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3417413번째 소울라이크 용사-290화 (266/280)

290화. 외전 1―12. 메모리 오브 위치 (12)

그렇게 전 용사 일행과 마왕군의 합동 수사가 개시되었고, 교황청 측의 필사적인 방해 공작이 펼쳐졌다.

10년 전의 항쟁을 떠올리게 하는 무수한 유혈이 이어졌다.

“꺄아아악!”

“괴, 괴물! 괴물이다!”

“살려줘!!”

그 와중에도 재앙의 규모는 점점 커져만 갔다. 이제는 마을이 아니라 하나의 도시, 국가 단위의 재앙이 점점 짧은 주기로 일어났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재앙의 정체에 대한 것도 점점 밝혀졌다.

―우오오오오!

괴물이었다.

온몸이 시커멓고 질척거리는 공허로 이루어진, 짐승처럼 네발로 바닥을 기는 괴물.

―그르륵… 그기기긱!!

뇌리에 직접 쑤셔 박히는 듯한 음울한 울음소리. 공허 속에서 흉흉하게 빛나는 보랏빛 안광. 출현할 때마다 점점 커지는 덩치까지.

나중에는 수 미터의 성벽을 훌쩍 넘어 다닐 정도까지 비대해졌다. 인간을 잡아먹을수록 그것은 점점 더 커져만 갔다.

―키이이이! 키키키키!!

웃음소리인지 평범한 울음소리인지 모를 그 괴성이 들린다 싶으면, 어느새 그곳엔 그 공허의 괴물이 나타난다.

그리고 무저갱 같은 아가리를 쩌억 벌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집어삼킨다.

―키르륵… 키키키키!!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그 괴물 형태의 자연재해가 휩쓸고 간 곳은 오직 썰렁한 바람만이 반겨줄 뿐, 사람들은 하루아침에 증발한 것처럼 잡아먹혀 사라져버렸다.

“여신 프로피샤여! 부디 노여움을 거두소서!”

“자비를, 부디 자비를!!”

아무것도 모르는 성국의 일반 백성들, 그리고 말단 사제들은 허구한 날 성당에 모여 구원을 부르짖었다.

하지만 괴물은 그렇게 사람이 모이는 곳이면 어김없이 나타났고, 그들을 비웃듯이 모두 집어삼켰다.

그러면 그 성당은 인적 하나 없는 폐성당이 되어버린다.

“우, 우리는… 이 성국과 대륙의 평화를 수호하는, 발키레아 기사단이다!”

“검을 들어라! 날개를 펼쳐라!!”

물론 신성국 또한 저항하려는 움직임은 있었다.

하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그들이 자랑하던 사제들의 신성 마법, 그리고 교황에게 직접 축성을 받은 인조 성검까지. 괴물에겐 아무런 피해도 입힐 수 없었다.

피해를 입히지 못했다는 수준이 아니었다. 그야말로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했다.

“여신이여… 저, 정녕, 우리를… 버리셨나이까…….”

“여신이여! 여신! 이 개같은 여신! 나는, 이대로 죽고 싶지 않아아아!!”

“신은 죽었다. 죽은 것이 틀림없어!!”

절망이 역병처럼 퍼져나갔다. 폭동이 일어났다.

어제까지 여신에게 자비와 축복을 바라던 수많은 민중이, 순식간에 여신의 죽음을 바라며 들불처럼 들고일어났다.

“교황은 무얼 하는가! 우리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나와라! 이 비겁한 자여!”

단순히 민중만 가세한 폭동이 아니다.

대답 없는 여신에게 절망한 사제들, 현 교황청의 대처에 깊은 의문을 품은 기사단원들까지. 신분의 고하를 가리지 않고 교황을 벌하자는 움직임에 찬동하고 일어섰다.

그에 대한 교황청의 대답은 교황 폴룩시우스의 해명이 아니었다.

“무지몽매한 반군들을 쳐부숴라!!”

“오오오!”

어김없이 날개 달린 갑옷과, 광휘를 두른 검들이 백검의 성당에서 쏟아져 나왔고, 기사단과 반란군의 지리멸렬한 살육전이 벌어졌다.

“우와아아아!!”

