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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417413번째 소울라이크 용사-266화 (242/280)

266화 마녀와 기사

하얀 석문의 안으로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겼다. 안에는 실로 광대한 원형 광장이 들어서 있었다.

나도 모르게 탄성을 흘렸다. 그만큼 웅장한 규모의 광장이었다.

“워… 뭐야 여긴.”

콜로세움을 연상시키는 그릇형 구조의 공간. 무대처럼 마련된 제사장의 가운데는 양손검을 본뜬 제단이 있고, 그 위로 거대한 기둥이 하늘 높이 뻗어있다.

지금까지 온통 하얗던 성당이 이 장소만 온통 시커멓게 칠해져 있다. 그래서 유독 인상이 깊게 남았다.

“흑검의 성소. 디아나가 있는 공중정원으로 향할 유일한 통로지.”

수호 형님은 나를 흘깃 보더니, 내 의문을 해소해줬다.

한 템포 늦게 상태창이 떠올랐다.

[위치 정보]

[장소 ? 멸망의 성흔. 신성국 슈엘츠. 백검의 성당 내부 / 흑검(黑劍)의 성소]

과연. 수호 형님의 말 대로였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는 한 편, 폐허가 된 성소의 모습을 찬찬히 둘러봤다.

이내 갸웃, 고개를 모로 꺾었다.

“통로… 같은 게 어디에 있습니까. 아무리 봐도 우리가 들어온 문 밖에 없는데.”

“기둥 안에 공간 있어.”

“… 예? 뭐라고요?”

“제단 중앙의 큰 기둥 안에 공간 있다고. 안에 부유석이 설치돼 있어서, 그게 엘리베이터처럼 작동해서 공중정원으로 출입이 가능하지.”

“아아.”

과연. 납득했다.

공중정원 공중정원 하더니, 진짜 성당 위의 공중에 만들어놓은 정원인 건가? 엘리베이터로 출입한다는 걸 보면 맞는 듯하다.

나는 제단 위로 우뚝 솟은 기둥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내가 여기 작업부였으면 시공한 새끼 싸대기 존나 때렸다. 기둥 안에 통로는 생각도 못 했습니다.”

“일부러 생각도 못 하게 만든 거니까. 백검의 성당 공중정원은 슈엘츠의 무녀… 루나를 비롯해서, 슈엘츠 고위 사제들만 알고 있던 비밀의 화원이거든.”

“아. 아하. 그러면 뭐.”

수호 형님은 거기까지 말하고는 제단의 기둥에 다가갔다.

피식. 신랄하게 비틀린 입가의 비웃음이 보였다.

“뭐… 이젠 화원이라고 부르기도 애매한 꼬라지가 됐지만. 꽃이 다 뒤졌으니.”

언제나 목소리로만 듣던 수호 형님의 실시간 표정을 보고 있으려니. 복잡한 감정이 치솟았다.

언제나 유쾌할 것만 같았던 그는… 의외로 시니컬한 표정이 잘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흐음. 보자. 여기던가?”

그는 이내 기둥 옆면을 만지작거렸다.

스르륵. 벽면의 일부가 신기루처럼 허물어졌다. 기둥 내부에 숨어있던 협소한 공간이 눈앞으로 드러났다.

환상의 벽. 이제는 나도 익숙해진 장치 중의 하나였기에 놀라진 않았다.

“가자. 디아나가 있는 화원으로.”

수호 형님은 먼저 기둥 안으로 들어가며 말했다. 나도 비장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안으로 발을 들였다.

우우웅. 우리가 올라타자 부유석은 강렬한 파란 빛을 뿜었다. 그러나 이내 기동음이 잦아들더니, 푸른빛도 점점 수그러들었다.

“음?”

“응?”

갑자기 기동을 멈춘 승강기. 나와 수호 형님은 동시에 당황의 탄성을 흘렸고.

이내 우리 앞으로 패널이 하나 떠올랐다.

[알림: 정원 초과]

[상세: 승강용 부유석의 수용 가능 인원을 초과했다.]

[부유 가능한 최대 인원: 2명]

미친. 정원 초과라니. 나는 황당한 나머지 헛숨을 삼켰다.

그 상황은 수호 형님도 예상을 못 했는지, 난처한 듯이 뒷머리를 긁적였다.

“어허. 이런 복병이 숨어있을 줄이야. 거 곤란하게 됐네.”

“아니… 뭔 놈의 엘리베이터가 정원이 꼴랑 2명입니까.”

“많은 인원이 탈 이유가 없으니까 그렇지. 외부 공격을 받더라도 2명 씩 밖에 못 올라오니 수비용으로 농성할 때도 좋고. 그렇잖아?”

