 앞서 대통령님께서 앞으로 국정 정책에 대한 당부의 인사 말씀부터 하겠습니다.”

“반갑습니다. 한 달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인수업무로 바쁘셨을 텐데, 임명식 때 부탁드렸던 정부 운영정책에 따른 운영 계획까지 준비해 달라는 부탁 말씀에 일만 시키는 고약한 대통령으로 비칠까 걱정이군요. 허허허”

대통령은 딱딱했던 분위기를 조금이나마 풀고자 농담 섞인 말로 첫인사를 시작하며, 본격적인 정례국무회의 서막을 알렸고 이러한 영상들은 국내 및 해외 수많은 사람도 볼 수 있도록 생방송으로 편성되어 실시간 방송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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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2월 1일 13:00,

서울시 종로구 청와대 대통령 집무실.

“대통령님, 저번에 지시하셨던 10년 동안 국내 및 국외에서 발생했던 방산비리, 기업 비리, 국가사업 비리 사건에 대한 모든 리스트입니다.”

이번에 신설된 국가비리암행원의 안창길 원장이 정리된 서류를 대통령에게 보여드리며 말했다.

“생각보다 많군요. 이번에 초선의원으로 국회의원이 되셨는데, 저 때문에 이렇게 의원도 관두시고 일거리만 드리게 돼서 정말 죄송합니다. 안창길 원장님.”

대통령은 생각보다 많은 서류를 보면서 미안한 표정으로 안창길 원장을 쳐다보며 말했다.

“무슨 그런 말씀을요.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도리어 저에게 이런 기회를 주신 것에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국민의 혈세를 가지고 자기 자신의 이익만을 챙기는 국가적, 사회적 전반의 부정부패자 척결을 이 시대 저의 소명 과제라 생각하고 철저한 조사를 통해 죗값을 치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안창길 원장은 내심 속에서 끓어오르는 뭔가를 누르며 책임감과 의무감이라 생각하며 꼭 해내겠다는 진정성의 눈빛으로 대통령을 보며 계속 말을 이어나간다.

“그럼 앞으로 국가비리암행원에 대해 간단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국암원 조직은 총 5국 1실 12과로 구성되었고 현재 정상적인 활동은 암행조사국의 4과만이 모든 인원이 채용되어 운영 중입니다. 채용 인원들은 전 현직 검사, 경찰, 국정원, 군 수사 요원, 사회 각계 교수, 기자 등 다양한 직업군에서 첫째로 청렴한 인물들로 채용하였습니다. 현재 암행조사국 4과의 모든 팀이 조사 대상의 리스트 중 상위 10번까지 중점적으로 조사 및 증거 확보 등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다음 보고까지 암행수사국 4과를 통해 조사 대상자들의 신병확보 및 수사 진행을 1차 완료할 예정입니다.”

“말만 들어도 든든합니다. 그래요, 이젠 끝을 내야지요. 나라의 근간을 좀먹는 이런 부정부패자를 뿌리째 뽑아야 이 시대 대한민국이 새롭게 나갈 수 있습니다. 저 또한 이 정권에서 끝냈으면 좋겠습니다. 하하하, 저는 안창길 원장님만 믿겠습니다.”

“잘하실 겁니다, 안창길 원장님은요. 우리 비서실에서도 언제든 지원 요청만 하시면 최선을 다해 도와드리겠습니다. 사람이 없으면 저라도 가서 도와드리겠습니다.”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나성태 비서실장이 웃음 띤 얼굴로 안창길 원장을 보며 시원하게 말했다.

“이런, 나 실장! 그럼 나는 어떡하라고 그런 말을 하는 거요? 자네 없으면 나는 눈 뜬 봉사란 말일세. 내가 다른 건 다 지원해도 자네만은 안 되네! 하하하”

“아! 대통령님, 그건 제가 미처 생각 못 했군요. 하하하.”

대화로만 본다면 앞으로 대한민국이 발칵 뒤집힐 무거운 주제였지만, 분위기만큼은 화기애애함 속에 회의는 계속 진행되었다. 국가비리암행원 기관의 특징이라 하면 기존 감사원과 비슷하였지만, 감사원과는 다르게 독립적 사법권이 부여되었고, 이러한 사법권이 보장됨으로써 10여 년 동안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온갖 비리 사건들에 대한 재수사가 들어가자 이에 관련된 수많은 사람이 해외 도피 및 자금 세탁을 하려는 움직임이 보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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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2월 17일 17:00,

서울시 강북구 수유동 김인직 자취방.

술 냄새가 진동하는 작은 자취방, 김인직과 강경호는 어젯밤 종강 뒤풀이에 새벽까지 술이 떡이 되도록 마시고 새벽에 들어와 밤이 될 때까지 자고 있었다. 며칠 동안 잠만 잘 거 같던 김인직은 어젯밤 마신 맥주 탓에 실눈만을 뜨고는 좀비처럼 화장실로 직행했다.

김인직은 소맥의 뒤끝 때문에 머리가 아픈지 왼손으로 머리를 쥐어짜며 새벽에 어떻게 집에 들어왔는지 생각해봤지만, 전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소변을 다 보고 나서 시체처럼 축 늘어져 자는 강경호의 허벅지를 발로 툭툭 차며 물어봤다.

“경호야, 우리 새벽에 어떻게 왔냐?”

“몰라! 너 때문에 내가 새벽에 죽을 뻔했어. 아, 저 화상! 새벽일만 생각하면 콱! 깨우지 마!”

