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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417413번째 소울라이크 용사-261화 (237/280)

261화

키잉, 키키킹!

왼쪽에서 뱀처럼 날아오는 창백한 사슬낫. 그리고 오른쪽에서 묵직하게 덤벼드는 붉은 대검.

두 병기가 내 무기와 맞붙으며 연신 금속음과 불꽃을 내뿜었다.

“하앗!”

양쪽 방향에서 쉴 새 없이 나를 압박하는 두 기사.

적기사 쪽은 사실상 멸망의 대검의 자동 방어에 의지했다. 그리고 나는 청기사의 사슬낫을 집중적으로 상대하는 중이었다.

‘일단은, 내가 훨씬 강해!’

베스타크와 에스파다를 교차하며 휘둘렀다.

콰아앙! 폭발에 가까운 굉음이 터져나왔다. 청기사가 휘두른 사슬낫은 끈 떨어진 연처럼 땅으로 속절없이 처박혔다.

기회다. 나는 놈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새로 얻은 멸망의 신기와, 에테르로 이중 강화된 내 몸은… 그야말로 순간이동처럼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갔다.

“으아아아!”

괴성과 함께 팔을 일사불란하게 휘둘렀다.

서서서석! 찰나였다. 그야말로 눈을 깜박이는 찰나의 순간에, 도합 일곱 번의 검광이 번득였다.

―그우… 우욱…!

청기사는 당연히 내 검격에 반응하지 못했다. 그저 투구 안에서 굵직한 신음을 내뱉었다.

놈의 갑옷이 두부처럼 썰려나가며 안에서 시커먼 무언가가 질질 흘러나왔다. 타고 있던 유령마는 목이 예리하게 잘린 채, 환부에서 푸른 불꽃을 뿜어냈다.

‘마무리!’

끝이다. 나는 마지막 일격을 넣기 위해, 마력을 사출해 튕겨나가려 했다.

그러나 그 순간. 길게 늘어진 청기사의 사슬낫이 왼쪽 시야 사각에서 덮쳐왔다.

‘위험!’

후우웅!

히어로 센스로 간파한 덕분인가. 몸이 알아서 위험을 감지하고 머리를 숙였다.

파스스. 잘린 머리카락 몇 가닥이 그대로 잿더미가 되어 흩날렸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간담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 X발…! 베이면 즉사는 심하지!”

또다. 아까부터 계속 이런 상황이다.

창백한 말을 탄 청기사. 이 ‘묵시의 기사단’의 리더라고 했던가. 설명 패널에 분명, 베이면 상처의 깊이와 관계없이 즉사라고 했다.

‘가뜩이나 이놈은 스탯도 만만찮아서 성가시기 짝이 없는데.’

그 즉사라는 요소가 나를 자꾸 주춤하게 만들었다. 스스로 희열을 주체하지 못하게 되는 스케어크로우도 그래서 사용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내가 연신 혀를 차는 찰나. 파파팟! 무수한 화살 세례가 측면에서 쏟아졌다. 보나마나 멀찍이 떨어져 있던 백기사가 날린 화살일 테다.

“저 새끼 또 지랄이네!”

나는 씨근거리며 곧장 어검술을 사용했다. 에스파다가 일직선으로 청기사의 면상을 향해 날아간다.

키잉! 청기사는 어렵지 않게 그것을 사슬낫으로 쳐냈다. 대신 방어에 치중하느라 어쩔 수 없이 신형이 밀렸다.

‘지금!’

화악! 다크 레이븐을 발동시켜 곧장 하늘로 치솟았다. 갑주로 단단히 감싸인 허벅지에 퍼퍽! 굵직한 화살이 스쳤다.

다행히 다크 레이븐의 갑주가 그것을 막아냈지만. 스친 부위가 매캐한 연기를 뿜으며 천천히 부식되고 있었다.

그리고 나를 향한 견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대기가 진노하니, 폭풍이 몰아친다…!

백기사 옆에서 강 건너 불구경하던 흑기사. 그가 저울을 흔들며 중얼거린 것이다.