“으음. 그건 그렇네요.”

아니 잠깐. 설명에 납득해서 뭐 어쩌자고. 대책을 강구해야할 거 아니냐 정용아.

내가 고민을 거듭하는 그 순간. 문득 수호 형님이 내 등 뒤를 삿대질했다.

슬쩍 그 방향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퍼질러 자는 루시가 있었다.

“일단 불사의 마왕을 여기다 두고. 우리끼리 가볼까?”

나는 퍼뜩 수호 형님의 얼굴을 쳐다봤다.

루시를 버려두고 간다. 그 말 자체에 엄청난 거부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 여기다, 두고 간다고요?”

“그래. 계승식에 대해서 너한테 설명해야 할 것도 꽤 많고. 어차피 쟤는 자고 있는 동안 아무 것도 못하잖아.”

“그거야 뭐… 그렇긴 하지만.”

“뭐, 해코지하러 올 사람도 없는데. 상관없지 않아?”

그렇긴 하지만.

대체 뭘까. 이 꺼림칙한 느낌.

짜고 치는 연극의 주연. 타짜들에게 잡힌 호구. 야매병원 수술대에 누운 환자가 딱 이 짝일까.

왜 이렇게 마음이 술렁이는 거지.

“자. 뭐 어쩔 거야. 뭔가… 다른 뾰족한 수라도 있냐?”

수호 형님은 태연하게 손을 뻗으며 그렇게 말했다.

나는 그 순간 수호 형님의 안색을 흘깃 쳐다봤다. 그리고 분명히 포착했다.

그는 미미하게 웃고 있었다. 마치 우리가 직면한 이 상황을 즐기듯이.

꺼림칙한 이물감은 한층 강해졌다.

‘이건…….’

순간 스스로 놀랄 정도로 맹렬하게 두뇌가 회전했다. 그리고 나는, 이내 고개를 무겁게 끄덕였다.

스르륵. 루시를 그 자리에 살포시 내려놓았다.

“… 없죠. 딱히 뾰족한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

수호 형님이 부활한 순간부터. 백검의 성당에 들어온 순간부터. 아니… 게이트를 타고 멸망의 성흔에 진입한 시점부터.

생각해 보니, 나는 수호 형님의 제안을 따를 수밖에 없다. 그걸 깨달았다.

‘거부하면 어쩔 거지?’

내 예감대로 그의 제안이 어딘가 위험하다 해도. 내가 뭘 어쩔 텐가.

‘도망칠 건가?’

대체 어디로.

혼자 싸돌아다니다 절멸의 안개 마시고 피토하지 않을 자신은 있고?

‘제안을 거절하고… 독단으로 움직일 건가?’

대체 어떻게.

멸망의 성흔과 이 성당. 그리고 마녀 계승의식에 대해서 자세하게 아는 사람은… 이 세상 탈탈 털어도 수호 형님뿐인데?

‘이미… 적진의 한복판에 혼자 쳐들어온 꼴이다.’

정신 똑바로 차리자.

내가 정신 차리지 않으면… 루시가 위험해진다.

“…….”

나는 내려놓은 루시가 자는 모습을 하염없이 쳐다봤다.

이내 결심이 섰다. 나는 그녀의 머리카락을 한 번 손바닥으로 쓸었다. 특유의 서늘한 체온이 손바닥으로 느껴졌다.

“가시죠. 형님 말대로… 우리끼리 가서. 결착을 봅시다.”

나는 여러 의미를 담아 그렇게 말했다.

털썩. 부유석 위로 올라와 수호 형님을 가만히 쳐다봤다. 그도 미미하게 웃는 눈으로 마주보다가, 이내 고개를 슬쩍 끄덕였다.

“그래. 역시 넌 얘기가 잘 통해서 좋다니까.”

우우웅. 다시금 발밑의 부유석이 새파란 빛을 토해냈다.

순간 온몸이 붕 뜨는 감각이 몰려오더니, 부유석이 상승하기 시작했다.

쿠구구구. 시끄러운 부유석의 공명음이 귓전을 때린다. 나와 수호 형님은 입을 굳게 닫고 부유석의 도착만을 기다렸다.

“…….”

“…….”

압도적인 침묵 속.

우리는 디아나가 있다는 공중정원을 향해 시시각각 가까워졌다.

* * *

푸쉬익. 맹렬하게 치솟던 부유석은 어느 순간, 새파란 증기를 뿜으며 멈춰 섰다.

방금까지 사방이 꽉 막힌 기둥 안에 있어서 그런가. 나는 순간적으로 탁 트인 시야에 탄성을 내질렀다.

