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4화 결전 스킬
―키이이이이익!
이스그라드는 내가 붙인 불꽃이 꺼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금세 깨달았다.
그러자 우지직! 이번에도 어김없이, 자기 머리통을 붙잡고 그대로 뜯어내 버렸다.
휑해진 목 위로 썩은 피가 독기와 함께 줄줄 흘러내렸다.
―그루루루루!
이스그라드는 머리 없는 목을 연신 공명시켰다. 귀가 아니라 뇌에 직접 쑤셔박는 듯한 이명이 울렸다.
두 번째 들어도 실로 공포스러운 소리였다. 내가 느끼기에도 그 정도였으니, 다른 이들은 말할 것도 없다.
“으, 흐아아악!”
“살려줘! 살려줘어어어!!”
전생과 반응이 거의 동일했다. 목이 떨어지고도 버젓이 움직이는 이스그라드를 목격하자, 용병단원들은 모두 패닉에 빠졌다.
공포는 삽시간에 부대 전역에 전염되었고. 이내 이스그라드를 향해 돌진하는 이들은 10분의 1도 채 안 됐다. 그 인원마저 실시간으로 줄어드는 중이었다.
‘됐어. 차라리 잘됐지.’
나는 이스그라드를 도륙하다 말고 피식 웃었다.
어차피 저 놈들 수천 명이 가세해도 득될 게 딱히 없다. 쓸데없이 개죽음 안 당하게 제 목숨 알아서 보전해주면 그게 차라리 도와주는 거다.
―그루루루루!
이스그라드가 어느 순간, 피로 점철된 길다란 목을 채찍처럼 길게 휘둘렀다.
나를 향한 공격이 아니었다. 나는 순간 의구심이 들어서 공격을 중단했다.
‘뭐지…?’
그 순간 퍼어억! 파육음이 터졌다. 휘둘린 거대한 목에 무언가 얻어맞는 소리였다.
나는 퍼뜩 공중으로 시선을 올렸다. 이스그라드의 주변을 알짱거리던 기룡대원 하나가, 새빨간 불꽃놀이가 되어 살점을 흩뿌리고 있었다.
“허, 억…!”
“마, 말도 안 돼…! 마력 강화 중갑이 단 한 방에…!”
경악에 찬 기룡대원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참을 떨어져 있지만, 스케어크로우로 변신한 덕에 청력이 폭증해서 들리는 것이다.
그 말대로 한 방이었다. 전장 10미터가 넘는 중갑 떡칠 기룡이, 단 한 방에 빈대떡 마냥 너덜거렸다.
그 위에 타고 있던 용기사는 온몸이 분해되어 사지가 따로따로 추락하고 있었다.
“쏴, 쏴라! 화염포로 놈을 격살해라!”
하지만 여기서 약간의 이변이 발생했다.
아직 전의가 꺾이지 않은 기룡대원 몇몇이 이스그라드를 공격하기 시작한 것이다.
“제1분대, 발사!”
“2분대 발사!”
푸화아악! 그녀들이 타고 있던 비룡이 일제히 입을 쩍 벌렸다. 새빨간 화염이 쏟아져 이스그라드의 썩은 살점을 두들겼다.
화염이라기보단 붉은 광선에 가까운 폭력적인 기세였다.
퍼억, 퍼퍼퍽! 화염을 얻어맞은 이스그라드의 신형이 비틀거렸다.
―그루루루루!
이스그라드는 목을 진동시켜 특유의 기분 나쁜 공명음을 내뿜었다.
고통스러운 것인가? 시체라곤 해도, 무려 드래곤에게 유효타를 먹일 수단은 가지고 있다는 건가. 과연 한 나라의 비대칭 전력답다.
‘음… 근데 이건…!’
나는 이스그라드의 날개 죽지에 매달린 채 미묘한 탄성을 흘렸다.
퍼어억! 퍼억! 때 마침 한 용기사가 발사한 화염포가 내 주변에 적중했다. 화끈한 열기가 울컥 온몸을 뒤덮었다.
나는 화들짝 놀라며 그곳에서 조금 떨어졌다.
‘역시. 도움은커녕 방해된다! 저 새끼들!’
나는 주변에 날파리 마냥 앵앵대는 기룡대원들을 보며 이를 박박 갈았다.
기룡대 놈들이 워낙 사방에서 짜증나게 굴어서인지, 이스그라드의 시선도 온통 그쪽으로 쏠려 있었다. 거기까진 좋았다.
“핫뜨뜨! X발!”
하지만 이스그라드의 썩은 육체는 화염포에 맞을 때마다 그을리고 불타올랐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이스그라드의 육체를 종횡하며 데미지를 주고 있던 내 동선을 절찬리에 방해하고 있었다.
