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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417413번째 소울라이크 용사-248화 (224/280)

248화 드래곤 레이드, 개전

그는 심각하게 분위기 잡은 것치곤, 처음에 잡다한 말들을 두서없이 쏟아냈다.

대부분은 엘프리데 누님에 대한 것이었다.

“정용 군. 아마 믿기지 않겠지만… 샤키엘의 정체가 시룡 이스그라드의 빙의체라는 걸 밝혀낸 것은 무려 엘프리데일세.”

“… 오오. 그래요?”

“엘프리데는 유능하다. 인정하기 싫지만 틀림없는 사실이지. 우리가 자네를 앞질러, 이곳에 먼저 진을 치게 된 것도… 모두 그녀 덕분이지. 심지어 자네 소식을 물어온 것도 그녀일세.”

“그, 그렇군요.”

나는 졸려 죽겠는 것을 간신히 참아내며 그의 말을 경청했다.

나이트레아에게 들었던 ‘서로 이용한다고 생각하는 머저리 집단’이란 말이 떠올랐다.

물론 그건 그 씨봉방년이 멋대로 해석한 거고. 내가 볼 때 적랑과 엘프리데는 그런 단순한 사이는 절대 아니다. 아니라고 믿고 싶다.

“용제가 토벌군을 강행한 것은 좀 의외였네. 우리 입장에선 잘 된 일이었지. 덕분에 용병부대에 편승해, 샤키엘 토벌성공률이 올랐으니 말이야.”

“하긴… 저도 이건 타이밍이 좋았다고 봅니다.”

적랑의 말에 따르면, 엘프리데는 거의 1년 전부터 용제국에서 체류하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모든 인맥과 힘을 동원하여 샤키엘의 행방을 수색했다.

그 결과 ‘미지의 마왕 샤키엘’의 정체가 빙의형 기생체라는 것을 파악했고. 그 중 한 개체가 바로 이스그라드의 유해라는 것까지 알아냈다고 한다.

“실로 위대한 업적이지. 샤키엘은 ‘미지의 마왕’이라는 이명부터가 그 신출귀몰함 때문에 붙은 존재니까. 잔존 개체의 정체를 파악한 것만으로도 박수를 받을만 하다.”

“흐음.”

침음을 삼키는 한 편, 역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극 정성이군 아주. 보나마나 적랑한테 잘 보이고 싶어서 그런 거겠지.’

나는 유리아와 루시 옆에 곤히 잠든 바리공주를 흘깃 쳐다봤다.

정확히 말하면, 알려지지 않은 또 다른 샤키엘의 개체를 본 거다.

‘누구는 1년 동안 개똥고생 해서 알아냈다는데. 편법으로 알게 돼서 찔리네 이거.’

내가 괜히 제 발 저리고 있자니. 적랑이 술잔을 가볍게 부딪치고 술을 한 방에 들이켰다.

그리고 빈 술잔을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내일부턴 본격적인 드래곤 레이드가 시작될 걸세.”

“… 예. 그렇다고 들었습니다.”

뭔가 심각한 얘기를 시작하려는 낌새다. 나도 술잔을 마저 비워버렸다.

낮에 크라네이드와 마셨던 것까지 있어서 그런가. 눈꺼풀에 만근추가 달린 것 같았지만… 억지로 시선을 그에게 고정했다.

그러자 적랑은 눈을 가늘게 뜨며 나직이 통보했다.

“나는 엘프리데를 전장에서 이탈시킬 생각일세.”

“…!”

“그녀는 이번 이스그라드 토벌작전에 참여하지 않는다고 알아두게. 이미 그녀를 미텔란트까지 수송해줄 용치기 일족까지 섭외해 뒀어.”

적랑은 일렁이는 랜턴 불빛 아래서 서슴없이 통보했다.

나는 퍼뜩 그의 얼굴을 올려봤다. 고요하게 잠긴 적랑의 눈과, 번들거리는 기계팔의 광택이 유난히 눈에 밟혔다.

적랑은 미미하게 웃으며 넋두리처럼 중얼거렸다.

“카르할라스는 아직 여러모로 미숙하다. 보호자가 필요하지.”

“그 말은…….”

“정신은 좀 이상한 여자다만… 뭐, 엘프리데라도 없는 것보단 낫지 않겠나.”

저 말인 즉슨. 본인은 돌아갈 생각이 없다는 뜻이다.

그는 죽음을 각오하고 있다.

‘하긴 뭐, 그럴 만도 한가.’

