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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417413번째 소울라이크 용사-253화 (229/280)

253화

나와 이스그라드는 한동안 ‘개싸움’이 무엇인지를 몸으로 보여줬다.

―그루루루루!!

찐득한 피로 점철된 이스그라드가 잘린 목을 진동시켰다. 소름끼치는 공명음이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나는 놈의 모가지에 손톱을 박은 채, 그대로 지면을 향해 힘껏 후려쳤다.

“예절 주이이입!!”

쿠우웅! 이스그라드의 육중한 몸이 모가지부터 지면에 때려 박혔다.

내가 하고도 좀 놀랐다. 진짜 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새삼 스케어크로우의 엄청난 신체능력에 감탄할 따름이었다.

―그르르르르!

이스그라드는 그대로 바닥에 누워 미친 듯이 몸을 버둥거렸다. 벼룩처럼 피부 위에서 발발거리는 나를 눌러 죽이기 위함이다.

하지만 어림도 없지. 나는 이미 펄쩍 점프해서 놈의 공중에 떠올라 있었다.

“하아아아!”

그리고 이스그라드의 위로 번개처럼 다시 내리꽂혔다.

푸화악! 내뻗은 열 개의 손톱이 이스그라드의 비늘을 뚫고 쑤셔박혔다.

―끼기기기기긱!!

이스그라드는 다시금 바둥거렸다. 놈이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팔이 등을 슬쩍 스쳤다.

푸화악! 그것만으로도 몸을 감싼 경장갑의 일부가 속절없이 터져나갔다. 휑해진 갑옷 내부로 혈액처럼 시커먼 안개가 질질 흘러내렸다.

“크아아아!”

나는 치밀어 오르는 분노에 몸을 실어, 그대로 아가리를 벌렸다.

콰직! 놈의 목덜미를 한 입 베어 물었다. 역겨운 썩은 고기 냄새가 감각을 지배했다.

놈의 생살을 으적으적 씹던 나는, 그대로 살점을 뜯어내 버렸다.

“그으으으!”

우지지직! 변신한 내 상체와 비슷한 크기의 살점이 찢겨 나왔다.

하지만 이스그라드의 거대한 육체에 비하면 극히 미미한 상처에 불과했다. 살아 있었다면 출혈사라도 노려보겠는데. 얘는 어차피 시체다.

하긴. 저게 살아있었다면… 애초에 지금처럼 내가 비빌 언덕조차 안 나왔겠지만.

‘아오 염병싸맞을! 끝이 없네 진짜!!’

답도 없다. 그것이 개싸움 끝의 감상이었다.

나는 턱까지 차오른 숨을 갈무리하며 썩은 살점을 대충 뱉어냈다.

‘이대로는 결국 내가 진다.’

이미 전신의 경갑과 흑익이 너덜거리는 상태다.

스케어크로우 변신 상태에서는 육탄전 외 스킬사용은 물론이고, 에테르 병으로 회복하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결국 체력의 한계가 오면 나의 패배가 확정된다.

‘빨리 약점을 공략해야 하는데…!’

문제는 그 약점이 놈의 체내에 있다는 것이다.

이스그라드의 체내에 숨은 샤키엘을 쳐죽이려면. 일단 놈의 뱃가죽을 파고 들어야 한다.

하지만 워낙 덩치가 크다 보니 그만큼 피부와 근육들이 두껍기 짝이 없었다.

‘문제는 그것뿐만이 아니야.’

게다가 놈은 절대 순순히 약점을 보이지 않았다.

아까부터 몸을 낮게 깔고 절대 복부에 틈을 보여주지 않았다. 어쩌다 내가 억지로 배를 까도, 사지를 버둥거려 필사적으로 그곳을 감쌌다.

이스그라드… 정확히는 샤키엘도 알고 있는 것이다. 자기가 노려지고 있다는 것을.

―그루루루루…!

덕분에 이스그라드의 양쪽 앞발은 원형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너덜너덜해졌지만. 굵은 비늘로 둘러싸인 복부의 중앙 부근. 거기만 놀랍도록 깔끔하다.

그곳이 바로 내 타깃이었다.

“방법이 없나…?”

나는 낮게 울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놈이 지키려는 부위가 뚜렷해서, 오히려 약점은 확실하게 파악됐다. 하지만 필사적인 저항 때문에 도저히 뚫어낼 수단이 없다.

저곳을 한 번에 돌파할 방법은 정녕 없는 건가? 거기까지 생각한 순간.

―그루루루루!

