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7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잠시 후, 나는 정신을 차렸다.
터덜터덜, 기운 빠진 발걸음으로 태고룡의 무덤 비탈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이제 할 일도 없고… 돌아가자.’
언덕의 현장은 실로 처참했다.
녹아내린 살점과 뼈가 아무렇게나 뒤섞인 시체들이 도처에 즐비했고.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죽어있는 사람들만 온통 가득했다.
간간이 추락한 비룡과 용기사들의 살점 쪼가리도 널려 있었다.
“그래도 뭐… 나름 도움이 됐어. 너희들.”
나는 억울하게 죽은 수백, 수천의 병사들을 향해 중얼거렸다.
이건 틀림없는 사실이다. 당초 계획대로 나 혼자 이스그라드를 상대하려 했으면… 아마 파훼하는 데 한참 더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용병단과 기룡대가 이스그라드의 주의를 충분히 잡아먹어줬다. 덕분에 내가 더 수월하게 움직일 수 있었다.
‘… 칭찬도 뒈지면 소용없는 소리지만.’
드래곤 토벌에 공을 세웠으면 뭐하나. 정작 본인이 죽어버렸는데.
나는 씁쓸한 기분을 숨기지 못했다. 인상을 찌푸린 채 다크 레이븐을 활성화했다. 마력의 출력을 최대로 해서 최대한 전장을 빠르게 이탈했다.
‘이스그라드가 모가지 뜯을 때. 적랑은… 도망쳤을까?’
문득, 시체와 패잔병이 즐비한 지상을 쳐다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하늘을 날아가다 말고 잠깐 공중에서 멈췄다. 시신들을 뒤져서 그를 찾아볼까 했지만. 금세 그만뒀다.
그냥 한숨만 낮게 쉬고 다시 마력의 출력을 높였다.
“후우.”
어차피 본인 입으로 죽고 싶어서 환장했다고 실토하지 않았는가.
그 양반은 이제 살아있어도 죽은 것과 다름없다.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이래저래 카르할라스와 엘프리데만 불쌍하게 됐군.’
그런 패배자 마인드 중년 아재랑 엮여서, 이래저래 고생하는 두 처자에게 심심한 애도를 보냈다.
너희들 불쌍한 인생에 건배다 새끼들아.
… 뭐. 왜.
내가 할 말은 아닌 것 같다고?
아니. 많이 다르다. 난 적어도 살아있는 한, 언제나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해 발악한다.
그런 루저 새끼와 같은 취급은 사양이다.
* * *
그렇게 내가 이스그라드 토벌군의 후방 주둔지로 돌아왔을 때.
대충 예상은 했지만… 주변은 패잔병들의 고함과 비명으로 가득했다.
“제1소대! 피해상황 보고해!”
“장비들 날라! 부상병들 비는 막사로 옮겨 빨리!!”
지휘관은 연신 고함을 지르고 있었고.
막사 구석에서는 부상병들의 신음소리가 귀곡성처럼 들려왔다.
“아아악… X발… X팔! 머, 머리가… 너무 아파…!”
“의, 의무병! 이 십새꺄!! 빨리 이 새끼 팔 좀 어떻게 해봐!!”
“X발 보채지 좀 마 X같은 새꺄! 지금 여기도 바쁘다고!!”
사방에서 활활 타는 혼란과 분노, 그리고 고통. 주둔지는 지금 인간의 악감정이 뒤엉켜 펄펄 끓는 도가니탕이었다.
겨울의 찬바람도 이곳의 열기에는 못 당했다. 주둔지 전체에 폭발적으로 술렁이는 열기가 가득했다.
‘… 아직 이스그라드가 죽은 걸 모르나 보지?’
신음과 고함이 들끓는 지옥도였지만. 나는 그 광경을 보고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지옥도라도 일단 살아있어야 일어날 수 있는 풍경이니까. 아이러니한 안도감이었다.
