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6화
―캬아아아아악!!
하늘을 찢어발기는 듯한 비명이 울려 퍼졌다.
나는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방금의 비명은 목 잘린 이스그라드가 낸 것이 아니다.
목소리가 전혀 다르다. 이건 샤키엘이 낸 것이다.
‘아직이다.’
아직 퀘스트 완료 창이 나오지 않았다.
게다가 비명소리가 나온다는 건… 샤키엘은 숨이 붙어있다는 반증이다!
“계속 물어뜯어! 아주 초토화를 시켜버려!!”
안개까마귀들에게 고함을 지르며, 나 역시 널브러진 이스그라드의 육체를 향해 달려갔다.
우우웅. 멸망의 대검에 마력을 잔뜩 불어넣었다. 그리고 멸망의 화염을 두른 채 이스그라드의 배갑 위로 펄쩍 점프해 올라갔다.
이스그라드의 뱃가죽은 쥐파먹힌 것처럼 훤히 뚫려 있었다. 절경이었다.
―그… 키익… 아… 안 돼…
그 안에. 부패한 살점 속에 파묻힌, 선홍빛의 장기가 하나 있었다.
인간 여성의 모습을 닮은 시뻘건 살덩어리. 그것이 연신 떨리는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저것이 샤키엘인가. 실제로 보니… 상상 이상으로 징그러운 형상이었다.
―오지… 마… 오지 마…! 오지 마!!!
어느 순간, 파파파팍! 이스그라드 내부의 살점들이 살아있는 것처럼 꿈틀댔다.
이내 그것들이 날카로운 촉수가 되어 내 쪽으로 잽싸게 날아왔다.
“큭!”
나는 스텝을 밟는 것으로 모든 촉수들을 가까스로 피해냈다. 팔과 옆구리를 스치며 피가 흘렀지만 치명상은 아니었다.
나는 손을 뻗어 샤키엘을 가리켰다.
“가만히 좀 있어 X발.”
글레이프니르를 발동시켰다.
촤라라락! 내 주위에서 시커먼 문이 열리며 사슬이 쏟아져 나왔다. 수많은 사슬이 이스그라드의 뻥 뚫린 배를 파고들었다.
샤키엘이 필사적으로 내뿜는 살점의 촉수를 스쳐지나간 사슬은, 이내 샤키엘의 온몸을 빈틈없이 속박해 냈다.
―으… 그, 으아… 아아아!
선홍빛의 여성 모양 장기가 마구 펄떡거리며 저항했다.
그 의지에 따라 이스그라드의 육체도 마구 움찔거렸지만, 위협적인 움직임은 전혀 나오지 않았다.
죽기 직전의 짐승이 그러하듯 사지를 잘게 경련할 뿐이다.
―크… 으, 그으으!
나를 향해 표독스러운 눈을 빛내는 샤키엘. 나는 피식 웃는 걸로 응수했다.
우우웅. 당장이라도 마력이 폭발할 것 같은 멸망의 대검을 샤키엘에게 조준했다.
―사, 살려… 줘.
샤키엘은 뱃가죽 위에 서있는 내게 필사적으로 손을 뻗었다.
피처럼 붉은 눈물이 샤키엘의 눈에서 뚝뚝 떨어졌다.
―살려줘. 살려주세요… 싫어… 안 돼! 죽고 싶지 않아!!
하지만 어림도 없지.
나는 거침없이 시동어를 내뱉었다.
“스팅어.”
콰아아앙!
폭발음과 함께 멸망의 화염이 기탄을 타고 쏟아졌다.
악취가 진동하는 이스그라드의 뱃속으로 정화의 지옥염이 번져갔다.
―끼아아아악! 캬아아아악!!
화염에 휩싸인 샤키엘이 찢어지는 비명을 질러댔다.
우드득, 뿌드드득! 샤키엘은 주변의 살점들을 억지로 뜯어내며, 이스그라드의 배 밖으로 기어나오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고통에 몸부림치는 인간 모양 살덩이를 잠깐 주시했고. 인상을 바짝 찌푸렸다.
“거 준내 질기네 진짜.”
투두두두! 마력검을 연신 생성해, 생기는 대로 샤키엘에게 박아 넣었다.
퍼퍼퍽! 매끈한 살점이 두부처럼 쉽게 뚫렸다. 새빨간 피가 사방으로 흩어졌다.
이스그라드의 썩은 뱃속이 신선한 붉은 피로 점철되어갔다.
―아윽… 싫어… 안 돼…!
쿠우웅. 육중한 소리와 함께 이스그라드의 육체가 천천히 바닥으로 무너져 내렸다.