콰아아아! 갑자기 내가 떠있는 공중을 중심으로 이상기류가 발생했다. 기류는 순식간에 토네이도로 진화해 격렬하게 내 몸을 뒤흔들었다.

“끄아아악!”

다크 레이븐의 추진력으로도 도저히 버틸 수 없는 풍압. 나는 하릴없이 기류에 따라 허공에서 회전했다.

회전이 점점 가속한다. 눈알이 튀어나올 것 같은 압력이 나를 짓눌렀다. 나는 필사적으로 폭풍의 내부를 벗어났다.

“커헉!”

털썩. 나는 살충제 맞은 모기 마냥 기운이 빠져, 천천히 바닥으로 추락했다.

두 발로 버티고 선게 기적이었다. 아마 상승한 신체능력이 아니었으면, 그대로 죽었을지도 모른다.

―우오오오오!

그런데 그 순간. 섬뜩한 포효가 들렸다.

서걱! 눈앞에 붉은 궤적이 내 몸을 훑고 지나갔다. 멍한 정신으로 가만히 쳐다보니, 거대한 대검의 궤적이었다.

어검술의 자동수비를 뚫어낸 적기사가 내 몸에 대검을 휘두른 것이다.

“커… 억!”

콰아아앙! 나는 종잇장처럼 날아갔고. 이내 칠흑의 복도 벽면에 처박혔다.

후두둑. 박살난 벽과 중갑옷의 파편이 바닥으로 흩어졌다. 나는 아찔한 정신을 간신히 가다듬고 천천히 자세를 정돈했다.

“푸하아.”

나는 턱 막혔던 숨을 몰아서 쉬었다.

우우웅. 나는 손을 까딱였다. 아까 청기사에게 날렸던 에스파다와, 적기사를 상대하던 멸망의 대검이 다시 내 주변으로 돌아왔다.

―침입자.

―제거한다.

―문답은.

―무용하다.

처척. 네 명의 기사가 처음처럼 나란히 섰다.

그리고 천천히 방진을 구축하며 나를 압박해왔다.

“태, 태동 사용.”

나는 곧장 파우치에 담겨 있던 멸망의 신기, 세계의 태동을 꺼내들었다. 그리고 아이템 사용의 시동어를 중얼거렸다.

우우웅. 짧은 공명음과 함께 시커먼 구슬 안의 아기가 눈을 번쩍 떴다.

지옥 밑바닥에서 울리는 듯, 서늘한 울음소리가 한동안 복도를 메웠다.

―으앙! 으아아앙!

두근, 두근. 심장이 격하게 울렸다. 시야는 수축과 이완을 반복했다.

스스스. 몸의 상처는 물론이고 다크 레이븐의 파손부까지, 마치 시간이 되돌아가는 것처럼 깔끔하게 아물기 시작했다.

또한 온몸에서 각종 버프 에테르를 한꺼번에 사용한 듯한 활력이 샘솟았다.

“이… X발.”

세계의 태동을 통한 회복과 버프 강화가 완료되었다.

나는 거기다 에테르 병까지 꺼내 불, 바람, 땅의 에테르를 중첩시켰다. 온몸에서 호랑이 기운이 콸콸 용솟음치기 시작했다.

“아아아악 X발! 진짜 X같네! 개X발 X같은 다구리 진짜!! 개선넘네 개새끼들!!!”

나는 억울하고 치사하고 서러운 나머지 바락바락 악을 썼다. 욕이 숨쉬듯이 새나왔다.

사방팔방 전후좌우에서 공격이 쏟아진다. 정신 나갈 것 같다. 이런 면에선 오히려 이스그라드 토벌이 더 편했을지 모른다.

그 새낀 한 방 맞으면 즉사라도, 최소한 신경 쓸 놈이 한 놈이잖아. X발.

‘한 놈 한 놈은 좁밥들인데…!’

저놈들 중 가장 스탯이 높은 청기사도, 1대1이면 거짓말 않고 10초 내로 찜쪄먹는다.

즉사의 사슬낫? 까짓 거 안 맞으면 그만이다. 신경써야 할 게 그것뿐이라면, 오히려 히어로 센스 덕분에 맞기가 더 어렵다.

