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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417413번째 소울라이크 용사-268화 (244/280)

268화

콰아아앙! 세 번째 내려친 대검이 부딪쳐왔다.

나는 압도적인 압력을 견디지 못한 나머지, 대검의 손잡이를 놔버렸다. 놓지 않았다면 두 팔이 그대로 찢겨져 떨어졌을 것이다.

키이잉! 대검이 높은 금속음과 함께 허공을 날았다. 그리고 나는 맥없이 바닥으로 내리꽂혔다.

“끄윽…!”

콰자작! 우지끈!

잔뜩 쌓여있던 해골들이 팝콘처럼 튀었다. 요란한 소리가 났다.

내 뼈가 부서진 건지, 바닥에 널린 해골들이 부서진 건지 모르겠다만. 해골 잔해에 파묻힌 내 주위로 뼛조각과 핏방울이 흐드러졌다.

“크… 하악!”

이내 나는 핏덩이와 함께 날숨을 토해냈다.

온몸에서 격통이 치달렸지만 아파하고 있을 틈은 없다. 나는 즉시 날개에 마력을 쏟아 다시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러나 대체 언제부터일까. 이미 내 비행경로 앞에 한수호가 대기하고 있었다.

“속도만 따지면 나보다 빠른 거 같은데? 그러고 보니 민첩성은 999가 넘었던가?”

순간 아찔해졌다.

나는 급격하게 제동을 걸며, 전방으로 쌍검을 거칠게 휘둘렀다.

“후욱…!”

카아앙! 하릴없이 양손이 튕겨 나왔다. 찰나의 순간에 힘에서 밀려나 버린 것이다.

공격이 너무 맥없이 밀려나 버렸다. 격돌했다 칭하기도 애매할 정도로 압도적인 차이였다.

‘이런 미친…!’

퍼어억! 가드가 풀린 가슴팍으로 대검이 거칠게 밀고 들어왔다.

다행히 쌍검에 막히며 속도는 대폭 줄었지만, 기세는 여전히 묵직했다. 붉은 일섬에 흉갑이 종잇장처럼 우그러졌다.

“크아아악!”

콰아아앙! 폭발에 가까운 굉음과 함께, 나는 다시금 바닥에 처박혔다.

가루가 된 뼛조각들이 눈처럼 공중에 휘날렸다. 나는 잠깐 동안 멍하니 누워 빌어먹을 화이트 크리스마스의 풍광을 감상했다.

‘씨, X발… 정신 차려!!’

나는 재차 벌떡 일어났다.

머리에서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피를 대충 닦아냈다. 단 두 방 만에 바닥까지 치달은 체력을 채우기 위해, 나는 곧장 에테르 병을 털어마셨다.

철커덕. 나는 전방으로 쌍검을 겨누었다. 어느새 한수호가 해골더미 위로 착륙해 내게 가까워지고 있었다.

“허. X발.”

나는 위태로운 웃음을 흘렸다.

“형님. 거 X발 아무리 GM이라도 그렇지. 왜 이렇게 셉니까. 핵 썼어?”

나는 위태로운 조소와 함께 비아냥댔고. 한수호의 위풍당당한 걸음이 잠깐 멈췄다.

그는 뒷머리를 태평하게 긁적이다가 대수롭잖은 어조로 말했다.

“말한지 좀 돼서 잊어먹었나? 용사지원 시스템의 능력치는 나를 기준으로 만들었다니까.”

그리고 씨익.

입가의 광기 어린 미소를 한껏 진하게 만들었다.

“시작치도 나를 기준으로 만들었으니. 당연히 한계치도 나를 기준으로 만들지 않았겠냐?”

“… 뭐?”

나는 그 말이 의미하는 바를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깨달았지만 부정하고 싶었다. 그래서 어거지로 미미르의 눈을 발동시켜, 한수호를 시야에 담았다.

[명칭: 한수호]

[별칭: 첫 번째 용사. 마녀의 기사. 홍련의 흑기사. 대왕의 하수인. 멸룡의 계승자]

[LV. 999]

[체력: 9999/9999 ?마력: 9999/9999 ?신체상태: 심한 광증]

[힘: 999 ?민첩: 999 ?지능: 999 ?히어로 센스: 99]

이변은 없었다.

패러미터의 모든 숫자가 9로 수렴하고 있다.

순간 온몸의 힘이 쫙 빠지는 느낌이 들었다. 하마터면 검을 놓칠 뻔했다.

‘진짜… 장난하냐.’