더 이상 샤키엘이 이스그라드의 통제를 유지하지 못하는 것이다.
―어째서… 왜? 너는… 왜…! 어째서어어!!
역시나. 샤키엘의 끊어질 듯한 목소리가 더듬더듬 들려왔다.
악에 받친 목소리로 내게 원망을 쏟아놓고 있었다.
―이, 이대로… 죽고, 싶지… 않아…
하지만 그 순간에도 이스그라드의 몸에서는 생기가 사라져갔다.
썩어문드러진 육체가 천천히 녹아내렸고, 부식된 땅을 지글지글 끓이며 천천히 스며들었다.
―살려… 살려… 줘…!
“X까.”
서걱. 나는 코앞까지 기어온 샤키엘에게 베스타크를 휘둘렀다.
검은 궤적이 깔끔한 직선을 그렸고, 샤키엘의 머리는 허공에 치솟았다.
마침내 앙상한 뼈만 남은 이스그라드는 어떤 움직임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눈앞의 샤키엘이 움직이지 않게 된 것과 완전히 동시였다.
“그쯤 하고 뒤져 새꺄. 좀.”
샤키엘의 활활 불타는 손이 내 발치에 널브러진 그 순간. 나는 승리를 자축하기 위해 한손을 번쩍 들어올렸다.
사방은 쥐 죽은 듯이 고요했다. 천둥 같았던 전장의 소음이 마치 거짓말 같았다.
‘나 밖에… 없나?’
나는 주위를 둘러보고 적막의 이유를 알았다.
피아를 막론하고, 이곳에 살아있는 이가 나밖에 없었다. 대부분의 용사들은 이스그라드의 모가지 커팅식 때 도망쳤고. 도망치지 못한 일부는 격전 중에 죄다 죽어버렸다.
“… 후아.”
나는 긴 한숨을 내뱉었다.
이스그라드가 남긴 무식하게 거대한 뼈들을 가만히 쳐다봤다. 그리고 더럽게 공활한 겨울의 파란 하늘을 망연히 올려다봤다.
한동안 최후의 생존자만이 누릴 수 있는 압도적인 적막을 즐겼다.
* * *
얼마나 그 자리에 망부석처럼 서 있었을까.
문득 파앗, 눈앞이 시커먼 암흑을 뿜어냈다. 그 정중앙에서 꿈틀거리는 이상한 구체 하나를 얼떨결에 받아들었다.
‘이건?’
내가 의문을 갖기 무섭게 삐빅.
마녀살해 의식 특유의 시커먼 패널이 눈앞에 떠올랐다.
[조건1: 샤키엘 / 몬스터 ‘시룡 이스그라드’ 빙의체 살해 ― 충족]
[조건2: 샤키엘 / 인물 ‘바리’ 빙의체 살해 ? 미충족]
우선은 세 번째 의식 퀘스트의 첫 번째 조건. 이스그라드 토벌을 완료했다는 패널이 하나.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알림: 보상 획득]
[특정 조건을 충족하여, 퀘스트 보상 ‘멸망의 신기 ? 세계의 태동’을 획득했다.]
이스그라드가 가지고 있던 멸망의 신기… ‘세계의 태동’이라는 것을 획득했다는 문구였다.
‘아무래도 이게 멸망의 신기인 거 같은데…….’
나는 손 안에 놓여진 작은 구체를 유심히 쳐다봤다.
어느 순간, 나는 퍼뜩 그것에서 눈을 떼고 상체를 잔뜩 물렸다.
“뭐, 뭐야 이거… 아기?”
검고 투명한 유리구슬 안에는 작은 아기 같은 것이 들어있었다.
인간이라기도 애매하고, 그렇다고 짐승이라기에도 애매한… 실로 꺼림칙한 무언가의 미숙한 태아.
그것이 지그시 눈을 감은 채, 유리구슬 안에서 잠을 청하고 있었다.
‘갈수록 괴랄해지네. 이놈의 멸망의 신기는.’
첫 번째는 핏빛 대검.
두 번째는 거대한 뇌내 기생충.
세 번째는 웬 괴물의 아기가 잠든 구슬이라.
마녀 디아나는 대체 평소에 어떤 생각을 하길래, 이딴 걸 보상이랍시고 준비해놓는 걸까. 저세상 감성에 절로 혀를 차게 됐다.
어쨌든 나는 멸망의 신기를 지그시 쳐다봤다. 미미르의 눈 때문이었다.
[명칭: 세계의 태동(胎動)]
[보정치: 스킬 ‘월드 엠브리오’를 습득. ‘태동’ 스톡을 소모하여 신체의 전량 회복/강화.]