근데 그 사실을 다 알고 있는데도, 내가 져야한다는 사실이 너무 열받는다.

“… 흐.”

그렇게 이를 바득바득 갈던 나는 어느 순간, 낮은 웃음을 토해냈다.

번득. 놈들을 향한 시선이 사뭇 날카로워졌다. 그리고 눈꼬리에는 숨기지 못한 웃음기가 씰룩거렸다.

“그렇게 나온다 이거지. 좋다 이거야.”

먼저 치사하게 나온 건 저쪽이다.

오냐. 너희 뒤지고, 나도 뒤져보자. X발럼들아.

나는 양손의 쌍검을 검집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멸망의 대검을 뽑아들어, 그것을 가만히 네 명의 기사들에게 겨누었다.

“라스트 댄스.”

나는 입매를 신랄하게 비틀며 중얼거렸다. 다크 레이븐의 결전 스킬 시동어를 말이다.

우우웅. 온몸에서 공명음이 났다.

“그… 윽!”

꾸드득. 결전스킬을 발동하자, 스케어크로우와 마찬가지로 갑주는 해제되었다.

동시에 엄청난 탈력감이 쏟아졌다. 저절로 신음이 뽑혀 나왔다.

“허억… 허억!”

몸 안의 모든 피가 마치 손끝으로… 정확히는 멸망의 대검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이질적인 감각. 시야가 차츰 검게 물들고, 멸망의 대검은 그보다 더욱 검게 물들었다.

파직, 파지직! 시커먼 스파크가 검을 중심으로 마구 날름거렸다.

[스킬 발동: 라스트 댄스]

[아이템 ‘멸망의 대검’에 모든 생명력이 이전되었다. 제한된 생명력의 소진까지 차원 왜곡의 검기가 발현되며, 검기에 베인 대상은 존재가 말살된다.]

[존재 말살에 성공할 경우 시전자는 즉사한다. 또한 아이템 ‘멸망의 대검’을 신체에서 이격할 경우, 시전자는 즉사한다.]

삐빅. 스킬이 발동됐다는 패널이 떠오르며, 자잘한 설명이 이어졌다.

오호라. 멸망의 대검을 놓기만 해도 내가 뒤진다 이거지. 과연 이기든 지든 죽음이 기다리는 막장 스킬다웠다.

목숨 다할 때까지 이 악물고 싸워라 이거군. 이해했다.

―침입자!

―제거한다!

―문답은!

―무용하다!

두두두두! 묵시의 기사들이 꺼림칙한 낌새를 느낀 듯하다. 천천히 조여오던 그들은 일제히 나를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나는 검을 눕혀 수평으로 들어올렸다. 그리고 일순간, 놈들의 앞에 검을 휘둘렀다.

“으아아아아!!”

서걱! 나는 멸망의 대검을 있는 힘껏 휘둘렀다.

그 자리에서 펄쩍 뛰어올라, 말 그대로 춤을 추듯이 공중 삼회전. 트리플 악셀을 밟았다.

“아무나 죽어라아아아아!!”

콰콰콰콰!! 엄청난 풍압과 함께 검은 질풍이 몰아닥쳤다. 거대한 검은 초승달이 성당 복도 한복판에 떠올라 있었다.

콰지직! 압도적인 기운을 머금은 시커먼 검기가 네 명의 기사를 일거에 후려쳤다.

―구… 우우…!

―그허어어…!

묵시의 기사들의 짤막한 탄성들이 울렸다. 기습적인 검기 한 방이 확실히 타격이 들어간 것이다.

나는 쾌재를 지르는 한 편. 그 자리에서 털썩, 쓰러져 버렸다.

“어… 아…!”

푸화악! 무언가 몸 내부에서 폭발했다.

갑자기 시야가 붉게 물들며 격통이 쏟아졌다. 덜덜 떨리는 손을 들어 얼굴을 만져봤다.

눈, 코, 입, 귀, 그리고 온몸의 모공까지. 신체 모든 구멍이란 구멍에서 피가 폭포수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이… 이, 일… 단, 성… 공…….”

누구지. 누가 가장 먼저 죽었지.

