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화. 외전 2―3. 엔딩 이후의 세계 [163417414번째 소울라이크 용사편]
내가 얼마나 이 정신 나간 도전을 계속했는지, 정작 나는 잘 모른다.
왜냐하면 최초 시점으로 전생한 나에겐 언제나 그때가 첫 번째 도전이었으니까.
몇 번, 몇천 번… 몇억 번이나 시간을 되돌려서 재도전을 했든, 어쨌든 나는 언제나 첫 도전이었다.
흉마로 기억을 잃는 것과는 다르다.
일어났던 일을 까먹는 게 아니다. 겪었던 모든 일들이 ‘없었던 일’이 된 것이다.
그러니 진짜 첫 번째 도전이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네, 맞아요. 당신의 이번 도전은… 무려 2억 4025만 3464번째 반복된 도전이랍니다. 용사 박정용 씨.”
그리고 이번 생에서 나는 그 사실을 똥털… 미네르바에게 전부 전해 들었다.
분명히 첫 번째 도전인 게 분명한 내가, 사실은 몇 번이나 도전했다가 실패했는지. 그리고 그녀는 몇 번이나 그것을 옆에서 지켜봤는지.
내 240253464번째 이세계 생활이 시작되고, 하루도 지나지 않아서 벌어진 일이었다.
* * *
계기는 아주 단순한 것이었다.
“음? 이게… 뭐야?”
할센베르크 성 하수도에서 눈을 뜬 나는 곧장 소지품들부터 살폈고. 그중에 망자의 함도 꼼꼼하게 살폈다.
그러다 보니 짜잔. 함의 안에 웬 글씨가 닳아빠진 계약서 같은 것이 들어있는 게 아닌가.
“…이건… 계약서?”
나는 그것에서 미약한 의문을 느꼈다.
분명히 방금 전에 모험을 시작한 나였는데 어째서 이런 게 들어있는 것인가. 미네르바가 넣어놓고 깜빡한 것인가?
평소라면 그 가정에 넙죽 납득하고, 미네르바를 씹으며 넘어갈 나였겠지만.
“…….”
하지만 왜일까. 나는 그 계약서에서, 스스로가 놀랄 정도로 엄청난 위화감을 받았다.
위화감? 기시감? 뭐라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모르겠는데도, 그 계약서가 뭔가 중요하다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었다.
나는 결국 그 계약서를 꺼내서 유심히 살펴봤다. 걸레짝이 된 계약서는 글자가 다 해져서, 내용은 알아볼 수 없다.
“…어?”
하지만 단 한 가지는 선명하게 남아있었다.
피로 찍은 지장. 그리고 싸인. 굉장히 익숙한 사인이다.
당연하지. 내 사인이니까. 이번 생에는 무려… 내 사인이 선명하게 계약서에 남아있었다.
미네르바 말로는, 2억 번이 넘는 전생 중에서 처음 있는 일이란다.
“드디어. 이제야 그걸 알아보시네요. 정말… 당신처럼 눈치 없는 사람은, 2억 번을 넘게 반복해도 본 적이 없어요.”
내 의문이 최고조로 달한 그 순간, 화룡점정을 찍으려는 것인지, 미네르바까지 내 눈앞에 튀어나왔다.
“자, 그게 뭘까요. 궁금하죠? 궁금하잖아요! 빨리 추측한 바를 말해보세요!!”
그녀는 전에 없이 들뜬 표정으로 내게 들러붙었고. 당황하는 나를 더욱 몰아붙였다.
기대하는 걸 넘어서, 광기까지 느껴졌다.
“빨리요. 말해보시라고요! 당신이 먼저 알아채지 않으면, 나는 아무 말도 못 한다니까요!!”
무슨 고백받길 기다리는 소녀처럼. 답답함에 얼굴을 붉히고 다리를 안절부절못했다. 지켜보던 내가 다 불안해질 정도로 어떤 강렬한 기대에 찬 시선이 쏟아졌다.
