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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417413번째 소울라이크 용사-260화 (236/280)

260화 끝까지 살아남은 나의 승리네?

“읏차.”

나는 성당 외벽의 거대한 대문을 붙잡았다. 찌그러진 틈을 힘껏 비틀어 열었다.

그그그긍. 강철문이 육중한 염을 토하며 천천히 열렸고. 나는 그 틈바구니를 비집고 들어갔다.

“거, 실례 좀 하겠습니다…!”

성당 외벽 안으로 들어오자, 거대한 정원이 펼쳐져 있었다. 하나의 작은 도시라 해도 믿을 정도의 규모였다.

흙먼지가 켜켜이 쌓인 방대한 토지. 쓰러진 거목과 바싹 마른 잡초들 위로, 갑주 차림의 시체들이 도처에 산처럼 쌓여 있었다. 특이하게도 갑옷에 날개가 달려 있어서 눈길을 끌었다.

나는 수호 형님에게 얼떨떨한 목소리로 물었다.

“얘네는 또 뭡니까. 조기축구회 마냥 친목모임들 같진 않은데.”

―신성국의 정예기사단. 발키레아라는 놈들이다. 디아나를 세계정복이나 하려는 3류 악당으로 오해해서 죽이려 들었지. 그래서 내가 목숨 걸고 이곳에서 막았었다.

“오호.”

나는 탄성을 흘리며 그들의 시체더미를 피해 전진했다.

그러다 멈칫. 어느 순간 잠깐 발걸음을 멈췄다. 나는 널브러진 시체의 갑옷을 빤히 쳐다보며 골똘히 생각했다.

“발키레아? 어, 뭔가… 그 이름 어디서 본 적이 있는 듯한데…….”

―랜덤 소환된 마왕이나 마왕 따까리 중에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마왕들 중에요?”

―어. 그게 디아나의 무의식적인 마력 간섭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보니까, 디아나의 기억 속에 있던 놈들이 구현될 때가 많더라고.

“아하…….”

―나 현역 때도, 옛날에 분명 내 손으로 죽였던 놈이 살아 돌아온 걸 몇 번 봤어. 좀 신기하더라. 그렇게 재회하니까.

나는 그제야 납득하고 다시 분주하게 발걸음을 놀렸다.

그나저나, 아무리 옛날의 망국이라지만. 한 나라의 정예 기사단을 단신으로 막았다고?

나는 정원을 가로지르는 와중에도 주위를 빠르게 훑어봤다. 못 해도 쌓인 시체가 최소 1천구는 되어 보인다.

‘저게 한꺼번에 덤빈다?’

저놈들의 능력치가 대충 레벨 200 언저리 대라고 생각하고. 대충 인원이 천 명 정도 된다 쳐보자. 나는 저 기사단을 상대로 이길 수 있을까?

해답은 금세 나왔다.

‘못 이기지. 아마도.’

평균 레벨이 100을 못 넘는 불사교 때도 그 개지랄이 났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나는 1대1 특화형 스킬들만 바득바득 가지고 있는 졸렬갑 암살자다. 게다가 아무리 레벨과 능력치를 높여도, 뒤통수에 펑크 내서 후방카메라 옵션을 달수는 없다.

앞에서 500명 쑤시는 와중에 뒤에서 500명이 쑤시면. 나는 얄짤없이 알라 품으로 사출된다. 마땅한 광역기가 없다 보니, 다대일 전투가 되면 승률이 급감하는 거다.

―아. 그러고 보니 이걸 말 안 해줬네.

“네?”

넓디 넓은 정원을 가로지르고, 드디어 성당의 본당에 들어가기 직전. 문득 수호 형님이 목청을 높였다.

내가 걸음을 멈추지 않은 채 베스타크를 주시하자니. 그는 어딘가 우물쭈물하며 말했다.

―그… 한 가지 까먹었던 게 있었다.

“… 까먹었던 거?”

뭐지. 뭔가 불안하다. 수호 형님의 떨리는 목소리를 들으니 나까지 떨렸다.

오랜만에 호구 센서가 뇌리에서 경종을 울렸다. 저 까먹은 사실이 내 개고생과 직결될 것 같다는 직감이 들었다.

―이 대성당에 말이야. 본당 들어가기 전에 긴 복도가 하나 있거든.

“예. 있는데?”

―거기에 아마 파수꾼들이 있을 거야.

“… 파수꾼이요?”

파수꾼이라. 침입자 입장인 내가 들을 때 실로 불안한 어감이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그에게 물었다.

“… 싸워야겠죠?”

―아마 전투가 불가피할 거다. 내가 베스타크에 의식을 깃들이기 전에, 혹시나 해서 경비용으로 세워놓은 골렘 같은 건데. 들어오는 건 닥치는 대로 죽이도록 설정했거든.

“후우…….”

