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5화 당신의 하트를 GET하겠어
“아니 미친… 수호 형님… 어찌 해골만 돌아오셨소…!”
내가 해골 앞에 다가가서 장렬한 신파극을 찍고 있자니.
수호 형님이 연신 혀를 차며 과몰입을 방해했다.
―오바 싸지 마 새꺄. 사람 해골 처음 봐?
“… 아뇨. 그렇진 않죠.”
그렇진 않지만. 지금도 멀쩡히 대화하고 있는 사람의 시체를 마주하니, 기분이 미묘해서 지랄 좀 해봤다.
수호 형님은 한숨처럼 중얼거렸다.
―나 500년 전의 인물이잖아. 아직 해골이 풍화되지 않은 게 천만다행일 정도다 야.
“쓰읍. 그, 그건 그렇긴 한데.”
감정선이 짜게 식은 나는 즉각 지랄을 그만뒀다.
엉거주춤하게 해골 앞에 서서 가만히 내려다봤다. 정확히는 열쇠구멍 같은 홈이 나있는 갈비뼈 부근을 주시했다.
‘와… 뭐냐 이건.’
백골의 갈비뼈 안에 시커먼 안개가 뭉글거린다.
그 안에서 심장박동처럼 두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에 따라 갈비뼈 안의 시커먼 안개도 기분 나쁘게 넘실거리고 있다.
“… 형님, 이런 해골은 처음 보는 거 맞네요. 저거 뭡니까. 존나 징그럽네 진짜.”
나는 몸서리를 치며 몸을 한 발짝 물렸다. 해명을 요하는 집요한 시선을 베스타크에 던졌다.
그러자 수호 형님이 한숨과 함께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내가 죽기 직전에. 그러니까 의식을 베스타크로 깃들이기 직전에… 나 자신한테 주술을 걸어놓은 거야.
“주술? 어떤 주술이요.”
―보다시피 내 시체를 매개 삼아서, 절대로 끊어지지 않는 사슬을 펼쳐놓은 거지. 내가 설정해 놓은 열쇠로 사슬을 풀지 않으면… 아무도 안에 못 들어가도록.
“흐음.”
―저것도 디아나의 도움을 좀 받았다. 나는 뼛속까지 육체파라 마법 거의 못 써. 하하핫.
역시나. 저 열쇠구멍처럼 보이는 갈비뼈의 길쭉한 홈은, 예상대로 열쇠구멍이 맞구나.
나는 납득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고.
―뭐, 방범과 부활. 두 마리 토끼를 한 번에 잡는 빅―픽쳐 전략이라고나 할까.
수호 형님이 다시 입을 열어 첨언했다.
방범이야 무슨 말인지 알겠다만… 부활이라고?
실로 신경 쓰이는 단어의 등장이다. 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방범과… 부활? 부활이라뇨?”
―일단 문이나 열어봐. 그러면 무슨 소린지 저절로 알게 돼.
수호 형님이 실없이 웃으며 툭 내뱉었지만. 나는 여전히 멀뚱멀뚱 해골만 쳐다볼 뿐이다.
문을 열라고 한들,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나는 뒷머리를 긁적이다가 해골을 퍼뜩 가리키며 말했다.
“형님. 보아하니 형님 갈비뼈에 뭘 쑤셔야 되나 본데… 저는 여기까지 오면서 열쇠 같은 건 본 적이 한 번도 없는데요.”
―정말 그럴까? 네가 눈치 못 챈 게 아니고?
“아니, 그럴 리가…….”
대답은 당당하게 했지만, 이내 안 좋은 생각들이 등줄기를 스쳤다.
설마.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데. 놓쳤나? 진짜 내가 뭔가 놓치고 왔나? 아이템 파밍 놓친 것 때문에 왔던 길 되돌아가라고?
아니, 제발. 그럴 리가 없어. 그럴 리가 없어야 한다.
―그 소리가 아니고. 네가 이미 갖고 있는데 눈치를 못 채는 거 아니냐고 인마.
내가 눈에 띄게 불안해하자, 수호 형님이 피식 웃으며 첨언했다.
나는 눈을 둥그렇게 뜨고 복장점검을 시작했다.
“갖고 있는데, 눈치를 못 채요…?”
나는 갖고 있던 물건들 중에 좀 길쭉하다 싶은 물건들을 전부 꺼냈다.
그리고 하나씩 해골의 갈비뼈에 난 홈에 갖다 대보기 시작했다.