결국 나는 뇌 정지가 왔다. 되는 대로 아무런 말이나 마구 내뱉어 보기 시작했다.
“무, 무슨 다단계 계약서 같은 거 나한테 떠넘긴 거 아니지?”
“아니에요.”
“호, 혹시 내가 알아야 할 나머지 계약 조건이 이거였다던가?”
“아니에요. 다음!”
“…혼인계약서? 너 나랑 결혼하고 싶구나?”
“아 진짜! 뒤지기 싫으면 개 같은 쌉소리 하지 말고요 좀! 빨리 다음! 다음 걸 말해보세요!! 빨리!!!”
솔직히 개무서웠다. 그 희번득한 눈빛에는 오줌을 지릴 뻔했다.
그래서 열심히 추측한 바를 이것저것 내뱉었다. 그냥 되는대로 아무 말이나 내뱉다 보니 대답하는 미네르바도 지치고, 나도 점점 지쳐갔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나는 대답을 반복하다 보니 스스로 점점 깨달았다.
“…그래. 망자의 함은… 나밖에 쓸 수 없고. 그렇다는 건, 분명 내가 넣어놓은 게 맞다는 소리인데…….”
하지만 나는 망자의 함을 방금 전에 처음 받았다. 그러면 이건 무슨 소리냐.
처음 받은 게 아니라는 거다. 아니, 정확히는… 나 이전에, 또 다른 박정용이 이것을 썼다는 소리다.
나는 가장 터무니없지만, 그렇기에 지금 상황에 가장 현실성 있는 가정을 천천히 내뱉었다.
“나. 설마… 이세계 생활이, 이번이 처음이 아닌 거냐?”
미네르바는 그 말만 기다렸다는 듯이, 고개를 마구 끄덕였다.
그리고 격정에 못 이겨 나를 와락 끌어안았다.
“설마, 당신이… 이렇게나 빨리 그것을 눈치채다니.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정말 이런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는데……!”
2억 4025만 3464번째 이세계 생활을 처음 시작하는 용사 박정용. 그리고 그것을 2억 4025만 3464번째 지켜본 아신 미네르바.
그녀는 내게 그것을 말해주며, 진심으로 기뻐했다. 그야말로 울 것 같은 얼굴을 하며 히죽거렸다.
“허. 허허. 허허허허허…….”
나는 미네르바가 기다렸다는 듯이 줄줄 밝혀주는 진상을 들었고. 헛웃음을 흘렸다.
나란 새끼는 2억 뭐시기 번째 도전해서야, 망자의 함에 들어있던 해진 계약서의 의미를 눈치챌 수 있었다. 2억 번 넘게 도전해서야 겨우 한 발자국 진보한 것이다.
진짜 어마어마한 새끼지 않냐. 나도 이런 내가 놀라워.
“…왜, 그렇게까지 기다려준 거야?”
아직 제대로 실감이 들지 않는 와중. 나는 문득 그것이 궁금해져서 미네르바에게 물었다.
나야 새로 도전할 땐 언제나 기억이 삭제되니 그렇다 치는데. 미네르바는 그 2억 몇 번째 도전을 전부 기억하고 있다.
“아무리 아신이라지만 그 정도면 너무 길잖아.”
도전할 때마다 내가 리타이어하는 구간이 달랐다고 하니, 기간은 천차만별이겠지만. 도전 한 번마다 평균 1년으로 잡아도 최소 2억 년이다.
애기 공룡 둘리냐고 ×발. 타임 코스모스 성능 확실하구만?
“내가… 가장 최초의 당신과 약속해 버렸거든요.”
그리고 그에 대한 미네르바의 대답은 그것이었다.
어딘가 아련한 눈빛으로, 특유의 울 것 같은 미소를 띤 채. 그녀는 중얼거렸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내가 해피 엔딩을 만들 거니까. 그걸 지켜봐 달라고. 당신은 그랬어요.”
“…허어.”
