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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417413번째 소울라이크 용사-273화 (249/280)

273화 도그 파이팅

까악, 까악!

검은 하늘 아래를 가득 메운 까마귀들이 한수호를 향해 날아간다. 한수호가 그 광경을 보더니 질린 어조로 중얼거렸다.

“진짜, 실제로 보니… 위압감이 어마어마하네.”

푸욱. 한수호가 곧 대검을 땅에 깊숙이 박았다.

대검을 중심으로 둔중한 공명음이 땅을 울리더니, 아까처럼 무수한 백색 골검이 땅 밑에서 스멀스멀 솟아올랐다.

“이게… 연속으로 쓸만한 기술은 아닌데.”

그 말대로 한수호의 입가에는 진득한 피가 한 줄기 흐르고 있었다. 대단한 규모의 스킬인 만큼 육신에 과부하가 오는 듯했다.

스르릉! 수천의 에스파다가 일제히 방향을 틀었다. 칼끝은 공중에 뜬 까마귀들을 겨냥하고 있었다.

“하지만 필살기엔 필살기로 대응해 줘야지!”

피피피핑! 순백의 칼날비가 하늘을 가르며 날아오기 시작했다.

맹렬한 기세로 쏟아진 검은 군세와 하얀 군세가 일제히 충돌했다. 콰르르릉, 천지가 진동하는 굉음이 울렸다.

동시에 나와 한수호도 전방을 향해 돌격했다.

“으아아아아!!”

“하아아아아!!”

채채채챙! 찰나의 순간. 무수한 검격을 주고받았다.

상체를 비틀어 대검을 가까스로 피해냈다. 회전을 멈추지 않고 어검술로 베스타크를 휘둘렀다.

한수호의 에스파다에 막혔다. 에스파다가 내 검날을 타고 파고든다. 목을 까딱여 피해냈지만 살짝 베였다. 불꽃이 상처로 스며들었다.

어검술로 멸망의 대검을 내려쳤다. 그림자처럼 측면으로 미끄러진 한수호가 베스타크로 역습한다. 나는 에스파다를 들어 막아냈다.

“하앗!”

“카핫!”

콰아아앙! 폭발한 화염이 충격파를 타고 세상을 붉게 물들였다.

1초 이하. 느리적한 세계에서 벌어진 찰나의 공방. 그 끝은 거대한 충격파와 함께, 우리의 검이 하나씩 산산조각나는 것으로 결말을 맺었다.

키킥. 한수호의 입술 사이로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하핫. 짐승 같은 성장력이구나 정용아. 직전 공방보다도 실력이 늘었잖아.”

“…….”

“X발 소년만화 주인공이냐? 싸우면서 성장하게. 새삼 재능의 차이라는 걸 실감하는 중이다.”

후두둑. 한수호는 손잡이만 남은 베스타크를 아무데나 던져버렸다.

카카캉! 푸드득! 그 순간에도 하늘에서는 안개까마귀와 하얀 칼날의 전쟁이 계속되었다.

부서진 백색 검의 파편과, 까마귀의 시커먼 시신이 하늘에서 우박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이 기세면… 정말 따라잡히는 것도 금방이겠어.”

쉬이익!

문득 하늘을 유영하는 무수한 에스파다 중 하나가 한수호에게 날아왔다. 그는 어렵지 않게 그것을 붙잡았다.

키이잉! 한수호는 새롭게 충전한 검을 내게 겨누었다. 광기로 가득찬 검은 눈빛은 칼날보다 날카롭게 빛나고 있었다.

“그러니까 최대한 빨리 끝내야겠다. 길게 끌어봐야 네 좋은 일만 시켜주는 것 같으니.”

… 뭐야. 저 발언.

등줄기가 싸늘하게 식는 것 같다.

마치… 아직까지도 비장의 한 수가 남아있다는 듯한, 저 불길한 발언. 대체 뭐냐고.

‘설마?’

푸욱! 내 우려는 현실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한수호는 별안간, 자기 가슴에 에스파다를 꽂아 넣었다.

나는 갑작스러운 한수호의 기행에 숨을 삼켰고. 그는 화원 중앙에 덩그러니 놓인 디아나의 옥좌를 향해 손을 뻗었다.

“디아나. 나를 위해… 노래를 불러줘.”

절박하고 간절함이 느껴지는 손짓. 그리고 말투.

그는 미친 사람처럼 죽어버린 디아나를 연신 부르더니. 이내 흑백으로 어지러운 하늘을 보고 절규하듯 소리쳤다.

“내가. 너를 위해서…! 최후의 숨결까지 싸울 수 있도록!!”

그러자, 기적이 일어났다.

까닥, 까딱. 한수호의 주변에 널브러진 수많은 해골더미가 천천히 몸을 일으키더니. 한수호의 주변을 돌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아아아. 아아아아.

여자아이의 낭랑한 노랫소리가 화원에 가득찼다.