‘에테르 병 아니고. 멸망의 대검 아니고. 성녀의 문장도 아니고. 에스파다 아니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유일하게 남은 베스타크를 갈비뼈에 갖다 댔을 때.
내 손은 저절로 우뚝 멈춰버렸다. 구멍에 정확히 베스타크의 날붙이가 합치했다.
“… 이거다.”
쑤욱. 내가 멍하니 중얼거리기 무섭게, 해골의 갈비뼈로 베스타크가 밀려들어갔다.
나는 당황의 탄성을 흘렸다.
“엇…?!”
이건 내가 쑤신 게 아니다. 나는 사실상 힘을 거의 주지 않았다.
마치 칼끝이 구멍을 찾아 자석처럼 빨려 들어간 듯한… 그런 움직임이다.
―전에 분명히 말했잖아. 네가 죽을 때마다… 이 베스타크에도 흉마가 쌓인다고.
베스타크에서 문득 수호 형님이 그런 말을 했다.
평소보다 훨씬 신나 보였다. 목소리가 한 옥타브는 족히 높아져 있다.
―네가 지금까지 죽은 분량만큼. 이 검에 쌓인 흉마를… 지금부터 내 시체에 이식할 거다.
구우웅, 쿠우우웅!
미친 듯이 떨리는 베스타크와, 그에 따라 잘게 흔들리는 암흑의 사슬들.
무언가 일어나고 있다는 직감이 엄습했다.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 그게… 그러니까, 무슨 말이냐고요!”
―흉마는 인간의 존재를 구성하고, 말살하기도 하는 위험한 마력이다. 그 흉마가 잔뜩 충전된 검을, 언데드였던 내 몸에, 내 의식과 함께 박아 넣으면. 내 시체는 어떻게 될까?
“… 아?”
나는 끝내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고개를 갸웃거리는 내 앞으로 번쩍! 해골의 텅 빈 눈두덩에서 새파란 안광이 흘러나왔다.
우드득, 뿌드드득! 해골이 온몸을 발작하듯이 마구 뒤틀기 시작했다.
“어어… 끄어어… 아이고 삭신이야…….”
눈알이 튀어나오도록 그 광경을 뚫어져라 쳐다보는데. 해골의 입에서 그런 소리가 나왔다.
순간 온몸이 굳는 것 같았다. 나는 잠깐 동안 숨 쉬는 소리도 내지 못했다.
‘이, 목소리는.’
해골에서 흘러나온 목소리가, 언제나 귓전을 울리던 수호 형님의 목소리였기 때문이다.
나는 그제야 수호 형님이 했던 말들을 강제적으로 이해했다. 뼈마디를 펄떡이기 시작한 해골을 조심스레 불렀다.
“… 혀, 형님?”
“어. 자, 잠깐만. 몇 백 년 만이라 몸이 적응이 안 되네 X발. 몸뚱이 조정 좀 한다…….”
쓰러진 백골… 아니. 수호 형님이 손을 뻗어 내 말을 중지시켰다.
그는 이윽고 해골바가지를 이리저리 돌려보고, 뼈 밖에 없는 몸으로 기지개를 켰다. 스트레칭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벌떡. 일련의 과정을 마치자, 드디어 해골이 그 자리에서 일어났다.
“후. 이제 좀 살겠다. 쉽지 않네 이거.”
수호 형님이 푸른 안광을 번뜩이며 그렇게 말했다.
꾸드득. 수호 형님의 가슴에 박힌 베스타크를 타고, 갈비뼈 안에서 꿀렁거리던 검은 안개가 줄줄 흘러나왔다.
슈르르륵. 그것들이 이내 수호 형님의 앙상한 뼈들을 시커멓게 뒤덮었다.
“잠깐만 기다려라 정용아. 변신 매너 알지… 컥!”
뿌득. 우드드득. 검은 안개 안에서 뼈마디 뒤틀리는 소리가 연신 울렸다.
절로 등줄기가 곤두서는 사운드였다.
“기야아악! 구와아아악!!”
동시에 안에서 수호 형님의 숨넘어가는 목소리가 들린다. 나는 퍼뜩 목청을 높였다.
“아니, 형님… 괘, 괜찮으십니까?!”
“어어. 괜찮아 괜찮아. 원래 이런 거야… 끼요오옷!!”
수호 형님의 나름 태연한 목소리가 안에서 들려왔다. 물론 순식간에 비명으로 바뀌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뿌드득! 엄청난 소리와 함께 형님의 신형이 크게 뒤틀렸다.