나는 무거운 침음을 흘렸다. 심각한 얼굴로 괜히 사방을 둘러봤다.

그리고 잠깐 아연실색해졌다.

“… 어?”

수호 형님의 얘기에 정신 팔려서 몰랐는데. 나는 이미 성당의 현관을 지나 거대한 복도 한 가운데 있었다.

길게 뻗은 복도 사이사이의 굵직한 기둥들을 멍하니 쳐다봤다. 발아래 밟히는 넝마 같은 카펫도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자연스럽게 내 목소리는 점점 떨리기 시작했다.

“형님.”

―어.

“그 복도가 혹시 이 복도입니까?”

―… 데헷.

형님의 개같은 추임새와 함께 키이잉! 전방에서 높은 금속음이 들려왔다.

나는 화들짝 베스타크에서 시선을 뗐다. 그리고 눈앞을 가만히 주시했다.

아니나 다를까. 수호 형님의 말대로였다. 문제의 파수꾼들이 긴 복도의 끝자락을 점거하고 있는 모습이 포착됐다.

‘저건…….’

푸르륵. 히히히힝!

유령처럼 반투명한 네 마리의 말. 그리고 그 위에 타있는 네 명의 개성적인 기사들.

각기 순백, 진홍, 칠흑, 그리고 창백. 네 가지 색채를 은은하게 띈 말과, 거기에 깔맞춤 된 갑옷과 무기가 인상적인 자들이었다.

“X발… 뭐야 너넨. 파워레인저 기사단이야?”

나는 당황을 숨기기 위해 장난스레 중얼거렸고. 이내 놈들을 빤히 주시했다.

바로 수호 형님에게 물어볼 수도 있었지만. 일단 미미르의 눈으로 그들의 스테이터스부터 훑으려는 심산이다.

하지만 우습게도, 내 의지와 아무 상관없는 패널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불사의 회귀점이 갱신되었다.]

[일시 ― 대륙력 1108년, 12월 24일, 11시 19분]

[장소 ― 멸망의 성흔. 신성국 슈엘츠. 백검의 성당 내부 / 기억의 회랑]

무려 회귀점 갱신의 패널.

‘당신은 죽을 수도 있습니다’라고, 세상이 내게 경고해주는 것이다.

내가 퍼뜩 긴장을 채워 넣으며 숨을 삼키는 찰나. 네 기사에 대한 상태창이 뒤늦게 떠올랐다.

[몬스터 정보]

[명칭: 정복의 백기사]

[체력: 3000/3000 ?마력: 2000/2000]

[힘: 300 ?민첩: 600 ?지능: 100]

[상세: 묵시의 기사단, 하얀 말의 기수. 주무기는 천 리 밖까지 맞춘다는 ‘월계의 활’이다. 질병과 각종 상태 이상을 부여하는 화살을 사용해 적을 무력화한다.]

[명칭: 전쟁의 적기사]

[체력: 5000/5000 ?마력: 0/0]

[힘: 800 ?민첩: 200 ?지능: 0]

[상세: 묵시의 기사단, 붉은 말의 기수. 주무기는 세상의 평화를 거둔다는 ‘살육의 검’이다. 전투에 기교는 없으나, 압도적이고 순수한 무력으로 적을 무력화한다.]

[명칭: 기근의 흑기사]

[체력: 1000/1000 ?마력: 4000/4000]

[힘: 100 ?민첩: 200 ?지능: 700]

[상세: 묵시의 기사단, 검은 말의 기수. 주무기는 천재지변을 일으키는 ‘재앙의 저울’이다. 전장의 지형을 바꾸거나, 각종 재앙을 자유자재로 일으켜 적을 무력화한다.]

[명칭: 죽음의 청기사]

[체력: 4444/4444 ?마력: 444/444]

[힘: 666 ?민첩: 666 ?지능: 444]

[상세: 묵시의 기사단, 창백한 말의 기수. 주무기는 죽음 그 자체인 사슬낫 ‘그림 리퍼’다. 죽음을 직접 다루는 청기사는 묵시의 기사단을 이끄는 존재다. 그림 리퍼에 베인 적은, 상처의 깊이와 관계없이 죽음을 피할 수 없다.]

내가 열거된 패널을 쭉 읽어내린 순간.

푸르륵! 네 마리의 말이 동시에 투레질 소리를 냈다. 기사 네 명이 각자의 무기를 꼬나쥐고 전투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침입자.

―제거한다.

―문답은.

―무용하다.

두두두두! 투구 안에서 시뻘겋게 안광을 빛내며, 네 명의 기사가 일거에 달려들었다. 말발굽소리가 시시각각 가까워졌다.

그제야 상황을 파악한 나는 황급히 루시를 거대한 기둥 뒤쪽으로 숨겼다. 그리고 쌍검과 멸망의 대검까지 일거에 뽑아냈다.

