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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417413번째 소울라이크 용사-274화 (250/280)

274화

채애애앵!

금속음이 화원 내부를 쩌렁쩌렁 울렸다.

내가 341번 정도 죽고. 한수호를 571번 정도 살해한… 342번째 생에서의 일이었다.

한수호는 당황한 나머지 숨을 삼켰다.

“… 뭐야?!”

막혔다.

무수한 죽음과 죽임을 반복한 끝에… 나는. 드디어 최종 형태로 변신한 한수호의 최초 일격을 막아냈다.

“이 새끼…!”

한수호는 눈을 부릅뜬 채 중얼거렸다. 세상에 이럴 수는 없다는 행색이다.

그럴 법도 하다. 내가 초장부터 놈의 움직임을 미래예지 수준으로 읽었고. 한수호가 사용하는 것과 똑같은 검술로 놈을 압도했고.

무엇보다 자기 남은 목숨이… 이미 하나 밖에 남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을 테니까.

“으아아아!”

한수호는 발악하듯 소리를 질렀다. 검붉은 스파크와 멸망의 화염이 곧 그의 온몸을 감쌌다.

쿠르르르!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뇌명이 울렸다. 번개의 섬광이 번득일 때마다 한수호가 가까워졌고. 노도 같은 화염이 나를 향해 사방에서 쏟아졌다.

“흐읍!”

하지만 나는 월드 엠브리오로 그것을 모두 정지시켰다.

두웅. 둔중한 충격이 심장을 때렸고. 찰나의 틈새에 나는 한수호의 돌진 궤도에서 벗어났다.

그뿐만이 아니다. 나는 한수호의 측면으로 다가가, 양손의 손톱을 질풍처럼 회전시키고 있었다.

“… 아니?!”

한수호가 당황 어린 탄성을 흘렸다.

푸화악! 불의 장막을 뚫고 회전하는 손톱이 파고들었다. 단단한 흑색 갑주에 깊게 박힌 손톱이 염을 토해냈다.

‘막아냈군. 그 찰나의 순간에.’

돌격을 멈춘 한수호가 허공에 떠있던 베스타크와 에스파다로 그것을 막아냈다. 그래서 놈의 몸을 자르지 못하고, 갑옷에 박힌 것으로 끝난 것이다.

유효타는 아니었다. 하지만 반격까지 성공했다. 그것이 중요했다.

“왜. 생각보다 잘 싸워서 놀랍냐?”

카가가각!

나는 맞붙은 한수호의 에스파다를 내 쪽으로 흘려냈다. 동시에 그의 무게중심을 무너뜨린 다음 후방을 점했다.

수백 번의 전생에서 자기가 행했던 걸 직접 당하자, 한수호는 눈에 띄게 당황했다.

“이건… 어떻게…!”

한수호가 스텝을 밟아 황급히 후퇴했다.

그가 지나간 자리로 스파크와 불꽃이 어른거리며, 주변에 널브러진 수많은 해골들을 비추었다.

물론 나는 그것을 가만히 보고 있지 않았다.

“어! 딜도!! 망가!!!”

콰가가각!

한수호가 했던 것처럼, 유령 같은 스텝을 밟아 그의 궤도를 그대로 추격해 나갔다.

특유의 순간이동 같은 움직임을 보자 한수호의 눈은 터질 듯이 부릅 뜨였다.

“끝났어. 넌.”

나는 나직이 중얼거렸다.

두 가지 의미가 담겨 있다. 한수호의 검술에 대한 파악이 완벽하게 끝났다는 것. 그리고, 문자 그대로 한수호의 진짜 죽음이 코앞까지 왔다는 것.

나는 스케어크로우의 뒤틀린 아가리를 쩌억 벌렸다. 그리고 유쾌한 웃음을 토해냈다.

“으하하하하하!!”

미처 한수호가 반응하지 못하는 순간에, 그대로 손톱을 찔러 넣었다.

직전 공격으로 우그러졌던 갑옷이 완전히 박살났고, 그 안에 한수호의 속살을 파고들었다.

심장이 손끝으로 느껴진다. 나는 압도적인 짜릿함 속에서 그것을 움켜쥐었다.

“끄… 허억!”

한수호의 단말마.

그리고 푸직. 나는 놈의 심장을 쥐어 터뜨렸다.

한수호는 고개를 슬슬 저으며 얼빠진 탄성을 흘려댔다.

“아… 아아.”

우지직. 한수호의 피부가 쪼개졌다. 그 안에서 눈부신 빛과 함께 화염이 질질 흘러나왔다.

육체의 최종 붕괴가 시작된 것이다.

“으아아아아!!”

하지만 그 순간. 한수호가 최후의 발악을 시작했다.

푸화악! 한수호의 온몸에서 눈부실 정도의 빛이 쏟아졌고. 동시에 압도적인 화염이 치솟았다.

스케어크로우를 뒤집어쓴 나조차도 압도적인 열기 때문에 숨이 안 쉬어질 정도다.

“웃기지… 마… 웃기지 마아아!!”

