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3417413번째 소울라이크 용사-291화 (267/280)

291화. 외전 1―13. 메모리 오브 위치 (13)

수많은 악전고투, 신성국의 필사적인 방해를 물리치고, 미증유의 끔찍한 괴물에게서 살아남은 한수호와 친구들.

그들이 도달한 진상은 이런 것이었다.

“프로피샤 여신은… 이미, 한참 전에 죽었다?”

여신은 이미 죽었다. 그 주검이 이곳, 백검의 대성당 깊은 지하에 숨겨져 있었다.

그리고 이 파라이소 대륙은 프로피샤 여신의 것. 그 여신이 죽은 지금. 프로피샤 여신이 관리하던 이 세상의 수명도, 이미 다됐어야 했다.

마왕군이 추방되어 살던 아무것도 없는 무의 땅. 제4계인 마계처럼 되었어야 했다.

“여신의 마지막 숨통은, 인간들이 직접 끊었다는 듯하다.”

이 세상을 최초로 통일했던 신성국이 건국될 때. 슈엘츠 수뇌부는 여신을 이 세상에 강제적으로 현현시켜, 직접 살해해 버렸다.

왜냐고? 간단하다. 그들은 살고 싶었기 때문이다.

“여신은 불완전한 이 땅의 인간들을 모조리 멸하고, 더 완전한 세계에서 더 완전한 종족을 이 재창조하려 했다…라고 적혀있다.”

그래서 그것을 깨달은 신성국 교황청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여신을 이 대륙에 강제로 현현시킨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살해했다.

“잊힌 신들의 마법. 말 그대로 신들의 마법을 사용했다고 한다. 지금은 기록은커녕 존재 자체도 잊혔다만.”

그리고 죽인 여신의 유해를 갈기갈기 찢어 대륙의 정중앙, 백검의 성당에 봉인. 그 유해에 깃든 힘을 사용해 이 땅의 수명을 강제적으로 연장했다.

한수호는 듣다 못해 경악에 차서 물어봤다.

“아니… 그, 그건, 이상하잖아. 그러면 여기 기사단이 사용하는 신성 마법이니… 축복이니 회복이니 하는 건 뭔데. 그게 여신이 존재한다는 증거 아니었냐?”

그에 대한 마왕 헬릭스의 대답은 이렇다.

“신성 마법. 축복과 축성. 전부 이 세계의 인간들이 원래 가지고 있던 힘일 뿐이다.”

“원래 가지고 있는 힘?”

“그래, 여신 같은 건… 아무 도움도 준 적 없다. 건국 시절부터 교황청의 선동으로 그렇게 믿게 만든 거겠지.”

너희 그냥 해골 물 존나게 빨고 있었다고, 이 원효대사 꿈나무 새끼들아. 마왕의 말을 요약하자면 그런 소리다.

그러자 이번엔 디아나 쪽에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 하지만 성녀 언니는? 그 언니는 진짜 예언자였어, 아저씨. 이 대륙에 재앙이 일어날 걸 항상 진짜 미리 알아챘다고.”

그럼에도 ‘프로피샤의 성녀’라 불리는 루나 루에바가 예언을 할 수 있는 이유? 그건 확실히 여신과 관련이 있긴 했다.

이미 죽어버린 프로피샤 여신의 주검이 흘려대는, 증오와 원념에 찬 사념파. 저주를 담은 폭언 같은 것이었다.

“그러니까… 예언을 하는 게 아니라, 통보를 하는 거였다?”

통보를 하고, 이 땅에 자신이 직접 저주를 내린다.

자신을 죽인 증오스러운 인간들을 몰살시킬 만한 대재앙을 일으킨다.

여신 살해 후 지금까지 일어났던 이 세계의 모든 위기. 그것들은 다름 아닌 여신의 사체가 발생시켰다.

“다시 말하면, 지금 일어나고 있는 무지막지한 재앙의 괴물 역시…….”