[상세: 마녀의 염원과 이상이 깃든 멸망의 신기. 마녀가 믿었던 미래의 가능성이 잠들어 있다. 소유권을 획득 시, 스킬 ‘월드 엠브리오’를 습득한다. 해당 아이템은 파괴하거나, 타인이 만질 수 없다.]
[현재 축적된 ‘태동’의 갯수: 5개]
“이건…….”
나는 끝까지 읽어보고는 눈을 조금 크게 떴다.
상세 설명이 살짝 부족했다. 스킬이야 따로 스킬 정보창이 나올 테니 그렇다 치고. ‘태동’을 소모해서 뭔가 엄청난 조화를 일으킨다는데… 정작 그 태동이 뭔지에 대한 설명이 없다.
“이 X발. 명불허전 혐미르의 눈 같으니.”
새삼 정보창의 불친절함에 이를 박박 갈자니.
옛다 받으라는 듯이 띠링, 뒤늦게 정보창 하나가 더 등장했다.
[상세정보: 태동]
[아이템 ‘세계의 태동’에 1시간마다 쌓이는 특수한 스톡(stock). 스톡을 하나 소모하는 것으로 체력, 마력, 상태이상 및 신체훼손을 전량 회복하며, 동시에 모든 능력치를 일시적으로 폭증시킬 수 있다.]
[태동의 최대 축적치는 20 스톡이다. 능력치 강화는 중첩이 불가하다.]
끝까지 읽어본 나는 그제야 견적을 내릴 수 있었다.
“… 뭐야. 에테르 병이랑 비슷하잖아.”
아니, 정확히 말하면… 확실한 상위호환 격이었다.
애초에 스톡의 개수만 해도 20개. 에테르병의 2배이다. 게다가 회복과 버프에 개별 스톡을 사용하는 에테르 병과 달리, 하나의 스톡으로도 회복과 능력치 강화를 동시에 할 수 있는 듯하다.
사실상 몇 배 이상의 효율을 가진 사기템. 나는 그 시점에서 어떤 사실 하나를 깨닫고 어깨를 흠칫 떨었다.
‘생각해보면… 전의 의식에서 받았던 것들도, 모두 그랬지 않나?’
멸망의 대검은 베스타크를 씹어 먹는 상위호환의 검이다.
피안윤회 스킬은 망자의 함과 이자나미의 심장을 사실상 창고행 애물단지로 만들었다.
그리고 이 ‘세계의 태동’은 에테르 병을 무용지물까진 아니어도, 빛을 상당히 바래도록 만들었다.
‘… 처음부터, 이렇게 되도록 설계한 건가?’
나는 퍼뜩 미네르바를 떠올렸다.
미네르바의 의도를 대충 가늠하고 혀를 찼다. 이런 구성이 우연일 리는 절대 없다.
애초에 내게 쥐어줬던 수호자의 특전 아이템들이, 이후에 받을 멸망의 신기들을 대비한 연습용 아이템을 겸하고 있다. 그런 가정을 지울 수가 없다.
‘흉마를 먹는 검에 익숙해지고. 전생의 기억을 계승하는 데 익숙해지고. 스톡형 회복아이템에 익숙해지게 만들기 위한… 초석들이었군.’
생각할수록 치밀하구나. 똥털 자식.
나는 몸서리를 치며 금발 미녀의 띠꺼운 면상을 머릿속에서 물렸다. 그리고 새로 얻었다는 스킬이나 확인해보기로 했다.
[스킬 정보]
[명칭: 월드 엠브리오]
[효과: 세계의 시간 정지. 최대 지속시간 1.5초.]
[상세: 멸망의 신기, ‘세계의 태동’ 전용 고유스킬. 잔존 마력의 전량을 소비하여, 자신을 제외한 세계의 시간을 동결시킨다. 1회 최대 지속시간은 1.5초이며, 정지된 시간동안은 시전자도 다른 개체에 영향을 끼칠 수 없다. 레벨 증강은 불가하다. 재사용 대기시간 ? 없음.]
나는 가만히 읽어보다 허, 하고 헛웃음을 흘렸다.
“하다하다 이제 더 월드까지 나오네.”
시간의 정지라니. 실화냐.
이거 방금까지 막 욕하던 똥털이 현현할 때마다 사용하던 그거잖아. 이젠 신의 영역에 가까운 스킬까지 등장했다.
아니지. 인간을 그만둔 나한테는, 이거야말로 딱 어울리는 스킬일지도 모르겠다.
“우뤼이이이!”
나는 기쁜 건지 슬픈 건지 모를 탄성을 내뱉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