내 다음 생에서 배제된 기사는 누구냐.

그걸 확인해보고 싶었지만. 스스로 깜짝 놀랄 정도로 의식이 빠르게 잦아들었다.

루시가 이 모습을 안 봐서 다행이라고, 마음 깊이 안도했다.

* * *

[불사의 회귀점이 갱신되었다.]

[일시 ― 대륙력 1108년, 12월 24일, 11시 19분]

[장소 ― 멸망의 성흔. 신성국 슈엘츠. 백검의 성당 내부 / 기억의 회랑]

무려 회귀점 갱신의 패널이 떠올랐다.

‘당신은 죽을 수도 있습니다’라고, 세상이 내게 경고해주는 것이다.

내가 퍼뜩 긴장을 채워 넣으며 숨을 삼키는 찰나. 세 기사에 대한 상태창이 뒤늦게 떠올랐다.

[몬스터 정보]

[명칭: 정복의 백기사]

[체력: 3000/3000 ?마력: 2000/2000]

[힘: 300 ?민첩: 600 ?지능: 100]

[상세: 묵시의 기사단, 하얀 말의 기수. 주무기는 천 리 밖까지 맞춘다는 ‘월계의 활’이다. 질병과 각종 상태 이상을 부여하는 화살을 사용해 적을 무력화한다.]

[명칭: 전쟁의 적기사]

[체력: 5000/5000 ?마력: 0/0]

[힘: 800 ?민첩: 200 ?지능: 0]

[상세: 묵시의 기사단, 붉은 말의 기수. 주무기는 세상의 평화를 거둔다는 ‘살육의 검’이다. 전투에 기교는 없으나, 압도적이고 순수한 무력으로 적을 무력화한다.]

[명칭: 죽음의 청기사]

[체력: 4444/4444 ?마력: 444/444]

[힘: 666 ?민첩: 666 ?지능: 444]

[상세: 묵시의 기사단, 창백한 말의 기수. 주무기는 죽음 그 자체인 사슬낫 ‘그림 리퍼’다. 죽음을 직접 다루는 청기사는 묵시의 기사단을 이끄는 존재다. 그림 리퍼에 베인 적은, 상처의 깊이와 관계없이 죽음을 피할 수 없다.]

내가 열거된 패널을 쭉 읽어내린 순간.

푸르륵! 세 마리의 말이 동시에 투레질 소리를 냈다. 기사 세 명이 각자의 무기를 꼬나쥐고 전투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침입자.

―제거한다.

―문답은 무용하다.

투구 안에서 시뻘겋게 안광을 빛내며, 세 명의 기사가 일거에 달려들었다.

두두두두! 말발굽소리가 시시각각 가까워졌다.

… 음? 뭔가 이상한데.

“형님.”

나는 놈들의 숫자를 가만히 세어 보다가, 얼이 빠져서 수호 형님을 불렀다.

―어 왜. 또 븅신이라고 갈구게?

“아니. 그게 아니고요. 방금까지만 해도 쟤네… 네 명 아니었슴까?”

―뭔 소리야. 처음부터 세 명이었는데?

“???”

그랬던가?

아닌데. 분명 방금 전까진 네 명이었던 거 같은데.

… 뭐지. 기분 탓인가?

“쓰읍. 귀신이 곡을 하겠네!”

나는 혀를 차고는, 잡생각을 모두 물렸다.

하긴 놈들이 셋이든 넷이든 뭐 그리 중요하냐. 우선 눈앞의 전투에 집중하자.

‘그래. 우선은 눈앞의 위기부터…!’

두두두두! 두 명의 기사가 내 정면을 향해 일직선으로 돌격하고 있었다.

붉은 갑옷의 검을 든 기사. 그리고 창백한 갑옷의 사슬낫을 든 기사였다.

“으아아!”

콰아아앙!

어검술로 들어 올린 멸망의 대검은 적기사의 거검과 부딪쳤고. 들고 있던 쌍검은 십자로 교차해 청기사의 사슬낫과 맞붙었다.

망자의 계곡 때를 떠올리게 하는, 3대1의 비대칭 전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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