마왕은 거기까지 거침없이 말했다가 말을 아꼈다.

죽어버린 여신의 최후통첩이자, 피할 수 없는 최후의 저주. 그것이 공허로 가득 찬 괴물들의 정체다.

말은 삼켰지만 다음 내용은 나조차도 짐작이 가능했다.

“프로피샤 여신이, 인간을 몰살하려 들던 메인 빌런이었다?”

참고로 이건 미네르바가 내게 맨 처음 해줬던 설명과는 굉장한 차이가 있는데, 그 여자는 500년 후 시점에서, 후대 인간들이 배우는 역사를 그대로 내게 말해줘서 그렇다.

똥털은 천계의 불문율인가 뭔가 때문에, 나한테 정보를 주는 데도 제약이 있으니까.

‘이 세계의 역사는 하나부터 열까지 새빨간 거짓말이다.’

언젠가 적랑이 내게 그렇게 말했지.

그랬던 그조차도, 아마 이런 디테일한 진상까진 알지 못했을 거다. 이건 이제 진짜 파라이소 대륙에서 나만 아는 특급정보다.

“그러면… 이제 어째야 하나?”

한수호는 모두의 심정을 대표해서 말했고, 당연히 한동안 침묵이 깨지지 않았다. 그렇게 당장은 아무도 결론을 내지 못한 채 발길을 돌렸다.

하지만 오랜 시간 동안 디아나가 여신의 유해를 연구하고, 마왕이 슈엘츠의 잊힌 신화시대 문헌을 해석한 결과.

공허 괴물의 재앙을 멈출 방법이 딱 한 가지 도출되었다.

“이 세계가 처음 구성될 때, 여신이 극도로 경계하며 봉인했다고 하는 네 마리의 괴물이 기록돼 있더군.”

단순한 무력만 놓고 따지면 그것들은 고룡 이하의 존재들이었다.

하지만 여신은 파라이소 대륙에 고룡을 활개 치도록 방치했음에도, 그 괴물들만은 이 세계의 동서남북에 영원히 봉인해 놨다고 한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모두의 귀추가 주목된 가운데, 마왕은 답했다.

“이 세계에 현현한 여신을 완전히 소멸시키는 힘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여신은 공포에 못 이겨 그 괴물들을 잊힌 신들의 마법으로 봉인했다.”

지금 재앙을 일으키는 것은 여신의 잔해에 남아있는 원념과 분노다.

그러면 그 원념과 증오조차 남지 않도록, 완전히 여신의 유해를 세상에서 소멸시켜 버리면 된다.

그 봉인된 괴물들을 물리쳐서 그 힘을 흡수한 다음, 주검을 소멸시켜야 한다. 그것이 마왕과 디아나가 동시에 내린 결론이었다.

“괴물들의 이름은…….”

북쪽엔 세계를 먹는 뱀 ‘요르문간트’.

서쪽엔 우주를 유영하는 자 ‘베히모스’.

남쪽엔 추방된 용 ‘레비아탄’.

동쪽엔 타락한 은자 ‘펜니르’.

“다만 이럴 경우 한 가지, 심각한 문제가 생기지.”

여신의 유해를 잊힌 괴물들의 힘으로 소멸시킨다 치자. 하지만 그러면 당연히, 여신의 유해로 간신히 유지되던 이 세계가 그 즉시 멸망한다.

한수호는 그 말을 듣고 눈을 부릅떴다. 한참 후에야 가까스로 물었다.

“즉시 멸망한다는 건. 정확히 어떻게 된다는 소리냐?”

“들은 그대로다. 이 땅 위에 발붙이고 있는 모든 생물이 한순간에 소멸한다. 흔적도 없이.”

“…그게 뭐야.”

“여신은 이 땅 위의 모든 생물의 주인이다. 주인이 떠난 집에 소유물이 남아있는 것도 이상하지 않나.”

“…가불기네, ×발.”