“죽여라! 우리의 삶을 찬탈하라!!”

비탄과 피, 그리고 질척한 절망이 대륙 전역에 마를 날이 없었다.

어떤 마을은 전쟁에 휘말려 피와 시체가 산처럼 쌓여있는가 하면, 어떤 마을은 재앙의 괴물 때문에 개미 새끼 한 마리 없는 유령 마을이 된다.

극단적인 이분화로 나날이 사람이 족족 사라져나간다.

“크아아악!”

“아아아아악!!”

나라 전체가 전대미문의 재앙과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무너져 내려갔다. 유구한 역사가 무색하도록 빠른 속도였다.

그렇게 몇 년에 가까운 격동의 세월이 흘렀다.

“계획대로 되고 있네. 너무 계획대로 되니까 싱거울 정도야, 마왕 아재.”

그리고 그 광경을 강 건너 불구경하는 인물들이 있었으니.

바로 한수호와 디아나, 그리고 마왕 헬릭스였다.

“…마음대로 지껄여라, 용사.”

여신을 향한 배신감의 폭발. 그것의 기폭제 역할을 한 것은 다름 아닌 마왕 헬릭스였다.

주요 인물들을 세뇌하고 설득해 선동하고, 그들을 통해 국가의 전복을 노린 것이다.

“놈들이 기를 쓰고 감추는 그 비밀을 알아내려면… 우선 극단적으로 폐쇄적인 이 나라를 멸망시킬 필요가 있다.”

“그건 맞지.”

“그래서 이용할 건 이용했을 뿐이다. 재앙조차 이용하려면 못 쓸 것도 없지.”

“이이제이라. 아재 어렸을 때 삼국지 좀 봤구나? 멋진 전략이야.”

그 결실은 그들의 목전에 있었다.

신성국은 망하기까지, 앞으로 한 발짝이 남았다.

그 마지막 한 발짝은 다름 아닌 한수호와 디아나. 두 사람이 낼 예정이었다.

“가자, 디아나. 우리 차례야.”

“응! 헤헤.”

그들은 성도를 향해 최후의 진군을 하는 반란군 선두에 섰고, 누구보다 빠르게 백검의 성당까지 쇄도했다.

“크으… 고, 공포의 대왕!”

“마녀의 기사 한까지 있나……!”

최후의 최후까지 성국을 지키기 위해 남은 발키레아 기사단이 약 천 명. 널찍한 입구의 회랑을 당당하게 걸어온 한수호 일행을 그들이 맞이한다.

교전이 벌어졌다. 무수한 목숨이 스러졌다. 한수호도 몇 번의 죽음을 겪었지만, 결국 불사의 몸인 그를 꺾는 것은 불가능했다.

“흐, 흐흐.”

한수호는 웃으면서 적을 썰어 넘겼다.

본인은 아마 자각도 못 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뒤에서 지켜보는 디아나의 눈에는 그 소름 끼치는 미소가 똑똑히 들어왔다.

“하하하하!”

디아나에게 종속된 언데드인 한수호는, 숨 쉬는 매 순간마저 디아나가 내뿜는 흉마에 노출되어 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서서히, 흉마의 늪에 발끝부터 잠겨 중독된 것이다.

“으하하하하!!”

찢어지는 광소를 흘리며 대검을 휘둘러 수십의 인간을 도륙 낸다. 그야말로 수라도의 한 폭이었다.

“후우… 흐흐, 크크크.”

전투는 끝났다.

당연히 한수호의 승리였고, 회랑에는 피비린내와 함께 수백 구의 시신과 갑옷 파편이 나뒹굴 뿐이었다.

하얀 성당 회랑은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그 중심엔 한수호와 디아나만이 서있다.

“그래서… 그 교황 놈은 결국 어디에 있는 건데?”

한수호는 방 하나하나가 축구장만 한 그 거대한 대성당을 일일이 뒤져봐야 했다. 하지만 그 어디서도 교황 폴룩시우스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러자 그 순간, 디아나가 문득 높은 탄성을 흘렸다.

“아! 나 알 것 같아, 아빠!”

“흐음?”

“따라와 봐! 히히, 이쪽이야 이쪽!”