낮은 괴성과 함께 이스그라드가 꼬리를 거칠게 휘둘렀다.

채찍처럼 휘둘린 길다란 꼬리는 내 주위를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갔다.

“거 새끼, 생각 좀 하자!”

콰앙! 콰콰쾅!

애꿎은 지면이 속절없이 얻어맞았다. 땅이 춤을 추듯 요동치고 속절없이 터져나갔다.

오늘 태고룡의 언덕 지도가 실시간으로 개편되는 중이었다.

‘그야말로 초토화군.’

나는 그 모습을 보며 감탄 아닌 감탄을 내뱉었고.

그 순간, 머리맡이 번득였다. 나는 짓무른 살점이 덕지덕지 묻은 손톱을 멍하니 쳐다봤다.

“있다. 방법.”

그래. 잊고 있었다.

초토화. 이 스케어크로우 변신 스킬에는… 그런 어마어마한 설명을 가진 스킬이 하나 내장되어 있었다.

‘까마귀 폭풍. 그것에 의지해보는 수밖에 없겠어.’

무려 ‘결전 스킬’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스킬이다. 데미지는 기대해도 되지 않을까. 적어도 시험해볼 가치는 있어 보인다.

나는 새삼 스킬의 설명을 재차 읽어봤다.

[스킬 정보]

[명칭: 까마귀 폭풍]

[효과: 반경 50미터 내에 안개까마귀 군대를 소환.]

[상세: 마갑 스케어크로우의 결전 스킬. 모든 잔여마력을 소모하여 특수 탄환 ‘안개까마귀’를 소환한다. 안개까마귀는 반경 50미터 내의 모든 생물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하며, 완전히 초토화할 때까지 멈추지 않는다. 레벨 증강은 불가하다.]

“아.”

읽고 나자 짤막한 탄성이 흘러나왔다.

나는 길게 이어지는 상세 설명 중, 한 부분을 반복해서 읽었다.

[모든 잔여마력을 소모하여 특수 탄환 ‘안개까마귀’를 소환한다.]

예감이 좋지 않았다.

나는 제멋대로 날뛰는 이스그라드의 몸 위를 질주하며, 곧장 내 잔여 마력치를 확인했다.

[체력: 1470/3800 ?마력: 30/2000 ?신체상태: 광증]

역시나. 마력은 이미 바닥을 치고 있었다.

어디서 마력이 이렇게 많이 빨린 거지. 곰곰이 생각해보던 나는 곧 원인을 찾아냈다.

“아아. 망할.”

낮은 탄식이 흘러나왔다. 내 마력이 바닥난 이유를 알았다.

다크 레이븐 상태에서 날아다닐 때다. 초고속 비행 때문에 마력을 고출력으로 사용해서 바닥난 게 분명했다.

마력을 사용한 건덕지가 그것 밖에 없으니 확실했다.

‘실수다. 마지막에 에테르 병을 빨고 변신했어야지.’

하긴. 상황이 이렇게 풀릴 줄 알고 있었나. 그걸 미리 알았으면, 내가 좌판 깔고 점이나 치지 이렇게 개고생 하겠냐고.

그래. 이제 알았으니까. 다음엔 꼭 그렇게 하면 된다.

“… 흐.”

어느 순간. 나는 피식 웃으며 그 자리에 멈춰섰다.

사뿐히 점프해 이스그라드의 육체에서 지면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곧장 스케어크로우의 변신을 해제해 버렸다.

온몸에서 짙은 탈력감이 몰아닥쳤다. 나는 거스르지 않고 털썩 주저앉아 버렸다.

―그루루루루!

그러자 곧 이스그라드가 나를 포착했다. 기분 나쁜 공명음과 동시에 이스그라드가 몸을 크게 비틀었다.

쇄애애액! 공기를 찢어발기는 소리가 시시각각 가까워졌다. 놈이 휘두른 꼬리가 거대한 음영을 만들며 내게 쏟아지고 있었다.

“… 또 보자. 용가리.”

퍼어억!

순식간에 모든 감각이 차단되었다.

* * *

내가 눈을 뜨기도 전에 자드키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지막이 아니었네요. 까마귀님.”

자드키엘은 여전히 웃고 있었다. 이번에야말로 나를 비웃는 건가 싶었지만. 역시나 딱히 그런 기색은 아니었다.

다만 남의 속도 모르고, 진심으로 반가워하는 눈치라서 좀 띠껍긴 하다.

“빨리 보내주기나 해. 방금의 전투 감각을 잊어버리면 안 된다고.”