이미 수명이 끝나버린 이 세상을 유지하기 위해선, 갈기갈기 찢어진 여신의 시체가 필요하다. 하지만 재앙을 멈추기 위해선 여신의 시체를 없애야 한다.

거기서 마왕 헬릭스는 한마디를 추가했다.

“네 주인인 디아나 에스파다. 그리고 우리 마왕군도 마찬가지다. 추방당했다곤 하나 원래 파라이소 대륙의 원주민이었지. 소멸은 피할 수 없다.”

“디아나가 소멸하면, 당연히 나도 죽겠지?”

“그렇겠지. 네놈은 그 디아나 에스파다의 소유물이니.”

어떤 선택을 하든 인류의 멸망을 피할 수 없는 딜레마.

한수호는 그것을 깨달았는지 연신 헛웃음을 흘려대기 바빴다.

“…….”

하지만 디아나는 웃지 못했다. 한수호의 눈치를 보느라 바빴다.

디아나의 유아적인 사고로도 충분히 안다. 지금 자기가 생각하는 바를 그대로 말하면… 아빠는 분명 엄청, 어어엄청나게 노발대발 화날 거라는 것을.

“내가 할게, 아빠.”

하지만 그럼에도 디아나는 큰맘을 먹고 손을 번쩍 올렸다.

“…뭐?”

한수호는 갑자기 튀어나온 알 수 없는 말에 눈을 치켜떴다.

시선을 마주친 디아나는 흠칫 몸을 물렸지만, 이내 눈을 질끈 감고 말했다.

“내가 할 수 있을 거 같아. 여신님… 시체를 대신하는 거.”

* * *

이 시대에는 미네르바나 사신 자매 같은 아신들의 파라이소 개입이 훨씬 빡셌다고 한다. 그래서 디아나는 신 이상의 능력을 행사하는 유일무이한 존재였다.

그녀는 이미, 여신의 사체에 걸린 대규모 마법의 구조를 분석하는 데 성공한 상태였다.

‘이 마법… 왜지. 우리 일족의 마법이랑 너무 비슷해.’

신성국 사제들의 신성 마법은 여신의 유해에 걸린 마법과 완전히 다른 구조였다.

그런데 이 잊혔다는 신들의 마법은, 아이러니하게도 디아나의 흑마법과 굉장히 구조가 유사했다.

‘아마도, 잘하면 새로 덮어쓸 수 있을 거 같아.’

왜 그런지는 디아나조차 모른다. 하지만 디아나에게 그런 건 중요한 것이 아니다.

구조를 이해했다. 그러니 자기가 새로 만들 수도 있다. 지금 디아나에게 중요한 것은 그것뿐이다.

그 때문에 그녀는 멸망을 막을 방법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걸 위해선 무슨 짓을 해야 하는지도, 잘 알고 있었다.

“내가 여신님의 시체를 대신해서, 세상을 지탱하면 돼. 나는 엄청 짱세, 아빠. 분명 아무 문제도 없이 대신할 수 있을 거야! 히히.”

디아나는 일부러 밝게 웃는 얼굴로 그렇게 말했다.

디아나는 지금껏 사랑하는 아빠에게 거짓말을 해본 적이 없다. 아빠가 루스티카일 때도, 한수호일 때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지금 처음으로 했다. 가슴이 타는 듯이 따끔거리지만 참았다.

‘이래야… 아빠를 살릴 수 있어.’

디아나는 이미 알고 있다.

자기는 절대 저 술식의 매개체 역할을 완벽하게 대신하지 못한다. 많이 삐걱거릴 테고, 엄청나게 아플 거고, 점점 망가지다 결국은 부서지겠지.

이미 전부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아무 문제 없다는 양, 해맑게 웃으며 말하는 것이다.

“디아나……!”

한수호를 비롯한 마왕군 일동이 놀란 얼굴로 디아나를 쳐다봤다.

좋아, 다 속는 분위기다. 모두의 얼굴에 희망이 어리기 시작했다. 역시, 아빠는 눈치도 없는 바보니까. 이 말에 속아줄 줄 알았어.