전혀 미동도 없을 거 같던 강경호는 몸을 휙 돌리면 신경질적으로 소리를 질렀다.

“뭐래, 이놈은? 아! 머리 아파.”

‘경호의 반응을 보니 나 때문에 새벽에 고생 꽤 한 거 같긴 한데, 뭐 그게 중요하리······.’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쭉 들이켠 다음, 다시 경호의 허벅지를 발로 걷어찼다.

“야, 일어나. 씻고 밥이나 시켜 먹자.”

강경호도 배는 고팠는지 김인직을 째려보며 몸을 일으켰다.

“밥은 네가 사는 거다?”

“알았어, 일어나 씻기나 해. 중국집 시킬 건데 너 뭐 먹을래?”

“크크크, 술 먹은 후 해장엔 짬뽕이지.”

“오케이, 나도 짬뽕!”

30여 분 후 짬뽕이 도착했고 둘은 작은 밥상에 마주 앉아 땀을 뻘뻘 흘리며 먹기 시작했다.

“역시 이 동네 중국집 짬뽕 국물은 내가 먹어본 짬뽕 중의 최고다. 아주 국물이 끝내줘요.”

“당근이지. 밥통에 밥도 있으니까 말아 먹어라. 짬뽕 귀신아“

“콜.”

한참 짬뽕에 밥을 말아 먹던 강경호가 김인직을 쳐다보며 물어봤다.

“종강도 했는데 이제 뭐 하냐? 과외, 알바?”

김인직은 군대 가기 전부터 방학 때마다 동네 고등학생들 과외 알바를 한 것을 알고 있기에 강경호는 자연스럽게 물어본 것이다.

“아마도?”

이번 종강 후에 뭘 할지 크게 생각해보지 않았던 김인직은 짧게 대답만 했다.

“난 뭐 하지? 너처럼 과외 알바는 성격상 못하겠고, 뭐 재미난 일 없나?”

순간 김인직은 경호의 말에 잊고 있던 제51구역 해킹자료가 생각난다.

“경호야, 너 나 믿지?”

뜬금없이 물어보는 말에 강경호는 뭔 소리냐는 듯한 표정으로 짬뽕 국물을 마시다가 눈을 치켜들었다.

“형인 내가 안 믿으면 누가 널 믿겠냐? 킥킥킥, 뭐 재미난 거라도 있냐?”

시큰둥 반 호기심 반 표정으로 대답했던 강경호는 짬뽕 국물까지 다 마시고는 브이 자로 만든 손가락을 입에 갖다 대며 담배 있냐는 손짓을 보냈다.

“이거 남들한테 절대 말하지 마라? 나 감옥 간다.”

“뭔데, 담배나 주고 말해.”

김인직은 책상 위에 있던 담뱃갑을 쥐어 들고서는 한 개비를 꺼내 입에 물고, 담뱃갑 통째로 강경호에게 던졌다.

“나, NASA 해킹 성공했다.”

“뭐? 아, 뜨거워!”

강경호는 건네받은 담뱃갑에서 한 개비를 꺼내 입에 물고 담뱃불을 붙이다가 김인직 말에 깜짝 놀라며 담배를 떨어뜨렸다.

“뻥치네! 너 2년 선배인 이동현 알지? 그 선배가 졸업 전에 NASA 해킹한다고 동아리 선배 몇 명이랑 1년을 개고생하다가 포기했어. 그런데 네가 성공했다고? 어디서 개 뻥 치고 있어, 콱!”

“정말이야. 그리고 더 중요한 건, NASA뿐만 아니라 51구역 보안 데이터망도 뚫어서 자료도 몇 개 받아 놨다. 벌써 2개월이 넘었다.”

순간, 강경호는 크지도 않은 눈이 빠지도록 크게 뜨고는 몸은 그대로 얼어버렸다.

“인, 인직아! 정말? 정말 성공한 거야? 왜 그걸 이제 말해 개놈아, 그럼 자료는? 지금 가지고 있어? 빨리 보여줘!”

얼어붙은 듯 몸은 미동도 없으면서, 속사포처럼 나불거리는 강경호의 입을 보면서 잊고 있었던 불안감이 엄습하며 괜히 말했나 후회감이 들었지만, 용기 내어 가방에서 USB를 꺼내어 강경호에게 보여주며 말했다.

“이거야, 여기에 제51구역 데이터망에서 내려받은 자료가 있다. 아직 나도 보지 않았는데······.”

강경호는 USB를 보자마자 손으로 낚아채 후 바로 자기 가방에서 노트북을 꺼낸 후 USB를 꽂으려고 했다. 이에 순간 놀란 김인직은 두 눈 크게 뜨며 말했다.

“야! 보려고?”

“그럼 안보냐? 안 볼 거면 뭐하러 받았냐? 너도 참, 어떻게 이런 걸 2개월 동안 안 보고 참고 살았냐? 이해가 안 돼, 이해가. 아무튼, 너 정말 대단하다.”

강경호는 신난 표정으로 노트북에 USB를 꽂고 바로 부팅을 했다. 모니터가 켜지고 마우스패드로 USB를 선택하고 해킹자료를 망설임 없이 클릭했다.

“와!”

강경호의 감탄에 김인직도 판도라의 상자가 궁금했는지 바로 옆에 다가와 모니터를 쳐다보다 자기도 모르게 입이 쩍 벌어지며, 두 눈은 휘둥그레졌다.

“이거 대체 뭐야? 장난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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