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2화 괴물엔 괴물
“으아아아나스타샤!!!”
나는 비명을 지르며 눈떴다.
그러자 이스그라드의 썩은 얼굴 대신, 자드키엘의 포근한 미소가 보였다.
“… 아.”
그 얼굴을 인식하자마자 현자타임이 빡세게 왔다.
그녀가 보인다는 게 무얼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또 죽었냐.’
어떻게 된 거냐 정용아. 아직 제대로 된 타격 한 번을 못 해봤다.
“이 X팔. 다크레이븐만 쓰면 어떻게든 될 줄 알았는데…….”
공격하기가 상상 이상으로 개빡세다. 모기들이 사람 피 빨러 올 때 이런 심정인가 싶다.
앞으론 모기를 봐도 살려주… 지는 않고. 죽을 걸 알고도 달려드는 모기들의 처지를 슬퍼하며 최대한 잔인하게 죽여줘야겠다고 다짐했다.
“다녀오셨나요. 까마귀님.”
자드키엘은 퇴근한 남편 맞아주는 마누라 마냥 살갑게 인사했다.
쟤도 이제 하도 봐서 정들겠다. 슬슬 이 벌레로 가득찬 이 공간도 물침대 마냥 편해지는 착각이 일고 있었다.
“… 쓰읍. 그래. 또 왔다.”
나는 멋쩍게 마주 인사해줬다.
그새 뒤져서 여기로 사출됐냐고 멕이는 건가 싶었지만. 표정을 보니 진짜 반가워하는 기색이가득했다.
그녀는 연신 밝게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편히 쉬다 가시길 바랄게요.”
“이런 미친 공간에 어떻게 편하게 쉬냐.”
“후후. 그야 그렇습니다만.”
나는 다리를 허우적거려 벌레의 파도를 헤집었다. 끊임없이 내 몸을 기어다니는 벌레들을 최대한 떨어뜨리며, 자드키엘에게 다가갔다.
자드키엘은 단박에 내 의도를 파악했다. 그녀가 곧장 손을 내밀어줬다.
“복잡한 기분이네요. 하시는 바가 잘 되었으면 좋겠지만. 역시 당신을 또 만나고 싶다는 마음도 같이 있어서요.”
나는 자드키엘의 말에 허, 하고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덥석.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 다시금 장방형의 작은 세상이 하얀 광휘에 휩싸였다.
“아마 몇 번을 오든 똑같은 말을 하겠지만. 난 이게 마지막이었으면 좋겠어.”
그 말을 끝으로 잠깐 정신이 아득해졌다.
자드키엘의 웃음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던 것 같다.
* * *
[불사의 회귀점이 갱신되었다.]
[일시 ? 대륙력 1108년, 12월 24일, 06시 34분]
[장소 ? 용제국 케나인. 고룡의 평원, 태고룡의 무덤]
부우우웅―! 거대한 뿔피리 소리가 적막에 잠겨 있던 전장을 길게 울렸다.
순간 알싸한 긴장감이 군중들을 타고 흘렀다.
“전군 돌격해라!! 목표는 선조룡, 이스그라드의 유해다!!”
시기 좋게 크라네이드의 대포소리 같은 명령이 떨어졌다.
“우와아아아!!”
용병부대원들이 일제히 함성을 질렀다. 쥐떼 마냥 광기어린 질주가 이어졌다.
나는 상황을 인지하자마자 다시금 다크레이븐을 발동시켰다.
“다크레이븐!”
푸화악! 마력을 최대한으로 쏟아냈다. 나는 검은 유성처럼 하늘을 갈라 다시금 이스그라드에게 접근했다.
“이번에야말로!”
지금 내가 기억하는 도전만 벌써 23 번째다.
사람이 같은 일을 반복하면 발전이 있어야 할 거 아니냐. 최소한 때려보기나 하자.
이번 생의 최우선 목표는 일단 일격. 단 한 방이라도 맞추는 거다!
‘잠입!’
푸쉬익! 나는 스킬을 사용해 기척을 최대한 죽였다.