우우웅. 디아나는 곧 흑검의 성소로 한수호를 안내했고, 기둥을 매만져 안에 숨어있던 승강기를 드러나게 했다.

“워 씨, 이건 또 뭐야.”

한수호는 안개의 벽이 사라진 승강용 기둥을 멍하니 쳐다봤다.

한수호는 이내 디아나를 칭찬하며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디아나는 뿌듯한 기분을 감출 수 없었다.

‘역시 잊어버리지 않길 잘했어!’

10년 전. 교황 카스트로와 공중정원을 방문할 때 봐둔 것이었다.

디아나는 그때 이미 승강기와 안개의 벽 메커니즘을 모두 파악한 상태였다. 그 때문에 국가의 심장부에 설치된 은폐 마법이 이렇게 허무하게 파훼된 것이다.

“가자, 디아나.”

“응!”

두 사람은 종지부를 찍기 위해 계단을 타고 올라갔다.

이내 어두운 통로가 끝났다. 탁 트인 공활한 하늘이 그들을 반긴다. 디아나의 마음을 한 번에 사로잡았던 아름다운 화원의 모습이 펼쳐졌다.

“오지 마라, 불사의 마녀… 그리고 타락한 용사!!”

그리고 교황 폴룩시우스로 보이는 은발의 소년. 그가 루나의 목에 하얀 검을 들이댄 채, 공중정원 한가운데 있었다.

폴룩시우스 앞에는 한 여기사가 있었다. 언제나 폴룩시우스와 붙어있던 바로 그 하얀 머리칼의 여기사.

디아나는 그녀 역시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교황 성하, 마를 거두어주십시오. 언제나 하던 것처럼.”

참고로 나… 박정용도 그녀의 외관은 기억에 있다.

알고말고. 케른에서 불사교와 박 터지게 싸울 때, 객원 기사로 참가했던 마왕 폴룩시우스의 따까리. 이름은 프리뮬러였나 그럴 거다.

마족화가 안 돼서 그런지 지금이 훨씬 예쁘긴 하다만, 못 알아볼 정도로 외관이 바뀌진 않았다.

“제가 모두 정화하겠습니다. 언제나 하던 것처럼.”

키이잉! 교황의 호위 기사, 프리뮬러는 검을 수직으로 들어 올렸다.

일견 신성해 보이기까지 하는 자세로, 그녀는 한수호에게 달려들었다.

“하아아압!!”

모든 마(魔)를 거부하는 교황의 힘은 실로 사기적인 것이었다.

사실상 치트급 존재인 디아나조차 마력을 사용하는 데 잠깐 애를 먹었고, 덕분에 한수호에게 평소처럼 엄청난 힘을 쏟아줄 수도 없었다.

“아, 아빠… 힘내!!”

마력과 흉마 공급이 끊긴 틈에 아빠가 죽으면 어쩌나. 디아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느껴보는 격심한 불안에 울상이 되었다.

하지만 전투는 의외로 싱겁게 끝났다.

“…어, 컥.”

단 한 번 신형이 교차한다. 그러자 프리뮬러의 사지가 각자 화원에 나뒹굴었다.

순식간에 다섯 합. 한수호는 나와 싸울 때 사용하던 그 검술을, 약 500년 전인 지금부터 이미 능숙하게 구사하고 있었다.

“느―려.”

500년 후의 박정용이나 할 법한 도발 대사를 주워섬기는 한수호. 입가에 시니컬한 비웃음이 걸려있었다.

후드득. 새하얗고 앙증맞은 앵초 꽃밭이 피와 살점으로 물들었다. 프리뮬러는 그 위에 엎어져 즉사했다.

“아… 아, 아아.”

폴룩시우스는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주저앉았고, 어기적거리며 프리뮬러의 토막 난 시신을 부둥켜안았다.

그는 어미 잃은 어린양인 양 하염없이 울었다.

“뭘 처울어. 지금 바로 만나러 갈 텐데.”

하지만 한수호는 아무런 표정도 없이, 그의 머리 위로 멸망의 대검을 치켜들 뿐이다.

서걱. 단두대가 작동했다.

“…고, 고마워요, 수호 씨.”

구출된 루나 루에바는 한수호에게 진심 어린 감사를 표했다.