어딘가 어리숙하지만. 애틋하고, 안타깝고, 아름다운 선율이었다.

―역시 아빠는… 싸울 때가, 가장 멋져.

문득 어디선가 그런 목소리가 들려온 듯했다.

내가 잘못 본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한수호의 뒤로 붉은 잔영이 일렁거렸다.

긴 백발을 산발한 꼬마아이의 웃는 얼굴이, 잠깐 보인 듯했다.

“그아아아아!!”

한수호는 비명을 지르며, 자기 가슴에 박아뒀던 에스파다를 뽑아냈다.

파지지직! 그의 주변으로 칠흑의 스파크가 미친 듯이 방전되었다. 망가진 갑옷과 찢어진 살점이 처덕처덕 재구성된다.

화르륵! 멸망의 화염이 난폭한 전류를 타고 오라처럼 그를 휘감았다.

‘무,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거야!’

나는 절찬리에 당황하며 검을 고쳐 쥐었다. 한수호는 어느새 변신을 마치고 내게 검을 들이밀고 있었다.

들고 있는 검. 갑옷의 틈새, 검붉게 빛나는 눈동자도 짙은 화염에 휩싸였다. 하늘을 뒤덮은 모든 에스파다에도 화염이 일렁거렸다.

시선을 어디로 돌려봐도, 세기말 풍경처럼 불꽃만이 가득했다.

‘이, 이건…….’

죽는다.

직감이 아니다. 확신이 등줄기를 스쳤다.

화르륵! 한수호가 불꽃과 번개가 뒤섞인 멸망의 대검을 허공에 한 번 휘둘렀다. 그의 신형은 곧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아직 이 정도까진… 못 따라하겠지?”

정신 차려 보니, 목소리가 이미 지척에서 들리고 있었다.

나는 탄성을 내질렀다. 단말마였다.

“아.”

전투가 끝났음을 직감했다.

시선을 아래로 내리자, 사지가 처참하게 토막난 채 불타오르는 몸뚱이가 보였다.

기우뚱. 시야가 격하게 회전했다. 지지대를 잃은 머리통이 바닥에 처박힌 것이다.

“하, 하나도… 못 봤다.”

나는 억울한 나머지 씨근거렸다.

하지만 피식, 이내 쓴웃음을 머금었다. 그 도전적인 미소를 한수호에게 보여줬다.

그는 내 얼굴을 보더니 전에 없이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 다음엔, 볼 거다.”

다음이 안 되면 그 다음.

그 다음도 안 되면 또 그 다음. 반드시 따라잡아 주겠다.

마지막까지 한수호가 불쾌할 유언을 남겨준 뒤. 나는 눈을 감았다.

* * *

“또 만나고 말았군요. 까마귀님.”

자드키엘의 안타까운 목소리가 먼저 들려왔다.

벌레로 가득찬 장방형 공간과, 그녀의 찡그린 얼굴이 뒤늦게 시야에 들어왔다.

나는 딱히 그녀에게 대꾸해주지 않았다. 그저 손을 번쩍 내밀어 빨리 내보내달라는 재촉을 할뿐이다.

‘그 감각을 잊으면 안 돼.’

뭔가 가닥이 잡힐 것 같다.

한수호의 움직임을 읽을 실마리가 이제야 보이고 있다.

잊기 전에 빨리 가서 감각을 재현해야 한다. 설령 빨리 죽는 한이 있어도, 이 감각을 계속 이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앞으로 몇 번을 더 만나야… 이 지옥이 끝날까요.”

자드키엘은 천천히 손을 뻗으며 말했다. 한없이 슬픈 어조였다.

“까마귀님. 이 모든 일이, 당신의 모든 걸 잃어가면서 이뤄낼 가치가 있는 걸까요?”

자드키엘은 뻗어오던 손을 흠칫 물렸다. 그리고 넋두리를 중얼거렸다.

나는 머뭇거리는 그녀를 가만히 쳐다봤고. 이내 고개를 갸웃거렸다.

“과몰입 하지 마 인마. 정 못하겠으면 내가 알아서 때려칠 거니까.”

“하지만… 이미 시작되셨죠? 기억의 결손이요.”

“…….”

“그런데도 그만두지 않고 계시네요. 솔직히 저로선…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슬슬 짜증이 올라왔다. 나는 이맛살을 찌푸리며 자드키엘을 가만히 노려봤다.

내 시선을 마주하자 자드키엘은 흠칫 어깨를 움츠렸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양, 그녀는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이대로는… 조만간 정말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망가집니다. 당신이 소중히 여기던 모든 것을 잃게 되어버릴 거예요.”

“빨리 보내주기나 해. 지금 중요한 국면이었다고.”

“까마귀님. 무엇이 당신을 그렇게까지 하도록 만드는 건가요?”

“…….”

그러게. 내가 왜 여기서 이 지랄하고 있었더라.