시체라곤 해도 무려 드래곤을 때려잡는 일이다. 죽을 각오 정돈 있어야 정상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이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은근슬쩍 그에게 물어봤다.

“근데 저 누님도 한 성깔, 한 가락 하잖아요. 적랑님 좋다고 여기까지 쫓아온 사람인데. 순순히 가란다고 가겠습니까?”

“내가 괜히 파티를 열었다고 생각하나?”

“… 예?”

“엘프리데는 최소 모레 오후까지 누가 업어가도 모를 거다. 물론 여기 잠든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고.”

적랑은 입가에 회심의 미소를 띄운 채, 술잔을 빙글빙글 흔들고 있었다.

나는 홀짝이던 술을 바닥에 퉤, 뱉어버렸다.

“… 허어. 이 양반 이거. 못 쓰겠네.”

들고 있던 술병도 호들갑스럽게 테이블에 팽개쳤다.

이런 용의주도한 양반을 봤나. 나는 질린 눈빛을 그에게 가만히 쏘아 보냈다.

“… 처음부터 이럴 생각이었수?”

“그래. 다른 일이면 몰라도 드래곤 레이드는 목숨이 10개라도 모자라다. 그래서 우선 관련없는 이들은 후방으로 이탈시키고, 일단 나 혼자만 참전할 예정이었지.”

“이야. 혹시 저도 후방에서 꿀 빨게 해주시려구요?”

“미쳤나? 자네 잔에는 약이 안 묻어있네. 어딜 빠지려고 그러나.”

“쓰읍.”

적랑은 대놓고 이죽거리며 내게 말했다.

그렇단다. 내가 졸린 건 그냥, 오늘 하루 종일 술을 너무 마셔서 그런 게 맞았군.

나는 헛웃음을 실실 흘렸다. 이내 눈을 가늘게 뜨고 적랑을 쳐다보며 말했다.

“그럼 엘프리데 반송하시는 김에, 세스나랑 설백이랑 유리아도 좀 같이 부탁드립니다.”

“… 또 나한테 떠넘기는 겐가, 이제 치정극은 지긋지긋하네.”

“딸내미 친구 붙여준다고 생각하십쇼. 저만 좋자는 게 아니잖수.”

“크흠. 자네도 못 쓰겠구먼.”

“서로 남말은 하지 맙시다.”

내가 헛웃음을 흘리고 있자니. 문득 적랑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원래는 자네가 사위로 들어와 주면 가장 좋았지만… 이제와선 소용없는 얘기지.”

“어떻게, 돌아가서 카르할라스랑 결혼할까요? 저는 좋은데.”

“소름 돋는 소리 하지 말게. 자네 말대로 해줄 테니, 정실(正室)이나 잘 챙기도록.”

정실?

나는 무슨 말을 하나 싶어 적랑을 쳐다봤다. 이내 그의 시선이 루시에게 있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군. 넌 개소리하지 말고 마녀의 계승식이나 신경 써라 이건가. 이해했다.

“그러죠 뭐. 정실이라. 하하. 하하하…….”

나는 웃다 말고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고. 이내 그 자리에 픽 거꾸러졌다.

그 뒤로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땅바닥이 빙글빙글 도는 와중에, 뒤통수 너머로 적랑의 목소리가 들렸던 것 같다.

“많이 늦어버렸지만. 이제는 만나러 가겠다… 엘리스.”

그리고 정신이 완전히 날아갔다.

* * *

다음날 아침이 됐다.

눈앞이 빙글빙글 돈다.

앞이고 옆이고 위아래도 시커먼 암흑이다. 그런데도 빙글빙글 돈다.

X벌, 토할 것 같다.

“그으… 어.”

나는 좀비 같은 목소리를 내며 평원 위에 서있었다. 숙취 특유의 저릿함이 관자놀이를 알싸하게 조여 왔다.

그렇다. 인간을 초월한 괴물 용사도, 숙취 앞에는 장사가 없었다.

“끄으… X발… 뒤지겠다…….”

주위에는 개성적인 복장의 용제국 국립용병단… 용사들의 군집이 가득했다.

들은 바로는 동원된 국립용병단의 수만 5천 명에 달한다고 하고. 거기다 코스크 기룡대도 50기나 동원됐다고 한다.

기룡대는 총원이 300기정도 밖에 안 되는, 용제국 최정상 정예 중의 정예병력. 용제가 얼마나 야심차게 토벌을 준비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확실히… 사람이 많긴 하네.’