지금까지는 일부러 이스그라드의 어그로를 끌기 위해 화려하게 움직였다. 적랑을 비롯해서 다른 병사들의 개죽음을 막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러면 안 돼. 평생 같은 개죽음만 반복될 뿐이야…!’
잇따른 죽음으로 깨달았다. 저 괴물은 남들 목숨 걱정 해주면서 토벌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잠입 스킬만으론 은폐력이 부족하다. 나는 최상의 상태를 위해 다음 작업에 착수했다.
‘기공술.’
기공술을 활성화 시켰다. 히어로센스의 감각 확장도 함께 발동했다.
온몸의 감각이 예민해지며, 주변을 떠다니는 온갖 힘의 흐름이 손에 잡힐 듯이 선명해졌다.
나는 그 힘의 흐름에 간섭해, 어거지로 뒤틀기 시작했다.
‘초인의 감각을 속이는 법!’
나는 적랑에게 배웠던 그것을 어설프게 따라하고 있었다.
이 기술의 골자는 내가 내뿜는 힘, 반대로 내게 유입되는 모든 힘을 죄다 반사시켜서, 상대의 감각을 교란시키는 것이다.
나는 구더기가 꿈틀거리는 이스그라드의 눈을 유심히 쳐다봤다.
‘부패가 너무 심해. 감각 기관은 전혀 작동하지 않을 거다.’
하지만 이스그라드는 언제나 귀신 같이 내 위치를 특정해냈다. 정확히 나를 포착해서 후려치고, 때리고, 부수고, 한 입에 꿀꺽 씹어먹어 버렸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다. 이스그라드에 기생한 샤키엘 쪽이 감지하는 수단이 있다는 소리다. 아마도 그녀의 태생을 보면 흑마법과 관련한 수단일 테지.
‘그렇기에 이 기술이 제격이다.’
이 기술은 나를 향하는 모든 힘을 뒤틀기 위해 고안됐다. 애초에 마법 탐지 등을 뒤트는 데 특화된, 전투기의 스텔스 같은 스킬이라는 소리다.
감각과 인식의 교란은 애초에 거기서 오는 부수적인 효과에 불과하다.
“이 X바, 처음부터 이랬어야 됐어!”
나는 한숨처럼 중얼거리며 한층 속도를 높였다.
전처럼 이스그라드의 거대한 육체가 점점 가까워졌다. 놈은 이제야 그 느리적한 육신을 움직여 거대한 포효를 내질렀다.
―그오오오오오오!!
포효가 광풍과 함께 언덕 전역을 휩쓸었다.
수없이 반복됐던 광경이 그대로 펼쳐졌다. 병력의 맹진은 거짓말처럼 정지했다.
압도적인 공포가 삽시간에 군진 전역에 퍼져나간 것이다.
‘하지만 내게는 어림도 없다!’
이번엔 네놈의 브레스보다, 내가 내지른 공격이 빠를 거다.
나는 어느새 이스그라드의 미간 앞까지 도달해 있었다.
“하아아앗!”
스르릉. 멸망의 화염을 빼들고 이글거리는 화염을 장전한 나. 그런 나를 쳐다보는 이스그라드의 썩은 눈동자.
―너는… 까마귀?
문득 목소리가 울렸다. 머릿속을 파고드는 듯한 여성의 목소리. 이스그라드 내부에 있는 샤키엘이다.
이스그라드의 동태처럼 죽은 눈동자가 나를 하염없이 비추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시간이 멈춘 듯이 느리게 흘렀다.
“까꿍.”
나는 깜찍발랄하게 한 마디 던졌다.
그리고 멸망의 대검을 어깨 뒤로 깊숙이 장전했다.
“브레스 평생 압수다!!”
나는 호기롭게 외치며 멸망의 대검을 쑤셔 넣었다.
내뻗은 대검의 끝자락이 놈의 눈동자를 파고들었다. 푸확! 놈의 내부에 차있던 썩은 진물이 콸콸 쏟아져 나왔다.
―케에에에에엑!!!
이스그라드의 찢어지는 괴성이 울렸다.
