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화 너에게 닿기를
투콰앙! 나는 곧장 이스그라드를 향해 돌진했다.
‘X발… 포기하지 말자!’
비록 흉마가 없어도, 무언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거라 믿었다.
아니. 없으면 어쩔 건가. 생물은 원래 살아있는 이상, 살아가기 위해 발악을 해야 하는 법이다.
‘뒤는 생각하지 마!’
키이잉!
나는 어검술로 들어올린 멸망의 대검과, 양손의 쌍검을 곧장 이스그라드의 발목에 내질렀다.
내 신형이 이스그라드의 발목 언저리를 질풍처럼 휩쓸고 지나갔다.
“하압!”
푸확! 세 갈래의 핏줄기가 터졌다.
거대한 비늘쪼가리와 시커멓게 썩은 피가 사방으로 흩날렸다. 치지직! 시커먼 피는 바닥에 닿자 지글지글 돌바닥을 끓이기 시작했다.
X발. 브레스 뿐만 아니라 피에도 독성이 있구나. 나는 그 광경을 보며 마른 침을 삼켰다.
‘그래도 이렇게 데미지를 계속 주면…!’
일단 공격이 먹힌다는 사실 자체가 고무적이다. 나는 주먹을 불끈 쥐며 쾌재를 불렀다.
그리고 구구궁. 육중한 소리와 함께, 내가 베어낸 이스그라드의 다리가 번쩍 들렸다.
“… 어.”
고층 건물이 벌떡 날아오른 듯한 광경에 순간 정신줄을 놔버렸다.
그리고 그 건물이 명백한 살의를 갖고, 내 위에서 쏟아지자 화들짝 정신이 들었다.
나는 더 볼 것도 없이 허겁지겁 놈의 발길질을 피했다.
“으하악!”
쿠우우우웅!
엄청난 진동이 울리는 건과 동시에, 온몸을 짓이기는 듯한 풍압이 몰아닥쳤다.
이스그라드가 내지른 발길질은 내 바로 옆을 훑고 지나갔다. 잠깐만 판단이 늦었어도 그대로 용가리 전용 축구공이 될 뻔했다. 그 사실을 깨닫자 뒷목이 시큰해졌다.
―그오오오오오오!!
그리고 자신의 공격이 빗나간 것에 대한 분노일까. 이스그라드가 거대한 포효를 내질렀다.
내 시선이 까마득한 위로 향했다. 그리고 놈의 입가에 이글거리는 시퍼런 독기를 포착했다. 포착하고 말았다.
“… 아.”
브레스다.
순간 머리맡으로 ‘죽음’이라는 두 글자가 선명하게 박혔다.
필사적으로 솟아날 구멍을 강구했다. 하지만 어떤 수를 써도, 저것에서 벗어날 방법이 보이지 않았다.
‘이, 일단 급한 대로 이거라도…!’
나는 바닥에 낮게 포복했고. 흑익으로 온몸을 빈틈없이 감쌌다.
푸화악! 이스그라드의 포효와 함께 연녹빛 독기의 브레스가 언덕을 다시금 휩쓸었다. 폭풍과 함께 몰려오는 시독의 역취에 몇 번이나 헛구역질을 했다.
지척에서 브레스에 직격당했기 때문일까. 흑익은 시독의 브레스를 완전히 막아내지 못했다.
“끄으… 으아악! 아아아…!”
치지직. 온몸이 타들어가는 듯이 뜨거웠다.
고통이 너무 심해 신음조차 제대로 내지르지 못했다. 슬쩍 손을 들어보니, 찰흙처럼 살점이 녹아내려 뼈만 간신히 붙어 있는 손가락들이 보였다.
‘회, 회복… 에테르…!’
나는 그 자리에 드러누운 채, 거의 본능적으로 파우치를 뒤졌다. 손끝에 감각이 없다 보니 내용물이 마구잡이로 바닥에 흘러내렸다.
가까스로 에테르병을 쥐고 그것을 입가로 가져가는 그 순간.
―죽어버려. 까마귀…!
순간 그런 목소리가 들려왔다. 일그러진 여성의 목소리였다.
귀가 아니라 뇌로 직접 때려박는 듯한… 마치 수호 형님의 목소리를 듣는 듯했다.
‘이… 목소리는!’
나는 소리의 발원지로 퍼뜩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그 목소리가, 이스그라드의 썩은 몸뚱이에서 흘러나온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 설마.’
나는 곧 그 목소리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샤키엘. 이스그라드의 안에서 숨죽이고 숨어있는 샤키엘의 목소리가 분명했다.
―나는… 아직… 죽지, 않아. 죽고 싶지… 않단 말이야…!
이스그라드의 안에서 연신 중얼거리는 샤키엘.
쿠구구궁. 다시금 이스그라드는 그 거대한 몸을 움직여, 왼발을 번쩍 들어올렸다.
―죽여… 주겠어. 나는, 내 어미의… 노리개가 아냐!!
노이즈가 낀 샤키엘의 일갈이 연신 뇌리를 자극했다.