―그루루루!
게다가 화염포에 맞을 때마다 이스그라드는 특유의 공명음을 발했고. 신형은 거세게 요동쳤다. 달리기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모든 것이 짜증과 불편을 더하는 요소 밖에 되지 않았다.
“그만해 미친놈들아! 백날 지져봐야 기스도 안 난다고!! 배때지! 노리려면 배때지 노려!”
나는 허공에 대고 고래고래 소리질렀지만. 소용없다. 워낙 거리가 먼데다 전쟁통 한복판이라 목소리가 닿지 않았다.
아니. 그보다 쟤네 갑자기 왜 저러냐. 전생까지만 해도 바짝 쫄아서 도망칠 궁리나 하고 있던 놈들이 말이야. 단체로 약이라고 처먹었나?
‘설마… 최초의 포효를 막아버려서? 역효과가 났나?’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아차 싶었다.
그렇군. 전생까지는 이스그라드가 포효를 내질러 좌중을 기세로 압도한 채로 전투가 시작되었다.
생물로서 당연한 그 공포가 뇌리에 각인되어서, 용기사들조차 함부로 움직이지 않았다.
‘이런 철새 같은 새끼들…!’
하지만 기선제압의 포효는 이번 생에서 처음으로 좌절됐다. 내가 그 전에 멸망의 화염탄을 아가리에 쑤셔넣어 버렸으니까.
그 차이가 용기사들의 공포를 마비시킨 것이다.
“또 X발, 개죽음만 늘게 생겼네!!”
내가 자조적으로 중얼거리는 순간, 퍼어억! 다시금 머리 위에서 파육음이 들려왔다.
나의 혼잣말이 예언이 되어 있었다. 이스그라드가 무차별적으로 휘두른 손에 비룡 한 마리가 얻어맞고 그대로 추락해버린 것이다.
“펴, 편대장님!!”
“편대장님을 지켜라!!”
주위에 날아다니던 용기사들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퍼퍼펑! 그들의 화염공격이 이스그라드가 휘둘렀던 팔로 집중되었다. 나는 눈에 힘을 주고 거기를 자세히 노려봤다.
‘기룡은 맞아 죽었고… 용기사가 붙잡혔구나.’
과연. 아까부터 기룡대 선두에서 고래고래 소리치던 용인 여성이 보였다.
이스그라드의 거대한 손아귀에 사지를 붙들린 채, 목 위만 빼꼼 삐져나와 있다.
“아… 윽, 아아…!”
편대장은 괴로운 신음을 연신 흘렸다. 필사적으로 버둥거려 이스그라드의 손아귀에서 빠져나가려 애쓰고 있었다.
“학… 카학… 하악…!”
곧 편대장은 숨소리조차 제대로 내지 못했다. 안색이 심각할 정도로 파리해졌다가, 이내 피가 몰렸는지 새빨개졌다.
그녀는 절박한 눈으로 사방을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사, 사… 살려…!”
하지만 용기사들의 피나는 노력과 그녀의 간절한 바람에도 불구하고, 우드득. 이스그라드는 기룡대 편대장을 그대로 힘껏 쥐어버렸다.
“크… 그르륵.”
주르륵. 틀어쥔 이스그라드의 손가락 사이로 질척한 체액이 쏟아져 나왔다. 손가락 내부의 상황을 상상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편대장의 눈알이 불룩 튀어나왔다. 얼굴에 있는 모든 구멍에서 피가 줄줄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으… 아아.”
“아아, 아아아!”
편대장이 죽자 용기사들은 얼빠진 신음을 흘렸다.
“저 간악무도한 놈! 선조룡이라는 이름이 아깝다! 놈을 찢어죽여라!!”
“이, 이길 수 없어. 저런 괴물을 어떻게…!”
그리고 지휘체계가 빠르게 붕괴되었다.
혹자는 분노, 그리고 혹자는 공포로 인해서 말이다.
“공격! 전원 공격해!!”
“도망쳐! 후퇴해라!!”
빠른 속도로 반절에 가까운 용기사가 전장에서 이탈했다.
남은 용기사들이 곡예에 가까운 비행을 펼치며 분전했지만. 이스그라드가 휘두르는 눈먼 육체에 얻어맞고 하나씩 육편 쪼가리가 되어 사라졌다.
“크윽…!”
“마, 마력이 모두 소진되었다.”
“… 여기까지인가.”
이제 남은 기룡대원은 고작 세 기 남짓이다.
어렴풋이 들은 바로는… 마력이 고갈돼서 더 이상 화염포를 쏘지 못하는 듯하다.