“솔직히 금방 포기할 줄 알았어요. 그래서 받아들인 거죠. 하지만 당신은 언제나, 무슨 일이 있어도. 절망의 끝에 도달한 순간엔… 시종일관 같은 말을 내뱉었어요. 2억 번이 넘게 말이에요.”
다시 돌아가게 해달라고.
이번에야말로 내가 제대로 해볼 테니까. 사실 지금까지 힘을 숨기고 있었으니까. 다음엔 진짜 잘될 거라고.
“정말, 질리지도 않고. 당신은 원래부터… 그런 사람이라는 듯이.”
그러니까… 나는 아직 포기하지 않을 거라고.
2억 번을 넘게 그렇게 말했다고 한다.
“우리 아신들은 인간과 약속하면 반드시 지켜야 해요. 그래서… 난, 지금 그 약속을 지키고 있는 거예요.”
그리고 미네르바는 내 앞에서 사라지기 직전, 이런 말을 남겼다.
“제 기대와 기다림을 헛되게 하지 말아 주세요. 당신이 만들어낸 최고의 결말을 보고 싶어요. 그래서 지금까지 참고 기다린 거니까요.”
나는 그 말의 무게에 짓눌려서 아무 말도 못 했다.
그저 고개만 무겁게 끄덕였다.
* * *
그리고 닥쳐오는 무수한 역경과 고난을, 모두의 힘과 유대로 함께 극복한 결과.
나는 최선의 엔딩을 맞이하는 데 성공했다!
“디, 디아나… 나는, 나는……!”
한수호는 외마디 비명과 함께 내 앞에 쓰러졌다. 그리고 그런 내 옆에는 지금까지 함께했던 모든 동료들이 서있었다.
나는 세상 억울한 표정의 한수호에게 말한다.
“사랑의 힘을 모르는 당신이 불쌍해욧!”
루시도 죽지 않고. 알드콘도 스칼로도, 설백도 세스나도, 제나와 제논도, 그리고 나도. 아무것도 잊어버리지 않은 채, 누구도 희생할 필요가 없었다.
그야말로 내가 바라던 최고의 이상향이… 내 앞에 드디어 펼쳐졌다!
“크으… 길었다. 정말 너무 힘든 여정이었어!”
나는 감동에 젖어 중얼거렸고. 주위를 슬쩍 둘러봤다.
내 이세계 일생의 일행, 지인, 동료, 소중한 사람들이 나를 둘러싸고 서있다.
어디선가 환호성이 들려오고, 그들은 미미하게 웃으며 내게 박수갈채를 보내고 있었다.
“축하해요.”
레이라가 희미한 미소와 함께 박수를 치며 말했다.
“축하한다.”
그윈이 박수를 치며 멋쩍은 듯이 말했다.
“축하하네.”
할센베르크 변경백이 박수를 치며 인자하게 말했다.
“축하해요, 아저씨!”
타라가 박수를 치며 해맑게 말했다.
“축하한다.”
“축하해요, 오빠.”
제논과 제나가 각기 박수를 치며 앞다투어 말했다.
“축하하네, 정용 군.”
적랑이 박수를 치며 툭 내뱉듯이 말했다.
“축하해, 정용.”
카르할라스도 적랑 옆에서 박수를 치며 샐쭉 웃었다.
“축하해요, 정용 님!”
“축하해요, 정용 님!”
설백과 세스나가 리듬에 맞게 박수를 치며 동시에 말했다.
“축하한다, 용사!”
그리고 루시 역시 박수를 치며 당당하게 말했다.
“축하해요, 후후.”
마지막엔 미네르바까지 등장. 박수를 쳐주며 대견하다는 양 말했다.
나는 그 환호와 기쁨의 현장 한가운데서 감상에 젖어 온몸을 바르르 떠는 한편.
“…음?”
굉장한 기시감과 위화감을 받았다.
받아버렸다.
‘이 구도. 이 광경. 왠지 너무 익숙한데.’