내 옆에는 적랑이 멋들어진 기계팔을 점검하고 있었고. 대열의 선봉에는 크라네이드가 거대한 팔두마차를 올라탄 채 전장을 내려다보고 있다.

그리고 우리의 상공에는, 어느새 거대한 중갑옷을 두른 비룡과 그 기수들… 코스크 기룡대가 전열을 갖추고 있었다.

“생각보다 술이 약하군. 그런 정신력으로 드래곤과 싸울 수는 있겠나?”

옆에서 적랑이 어이없다는 듯이 웃었다.

나는 머리를 부여잡고 손사래를 쳤다. 그냥 아무 말도 말아달라는 뜻이었다.

“조용하십쇼. 이거 그냥 숙취가 아니라… 적랑님이 탄 약 때문인 거 같으니까.”

“자네한텐 약을 안 먹였다니까. 남탓은 좋지 않네. 정용 군.”

“쓰읍.”

솔직히 그 때까지 딱히 긴장감이 없던 나였다.

하지만 그런 나를 책망하듯 어김없이 패널이 떠올랐다.

[퀘스트 발생 (에픽)]

[명칭: 마녀를 죽여라 ? 세 번째 의식]

[난이도: 전설]

[상세: 마녀의 자궁, 미지의 마왕 샤키엘들이 모두 지척에 있다. 마녀의 미련한 갈망을 무너뜨려 그녀를 안식으로, 한 발자국 가까이 인도하자.]

[조건1: 샤키엘 / 몬스터 ‘시룡 이스그라드’ 빙의체 살해 ― 미충족]

[조건2: 샤키엘 / 인물 ‘바리’ 빙의체 살해 ? 미충족]

[보상: 멸망의 신기 ? 세계의 태동. 체력+2000. 마력+2000. 전 스탯 +250. 히어로 센스 +30]

세 번째 의식의 퀘스트 패널이 눈앞에 가득 펼쳐졌다.

심장이 두근, 격렬하게 요동쳤다.

‘사실이었구나.’

샤키엘… 바리 공주의 말은 모두 사실이었다.

시룡 이스그라드와 바리공주. 두 개체의 빙의체를 살해하는 것이 퀘스트의 성공 조건으로 똑똑히 표기되어 있었다.

‘내가 드래곤 때려잡아야 한다는 것도… 진짜였고.’

나는 새삼스러운 눈으로 언덕의 꼭대기를 쳐다봤다.

마른 침을 꿀꺽. 목구멍으로 밀어 넣었다. 그러자 시기좋게, 이 빌어먹을 이세계가 내가 사지로 향하는 것을 눈치 챈듯하다.

회귀점의 갱신이 일어난 것이다.

[불사의 회귀점이 갱신되었다.]

[일시 ? 대륙력 1108년, 12월 24일, 06시 34분]

[장소 ? 용제국 케나인. 고룡의 평원, 태고룡의 무덤]

나는 억지로라도 긴장을 몸에 채워 넣었다.

정신차리자. 샤키엘의 경고를 떠올려라.

나는 지금 생물 모양의 재해, 드래곤을 사냥하고 있는 거다.

“아 참.”

나는 비장한 와중에 퍼뜩 망자의 함을 꺼냈다. 메모를 대충 휘갈겨 갱신했다.

내용은 아무래도 좋았다. 어차피 이제 와서는 내 사망을 알려줄 용도로만 쓰니까.

‘혹시 모르니까. 유비무환이지.’

그리고 그 순간.

부우우웅―! 거대한 뿔피리 소리가 적막에 잠겨 있던 전장을 길게 울렸다. 크라네이드가 있는 지휘부 쪽에서 울린 소리다.

진군의 나팔. 순간 알싸한 긴장감이 군중들을 타고 흘렀다.

“전군 돌격해라!! 목표는 선조룡, 이스그라드의 살아있는 유해다!!”

시기 좋게 크라네이드의 기합과 같은 명령이 떨어졌다.

군중들은 공포를 잊으려는 듯이 고함을 질렀다.

“와아아아아!!!”

두두두두! 무수한 발소리가 지면을 진동시켰다.

용사들은 성난 쥐떼처럼 평원을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그에 따라 공중을 누비던 기룡대도 일제히 하늘을 날아 전진했다.

그리고 우리가 언덕의 기슭까지 다가간 그 순간.

―그그그그.

그런 소리가 울렸다.