“비록 죽더라도 나는 등을 보이지 않겠다. 끝까지 싸울 것이다!”
“모든 용의 아버지, 패왕을 위하여.”
“패왕을 위하여!”
그녀들은 자신들의 말로를 직감한 건지, 체념 어린 어조로 사망플래그를 꽂고 있었다.
털썩. 나는 그 때까지 힘껏 붙들고 있던 이스그라드의 날개 죽지를 놓았다. 등판 위로 가볍게 착지한 나는, 곧장 양손의 손톱을 날카롭게 벼렸다.
‘완벽해. 모든 것이.’
비장한 그녀들에겐 미안한 말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사타구니 긁으며 기회만 보던 나에게 있어선, 지금이 가장 베스트에 가까운 타이밍이었다.
‘도움이 안 된다는 말은 취소다! 용가리 누나들!!’
더 이상 기룡대가 화염포를 쏘지 않는다. 그렇다는 건 내 공격이 방해받을 일이 없어졌다는 거고.
더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아직 이스그라드의 시선이 기룡대원들에게 가있다는 것이다.
“바로 지금이다!!”
나는 곧장 이스그라드의 등줄기 위를 성큼성큼 뛰었다.
투두두두! 신형이 빠르게 아래로 추락했다. 어깨죽지에서 시작한 내 궤적이 나선을 그렸다. 반 바퀴를 빙 돌아 쏜살같이 놈의 뱃가죽 위까지 도달했다.
나는 단단하고 맨질맨질한 배갑의 정중앙을 노려보며 중얼거렸다.
“드디어 잡았다. 너.”
여기다.
이곳을 직선으로 파고 들면 샤키엘이 있을 것이다.
전생에서 이스그라드가 지키려고 혈안이 되어 있던 그 부위. 지금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씨익. 나는 일그러진 입을 벌려 기괴한 웃음을 흘렸다.
“대리게임 제재 들어간다!!”
나는 양손을 힘껏 뒤로 뺐다가, 그대로 이스그라드의 배때지에 쑤셔 박았다.
푸확! 단단한 갑주를 뚫고 손톱이 놈의 배를 파고들었다. 짓무른 고름과 혈액이 온몸으로 튀었다.
나는 입을 쩌억 벌렸다. 뒤틀린 웃음이 공허 속에서 흘러나왔다.
“까마귀 폭풍!!!”
이제 이 뒤는 나도 모른다. 완전히 미지의 영역이다.
제발 이 결전 스킬이, 이스그라드라는 재앙조차 초토화시킬 만큼 엄청난 스킬이길. 두 눈 질끈 감고 기도할 뿐이다.
나는 곧 온몸에서 벌레가 꿈틀거리는 듯한 기묘한 감각을 맞이했다.
“그윽…!”
잠깐 눈앞이 까마득해지며 엄청난 탈력감이 사방에서 몰아닥쳤다. 마력이 순식간에 빨려나가는 감각이었다.
“푸하악!”
내가 다시 눈을 떴을 땐, 이미 스케어크로우의 변신이 풀려 있었다.
결전스킬을 사용하면 변신 스킬은 자동적으로 풀린다고 했던가. 스킬의 설명대로였다.
‘위, 위험하다…!’
나는 멍한 정신을 추스르며 쌍검을 뽑아 들었다.
아직 전투가 끝나지 않았다. 이대로 멍하니 있다간 당하고 만다.
‘스, 스킬은?’
내가 사용한 까마귀폭풍은 어떻게 됐지? 이스그라드에게 적중했나? 놈은 쓰러졌나? 아니면 기스도 안 났나?
나는 사태를 파악하기 위해 황급히 정신을 가다듬었다. 사방을 허겁지겁 둘러본 다음에야 뒤늦게 깨달았다.
“… 어.”
내 주위 수십 미터로 온통 시커먼 안개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상하좌우 사방팔방. 검은 안개 같은 것이 연신 꿈틀거렸다. 순간 숨을 흠칫 삼켰다가, 이내 유심히 그 안개의 정체를 파악하기 시작했다.
이내 나는 넋이 반쯤 빠졌다. 두 눈이 부풀어 올랐다.
“이건…….”
꿀렁거리는 안개의 정체가 수백, 수천의 까마귀 무리라는 것을 그제야 깨달았다.
안개까마귀. 내가 스킬을 사용해서 등장한 특수탄환들이 바로 이것이었다.
―까악, 까악!
그리고 거기까지 파악했을 땐… 이미 수많은 안개까마귀들이 일제히 이스그라드를 향해 돌진하고 있었다.
압도적으로 거대한 이스그라드조차 주춤거릴 정도로 압도적인 물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