‘역시… 그놈 아가리에 파이어펀치 쑤셔 넣은 게 정답이었네. 덕분에 나는 좀 고생했다만.’
브레스를 봉인하니 살아남은 사람의 숫자가 비약적으로 늘었다. 나는 주먹을 잠깐 불끈 쥐고,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의 열기를 만끽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내 시선은 한 곳에 박혀서 잠깐 움직이지 못했다.
“켈켈… 꼴이 말이 아니군.”
멀찍이 부서진 팔두마차 위에서 심각한 얼굴로 중얼거리는 이가 보인다. 다름 아닌 크라네이드였다.
그는 옆에 있는 부관과 심각한 얼굴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나는 청각을 집중해 슬쩍 엿들어봤다.
“코스크 기룡대의 편대장도 연락이 두절됐고… 미친 우량도마뱀 새끼는 토벌 가능성이 일절 없어 보이니. 일단은 철수를 할 수밖에 없나.”
“… 예, 장군님. 그, 그러하는 것이 좋을 줄로 아룁니다.”
“흐음.”
크라네이드는 잠깐 눈을 지그시 감고 고민하는가 싶더니.
이내 쌈박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부관을 삿대질을 했다.
“오냐. 나도 이런 개죽음은 사양이다.”
“그, 그 말씀은…!”
“살아남은 천인장과 백인장들에게 당장 퇴각 준비를 하라고 통보해라. 책임은 까짓 거 내가 진다. 케켈.”
“옛!”
부관은 ‘살았다!’ 하는 표정으로 부리나케 달려갔다. 크라네이드는 혼자 부서진 마차 위에 앉아 고민에 빠졌다.
그리고 나는 순간 을컥하는 감정이 북받쳤다.
‘… 살아남았구나.’
나름 대열의 선봉에 서서 돌격했던 크라네이드였지만. 아마 마차를 타고 이동하는 특성상, 바위언덕 경사면의 기동력이 안 좋을 게 뻔하다.
그것이 오히려 호재로 작용했다. 재앙에 가까웠던 이스그라드의 발악에 가까이 가지도 못했으니. 화를 입지 않은 것이다.
‘다행이야. 정말로 다행이다.’
나는 한동안 크라네이드를 멀리서 쳐다보다가, 터덜터덜 걸음을 옮겼다.
방향은 당연히, 샤키엘이 내게 마련해줬던 간부용 막사의 방향이었다.
“헤이. 아직 안 일어났냐?”
펄럭. 입구 천막을 거칠게 열고 들어갔다.
엘프리데와 함께 후방으로 보내버린 이들을 제외한 두 사람, 루시와 샤키엘이 보였다.
누가 자매 아니랄까봐, 막사의 침대에 나란히 누워서 퍼질러 자고 있다. 생김새가 워낙 닮아서 한 폭의 그림 같았다.
“후냐아… 용사아…….”
“으음…….”
백발적안 미소녀 둘의 목가적인 꿀잠의 현장을 감상하자니. 내가 겪었던 용가리 전쟁통이 다 꿈이었나 싶다.
하지만 꿈이 아니라는 건 스스로도 잘 이해하고 있다. 나는 천천히 샤키엘의 앞으로 다가갔다.
나는 그녀의 귓가에 대고 진지하게 속삭였다.
“샤키엘 병장님. 샤키엘 병장님. 뒤질 시간이십니다.”
깜빡깜빡깜빡.
샤키엘 눈꺼풀에 대고 이자나미의 심장을 발동시켰다 말았다를 반복했다. 보라색 불빛이 샤키엘의 눈꺼풀 위에서 연신 깜빡거렸다.
아직 미필인 사람은 군대 가면, 선임 깨울 때 꼭 이렇게 깨우길 바란다. A급 후임으로 전 부대에 소문이 자자해질 거다.
“으웅… 어?”
랜턴 티배깅의 효과는 즉각적이었다.