한수호는 비명처럼 괴성을 질러댔다. 그리고 내 머리를 향해 멸망의 대검을 마구잡이로 휘둘렀다.

채앵, 콰아앙! 나는 한가한 왼손으로 그것들을 필사적으로 쳐냈다. 쳐낼 때마다 대검이 뿜어내는 압도적인 열기에 손톱이 흐물흐물 녹아내렸다.

나는 아이스크림처럼 녹아내리는 손을 보며 눈을 부릅떴다.

‘위험하다…!’

저항이 이렇게까지 거셀 줄이야. 어떻게든 거리를 벌려야 한다.

나는 한수호의 몸뚱이에 박힌 오른손을 빼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한수호는 대검을 쥐지 않은 왼손으로 내 손을 힘껏 붙들고 있었다.

나는 눈을 부릅뜨고, 한수호의 붉게 충혈된 눈을 응시했다.

“아직… 아직이다…! 이대로… 죽을 순, 없어!!”

그 집념 어린 눈빛에서 직감했다.

이 새끼는… 이 손을 절대 놓지 않는다. 자기가 눈을 감는 순간까지 말이다.

나는 위태롭게 웃었다. 그리고 남아있는 왼손의 손톱을 한껏 날카롭게 벼렸다.

“그래 이 X발 새끼야. 누가 이기나… 한 번 해보자!!!”

투두두두! 제로 거리에서 손톱과 멸망의 대검이 끊임없이 교차했다.

비명인지 기합인지 모를 괴성이 퍼져나갔다. 처절한 육탄전의 서막을 알리는 소리였다.

“으아아아악!”

“크아아아악!”

짓무른 손의 살점이 흩어진다. 한수호의 대검이 조금씩 박살나며 파편이 튀었다.

푸푸푹! 한수호의 에스파다와 베스타크가 내 몸을 여기저기 쑤셔댔다. 걸레짝이 된 몸에서 검은 안개가 줄줄 흘러나왔다.

“그으으으!”

우지직, 빠득! 나는 화염의 열기를 뚫고 놈의 갑주를 물어뜯었다.

갑옷은 높은 금속음과 함께 산산이 부서져 내렸고. 나는 그것을 잘근잘근 씹어 삼켰다. 불꽃에 휩싸인 머리통에서 끔찍한 작열통이 몰려왔다.

뜨겁다. 온몸이 불타오른다. 난자당한 몸의 곳곳으로 화염이 침투했다.

“이야아아아!!”

“그아아아아!!”

그래도 손톱을 놀리는 걸 멈추지 않았다. 한수호도 마찬가지다.

이미 인간의 형체도 희미해진 괴물 두 사람은, 한 데에 엉켜서 미친 듯이 꿈틀거렸다.

“으아아아아아!!!”

파카앙! 마침내 한수호의 멸망의 대검이 산산조각났다.

놈의 얼굴에 망연자실한 기색이 서리더니, 이내 베스타크와 에스파다를 조작하는 힘도 점점 수그러들었다.

나는 그 순간, 모든 힘을 쥐어짜내 한수호의 몸에서 오른팔을 빼냈다.

‘지금… 이다…!!!’

우지직!

오른손은 이미 완전히 녹아서 잘려나가 버렸다.

나는 반으로 뚝 잘린 오른팔로 베스타크와 에스파다를 후려쳐 부러뜨려 버리고. 동시에 손톱이 죄다 녹아버린 왼손을 힘껏 틀어쥐었다.

“키아아아악!!”

나는 괴성을 지르며 한수호의 얼굴을 주먹으로 가격했다.

퍼어억! 질펀한 파육음과 함께 한수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놈은 허공에 붕 뜬 채로 한참을 날아가더니, 화원 구석의 뼈무덤에 깊숙이 처박히고 나서야 멈췄다.

“그아아아악!”

괴성이 문득 화원을 울렸다.

퍼걱! 뼈무덤에서 화염이 치솟았다. 거기엔 너절한 갑옷을 두르고, 당장이라도 죽을 것처럼 비틀대는 한수호가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죽을 것 같지만. 눈빛 만은 당장이라도 날 찢어죽일 것 같았다.

“그어어어…!”

한수호가 오히려 내게 돌격해왔다.

나는 보란 듯이 전투태세를 취해 그를 맞이했다. 투콰앙! 두 괴물이 격돌했다.

내 손톱은 전부 녹아내렸고. 한수호도 검이 박살났다. 우리는 뼈무덤 위를 미친 듯이 구르며 서로를 향해 무아지경으로 주먹질을 반복했다.

“죽지 않아… 죽을 수 없어! 이대론, 죽을 수 없어어!!!”

오른팔을 어깨부터 잡아 뜯겼다. 가슴팍에 머리를 들이받혔다.

다리가 부러지고, 집요하게 복부를 가격 당했다.

“죽어! 죽어어!! 죽어어어!!!”

그러면 나는 왼팔을 물어뜯었다. 놈의 가슴을 오른쪽 어깨로 짓눌렀다.

잘린 오른팔을 무기처럼 들어, 놈의 대가리를 미친 듯이 후려쳤다.

그리고 대체 어느 순간부터였을까.