“여기가… 이 세상의 마지막이 시작됐던 장소. 백검의 성당 비밀의 화원이다.”

수호 형님은 먼저 부유석에서 내렸다. 그리고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여기도 오랜만이군. 누추하지만 들어와라.”

수호 형님의 말대로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실로 누추한 모습이었다.

검게 물든 하늘 아래. 사방이 탁 트인 원형의 광장이 있다.

전체적인 크기는 흑검의 성소와 비슷한 정도일까. 그런 광활한 정원에… 온통 뼛조각들이 산처럼 수북이 쌓여 있었다.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이게… 무슨 화원이야.”

공중정원 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비주얼은 완전히 인골을 뿌려놓은 쓰레기장이었다.

어디를 둘러봐도 새하얀 뼈가 무릎 높이 이상으로 쌓여있다. 가끔씩은 이스그라드만큼이나 거대한 짐승의 뼈대 같은 것도 보였지만. 기본적으로 인간의 뼈들이 대부분이었다.

‘성당 바깥에 널린 시체들은 애교 수준이잖아…!’

시체가 너무 많으니 역한 감정조차 들지 않았다.

쌓인 뼈들이 하나의 지형 같았다. 뼈 무덤의 산과 또 다른 산이 만나 산맥을 이루었고. 그 사이 생긴 계곡에는 찐득하게 썩은 해골물이 줄줄 흐르고 있다.

“내가 말했잖아. 지금은 정원이라고 하기도 애매한 꼬라지라고.”

수호 형님이 민망한 듯이 대꾸했다. 그리고 뼈로 쌓은 산을 천천히 등반하기 시작했다.

나는 정원의 압도적인 풍경에 넋을 잃었다가, 이내 수호 형님의 꽁무니를 쫓았다. 그리고 추궁하듯 쏘아붙였다.

“대체 뭡니까. 이 미친 시체의 산은… 또 뭐냐고요.”

“뭐냐고 하면… 겁대가리 없이 나한테 덤빈 무수한 사람들?”

“… 뭐요?”

수호 형님은 뼈무덤을 펄쩍펄쩍 거슬러 올라가며 태연하게 대꾸했다.

예상치도 못한 대답이었다. 나는 눈을 부릅떴다.

“내가 살아생전 디아나의 옆을 지킨 것만 400년이 넘어. 계승식 이후엔 디아나의 저주 때문에 아무도 이곳에 못 들어왔지만… 그 전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악의를 가지고 디아나를 죽이러 찾아왔을까?”

“…….”

“나도 정확히는 몰라. 여기 널린 두개골 개수를 한 번 세어보든가. 정답은 그거다.”

막상 말은 그렇게 해놓고, 수호 형님은 두개골 개수 셀 틈을 주지 않았다.

뼈무덤의 정상에 오른 수호 형님의 발걸음이 멎었다. 자연스레 뒤따르던 나도 멎었다.

수호 형님의 눈가에 아련한 기색이 감돌고 있었다.

“… 디아나. 정말… 오랜만이다.”

그는 불현듯 중얼거렸다. 나는 그 시선을 따라 눈길을 돌렸다.

나도 형님의 시선 끝에 있는 디아나 에스파다를 발견했다.

“아. 아아… 아아.”

그녀는 뼈를 쌓아올린 거대한 옥좌에 앉아, 갈라지는 신음을 흘리고 있었다.

나는 숨을 삼켰다. 그리고 천천히 뒷걸음질 쳤다.

“뭐야. 저거… 왜, 왜 저래.”

꼬마였다. 끔찍한 몰골의 꼬마 여자아이.

푸석하게 산발한 하얀 머리. 피골이 상접한 온몸. 한쪽 눈두덩은 텅 비어 검은 눈물이 줄줄 흘렀고. 나머지 한쪽 눈에선 생기를 잃은 보랏빛 눈동자 위로 구더기가 들끓었다.

“아… 으. 아아…….”

쩌적. 그녀가 신음을 내뱉을 때마다 피부가 쪼개져 흘러내렸다. 바싹 마른 점토인형처럼. 갈라진 살갖 안에선 벌레가 우글거리며 밖으로 빠져나왔다.

빼빼마른 온몸은 꼼짝도 못하도록 암흑의 사슬이 휘감겨 있었고. 몸통엔 굵고 거대한 흑색의 창이 수십, 수백 개가 박혀 있었다.