이 거지발싸개 같은 인생아. 마지막까지 이렇게 부조리한 적을 준비해 놓냐. GM새끼를 X발 어떻게 이겨.

지난날의 고난 가득한 이세계 생활을 반추해봤다. 웬만한 부조리는 ‘내 인생 x발 원래 그렇지’ 하고 정신승리 해가며 극복해 왔다.

‘하지만 이건 좀… 심하잖아?’

기껏 모든 용사들을 초월한 민첩성을 찍어놨더니. 모든 시스템 상의 종결점이자 궁극점이 눈앞에 등장했다.

압도적인 강자를 앞에 두자 절로 이빨이 떨려왔다. 이스그라드조차 이 정도는 아니었다.

공포심과 억하심정이 노도처럼 밀려오는 찰나. 나는 머리를 거칠게 흔들어 잡념을 물렸다.

‘그래도… 무조건 이긴다. 못 이기면 뭐 어쩔 거야!!’

여기까지 와서 뭐, 꼬리 말고 도망가기라도 할 거냐?

무수한 목숨과 수많은 염원들을 짓밟아서 여기까지 왔다. 루시는 내가 계승식을 끝까지 치르고, 자기를 마녀의 자리에 앉혀주길 기대하고 있다.

그래. 이게 옳은 일이다. 내가 느끼는 공포심 따위… 뭐가 중요하냐.

‘승산이 전혀 없는 건 아냐…!’

나는 행복회로가 과열돼서 터질 때까지 필사적으로 돌렸다.

생각해라. 나에겐 상대를 무조건 속박하는 글레이프니르와, 시간을 멈추는 월드 엠브리오. 신의 영역에 이른 사기급 스킬이 2개나 있다.

‘게다가 버프 스킬과 아이템도 있지.’

기공술은 물론이고, 에테르와 세계의 태동 버프도 있다. 그 버프를 이용하면… 지능 스탯은 많이 떨어져도, 힘 스탯은 극한 너머까지 맞출 수 있을 거다.

나는 생각난 김에 쌓여 있는 태동의 스톡을 확인했다.

‘… 좋아. 15개. 충분하다.’

디아나의 기억이 쏟아져 들어온 뒤. 꼬박 12시간 가량을 퍼질러 잔 것이 호재로 작용했다. 시간이 많이 지난 만큼 스톡이 많이 쌓여 있었다.

속으로 쾌재를 부르던 나는, 어느 순간 퍼뜩. 한수호를 쳐다보고 몸을 굳혔다.

‘그렇다면. 왜…?’

아니. 잠깐만.

뭔가 앞뒤가 안 맞는다.

‘저놈은 왜, 내가 기절해 있는 동안… 나를 죽이지 않았지?’

지금 한수호가 노리는 목적은 일목요연하다.

마녀살해 의식에 따라 내가 디아나를 죽이게 만들고. 공석이 된 마녀의 자리에 아무도 앉지 못하게 해서, 이 세상을 그대로 멸망하게 두는 것이다.

그런데 왜. 놈은 무방비 상태로 퍼질러 자던 나를 끝장내지 않았지?

“정용아. 눈깔이 막 탭댄스를 춘다? 어려운 생각이라도 하냐?”

한수호의 태평한 말씨가 상념을 깨웠다.

철그럭. 멀리서 한수호가 자세를 낮추자 검은 용의 갑주가 염을 토했다.

당장이라도 뛰어들 것처럼 자세를 잡은 그는, 대검의 끝을 장난스럽게 까딱거렸다.

“궁금한 게 있으면 그냥 물어봐. 친절하게 알려줄게. 내가 마검이었을 때처럼.”

너절한 웃음소리가 내 귀에 닿는 것과 동시에, 칼날이 눈앞까지 치달았다.

미처 반사신경이 반응하지 못했다. 죽는다.

‘워, 월드 엠브리오!!’

쿠웅. 심장을 때리는 격렬한 고동이 들려왔고. 사방에서 춤추던 불꽃과 눈앞까지 치달은 한수호가 일순간 멈춰섰다.

[스킬 발동: 월드 엠브리오]

[환산 마력에 의해 정지된 시간: 1.3초]

한 손에는 대검, 그리고 한 손에는 베스타크를 들고 내게 쇄도하는 한수호. 허공에 뜬 채로 양손을 휘두르는 모습이 한 폭의 액션 만화 페이지를 연상시켰다.