눈꺼풀의 살갖이 녹아내려 시야가 제한됐다. 반쯤 감긴 눈으로 파란 하늘과, 그 아래를 가득 메운 이스그라드의 발바닥이 보였다.
발바닥이 점점 내게 가까워지고 있었다. 하늘이 가려지며 어둠이 찾아왔다.
“하.”
나는 허탈한 나머지 헛웃음을 잠깐 흘렸다.
구우웅. 내 생에 마지막으로 들은 것은, 그런 거대한 땅울림이었다.
* * *
“푸하악!”
나는 눈을 떴다.
그러자 아까처럼 좁은 장방형 공간이 있었다. 그 안에 득시글거리는 벌레와 하반신을 고치로 가린 자드키엘이 보였다.
이번엔 내가 죽는 걸 확실히 자각하고 와서 그런가. 아까만큼 놀랍지는 않았다.
“어서오세요. 까마귀님.”
자드키엘은 고개를 꾸벅 숙여 내게 인사했다.
나는 얼떨결에 고개를 마주 끄덕여줬다.
“어… 그래. 또 만났네. 슬프게도.”
“후후. 그러네요.”
자드키엘은 멋쩍게 웃으며 볼을 살짝 붉혔다. 그녀의 행색이 너무 태연해서 현실감이 싹 증발하는 느낌이었다.
나는 고개를 휘저어 금세 정신을 차렸다. 내가 처한 족같은 상황을 자각했기 때문이다.
“후… 큰일났네 이거.”
이를 어쩐다. 진퇴양난의 상황에 봉착했다.
이스그라드와 싸우기 위해선 마갑 다크레이븐이 필수적이다. 제공권이 없으면 그 미친 거구와 싸움이 애초에 성립이 안 되니까.
모기처럼 날아서 앵앵거려야, 최소한 접근이라도 할 것 아니냐.
‘하지만 흉마가 없어.’
그렇다. 내가 보유하고 있던 모든 흉마는 이 피안계를 구축하는데 사용해 버렸다.
그러면 다크레이븐을 사용하지 못한다. 사용한다 해도, 아까처럼 잠깐 사용했다가 수십 초 후에 찍 싸고 이스그라드의 웜보콤보에 사망한다.
‘그러면… 내가 해야할 일은…….’
흉마를 쌓아야 한다.
최소한, 스케어크로우와 다크레이븐을 수십 분은 기용할 수 있을 정도로.
이것을 다른 말로 하면…
“… 준내 뒤져야 한다고?”
나는 싸늘해진 뒷목을 슬쩍 긁었다.
뿌직. 바퀴벌레 몇 마리가 손톱 사이에 끼어 버둥거렸다. 나는 화들짝 손을 털어버리고, 재빨리 자드키엘에게 손을 내밀었다.
“야. 앞으로 신세 좀 많이 지겠다. 빨리 나 좀 내보내줘.”
“아. 네. 알겠습니다.”
내 명령조의 말에도 자드키엘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전생 때처럼 스르륵 허공을 미끄러져 내게 다가왔다.
그러나 손을 잡기 직전. 자드키엘은 가만히 나를 쳐다보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까마귀님. 흉마는 쌓이는 것도 사용하는 것도, 인간의 근본적인 성질을 망가뜨립니다. 알고는 계시죠?”
“… 음?”
예상치 못한 이가 돌연 말을 꺼내서인가. 나는 좀 놀랐다.
비유를 하자면, 초보마을의 귀환전용 NPC가 갑자기 히든 퀘스트를 뱉어낸 느낌이다.
“어. 뭐… 알고는 있는데. 인간성이 마멸된다지?”
나는 일단 고개를 끄덕여줬다.
인간성의 마멸. 그것은 흉마를 사용할 때마다 등장하는 패널로 확실히 숙지하고 있었다.
내 대답에 자드키엘은 난처한 듯이 웃었다. 얼핏 동정하는 듯도 보였다.
“하지만 정작 인간성의 마멸이 무얼 의미하는지는… 아직 모르시나 보네요.”
“… 뭐야. 뭘 의미하는데?”
“아뇨. 아닙니다. 그 부분은 제가 감히 말씀드릴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서요.”
하지만 자드키엘은 내 물음에 대답해주지 않았다. 다만 고개를 설레설레 젓더니, 내 손을 덥석 잡았다.
파아앙. 눈부신 광휘가 쏟아져 작은 장방형 세계를 하얗게 물들였다.
“이 기세라면, 아마 조만간 알게 되실 거예요.”
그런 의미심장한 말만 남긴 채, 자드키엘은 눈앞에서 사라졌다.
“어쩌면… 이미 시작됐지만. 자각하지 못하는 걸 수도 있겠군요.”
* * *
…
…
… 그 뒤로 내가 행한 일은 간단했다.
“쿠하악!”
밟혀죽고.
* * *
“구와아악!”
브레스에 녹아죽고.
* * *
“꾸에엑!”
채치수 뺨을 후려갈기는 파리채 블로킹에 쳐맞는가 하면.
* * *
“크허억! 이, 이건 뼛속까지 아프다!”
채찍처럼 휘둘린 거대한 꼬리에 그대로 사지가 분쇄되기도 했다.