샤키엘이 짜증 가득한 얼굴로 천천히 눈을 떴다. 그리고 랜턴을 들고 있는 내 얼굴을 보더니, 얼빠진 탄성을 흘렸다.
그녀는 주위를 스윽 둘러봤다. 그리고 천천히 자기 얼굴을 가리켰다.
“까마귀님. 혹시 제가… 얼마나 잤죠?”
“글쎄요. 또 다른 샤키엘이 뒤질 때까지?”
“어…?!”
샤키엘이 그 말에 화들짝 놀랐다.
나는 아직 정신이 제대로 들지 않은 샤키엘의 손목을 붙잡았다. 반쯤 강제로 그녀를 자리에서 일으키고, 천막 밖을 가리켰다.
“잠깐 나가서 바람이나 쐽시다.”
나는 샤키엘에게 생에 최후의 산책을 제안했다.
샤키엘은 얼떨떨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내 손길에 따라 얌전히 따라붙었다.
* * *
그 뒤로도 샤키엘은 이스그라드가 토벌됐다는 말을 한참동안 믿지 못했다.
이내 그녀가 잠깐 눈을 감고 두 손을 모으더니, 무언가 주문 같은 걸 중얼거렸다.
파아앗. 샤키엘의 몸에서 창백한 빛이 잠깐 스며들었다. 이내 그녀는 부릅뜬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저, 정말이네요. 더 이상… 그녀가 느껴지지 않아요.”
“그렇겠죠. 뒤졌다니까.”
“제 자매가, 죽었군요. 정말로 죽었군요.”
“예. 방금 따끈따끈하게 갔습니다.”
나는 모가지를 엄지로 긋는 시늉을 했다.
그 장난스런 행색에 순간 샤키엘의 표정이 밝아졌지만, 이내 안절부절 하며 내게 고개를 연신 숙였다.
“저, 정말 죄송합니다 까마귀님. 어, 어떻게든 까마귀님께 최대한 도움을 드리고 싶었는데. 그 중요한 순간에 태평하게 잠이나 자고 있었다니… 정말, 큰소리쳤던 제 자신이 너무 부끄러워요.”
“아뇨. 그건 애초에 불가항력이니 상관없고요.”
나는 거침없이 대답해주는 한 편. 베스타크를 뽑아들었다.
스르릉. 그것을 샤키엘의 목에 가져다 대며 조용히 말했다.
“이제 그쪽도 동생한테 보내드릴 일만 남았네요.”
목소리는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냉정했다.
일부러 낮게 깔고 말했다. 나 자신에게 최면을 걸기 위해서였다.
“뛰어서 따라잡으면 삼도천 건너기 전에 만날 겁니다. 가는 길 심심하진 않겠네.”
깊게 생각하지 말자.
어차피 지금껏 수십 수백 명이나 죽여왔다.
사람, 마족, 마왕, 그리고 나 자신까지. 눈앞의 이 여자도 그것들과 다를 게 없다.
사람은 죽고 나면 그냥 고깃덩어리가 된다. 지금껏 봐왔던 수많은 전생의 나처럼 말이다.
“한 방에. 고통없이 보내 드리죠.”
키잉. 베스타크를 샤키엘의 배때지에 겨누었다.
한 방에 죽인다. 그녀가 괜시리 무슨 말도 지껄이지 못하게 말이다.
나는 숨을 죽이고 칼을 붙잡은 손에 힘을 잔뜩 불어넣었다.
“거기가 아니에요. 까마귀님.”
하지만 그 순간. 샤키엘이 베스타크의 검날을 슬쩍 붙잡더니, 그것을 자기 배에 천천히 가져갔다.
그리고 자기 하복부의 어딘가를 툭툭, 칼끝으로 두들겼다.
“여깁니다. 그대로 눌러주세요. 가능하시면 천천히. 당신과의 마지막을 음미할 수 있도록…….”