나는 이유를 찾다가 문득 실성한 마냥 히죽거렸다. 햐안 머리칼 아래, 당당하게 치켜뜬 붉은 눈동자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뭐, 걔도 느껴봐야지.”

“네?”

“소중한 사람한테 잊혀진다는 게… 얼마나 족같은 경험인지. 나만 당할 수야 있나.”

“아…….”

이건 은혜를 갚으면서, 동시에 복수도 하는 일석이조의 행위다.

마르크트레스에서 내 대신 죽어준 희생에 희생으로 보답한다. 그리고 그녀가 나를 잊었듯이… 내가 혹시나 그녀를 잊어버리면, 복수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든 저렇든. 잃을 게 없는 장사다.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물론. 그렇게 되기 전에 한수호 새끼를 때려잡으면 베스트긴 하지.”

“…….”

“그렇게 하려고 노력중이다. 최선을 다해서.”

내 대답을 들은 자드키엘은 쓴웃음을 머금었고.

이내 마지못해 손을 뻗어 내 손을 마주잡았다.

“… 가장 소중한 것을 계속 떠올리세요.”

파아앗.

어둠이 물러나며, 몸에 가득 붙어있던 벌레들이 바스러져 간다.

“당신을 인간답게 만들어주는 소중한 존재들을… 절대 잊지 말아주세요. 까마귀님.”

찬란한 불빛 너머에서 자드키엘은 울먹거리고 있었다.

나는 그 표정을 멍하니 보다가 헛웃음을 흘렸다. 그녀가 붙잡은 손을 내쪽에서 힘껏 붙잡았다.

‘절대 잊지 말라고…?’

나는 자드키엘의 조언대로, 루시의 머리칼을 쓸어주던 감촉을 계속 상기시켰다.

절대로. 나 자신을 잊어버려도, 절대 그것만은 잊지 않도록.

“노력해본다.”

시즌 3호 개소리의 등장이다.

* * *

[불사의 회귀점이 갱신되었다.]

[불사의 회귀점이 갱신되었다.]

[불사의 회귀점이 갱신되었다.]

끊임없이 싸웠다.

한수호의 검술을 두 눈에 새겼다. 그것을 따라하려 노력했다.

시행착오는 곧 죽음으로 이어졌다.

무수한 시행착오가 있었다.

[불사의 회귀점이 갱신되었다.]

[불사의 회귀점이 갱신되었다.]

[불사의 회귀점이 갱신되었다.]

막대한 죽음이 내 몸을 스쳐 지나갔고.

막대한 죽음을 한수호에게 새겼다.

[불사의 회귀점이 갱신되었다.]

[불사의 회귀점이 갱신되었다.]

[불사의 회귀점이 갱신되었다.]

피안계가 부서지기 직전에 흉마를 충전했다.

다시 비어버린 흉마를 채우기 위해 죽음을 반복했다.

쳇바퀴 구르듯 죽음의 굴레를 굴렸다.

… 무수한 흉마를 쏟아냈고.

무수한 흉마가 다시 채워졌다.

쏟아낼 때는 무언가 같이 빠져나가는 게 느껴졌지만.

채워질 땐, 빠져나갔던 것이 다시 채워지진 않았다.

[불사의 회귀점이 갱신되었다.]

[불사의 회귀점이 갱신되었다.]

[불사의 회귀점이 갱신되었다.]

나는 어디까지 기억하고 있지?

무엇을 위해서 싸우고 있지?

나는, 뭐지?

[불사의 회귀점이 갱신되었다.]

[불사의 회귀점이 갱신되었다.]

[불사의 회귀점이 갱신되었다.]

감정은 점점 식어갔고.

행동의 이유도 원인도 결과도 점점 퇴색한다.

그저 검을 휘두른다. 검술을 모방한다. 그리고 놈을 죽인다.

그것만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불사의 회귀점이 갱신되었다.]

[불사의 회귀점이 갱신되었다.]

[불사의 회귀점이 갱신되었다.]

죽인다.

죽인다.

또 죽인다.

죽는다.

죽는다.

또 죽는다.

[불사의 회귀점이 갱신되었다.]

[불사의 회귀점이 갱신되었다.]

[불사의 회귀점이 갱신되었다.]

그렇게, 마침내.

내가 누구인지. 왜 여기 있는지조차 희미해질 무렵.

이 기나긴 싸움에…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불사의 회귀점이 갱신되었다.]

[불사의 회귀점이 갱신되었다.]

[불사의 회귀점이 갱신되었다.]

그 시작은, 내가 한수호의 검술을 완벽하게 따라 해서.

최종형태 한수호의 대검을 받아치게 된 데부터 시작되었다.

[불사의 회귀점이 갱신되었다.]

[불사의 회귀점이 갱신되었다.]

[불사의 회귀점이 갱신되었다.]

채애애앵!

금속음이 화원 내부를 쩌렁쩌렁 울렸다.

내가 약 341번 정도 죽고. 한수호를 571번 정도 살해한… 342번째 생에서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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