디아나가 뿌듯한 기분에 어깨를 으쓱이는 그 순간.

“그거 거짓말이지, 디아나.”

청천벽력 같은 한마디가 한수호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디아나는 심장이 튀어나오는 줄 알았다. 그래서 동요를 미처 숨기지 못했다.

“어, 어?! 무, 무슨? 웬 거짓말? 내, 내, 내가 왜? 아빠한테 거, 거짓말을 하겠어. 아하, 하하하…….”

허둥지둥 변명했지만, 슬쩍 한수호를 쳐다보니, 그는 이미 디아나가 거짓말을 한다고 확신하는 표정이었다.

디아나는 결국 입을 꽉 다물고 시선을 피했다. 그런 디아나에게 성큼성큼 다가간 한수호가 다그치기 시작했다.

“정말로 할 수 있어? 네가 저 여신의 시체를 대신해서, 이 세상을 유지한다고?”

“으, 응. 진짜라니까. 난 아빠보다 훨씬, 훨씬 대단하다고. 왜 안 믿는 거야, 바보 같은 아빠…….”

“그렇구나. 정말 가능하구나.”

한수호는 납득한 양 고개를 주억거렸다. 디아나는 안도의 한숨을 흘렸다.

그리고 직후. 한수호의 말투가 한층 더 날카로워졌다.

“그러면 ‘아무 문제 없이’ 쪽이 거짓말이겠네.”

“…아, 아아?!”

“네가 다치거나, 아니면 어떤 고통을 받아야 하는 거냐?”

“그, 그건… 아, 아니……?”

“알겠다. 더 말 안 해도 돼.”

한수호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고, 이내 디아나의 말을 가로막았다.

한수호는 전에 없이 서슬 퍼렇고 싸늘한 어조로 말했다.

“네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든. 난 무조건 반대한다. 타협은 없어.”

“아니… 아, 아빠! 하지만… 방법이 이거밖에 없어!”

“하고 싶으면 맘대로 해. 근데 우선 나부터 죽여야 할 거다, 디아나. 내 눈에 흙이 들어가지 않는 이상, 내가 가만있을 리가 없거든.”

“……!!”

스르릉. 한수호는 멸망의 대검을 꼬나쥐고 디아나에게 겨누었다.

디아나는 심장이 도려내지는 듯했다.

“아, 아빠……!”

겨누어진 칼날 때문이 아니다.

그 칼날보다 훨씬 날카롭게 빛나는 시선. 필사적이고 절박한 한수호의 시선 때문이었다.

“네가 괴로워야 유지되는 세상 따위. 지옥이랑 다를 게 뭐냐.”

“아빠, 그, 그런 거 아니야. 나는 괜찮아. 정말이야!”

“족까, ×발. 내가 안 괜찮아. 그런 세상은 내가 용서 못 해.”

“아빠……!”

파지지직!

별안간, 한수호의 주변으로 시커먼 스파크가 치달렸다. 동시에 화르르, 그의 증오와 격노를 표상하듯 검붉은 화염이 일렁거렸다.

디아나는 저도 모르게 아, 하고 탄성을 흘렸다.

‘어… 아, 아빠가 저걸 어떻게?’

멸망의 화염.

물속에서도 타오르는 지옥의 불꽃을 일으키는 마법. 디아나가 돌발 상황 때 한수호를 지켜주기 위해, 멸망의 대검에 각인해 놓은 비장의 마법이었다.

푸화악! 대검에서 쏟아진 불꽃이 점점 강렬해진다. 어두운 공동이 새하얗게 명멸할 정도다.

“네 희생으로 세운 평화 위에서, 아무것도 모른 채 웃고 울고 떠드는 세상 사람들? 하, ×발. 그딴 꼬락서니를 손놓고 지켜보라니. 그딴 족같은 세상은 내가 박살 내고 만다.”