그런 말을 하더니. 오히려 샤키엘 쪽에서 칼날을 자기 쪽으로 천천히 밀어 넣었다.
우지직. 베스타크가 샤키엘의 하얀 뱃가죽을 파고든다.
“으어 X발 타임!! 거 성질머리 급하긴 X팔!”
나는 화들짝 놀라 검을 퍼뜩 물려버렸다.
그리고 벌렁대는 심장을 부여잡고 숨을 몰아쉬었다.
“… 까마귀님?”
샤키엘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나를 빤히 쳐다봤다.
이런 X발. 일단 반사적으로 칼을 물리긴 했는데, 막상 빼고 나니 좀 가오가 상한다. 얼굴이 좀 달아오르는 게 느껴졌다.
이러면 ‘한 방에 보내드리지’ 같은 3류 조폭영화 대사를 지껄인 내가 뭐가 되니. X발.
“그… 유, 유언. 유언 같은 거 없습니까.”
나는 어떻게든 처형식을 멈춘 변명을 쥐어짰다.
샤키엘은 아까보다도 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 유언이요?”
“예. 이렇게 협조적으로 죽어준다는데, 그 정도는 해줘야지.”
“아… 하하하. 유언이라.”
“멋진 걸로다가 하나 남겨 보십쇼. 최소한 내가 죽을 때까진 기억해줄 테니까.”
샤키엘은 추하게 떠벌거리는 나를 지그시 쳐다봤다. 나는 일부러 시선을 피해버렸다.
그러자 샤키엘이 풋, 하고 낮은 웃음을 흘렸다. 스르륵. 내 어깨 위로 그녀의 가녀린 팔이 조심스럽게 둘러졌다.
“착해빠지셨네요. 까마귀님.”
“예? 갑자기 뭔…….”
내 말은 더 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샤키엘이 별안간 입술을 갖다 대어 내 입을 틀어막아 버렸기 때문이다.
샤키엘의 귀 뒤에 달린 촉각이 바르르 떨리는 모습을 멍하니 눈에 담았다. 한참 시간이 흘렀다.
“나는 준비된 희생양인 루스티카보다, 당신이 더 걱정돼요. 까마귀님.”
샤키엘은 입술을 떼고 그런 말을 했다.
샤키엘이 붉게 물든 얼굴로 다시금 베스타크의 칼날을 힘껏 쥐었다. 우지직. 그녀의 손속에는 여전히 망설임이 없었다.
베스타크의 검은 칼날은 그녀의 복부를 완전히 관통해 버렸다.
“유언… 그러네요. 하나만 할게요. 부디 절대 잊지 말아주세요.”
샤키엘은 루시가 죽을 때 그랬듯이, 곧 온몸이 회색빛으로 물들었다. 말단부터 천천히 허물어져 재가 되어 사라져갔다.
피투성이인 손을 힘겹게 들어 올린 그녀가 내 볼을 쓰다듬었다.
“마지막에 무슨 선택을 하시든, 저는 당신이 틀리지 않는다고 믿어요 까마귀님. 부디 자신의 선택을 의심하지 말아주세요.”
스르륵. 그녀는 짧은 유언을 마치고 바람에 날려 흩어져 버렸다.
동시에 파아앙! 그녀가 있던 자리에서 초록빛 섬광 한 줄기가 솟아났다. 그 섬광은 빠르게 토벌군 주둔지 쪽으로 날아갔다.
루시에게 마왕의 힘이 깃드는 증거이자. 샤키엘의 진정한 죽음을 의미하는 빛이었다.
‘마지막 의식… 끝났구나.’
나는 초록색 섬광의 꽁무니를 망연히 눈으로 쫓았다.
내가 이런 진부하고 오글거리는 표현을 쓸 줄은 몰랐다만.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바람처럼 와서. 바람처럼 가버렸구만. X발.”
베스타크 끝단에 묻은 회백색 재를 만지작거렸다.
체온을 닮은 미열이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