“아 X팔! 형님! 그럼 어쨌든 얘네가 찐막 보스는 맞죠!!”

최대한 상황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려고 물었지만. 수호 형님은 영 자신없는 태도로 말을 얼버무렸다.

―음… 어. 뭐, 아마 그렇지 않을까? 허허허.

“아마는 X발 또 뭐야! 나중에 디아나도 나한테 꼬장 피우고 그러는 거 아니지?!”

―어허허허헛. 그럴 리는 없어. 애초에 꼬장피울 상태도 아니라서. 허허헛.

나름 진지하게 엄포를 놓았지만 수호 형님은 연신 껄껄 웃어넘겼다.

자기가 안 싸운다고 이젠 아예 막나가는군. 보면 볼수록 감탄이 절로 나오는 철면피다. 인생은 저렇게 한수호처럼 살아야 된다니까.

‘우선 피안윤회를…!’

전투는 사전준비가 많은 쪽이 무조건 승리한다.

찐막 보스라면… 까짓 거 흉마 쪽 빨려서 몇 번 죽는 거? 감수해 주겠다.

적이 한 명이면 모르겠지만. 네 명인 지금은 변수가 너무 많았다. 기억을 유지시켜서 빠르게 놈들을 공략하는 게 장기적으로는 훨씬 낫다.

‘어차피 저놈들 스펙을 보니, 한 번에 클리어는 글러 보이고…!’

나는 손을 앞으로 뻗었다. 전에 피안윤회를 사용했을 때 감각을 떠올리며 흉마를 끌어올리던 그 순간.

우르릉! 갑자기 내 아래 지면이 불쑥 솟아올랐다.

“으헉?!”

나는 투석기로 발사된 것마냥 허공에 붕 떴다.

순간적으로 당황한 나머지 손끝으로 모여들던 흉마는 다시 신체 여기저기로 흩어졌고. 나는 퍼뜩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위험한, 기운. 배제한다…

우우웅. 검은 말을 탄 기사가 왼손에 든 저울을 흔들고 있었다. 그럴 때마다 성당 복도의 지면이 그와 연동된 것처럼 격렬하게 춤췄다.

그렇군 저 저울로 각종 재앙을 일으킨다 했나. 국지적으로 지진을 일으킨 모양이다.

‘X발… 느긋하게 피안윤회 쓰는 건 물 건너갔다…!’

마음처럼 안 풀리는 상황에 혀를 차고 있던 그 순간. 나는 문득 뒷목이 서늘한 느낌을 받았다.

곧장 흑익을 변형시켰다. 우드득, 육중한 소리와 함께 단숨에 칠흑의 중갑옷을 둘렀다.

‘다크 레이븐!’

나는 등 뒤로 뻗어나온 강철의 날개에서 재빨리 마력을 분사해 공중에서 크게 선회했다.

피피핑! 보랏빛 거대한 화살 몇 개가 내 주위를 훑고 지나갔다. 실로 종이 한 장 차이였다. 조금만 판단이 늦었어도 그대로 몸을 꿰뚫렸을 것이다.

‘그래. 게다가 한 놈이 아니었지…!’

치지직. 성당의 천장과 벽에 박힌 화살들은 섬짓한 부식음을 내며 서서히 연기처럼 사라졌다.

나는 씨근거리며 화살이 날아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침입자. 말살한다.

내게 활을 겨눈 하얀 갑주의 기사가 그렇게 말했다.

나는 기습적으로 놈을 향해 세븐 소드 피어스를 날렸다. 하지만 놈은 즉시 하얀 유령마를 조작해 그것을 피해버렸다. 곡예를 부리듯 정밀하고 유려한 움직임이었다.

“쓰읍. X발.”

원거리 딜러는 최대한 빨리 척살하고 싶었는데… 역시 민첩성이 좋은 만큼 기본적인 회피가 되는군.

나는 혀를 차고는 다른 놈들에게 고개를 돌렸다.

‘우선은 눈앞의 위기부터…!’

두두두두! 두 명의 기사가 내 정면을 향해 일직선으로 돌격하고 있었다.

붉은 갑옷의 검을 든 기사. 그리고 창백한 갑옷의 사슬낫을 든 기사였다.

―겁 없는, 살덩이여.

―죽어라…!

유령마들의 기세가 실로 엄청났다. 기사들이 순식간에 가까워졌다. 내 양쪽에서 동시에 날붙이가 접근해온다.

나는 폭발적으로 갑옷의 마력을 사출했다. 내 신형은 순간 엄청난 속도로 놈들과 격돌했다.

“으아아아!”

콰아아앙!

어검술로 들어 올린 멸망의 대검은 적기사의 거검과 부딪쳤고. 들고 있던 쌍검은 십자로 교차해 청기사의 사슬낫과 맞붙었다.

4대1의 비대칭 전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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