여기서 문제는, 디아나는 그 마법의 사용법을 한수호에게 가르쳐준 적이 없다.

한수호가 죽음을 반복하며 쌓은 막대한 흉마. 붕괴 직전까지 망가진 인간성. 그에 비례해 괴물처럼 날카로워진 본능.

그것들이 한수호에게 직접 사용법을 속삭여 준 결과였다.

“너희들 들으라고 하는 말이야, 개새끼들아.”

철컥. 불현듯 한수호는 중얼거리며 뒤를 돌아봤다.

한수호에게 당장이라도 달려들 자세를 취하던 마왕군. 그들이 일제히 흠칫거리며 자세를 낮췄다.

하나같이 전투태세를 취하고 있다.

“왜. 디아나 구슬려서 여신 대역을 시키려고?”

그 모습에 한수호는 가소롭다는 듯이 조소를 머금었다.

“어딜, ×발. 내가 살아있는 한 어림도 없어. 한 발짝도 접근하지 마라. 죽여버린다.”

스파크와 화염을 두른 한수호가 천천히 그들에게 다가간다.

마왕 헬릭스는 인상을 있는 대로 찌푸렸다.

“용사, 마음은 이해한다만… 지금은 어리광에 어울려줄 시간이 없다. 디아나 에스파다의 제안을 들어야 한다.”

“흐하하하! 이해는 ×발.”

한수호는 미친놈처럼 광소를 흘렸다.

화르르! 한수호가 곡예하듯 검을 허공에 휘두른다. 불꽃이 잔상처럼 유려하게 검의 궤적을 쫓았다.

“너희는 날 이해 못 해. 절대로.”

화염이 긁고 지나간 그 너머.

귀기 어린 한수호의 붉은 시선이 아른거린다.

“10년 전처럼 만만하진 않을 거다, 마왕.”

마왕군과 한수호가 격돌한다.

투콰아앙! 콰콰쾅! 어두운 공동에 마법이 쏟아지고 화염이 거칠게 폭발한다.

“으욱… 아빠… 그, 그만해애……!”

그리고 디아나는 멀찍이 서서 하염없이 훌쩍거렸다.

나를 위해서 저렇게까지 해주는 아빠의 마음이 기쁘다. 너무 기뻐서 죽을 것 같다.

그래서 죽을 것처럼 슬프다. 아빠를 살리기 위해, 저런 아빠의 마음을 배신해야 한다는 현실이.

루스티카와 헤어질 때도 이렇게 슬프진 않았다.

“크아아아아!!”

카아앙! 채애앵!

상처 입은 짐승 같은 괴성. 그리고 금속음이 울렸다. 그들의 싸움은 꼬박 하루에 걸쳐 이루어졌다.

그 너절하고 처절한 싸움 끝에 최후까지 서있는 사람은, 한수호였다.

“흐으… 후우… 흐흐, 새꺄. 내가, 말했지. 그때 같진 않을 거라고.”

마왕군 군단장들은 죄다 뻗었고, 마왕 헬릭스 본인은 한수호의 발 아래 머리를 밟힌 채 움찔거렸다.

죽은 이는 하나도 없었다. 한수호는 본인이 좀 더 죽는 것을 감수해서라도, 그들을 모두 죽이지 않고 전투를 끝냈다.

이유는 평소와 똑같다. 디아나가 그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봐. 정의가 승리했다, 디아나.”

털썩. 한수호는 마왕의 등 위에 주저앉으며 말했다.

하루를 내내 울던 디아나가 퉁퉁 부은 눈으로 한수호를 쳐다봤다. 한수호는 지친 눈으로 멍하니 바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걱정하지 마. 내가 어떻게든 해놓을 거야.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내 목숨을 걸레짝처럼 바쳐서라도.”

자신에게 다짐하는 듯한 목소리.

한수호는 그런 말을 홀린 듯이 중얼거리고 있었다.

“모두가 행복한 결말을 만들어낼 거니까… 그러니까 조금만 기다려줘, 디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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