* * *
죽고. 죽고. 그리고 또 죽었다.
문자 그대로 데스런. 죽음의 돌진이었다.
“아직… 아직이다. 아직이야아아아!!”
나는 가슴 언저리에 켜켜이 쌓여가는 끈덕한 흉마를 느끼며. 이번에도 쌍검을 꼬나쥔 채 이스그라드에게 돌격을 감행했다.
“끄아아아악!”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똥꼬쇼는 그 뒤로도 15번이나 더 이어졌다.
장장 20회에 달하는 데스런이었다.
* * *
[불사의 회귀점이 갱신되었다.]
[일시 ? 대륙력 1108년, 12월 24일, 06시 34분]
[장소 ? 용제국 케나인. 고룡의 평원, 태고룡의 무덤]
부우우웅―! 거대한 뿔피리 소리가 적막에 잠겨 있던 전장을 길게 울렸다.
순간 알싸한 긴장감이 군중들을 타고 흘렀다.
“전군 돌격해라!! 목표는 선조룡, 이스그라드의 유해다!!”
시기 좋게 크라네이드의 대포소리 같은 명령이 떨어졌다.
“우와아아아!!”
용병부대원들이 일제히 함성을 질렀다. 쥐떼 마냥 광기어린 대병력의 질주가 이어졌다.
그리고 벌써 21번째 돌격하던 나는, 곧장 지면을 박차고 날아올랐다.
“으하하하하! 다크레이븐!”
나는 참았던 웃음을 토해내며 스킬을 외쳤다.
꾸드득. 흑익이 경화되며 온몸을 감싸는 중갑옷이 되었다. 나는 마음껏 마력을 분사하며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현재 스코어 0킬 22데스를 기록하고 있는 나는 호기롭게 외쳤다.
“죽었다고 복창해라! 이 빌어먹을 용가리 새끼야!!”
깔끔한 직선을 그리며 이스그라드에게 날아갔다.
20번에 달하는 죽음으로 흉마는 쌓일대로 쌓였다. 이 정도 흉마면 앞으로 수 시간은 거뜬하게 변신을 유지할 수 있었다.
―크오오오오오!
언제나처럼 이스그라드가 울부짖었다. 포효에 섞인 매서운 광풍과 지독한 악취가 온몸을 휩쓸고 지나갔다.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물론 풍압 때문도 있지만, 상상을 불허하는 시체의 역취 때문이었다.
“하 나 X발…! 코에 빨래집게라도 달고 왔어야 했나.”
나는 헛웃음을 흘리며 중얼거렸다. 아슬아슬한 균형을 어떻게든 맞춘 뒤, 곧장 허공을 박차고 이스그라드에게 튕겨나갔다.
‘다시 간다!’
푸확! 내 등뒤로 마력과 함께 공기가 폭발했다.
쇄애애액! 나는 허공을 찢어발기며 이스그라드의 미간으로 급강하를 시도했다.
“너에게 닿기를…!”
앞으로 조금이다.
이제 정말 코앞까지 왔다. 놈의 얼굴에 박힌 비늘결이 육안으로 보였다.
‘이번에야말로!!’
500미터. 300미터. 그리고 100미터. 내 속도로 눈 깜짝할 순간이면 닿을 거리까지 다가갔다.
하지만. 이스그라드도 역시나 가만히 있지 않았다.
―그오오오오!
이스그라드가 포효와 함께 날개를 펼쳤다.
쿠구구. 걸레짝처럼 너덜거리는 피막이 하늘을 빈틈없이 덮으며 햇빛을 가렸다. 언덕 전역에 우중충한 암흑이 강림했다.
‘어.’
나는 그 터무니없이 거대한 날개를 보고 순간 머리가 햐얘졌다.
지금까지 총 21번 축적된 경험 속에서, 놈이 날개를 펼친 것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이건 놈이 내 액션을 포착하고 그에 대응했다는 증거였다.
“설마…….”
갑자기 저 용가리가 왜 날개를 펼쳤을까. 거기까지 생각이 닿았을 때, 문득 불안한 예감 하나가 뇌리를 스쳤다.
―그르르르…!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이스그라드는 몸을 둥글게 말았다. 그 상태에서 잠깐 다리를 부들거리며 힘을 모으는가 싶더니.
펄쩍. 이스그라드가 지면을 박찼다. 그리고 거대한 날개를 힘차게 펄럭거렸다.
―키에에에엑!!
날았다.
아니, 사실 날지는 못했다.
워낙 날개와 근육조직의 부패가 심해서인가. 놈이 체공한 시간은 고작 수 초에 불과하다.
그건 비행이 아니다. 그냥 폼나게 추락하는 거지.
“으… 어?”
하지만 사선으로 접근하던 나를 한 입에 쑤셔넣기엔… 그 폼 나는 추락이면 충분했다.
나는 측면에서 솟구치는 거대한 아가리를 놓고 잠깐 멍청한 탄성을 흘렸다.
“어어어.”
우적.
질척한 소리와 함께 다가오는 끔찍한 냄새. 그리고 고통.
시커먼 암흑이 몰아닥쳤다.
23번째 죽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