한수호는 의식적으로 루나의 시선을 피했고, 다만 폴룩시우스의 잘린 목을 들고 승강기로 걸어갈 뿐이었다.

루나가 그 모습에 쓴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디아나는 루나의 모습을 보고 직감했다.

‘이 사람. 아직 우리 아빠를 좋아하나 봐.’

디아나는 한동안 안절부절못하다, 이내 한수호의 뒤를 따라 승강기로 달려갔다.

쿠르르르. 굉음을 내며 하강하는 승강기 안. 별안간 한수호가 참았던 숨을 푸하, 하고 길게 내쉬었다.

“와… ×발, 뻘쭘해서 숨지는 줄 알았다.”

“응? 뭐가아?”

“일방적으로 빤스런 했던 전 연인을 눈앞에 두면 말이다. 양심이 찔려서라도 숨고 싶어지는 법이야, 디아나.”

“흐응.”

디아나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안절부절못하는 한수호의 모습이 재밌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곧 짓궂게 웃으며 한마디를 추가했다.

“아마 루나 언니는, 아빠가 말을 걸어줬으면 기뻐했을 거라고 생각해.”

“…하, 네가 뭘 알겠냐, 디아나. 애들은 가라 가.”

“아이, 진짠데!”

“됐어, 인마. 빨리 일 끝내고 밥이나 먹으러 가자.”

“어, 응! 좋아!”

그렇게 한수호는 반란군에게 폴룩시우스의 목을 들고 돌아갔다.

폴룩시우스의 목이 광장 한가운데 효수되었다. 모든 민중이 교황청의 몰락을 목도했다.

“사상 최악의 폭군 교황 폴룩시우스를 살해했다!!”

“여신의 진노는 잠들 것이다! 우리가 승리했다!!”

“와아아아아!!”

한때 이 대륙 전체를 휘어잡았던 신성국 슈엘츠는, 교황 폴룩시우스의 목과 함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대신 그곳에는 ‘신(新) 성국 슈엘츠’를 자처하는 성당기사단 고위 간부들의 군사정부가 들어섰다.

“그래서 이곳 어딘가에… 그 재앙의 진상이 있다는 거지.”

군사정부의 허가를 받은 한수호와 디아나 일행은 백검의 성당에 정정당당히 입성했고, 그곳을 군사정부 인원들 이상의 집념으로 샅샅이 살피기 시작했다.

“크흠, 흠.”

“너무 여신의 위엄을 실추시키는 짓은 하지 마시오.”

가장 성스러운 여신의 제전에, 그 악명 높은 불사의 마녀와 마녀의 기사가 제집처럼 돌아다니는 꼴이라니. 많은 기사단이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하지만 한수호는 그런 놈들에겐 특유의 시니컬한 비웃음을 흘려줄 뿐이었다.

“내 맴, ×발럼들아. 아가리하고 민심이나 진정시켜. 그러라고 앉혀놓은 자리니까.”

“뭐, 뭣이……! 이놈이 뚫린 입이라고!!”

“뭐. 싸우게? 죽일 거냐? 죽여봐라. 너희들끼리 어떻게 재앙을 막아내려고?”

“…….”

결국 이 혼란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그 끔찍한 공허의 괴물이 사라져야 한다.

하지만 현 군사정부의 기사단은 그 끔찍한 괴물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었다. 그나마 조금이라도 단서를 가지고 있는 한수호 일행을 의지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폴룩시우스가 감춰놓은 진실을 끝까지 파헤친 끝에, 마침내 디아나와 한수호는 진상에 다다랐다.

“…이게, 뭐야.”

산전수전 다 겪은 긍정왕 한수호조차 경악하고.

“아, 아빠… 나, 무서워.”

사람들에게 ‘공포의 대왕’이라 불리는 디아나조차 두려움에 떠는…….

슈엘츠 성국이 기를 쓰고 숨기던 진상.

“…여신이여.”

마왕 헬릭스는 딱히 신앙이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여신을 입에 담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대성당 가장 깊숙한 곳의 한 암실. 망연자실한 그들의 앞에 진짜 여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갈기갈기 찢어진 채, 토막 난 사지가 아무렇게나 흩어진 여신의 주검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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