나는 퉁명스럽게 말하고는 손을 쭉 뻗었다. 그 사이 내 몸을 기어 올라온 지네와 바퀴벌레가 손끝에서 꿈틀거렸다.

자드키엘은 그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천천히 하늘을 날아 내게 다가왔다.

“아직은… 모두 기억하고 계시죠?”

그리고 내 손을 잡기 직전,

그런 것을 물어왔다.

“… 뭐?”

나는 뒤늦게 되물었지만. 이미 눈앞은 새하얗게 변해 있었다.

자드키엘의 미소와 의미를 알 수 없는 말, 작은 장방형 공간까지.

모두 하얀 빛 속으로 아득하게 사라져 버렸다.

* * *

[불사의 회귀점이 갱신되었다.]

[일시 ? 대륙력 1108년, 12월 24일, 06시 34분]

[장소 ? 용제국 케나인. 고룡의 평원, 태고룡의 무덤]

부우우웅―! 거대한 뿔피리 소리가 적막에 잠겨 있던 전장을 길게 울렸다.

순간 알싸한 긴장감이 군중들을 타고 흘렀다.

“전군 돌격해라!! 목표는 선조룡, 이스그라드의 유해다!!”

시기 좋게 크라네이드의 대포소리 같은 명령이 떨어졌다.

“우와아아아!!”

용병부대원들이 일제히 함성을 질렀다. 쥐떼 마냥 광기어린 질주가 이어졌다.

그리고 그 한 가운데서 부대끼던 나는…

“오케이. 돌아왔고!”

이번 생에선 얼빠진 고함조차 지르지 않았다.

푸쉬익! 나는 곧장 다크 레이븐을 발동해 하늘로 날아올랐다. 분사한 마력이 초고속으로 나를 이스그라드 방향으로 밀어 넣었다.

‘모든 프레이즈는 전생과 동일. 마지막만 바꾼다!’

나는 그 결심을 모토로 정하고 기계적으로 움직였다.

잠입 스킬과 초인의 감각을 속이는 법으로 놈의 시야를 교란했다. 그렇게 근처까지 접근해, 다시금 이스그라드의 머리 위까지 도달했다.

“이번엔 소리도 못 지를 줄 알아!!”

이스그라드가 입을 쩍 벌린 순간. 나는 그곳에 멸망의 화염을 두른 핏빛 대검을 냅다 던졌다.

대검이 거대한 아가리 속으로 들어가는 그 순간. 나는 시동어를 외쳤다.

“스팅어!!”

콰아아앙!

거대한 폭발음이 포효 대신 울렸다.

―키오오오오오!!

찢어지는 비명소리가 울렸다. 나도 모르게 귀를 막아버릴 정도로 기분 나쁜 울림이었다.

이스그라드가 입에서 독기의 브레스 대신 새빨간 불꽃을 핏덩이와 함께 쏟아냈다. 질척한 불꽃이 발린 피가 지글지글 언덕 위로 번져갔다.

―키에엑! 케에에에엑!!

그리고 이스그라드는 그 위에서 머리에 붙은 불을 끄기 위해 연신 발버둥을 쳤다. 전처럼 대지가 갈라지고 하늘이 요동치는 필사적인 난동이었다.

휘리릭, 턱. 그리고 나는 역할을 마친 멸망의 대검을 어검술로 회수해 왔다.

“그래. 지금처럼 바닥을 발발 기는 게 가장 어울려. 좀비 새끼야.”

나는 중얼거림과 동시에 물의 에테르를 흡입했다. 청량한 기운을 느낄 새도 없이 곧바로 다음 작업을 착수했다.

아직 몸에 쌓인 흉마는 충분하다. 나는 즉시 시동어를 외쳤다.

“스케어크로우!”

우드득, 꾸드득! 관절음과 함께 순식간에 변신을 마쳤다.

길쭉길쭉하게 뻗은 괴물의 육체가 중력에 따라 추락했다. 나는 잔뜩 벼린 열 개의 손톱을, 이스그라드와 맞닿는 타이밍에 맞춰 휘둘렀다.

퍼어억! 질펀한 파육음과 함께 손톱 다섯 줄기가 놈의 피부를 파고들었다.

“다시 한 번 시작해보자. 아까 그대로 말이야!!”

푸드드득!

비늘과 피와 살점이 사방으로 튀어 올랐다. 이스그라드의 몸 위를 미친 듯이 질주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스그라드의 썩은 육체에 붉은 낙서가 선명하게 새겨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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