“허억… 죽어… 허억, 허억… 죽어… 죽어…!”

염불처럼 외던 목소리가 하나 밖에 들리지 않게 되었다.

연신 ‘죽어’를 외치던 내 목소리였다. 나는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퍼뜩 입을 다물었고. 내 아래 깔려있는 한수호의 몰골을 자세히 쳐다봤다.

“컥… 그윽… 그걱.”

한수호는 잘 다져진 고기파편이 되어 움찔대고 있었다.

불꽃과 스파크가 당장이라도 꺼질 것처럼 미미하게 틱틱거렸다. 얼굴은 바싹 마른 지점토처럼 산산조각나, 먼지처럼 허공으로 흩어지고 있었다.

“안… 돼… 디, 아나…….”

한수호는 이미 초점조차 맞지 않는 눈으로 멍하니 허공을 보고 있었다.

그는 망연히 하늘을 향해 팔을 뻗었다. 뒤틀리고 뼈가 튀어나온 팔 끝에는 손조차 뭉개져버린 상태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다시 한 번 기적을 목격했다.

―고생했어. 이젠 쉬자 아빠. 나랑 같이.

그런 목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왔다.

붉은 잔영이 다시 나타났다. 한수호의 위로 나타난 그것이, 천천히 손을 내밀어 한수호의 내뻗은 팔을 붙잡았다.

실제론 어떤지 모르겠다. 적어도 내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 디아나.”

한 가지 확실한 건. 한수호의 눈에도 그 붉은 잔영이 보였다는 것.

그리고 분명히 나와 같은 환상을 보고 있었다는 것이다.

한수호가 마지막 가쁜 숨을 토해냈다. 필사적으로 말을 만들려 했다.

“나는… 나는…….”

하지만 거기까지다.

고깃덩어리가 된 팔은 천천히 힘아리가 없어졌고. 이내 뼈무덤 위로 털썩, 무너져 내렸다.

끝내 유언을 완성하지 못했다. 그렇게 죽었다.

“하아… 하아… 하악…….”

나는 숨을 몰아쉬며, 한동안 한수호의 시체 위에 자빠져 하늘을 쳐다봤다.

사방은 다시금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한수호가 죽으며 멸망의 화염이 꺼져가는 것이다.

이내 일말의 잔불마저 사그라들고. 한치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압도적인 어둠이 찾아왔다.

“아… 아아.”

나는 얼빠진 탄성을 흘렸다.

어둠에 잠긴 화원에 잿가루가 눈발처럼 흩날리고 있었다. 화이트 크리스마스는 모르겠고. 잿빛의 크리스마스였다.

‘예… 쁘구만.’

그녀에게… 내가 절대 잊고 싶지 않았던 그녀에게. 꼭 보여주고 싶은 광경이다.

나는 그제야 가까스로 몸을 일으켰다.

‘해야… 할, 일이…….’

스르륵. 스케어크로우가 자동적으로 해제되었다.

지금까지 버틴 게 오히려 대단한 것이다.

“하. 하하… 꼴이… 말이, 아니네. X발…….”

나는 만신창이가 된 내 꼬라지를 보고 헛웃음을 흘렸다. 사실상 살아있는 것이 더 신기한 몰골이었기 때문이다.

태동도 에테르도, 모든 스톡을 방금의 전투에 쏟아 부었다. 회복하려면 최소한 한 시간은 걸린다는 소리다.

나는 혀를 차며 비척비척, 부러진 다리를 질질 끌고 이동하기 시작했다. 피가 콸콸 새는 잘린 오른팔을 힘껏 지혈했다.

“얼른. 빨리, 그 애를… 이리로…….”

아직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고.

결국엔 내가 이겼다 이 말이야.

“마왕… 루스티카… 아스모데우스…….”

하얀 머리칼과 붉은 눈동자. 나를 올려다보는 부루퉁한 표정. 그리고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던 촉감까지. 전부 기억난다.

군데군데 기억이 좀 누락된 것 같긴 하지만… 뭐, 그것까진 어쩔 수 없다.

“마왕… 빨리…….”

나는 반쯤 넋이 나간 채 중얼거렸고. 드디어 화원 중앙의 승강기 기둥에 도달했다.

그리고 나도 모게 탄성을 흘려버렸다.

“… 어?”

승강기가 작동하고 있었다.

아래에서 위로. 무언가가 올라오고 있다.

스르륵. 이내 부유석이 미끄러지듯 내 앞에 올라왔고. 그 위에 타고 있던 이는… 치렁거리는 백발을 빛내며, 내 앞으로 한 걸음 나왔다.

“… 또 이 모양이구나. 잠깐만 방심하면. 이렇게 만신창이가 돼 버려.”

그리고 그녀는 쓰게 웃으며 비통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내 까치발을 들어 내 볼에 손을 갖다댔다. 입가는 웃고 있는데. 목소리는 울먹거렸다.

“정말… 넌 한 시도 눈을 뗄 수가 없는 놈이다. 용사.”

불사의 마왕, 루스티카 아스모데우스.

마침 픽업해 가려던 그녀가… 오히려 내게 다가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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