내 몸은 뇌가 명령을 내리기도 전에 즉각적으로 반응했다. 놈의 자세를 보고, 칼끝이 향할 궤도를 필사적으로 계산했다.

“윽…!!”

그리고 시간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채채챙! 금속음 다섯 번. 눈 감았다 뜨는 사이 다섯 번의 검격이 쏟아졌다.

한수호가 나를 스치고 지나갔다. 나는 복부를 부여잡고 주춤거려야 했다.

“끄으윽!”

후두둑. 다크 레이븐의 갑옷이 예리하게 잘려나갔고, 옆구리가 파먹힌 것처럼 뜯겨나갔다.

상처 주변에 화염이 일렁거리며 실시간으로 끔찍한 고통을 선사했다.

‘이 망할. 분명 다 막았는데…!’

힘 스탯의 차이. 그리고 쌍검과 대검의 무기 상성 때문에 어거지로 밀렸다.

나는 황급히 태동을 사용하며 씨근거렸다.

“세상 억울하다 진짜…!”

번쩍. 흑구슬 속 아기가 낮게 울부짖자 고통은 사라지고, 살가죽에 붙었던 화염도 사라졌다. 그리고 전에 없던 엄청난 힘이 온몸에서 용솟음치기 시작했다.

이제 결심을 굳힐 때다. 이쯤에서 승부를 봐야겠다.

‘풀도핑이다!’

나는 불, 땅, 바람의 에테르를 일거에 들이삼켰다. 그리고 기공술 스킬까지 활용해 모든 능력치를 한계까지 강화했다.

푸화악! 내 주변으로 압도적인 무형의 기운들이 모이고 흩어지길 반복했다.

“오호. 전투력이 상승하고 있군요?”

한수호는 내 도핑 현장을 보고도 묵묵히 수수방관했다. 마검이었을 때와 다름이 없다. 실없는 유머를 섞어 한 마디 내뱉을 뿐이다.

나는 시종일관 장난스러운 그 태도에 질린 나머지, 쌍검을 고쳐 잡고 그에게 말했다.

“거 변신매너 지켜준 건 고마운데. 그렇게 여유부리다 피똥 쌉니다 형님.”

“나 걱정할 틈도 있어? 우리 정용이는 아량도 넓지.”

한수호는 가소롭다는 양 한 마디 뱉었고. 곧장 내게 쇄도했다.

카아앙! 이번에도 금속음이 길게 울렸다. 한수호가 내지른 일섬이 내가 교차한 쌍검과 부딪혀검신을 떨고 있었다.

‘… 됐다!’

막혔다. 질풍 같던 연격이 내 수비로 끊어져 버렸다.

말인 즉슨… 내 힘이 더 이상 한수호에게 밀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오호.”

한수호도 그 모습을 보더니 낮은 탄성을 흘렸다. 제법이라는 행색이다.

누릴 수 있을 때 충분히 누려둬라. 그렇게 여유 부릴 수 있는 것도 지금 뿐이다. 이제 내 쪽에서 밀고 들어갈 차례였다.

“흡!”

카카캉! 단 한 호흡에 5연격을 쏟아냈다.

아까 한수호의 질풍 같은 맹공과 비슷한 궤도였다. 도발에 가까운 공방이었다.

“이 새끼 봐라?”

수호 형님도 그 의도를 읽은 것인지, 입매를 비틀며 후퇴하던 발걸음을 멈췄다. 그가 발끝으로 땅을 세게 밟자 지면 전체가 낮게 울렸다.

채채채챙! 우리는 그 자리에 못 박힌 것처럼 서서, 양손을 마구잡이로 휘둘렀다. 수십, 수백의 공방이 단 수초 만에 이루어졌다.

퍼걱, 파지직! 주변의 해골들이 충격파에 떠밀려 박살나고 흩어지길 반복했다.

‘지금!’

그리고 어느 순간. 내 눈에 아주 찰나의 빈틈이 포착됐다.

우우웅. 한수호의 머리 위로 시커먼 해골 표식이 떠올랐다.

‘세븐 소드 피어스!’

나는 이를 악물고 한수호의 검을 쳐올렸고. 곧장 스킬을 연발했다.

사사사삭! 일순간 미친 듯이 검을 휘둘렀다. 백 개에 달하는 마력검이 단숨에 생성되었다.

“조져버려!”

푸른 섬광 다발이 일제히 눈가를 간질이며 날아간다.

물론 내가 미처 한 발짝을 떼기도 전에, 그것들은 한수호가 노련하게 휘두른 대검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괜찮다. 아주 잠깐의 시선 털이만 됐으면 성공이다.