위협이 아닌, 고통을 담은 비명소리였다.
―키아아아아악!
우르릉, 콰과광! 이스그라드가 미친 듯이 육체를 뒤틀었다.
발을 구르고 몸을 뒤틀 때마다 천지가 뒤집힐 듯이 요동쳤다. 워낙 거대한 육체가 날뛰다 보니, 나 역시 추가타를 넣을 수가 없었다.
“크어어억!”
“아아아아악!”
그리고 놈의 발악은 엄청난 인명피해를 발생시켰다. 주변에서 눈먼 공격에 맞은 용사들이 종잇조각처럼 허공을 날아다녔다.
‘한 대만 맞아도 일격사를 해버리니 원…!’
나는 공중에 뜬 채로 놈이 발광하는 걸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한 대라도 제대로 쑤신 게 어디냐. 나는 이스그라드의 안면 전체로 번져가는 새빨간 화염을 보며 회심의 미소를 흘렸다.
―케엑, 키에에에엑!!
이스그라드가 불 붙은 머리를 지면에 벅벅 문질러댔다. 하지만 그럴수록 불꽃은 더욱 거세게 이스그라드의 썩은 살점을 살라먹었다.
치지직. 지글지글 끓는 부패한 피. 지독한 냄새가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쓰, 쓰러졌다! 이스그라드가 쓰러졌다! 이 틈에 놈을 끝장내자!”
그리고 시기적절하게 크라네이드의 일갈이 이어졌다. 번개 같이 사태를 파악하고 지시를 내린 것이다.
그러자 용병부대들은 사기가 충천해서는 진군속도가 한층 빨라졌다.
“오, 오오오오!”
“드, 드래곤의 목은 내 거다!”
대체 어디서 저런 자신감이 샘솟는지는 모르겠다만. 놈들은 주변에서 피떡이 되는 용사들을 아랑곳 않고 더욱 이스그라드에게 몰려들었다.
분위기는 좋았다. 이대로 기회를 봐서 마무리를 넣으면 금방 끝낼 수 있을 거 같다.
‘뭐야. 이거 잘하면 이번 생에서 끝낼 수 있겠는데.’
이대로 드래곤 슬레이어 박정용으로 전직할 수 있을 거 같은데?
시시각각 언덕을 조여오는 용병부대와, 하늘을 날아다니며 거대한 불기둥을 발사하는 기룡대를 봤다. 이스그라드는 실시간으로 사면초가에 빠졌다.
도저히 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상황이었다.
“생각보다 쉽잖아? 드래곤 레이드.”
그래. 결정적으로 그 말을 뱉으면 안 됐다.
그 말만 안 했으면 혹시 몰랐다. 진짜로. X발.
―크륵… 키아아아악!!!
문득 이스그라드가 활활 타는 목구멍으로 찢어지는 굉음을 내뱉었다.
지금까지의 포효와는 사뭇 달랐다. 뼈 안쪽을 살살 긁는 소름끼치는 감각이 몰려왔다.
“뭐, 뭐야…?!”
나도 모르게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떨려왔다. 나는 눈을 부릅뜨고, 지면을 버둥거리는 이스그라드의 행태를 주시했다.
그 순간, 퍼걱! 놈이 자기 머리를 있는 힘껏 바닥에 처박았다.
“… 허?”
내가 탄성을 내뱉는 찰나. 놈의 광기 어린 행동이 이어졌다.
―케에에에엑! 키에에에에엑!!
퍼억, 퍼걱, 퍼퍽!
연신 미친 듯이 지면에 머리를 들이박는 이스그라드.
처음엔 고통 때문에 발광하나 싶었지만. 아니었다. 그렇다기엔 너무 주저없는 행색이었고. 또한 등줄기를 긁는 히어로 센스의 비명이 설명이 안 됐다.
저건 명백히… 어떤 의도가 함유된 행동이었다.
‘서, 설마.’
그리고 번개처럼 뇌리를 스친 가정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곧장 현실로 드러났다.
―캬아아아악!