아, ×발. 그랬구나. 그런 거였군. 이거 꿈이구나.
그래, 지금 내가 해야 할 대사를 직감적으로 눈치챘다.
나는 생체 병기 초호기를 모는 일본의 중학생 누구인 양. 슬픈 듯이 웃으며 그들에게 화답했다.
“고맙다. ×발.”
루시, 고마웠다.
미네르바, 안녕히.
그리고 이 파라이소 대륙 모든 이들에게,
축복을.
* * *
…….
…….
…뭐, 여기까지가 박정용의 꿈속 십덕 망상이었고.
당연히 그렇게까지 드라마틱하고, 해피 엔딩스럽고, 정석적인 흐름으로 이야기가 흘러가진 않았다.
“으허허… 역시, 나야… 으음…….”
240253464번째 전생인 지금. 박정용은 백검의 성당 공중정원 한가운데 자빠져 자는 중이었다.
가끔씩 혼자서 알아먹지 못할 말을 중얼거린다.
“…하, 한 명씩… 어허… 새치기… 하지 말그움…….”
잠꼬대를 굉장히 실감 나게 한다.
꿈속에서는 문자 그대로 ‘꿈에도 그리던’ 모두가 행복한 엔딩을 맞은 박정용이, 모두에게 둘러싸여 박수를 받는 중이었다.
무수한 악수 요청에 어찌할 바를 몰라 하고 있었다.
“굉장히 역겨운 표정이군.”
“에이, 오빠. 아무리 사실이라도 그렇게 말하면 안 돼.”
지켜보던 제논과 제나가 한마디씩 한다.
적어도 박정용의 꿈이 아주 허무맹랑한 것은 아니었다. 어느 정도의 현실은 반영되어 있었다.
“으음… 음냐.”
박정용은 실제로 망자의 함에 들어있던 계약서의 정체를 이번 생에 최초로 간파했다. 그걸 계기로 미네르바에게 여러 조언을 받아, 전생들보다 훨씬 체계적으로 움직였다.
그 증거로 버젓이 살아있는 제나와 제논이 잠든 박정용의 옆에 있었고. 세스나나 설백, 알드콘과 스칼로, 그리고 루시와 미네르바까지.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로 박정용을 지켜보는 상태였다.
한수호와의 최후의 전투는 끝났다.
일행과 함께 싸운 그는 훨씬 적은 목숨의 희생으로, 거의 기억을 잃지 않은 채 한수호를 꺾었다.
“용사 놈. 대체 무슨 꿈을 꾸고 있는 게냐?”
루시가 상체를 배배 꼬며 중얼거렸다.
그녀는 무릎을 꿇고, 박정용의 머리를 자기 허벅지 위에 올려놓고 있었다.
박정용이 잠꼬대로 머리를 자꾸 움직인다. 그 자극으로 그녀까지 움찔거리고 있는 것이다.
“가, 간지럽다. 그, 그만 좀 꿈틀대란 말이다 용사 놈아…!”
루시가 붉어진 얼굴로 인상을 한껏 찌푸렸다.
그녀는 박정용을 내려다봤고. 이내 눈가에 옅은 연민이 스쳤다.
“쓰러지기 전까진… 그렇게 진지하던 놈이. 아까랑 같은 사람 맞는 게냐?”
박정용은 진짜로 동료들의 희생 없이 종극에 도달하는 데 성공했지만. 결국 최종적으로 루시의 희생을 막는 것은 불가능했다.
여전히 디아나의 옥좌는 누군가 계승해야만 하는 게 현실이었고. 박정용이나 루시, 둘 중 하나의 희생이 없이는… 이 세계는 존속할 수 없다.
“…인정 못 해. 다시 한번 처음부터 시작할 거야.”
그래서 박정용은 결국 이번 결말도 부정했다.
단호한 눈과 어조로, 모두의 앞에서 당당하게 말했다.
박정용은 디아나의 기억 속에서 읽어낸, 한수호의 다짐을 그대로 내뱉었다.