“크허억! 이, 이건 뼛속까지 아프다!”
… 아무래도 안개의 내부에서, 엄청난 고통을 수반하는 무언가를 겪고 있는 듯했다. 나는 초조하게 수호 형님을 뒤덮은 검은 안개가 걷히길 기다렸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검은 안개 너머로 어렴풋이 보이는 내부의 광경을 눈에 담았다.
“… 아?”
수호 형님의 뼈마디에 무수한 신경다발이, 혈관이, 그리고 근육이 덕지덕지 붙고 있었다.
마치 세포가 재생하듯이. 온몸이 부글부글 끓으며 뒤틀린 피와 살덩이들이 재생되어 간다.
그것들이 완전히 인간의 형상으로 변형됐을 때, 마침내 검은 안개는 걷혔다.
“후우. 오래 기다렸다. 부활 완료.”
안개가 걷히자, 거기엔 더 이상 허연 스켈레톤이 없었다.
대신 후드티와 검은 청바지 차림의 한국인 남자가 등장했다. 나는 그 남자의 인상착의를 전에도 본 적이 있다.
내가 피안의 악몽 속에서 봤던 한수호. 그가 눈앞에 서 있었다.
“자. 이건 다시 돌려줄게.”
수호 형님은 그렇게 말하더니, 자기 가슴에 박힌 베스타크를 쑤욱 빼냈다.
우지직. 질척한 파육음이 울렸다. 검이 빠진 곳에서 붉은 피가 콸콸 솟았지만. 이내 상처가 부글부글 끓더니, 순식간에 아물어 버렸다.
‘부, 불사신.’
그렇구나.
수호 형님이 방금 전에 설명했듯이… 저것이 수호 형님의 부활 능력이다. 직접 보고도 좀처럼 믿기지 않는 기괴한 기적이었다.
수호 형님이 킬킬거리며 베스타크를 내 발치로 던졌다.
“내가 빠져나갔으니 이제 마검도 아니지만… 없는 것보단 낫겠지. 지금까지 쌓인 능력치는 그대로니까 쓸만할 거다.”
“아… 예. 감사합니다.”
내가 베스타크를 다시 칼집에 회수하자, 수호 형님은 의미심장하게 이죽거렸다.
그리고 별안간 주먹을 불끈 움켜쥐었다.
“부활도 했겠다. 다시 힘차게 가보자고. 지금의 나는 기분이 좋아.”
우지직, 하는 파쇄음이 났다.
퍼뜩 고개를 들어봤다. 하얀 대문을 칭칭 감고 있던 사슬들이 수호 형님의 손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중이었다.
“으음. 너랑은 흉마의 상성이 잘 맞아서 그런가. 오랜만에 마력을 움직이는데도 저항이 별로 없구나. 역시 사람 하나는 잘 골랐다니까. 우리 기특한 디아나.”
수호 형님은 그 모습을 보면서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기분 좋다는 게 거짓말은 아닌지, 목소리가 시종일관 들떠 있었다.
“그, 그렇습니까?”
“어. 상처 재생도 장난 아니게 빠르네. 우린 속궁합이 좋은가봐 오빵.”
“아… 거 중간중간 개미친 소리 하지 마십쇼 좀. 소름돋네 진짜.”
“으하하. 쏘리.”
.
쿠구궁. 육중한 소리가 났다. 검은 사슬이 제거된 문짝이 스스로 천천히 열리기 시작한 것이다.
수호 형님은 벙쪄 있던 내 앞으로 태연하게 걸어 나갔다.
“이제 가자. 하던 거 마저 해야지.”
“아, 아아. 네에…….”
나는 심각하게 평소 같은 그의 모습에 당황했다.
수백 년 만에 부활한 사람치고는, 부활에 대한 리액션이 빈약했기 때문이다.
‘평소 반응 생각하면… 더 크게 기뻐할 법도 한데.’
옆에서 구경하는 나도 이렇게 놀랐는데 말이야. 최소한 매드 사이언티스트처럼 하늘을 보고 광소를 흘려야 하는 부분 아닌가?
수호 형님은 멀뚱히 서있는 나를 보더니, 이내 앙상한 팔을 휘적거렸다.
“가만히 서서 염불 외냐? 빨리 따라와.”
“아. 아아. 예, 예에.”
나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퍼뜩 대답했다.
얄상하고 탄탄한 육체를 휘적거리는 수호 형님의 뒤를 바짝 쫓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