우드득! 마침내 이스그라드의 머리가 부러져 추욱 늘어졌다. 이스그라드는 축 늘어진 목 윗부분을 앞다리로 붙잡고, 그대로 뜯어내 버렸다.
푸화악! 핏줄기와 연녹빛 독기가 잘린 목 위로 콸콸 솟아올랐다.
“…….”
“…….”
“…….”
끔찍한 광경을 목도한 이들 중 아무도 입을 열지 못했다.
쿠우웅! 바싹 타들어간 이스그라드의 머리가 지면에 추락했다. 용병단원들은 폭탄이 폭발한 듯한 진동과 풍압에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루루루. 으루루루루.
울컥거리며 피를 쏟아내는 이스그라드의 목. 거기에서 이 세상 것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는 끔찍한 울림이 퍼져나갔다.
주저앉았던 사람들은 이내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전력질주로 도망가기 시작했다.
“흐, 으하아아악! 아아아악!”
“사, 사, 살려! 살려줘! 살려줘어어!!”
동산만한 드래곤의 셀프 대가리 절단쇼에, 다들 정신을 못 차렸다. 하늘을 날아다니던 용기사들도 아연실색해서 차마 접근을 못하고 있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혀를 낮게 찼다.
‘역시. 예상은 했지만… 쟤네는 진짜 도움이 안 되는군.’
사실 이 상황에 용병부대를 오합지졸이라고 욕하기도 뭐하다.
이스그라드가 대가리를 절단하고 곱게 죽었으면 모르겠는데. 대가리가 잘린 채로 버젓이 살아서 사지를 꿈틀거리고 있으니. 내가 봐도 공포특급이 따로 없었다.
대가리를 잘라도 안 죽는 놈을 어떻게 이기냐. 도망쳐도 할 말이 없다.
“이… 진짜, 징글징글한 새끼…!”
그래. 처음부터 저 몸을 움직이는 건, 우동사리마냥 전신이 불어터진 이스그라드가 아니었다. 놈의 자궁에 자리잡은 샤키엘이었지.
대가리를 잘려도 움직일 건 예상했어야 했다. 내 불찰이다.
‘그래도 괜찮아. 적어도 브레스는 봉했다.’
나는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어쨌든 선제공격을 먹이는 데는 성공했고. 그로 인해 가장 골치 아팠던 브레스를 봉인한 건 틀림없는 사실이다.
상황이 나빠졌다 할만한 건 없다. 오히려 좋아졌다면 좋아졌지.
‘가자. 이번에야말로!’
숨통을 끊어주마.
나는 아까 했던 것처럼 어검술과 잠입 스킬로 기척을 최대한 죽였다. 그리고 바닥을 질질 기는 이스그라드의 위로 사뿐히 올라탔다.
온갖 벌레들이 이스그라드의 비늘 틈새에 꿈틀거렸다. 나는 눈살을 찌푸린 채 나직이 시동어를 말했다.
“스케어크로우,”
몸을 감싼 중갑옷이 꿈틀거리며 변형하기 시작했다.
꾸드득, 우득. 소름끼치는 관절음과 함께 어둠이 드리웠다.
“그으으으!”
나는 신음과 함께 눈을 번쩍 떴다. 다시 드러난 시야는 어느새 훌쩍 높아져 있었다.
키이잉! 양손에 다섯 개씩 자라난 흑백의 손톱을 어깨 뒤로 한껏 물렸다.
“이제부터 진짜다!!”
나는 이스그라드의 표피에 손톱을 힘껏 박아 넣었다.
우지직. 비늘 사이로 다섯 개의 손톱이 박혀 들어갔다. 썩어서 물렁한 살점의 감촉이 전해져왔다.
나는 그대로 이스그라드의 몸 위를 종횡무진 질주했다.
“아하하하하하!!”
카가가가각!!
이스그라드의 표면을 타고 다섯 줄기의 혈선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우효오옷! 최고로 HIGH한 기분이구나아악!”
무언가의 살을 도려내는 이 느낌. 익숙해지는 걸 넘어, 슬슬 즐겁다.
그래서 나는 미친 듯이 웃으면서도, 스스로가 점점 무서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