‘글레이프니르!’

사방에서 공간을 비집고 어둠의 사슬이 뻗어 나왔다.

일단 발동되면 어떤 수단으로도 파쇄할 수 없는 스킬. 그것이 발동됐으니, 내 승리는 확정됐다.

이 스킬이 한수호를 묶는 10초. 그 10초 동안 끝장을 봐야 한다!

“… 라스트 댄스.”

시동어를 외자 너덜거리던 중갑이 해제되었다.

동시에 모든 생명력이 양손의 쌍검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파지직! 검은 스파크와 일렁거리는 검기가 칼날을 감쌌다.

그리고 일련의 과정을 수행하는 동안, 한수호는 어떤 움직임도 보여주지 않았다.

“저 스킬… 저항해봐야 소용없던가? 한 방 먹었군 이건.”

촤르르륵! 직후에 어둠의 사슬들이 한수호의 온몸을 옴짝달싹 못하게 결박했다.

그 순간에도 한수호는… 이렇다 할 저항을 하지 않았다. 본인 말마따나, 게슴츠레하게 치켜뜬 눈으로 나를 가만히 주시하고 있다.

“주, 죽어…!”

그 알 수 없는 자신감에 잠깐 쫄아버린 나였지만. 이내 마음을 다잡고, 쌍검을 양방향으로 교차해 들었다.

스슥. 순식간에 주변의 풍경이 격변했다.

‘연화!’

스킬을 사용해 한수호의 배후를 점했다.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나는 어깨 너머로 칼날을 깊숙이 당겼고. 기합과 함께 X자로 거세게 휘둘렀다.

“개집으로 돌아가아앗!!”

카가가각! 한수호의 등을 쌍검이 가르고 지나갔다. 놈의 갑옷과 흉폭한 검기가 마찰하며 격렬하게 불꽃을 튕겼다.

푸화악. 갈라진 갑옷 틈새로 핏줄기가 쏟아진다. 한수호의 피였다.

“베, 베었다…!”

나도 모르게 화색이 되어 중얼거렸다. 희망 어린 눈길로 한수호의 안색을 살폈다.

한수호는 온 얼굴에 핏줄이 불거진 채 경련을 반복했다. 그리고 천천히 머리카락 끝부터 잿더미로 변해가고 있었다.

“크허억… 원통하다. 이렇게 허무하게 나의 비원이… 무너져 버리다니!! 끄우웨에에엑!”

한수호는 영문 모를 삼류 악당 대사를 내뱉었다.

이내 찢어지는 괴성과 함께 파스스. 모든 신체부위가 순식간에 잿더미가 되어 허공에 흩날렸다.

털그렁! 주인을 잃은 칠흑의 용갑주가 바닥에 나뒹굴며 해골들과 뒤섞였다.

“끄, 끝난… 건가.”

나는 스스로도 실감이 안 난 나머지 중얼거렸고. 이내 헛웃음을 실실 흘리기 시작했다.

끝났다. 처음 대면했을 땐, 엄청난 압박감에 짓눌려서 역대급으로 시공회귀 하겠다 싶었건만. 그런 각오로 임했던 것치곤… 생각보단 쉽게 놈을 제압했다.

“그… 허, 컥!”

하지만 이제는 대가를 지불할 시간이었다.

푸화악! 온몸에서 피가 쏟아져 내렸다. 순식간에 내 주변으로 피의 웅덩이가 만들어졌다.

철퍽. 나는 그 붉은 웅덩이 한 가운데 쓰러졌다. 정신이 아득해지며 빠르게 시야가 검게 물들어 갔다.

“피, 피안… 유, 윤회.”

나는 마지막으로 피안윤회를 발동시켰다.

지금의 기억이 없는 채 돌아가면 안 된다. 전에 묵시의 기사 때처럼, 갑자기 수호 형님이 사라진 상황에 엄청나게 당황할 것이다. 그런 과정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

[알림: 피안계 구축 완료]

[체내에 잔류한 모든 흉마를 피안계의 구축에 사용했다. 인간성이 대폭 마멸되었다.]

[구축된 피안계에 흉마를 추가적으로 불어넣어 유지할 시, 기억 유지가 가능한 사망 횟수가 증가한다.]

[현재 기억 유지가 가능한 사망 횟수: 73번]

온몸에서 무언가 소중한 것이 빠져나가고. 대신 시커먼 공허가 들어차는 느낌이다.