“모두 나를 믿고 기다려줘. 나는 불사신이다. 용사님이라고. 불가능은 없어.”
하지만 이번만큼은 전번 회귀들과는 무언가 달랐다.
전처럼 막무가내로, 아무런 근거도 없이 도피하듯 회귀하는 것이 아니었다.
처음부터 미네르바에게 모든 전말을 전해 들었기에, 박정용은 한 가지 단서를 쥔 상태였다.
“계승식과 계승자가 필요한 이유는, 이 세상을 지탱하던 여신이 죽었기 때문이야. 아신들에게 직접 들었으니 이건 확실해.”
그래서 그가 내놓은 해답은 바로 이것이었다.
“그러니까… 다음 생에서부터는, 여신을 부활시킬 방법을 찾는 모험을 할 거야.”
그렇다. 다음 이세계 생활은 목표부터가 달라진다.
계승의 그릇인 루시를 지키는 까마귀로서의 삶을 버려버린다. 그리고 프로피샤 여신이 부활해서, 계승식 자체가 필요 없는 세상으로 만들 방법을 찾는다.
“무려 여신을 살해하는 방법도 있었잖아. 부활시키는 방법이라고 없으라는 법이 있어?”
확실하지도 않고 극히 희박한 가능성이지만. 가능성이 있다면 그에겐 다시 시작할 가치가 충분했다.
그 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다시 한번 최초로 돌아간다.
“잠깐만 좀 쉬자. 좀 쉬고. 이제부터, 또다시 시작할 거야.”
그걸 위해서 망자의 함에 다음 생의 자신에게 보내는 메시지도 이미 준비했다. 각양각색의 방법으로, 240253465번째 자신을 위한 메시지를 욱여넣었다.
그리고 지금은 루시의 무릎 위에서 세상모르게 자고 있다. 이 얕은 잠에서 깨어나면… 박정용은 곧장 모든 것을 리셋시키기 위해, 미네르바와 새로운 계약을 맺을 것이다.
“진짜, 바보 같은 놈이로구나. 나는 괜찮다고 누누이 말했는데…….”
사실 루시는 박정용의 결정을 한사코 만류했다.
지금까지 박정용과 함께했던 여행을 모두 없던 일로 만들기 싫었다. 그럴 바엔 차라리 자신이 희생하는 게 나았다. 진심으로 그녀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박정용은 그런 루시의 머리를 거칠게 쓸어넘겼다. 그리고 말했다.
“다음 생에도 나는 무조건 너를 먼저 찾아갈 거다, 루시.”
“그, 그걸 어떻게 확신하느냐.”
“2억 번을 넘게 나랑 함께 했다잖아. 그냥 그럴 팔자야. 운명이라고.”
“…으. 으으. 그, 그게 무슨 궤변이냐! 말도 안 되지 않느냐!”
“아무 걱정하지 마. 지금보다 2억 배는 즐거운 너로 만들어 줄 테니까. 나를 믿어.”
막간에 그런 말을 진지한 어조로 들어버리자, 합죽이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 말을 당당하게 해버리면 대꾸해줄 말이 없다. 반칙 아니냐. 루시는 씁쓸하게 웃으며 박정용의 머리카락을 가만히 쓸어넘겼다.
“루시 씨. 정용 님이 자꾸 히죽대는데요?”
그러자니, 옆에서 세스나가 한 마디 불쑥 끼어들었다.
그 말대로였다. 박정용은 루시의 무릎에 코박죽을 한 채 기분 나쁘게 실실거리는 중이었다.
“우효옷……! 쿄효효효.”
순간 헤벌레한 표정이 야속해진 루시.
볼따구를 시원하게 꼬집어줄까 하는 생각이 울컥 들었지만. 이내 빙그레 웃으며 중얼거렸다.
“내버려 두거라. 뭐… 좋은 꿈이라도 꾸고 있지 않겠느냐.”
IF엔딩 (3) ― 마왕님 이새끼 웃는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