지옥 밑바닥부터 올라오는 듯한 소름끼치는 땅울림. 심장이 절로 고동치는 엄청난 굉음이다.

―그우우우우…!

가파른 바위언덕 위에서, 또 하나의 언덕이 꿈틀거리는 광경이 얼핏 눈가를 스쳤다.

내가 잘못 봤나 싶어서 눈 크게 뜨고 그곳을 주시했다.

불행하게도 잘못 본 게 아니었다.

“… 저, 저게.”

나는 달리다 말고 망연자실한 나머지, 순간 발을 멈췄다.

가파른 언덕 꼭대기에서 꿈틀대는 또 다른 언덕. 아무리 봐도 지형지물로 밖에 보이지 않는 거대한 그것은, 자세히 보니 거대한 생물체였다.

아니. 정확히는… 거대한 드래곤의 살아있는 시체다.

―그오오오오오!!!!

순간 몸을 일으킨 시룡이 입을 쩍 벌렸다.

거대한 포효가 온 산천초목을 뒤흔들고, 용병단을 휩쓸었다.

“…….”

“…….”

“…….”

달려가던 용사부대는 일제히 진군을 멈춰버렸다.

누가 명령한 것도 아닌데, 놀랍도록 일체화된 움직임이었다. 발을 멈춘 채 아무도 입을 열지 못했다.

‘주, 죽는다.’

아마 방금 포효를 들은 순간. 다들 자신의 죽음이 뇌리를 스쳤을 것이다.

나도 그랬으니 잘 안다.

―키아아아아악!!

거대한 시체 드래곤… 이스그라드가 너덜거리는 아가리를 벌렸다. 그곳에서 넘실거리는 독기가 일순 우리에게 쏟아졌다.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파악하지 못했다. 그저 히어로 센스가 먼저 반응해, 진화의 흑익으로 온몸을 최대한 가렸을 뿐이다.

“브, 브, 브레스다!! X발 엄폐물 뒤로 숨어!!!”

뒤늦게 울린 하급 지휘관의 비명으로 나는 사태를 파악했다.

푸화아악! 시독(屍毒)의 녹색 폭풍이 삽시간에 언덕의 전역을 휩쓸었다. 거대한 녹색 해일이 눈앞으로 닥치는 느낌이었다.

‘이런 미친…!’

행여나 닿을세라, 나는 그 자리에 엎드려 온몸을 빈틈없이 흑익으로 감싸버렸다.

가려진 시야 밖으로 아비규환의 절규가 사방에서 들려왔다.

“끄아아악!”

“아아아아악!!”

“사, 살려… 살려줘!!”

그리고 시간이 조금 지나자 거짓말처럼 적막해졌다.

뭐지. 끝난 건가. 나는 무서운 속도로 녹아내리기 시작한 흑익을 거칠게 벗어던졌다.

주변의 풍경을 눈에 담은 순간. 아연실색한 나머지 제대로 된 말이 나오지 않았다.

“허… 하?”

단 한 방.

한 방의 브레스에 반절이 넘는 용병부대원이 죽어 있었다.

옷이고 살이고 죄다 녹아내려 뼈만 남은 시체가 가득했다. 브레스에 맞은 놈들 중, 숨통 붙어있는 놈이 없어져서 비명도 안 나왔던 것이다.

“…….”

적랑도 보이지 않았다.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모르겠다.

방금까지 모래와 바위밖에 없던 언덕이, 순식간에 백골 수천 구가 나뒹구는 초상집이 된 상황이다. 알 수 있을 턱이 없잖은가.

“이건… 진짜. 지옥이구나.”

나는 웃음도 안 나온 나머지 그렇게 중얼거렸고.

이내 입을 꾹 닫고 묵언수행을 했다.

그렇게 이야기는 처음으로 돌아온다.

나는 다크 레이븐의 기동성 덕분에 브레스를 세 번까진 피해냈다.

그리고 울며 겨자 먹는 심정으로 이스그라드에게 달려들었고. 놈의 휘두른 발톱 한 방에 나가떨어졌다.

“케흛헉!!”

투콰아앙! 충격이 전신을 두들겼다.

바닥을 처참하게 굴렀다. 부서진 다크레이븐의 갑옷 쪼가리가 눈앞에 흩날렸다.

“…….”

그대로 서서히 정신을 잃었다.

샤키엘의 말을 좀 더 경청했어야 했다. 드래곤은 걸어다니는 재앙이다.

재앙에 맞서서 살아남을… 좀 더 치밀한 작전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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