하지만 후회는 없었다. 이룰 것은 모두 이루었으니까. 만족감 어린 미소를 지은 채, 익숙한 적막 속에서 천천히 의식의 끈을 놓았다.

그리고 그 순간.

“한수호가 이루지 못한 염원! 찐찐막 최종보스, 한수호 MK2가 이어받았다!”

철퍽.

내 시야 끄트머리에… 시커먼 갑주로 둘러싸인 발등이 등장했다.

그 목소리. 익살스럽고, 어딘가 광기가 느껴지는 그 목소리. 틀림없다.

“… 어, 어… 어, 떻, 게…….”

나는 마지막 힘을 쥐어짜 발등의 주인을 눈에 담았다.

역시나. 한수호다.

“내가 지금껏 던져줬던 힌트들을 잘 곱씹어 봐. 정용 군.”

상처 하나 없이 되살아난 한수호가 쭈그려 앉아있다.

내 앞에 쭈그려 앉은 채, 내 이마를 툭툭 찔러대고 있었다.

“나는 혼용 불사신이라고. 육체 회복력의 임계를 돌파해서 육체가 소멸하면. 아예 다른 개체로 새롭게 부활한다니까?”

한수호는 감정이 결여된 목소리를 무기질적으로 뽑아냈다.

이내 짓궂은 미소가 그의 입가에 어렸다. 도저히 사람 같지 않은 텅 빈 미소였다.

“그러면 말이야. 내 육체를 재구성하고, 회복시키는 힘은 어디서 올까.”

“… 으?”

“궁금하지 않아? 원래 내 부활의 원천이던 디아나는 죽었어. 그런데 디아나가 죽어버린 지금. 나는 어디서 나온 힘으로 다시 살아났을까?”

멍한 정신 속, 점점 멀어져 가는 한수호의 목소리가 그런 걸 물어왔다.

나는 핏발 선 눈으로 놈을 노려봤고. 그는 시니컬하게 눈꼬리를 기울였다.

마치, 나를 비웃는 듯하다.

“바로 너한테서 와.”

“… 아?”

“네가 죽을 때 발생하는 흉마 말이야.”

이어진 말로 깨달았다.

비웃는 듯한 게 아니다. 그는 실제로 나를 비웃고 있었다.

“내 의식은 지금까지 네 베스타크에 연결됐었지. 지금이라고 다를 것 같아? 아니야. 앞으로도 계속, 베스타크에 쌓이는 네 흉마는 내가 빨아들일 거다.”

“아… 아? 아아? 아아아?”

“네가 지금까지 여기에 오면서. 200번 가까이 죽어댈 동안 베스타크에 쌓인 흉마. 그리고 네가 앞으로도 죽으면서 쌓일 흉마. 그게 내 부활의 원천이라고. 알아들어?”

나는 하얘진 머리로 멍청하게 탄성만 내뱉었다.

한수호는 그런 나를 건조하게 쳐다보더니, 퍼억! 내 머리를 자근자근 짓밟았다.

후두둑. 놈의 발밑에 묻어 있던 선혈들이 얼굴을 끈적하게 적셨다.

“아직도 모르겠냐 정용아? 네가 기절해 있는 동안… 내가 왜 너를 안 죽였겠냐.”

“… 크, 윽…!”

당장이라도 머리가 짓눌려 터져버릴 것 같은데. 그 말이 나오자 무의식중에도 의식을 집중했다.

한수호의 광기 어린 말들이 계속 이어졌다.

“기절한 채 죽으면 아무 의미도 없어. 너는 나한테 뼛속까지 절망하면서 뒤져야 돼. 그래야 최대한 흉마를 많이 쥐어짜고… 네가 금방 폐인이 될 거 아니냐.”

“어어… 어어.”

“불사신인 내가 제일 잘 알아. 불사신을 죽이는 유일한 방법은… 몸이 아니라 정신을 죽이는 거지. 그렇잖아?”

“어… 어어… 어어어…….”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다.

아무 생각도 없이, 대상도 목적도 없는 순수한 분노를 담아서. 나는 괴성을 질렀다.

“그… 어어…! 으어어어!! 아아아!!! 아아아아아악!!!!”

물론 한수호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저 피식, 콧방귀를 뀌더니 대검을 번쩍 들어올린다.

“흉마 한 목숨 분량. 리필해 간다.”

퍼억! 뒷목에 따끔한 이물감이 쑤시고 들어왔다.

해골정원의 풍경이 데굴데굴 굴러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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