썩어서 말라비틀어진 인간 모양의 고슴도치. 그렇게 말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명칭: 디아나 에스파다]

[별칭: 불멸의 마녀. 최후의 네크로맨서. 공포의 대왕]

[규격 외 존재 ? 패러미터 측정 불가]

나는 보고도 안 믿긴 나머지 미미르의 눈을 발동시켰다.

확실하다. 이 폐인이 된 백발의 여자애가… 이 세계를 한 번 멸망시켰고, 다시 부활시킨 마녀.수호 형님이 기를 쓰고 지키려 했던 디아나 에스파다. 본인이다.

“이게… 그, 전설의 마녀라고?”

하얀 머리칼에 보라색 눈. 그리고 어린 여자 아이.

수호 형님한테 들었던 그대로의 외형. 하지만 실로 끔찍하게 변모하고 짓이겨진 외형이다.

대체 왜. 그 악명 높은 마녀, 디아나 에스파다가… 이런 몰골로 있는 거야.

“말했잖아. 흑마법은 사람 죽이는 마법. 발동원리가 저주 그 자체라니까.”

그 당연한 의문을 떠올리자마자 옆에서 수호 형님이 말했다.

마치 마음을 읽힌 듯한 타이밍이다.

“본인의 고통을 매개로 하는 술식이라고. 세계의 유지가 지속될수록 점점 더 많은 마력이 필요했고. 그래서 더 심한 고통이 필요했어. 그 결과가 이 꼴이야.”

나는 불에 덴 듯이 수호 형님을 쳐다봤다.

그는 디아나의 옥좌 옆에 주저앉아, 애정 어린 손길로 디아나의 머리를 가만히 쓰다듬고 있었다.

“이제 디아나는 내 말을 듣지도, 나를 보지도, 내 손길을 느끼지도 못해. 그냥 엄청난 고통에 따라 기계적으로 마력을 쏟아낼 뿐인… 망가지기 직전의 인형이지.”

문득 수호 형님이 나를 돌아봤다.

나를 주시하던 가늘게 뜬 눈이 씨익. 뒤틀린 호선을 그렸다.

“개인적으로 네가 정말 부러워. 정용아.”

“… 예, 예? 부럽다니… 뭐가요.”

“디아나는 내게 고통을 대신할 권리를 주지 않았어. 하지만 인도하는 까마귀. 너는 그 자격을 가지고 있거든. 내가 강제로 집어넣었어.”

“… 형님. 그게… 대체 무슨 말이냐니까요.”

“선택권이 있다. 그것 자체가… 얼마나 큰 축복인지. 너는 모를 거다. 정용아.”

기분 탓은 아닐 것이다.

영문 모를 소리를 중얼거리는 얼굴. 그 얼굴에 걸린 귀기 어린 웃음.

그 웃음에서는 인간의 범주를 한참 넘어선… 형용 못할 광기가 도사리고 있었다.

“이제 진짜 마지막이다. 뭘 해야 되는지는 알고 있겠지?”

“… 아, 어?”

“모른다면 알려줄게. 자.”

수호 형님은 그렇게 말하더니 탁, 손가락을 가볍게 튕겼다.

그 신호에 맞춘 건지, 아니면 원래 떠오를 예정인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내 앞에 퀘스트 패널이 떠올랐다.

[퀘스트 발생 (에픽)]

[명칭: 마녀를 죽여라 ? 마지막 의식]

[난이도: 전설]

[상세: 세상의 끝, 마녀의 화원에 도착했다. 마녀의 숨통을 끊을 수 있는 건, 그녀가 직접 허락한 인도하는 까마귀뿐이다. 가련한 마녀를 최후의 안식으로 인도하자.]

[조건: 인물 ‘디아나 에스파다’ 살해 ― 미충족]

[보상: 마녀의 계승자 선택권]

“그대로 따라해. 어서.”

퀘스트 창 너머로 수호 형님의 서슬 퍼런 목소리가 들려왔다.

키잉! 강렬한 금속음이 들려왔다. 퀘스트 창을 물리고 고개를 슬쩍 들어 봤다.

수호 형님이 뼈무덤 사이에 박혀 있던 하얀 골검을 들어 올렸다. 내가 가진 에스파다와 똑같이 생긴 칼이었다.

“지금 이 세상에서. 불사신 디아나의 목숨을 끊을 수 있는 건… 디아나가 직접 자격을 부여한 너뿐이다. 나조차도 저 애를 해방시켜줄 수 없어.”

그는 미친 사람처럼 중얼거렸다.

“마녀를 죽여. 빨리 디아나를… 그만 편하게 해줘.”

이내 광기가 번들거리는 눈으로 나를 협박하기 시작했다.

소중한 사람을 제발 죽여 달라는, 간절한 협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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