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5화 개노답4형제 최강 아웃풋 크라네이드씨
그렇게 우리는 순식간에 태고룡의 무덤에 도착할 수 있었다.
황량한 고원과 깎아지른 절벽이 가득한 황야. 그리고 평원 한 가운데 봉긋하게 솟은 거대한 언덕. 그야말로 멀리서 보면 거대한 무덤처럼 보이는 광경이었다.
“감사합니다. 여기 운임입니다.”
샤키엘은 아룡에서 내리자마자 링크에게 묵직한 주머니를 쥐어줬다. 그녀가 황궁에서 직접 챙겨온 보화들이었다.
링크는 떨떠름하게 그것을 받으면서도, 이해가 안 되는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기, 황녀님. 제가 태워드리고 할 말은 아니겠지만… 여기는 지금 엄청나게 위험합니다. 태고룡을 토벌하겠다는 과격파의 군대가 바로 앞에서 진을 치고 있다구요.”
“네. 그렇겠지요.”
“… 예? 서, 설마 알고서 오신 겁니까? 곧 끔찍한 싸움이 벌어질 겁니다!”
“…….”
샤키엘은 딱히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희미한 미소만 띄운 채, 고개를 깊이 숙였다.
링크는 그녀의 태도에서 대화할 여지가 없다는 걸 읽은 듯했다. 그는 입맛을 다시며 쓴웃음을 흘렸다.
“후우. 이럴 줄 알았으면 평소에, 사람들 얼굴을 좀 더 자세히 익혀놓을 걸 그랬습니다. 이런 엄청난 일에 말려들다니…….”
“후후. 그 점은 정말 죄송해요.”
“모쪼록, 옥체를 보존하십쇼 황녀님. 대역 죄인으로 잡혀가긴 싫으니까요.”
“네. 감사합니다.”
이내 링크는 등을 돌려 다른 용치기들을 데리고 천천히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러나 마지막까지 한 명, 프리시스는 아룡에 타지 않고 머뭇거렸다.
“… 으.”
프리시스는 낮은 신음을 흘리며 이쪽을 흘깃거렸다. 이내 그녀가 퍼뜩 내게 다가오더니 나를 빤히 올려다봤다.
나는 눈을 끔벅이며 그 시선을 마주봤고. 이내 툭 물었다.
“뭐. 왜. 할 말 있냐?”
“… 으.”
프리시스는 입을 우물거리다 결국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내 손을 별안간 덥석 쥐었다.
그녀는 차갑게 굳은 얼굴로 말했다.
“박. 죽지 마.”
“뭐시기?”
“악몽. 다시 꿀 거야… 죽으면. 싫어.”
뜬금없이 뭔 소린가 싶어서 허탈하게 웃었다.
하지만 본인은 꽤 진지한지 맞잡은 손에 힘이 잔뜩 들어있었다. 그녀의 무표정한 눈썹도 어째 조금 찡그려진 느낌이었다.
“왠지… 그런 느낌. 불안해. 싫어. 죽을 거 같아.”
“나 안 죽어. 불사신이야.”
“거짓말. 그거. 분명히 거짓말이야.”
그래. 거짓말 맞다. 어떻게 알았대.
정확히는 죽었다가 살아나지. 좀비새끼 마냥. 새끼가 말투가 이상해서 그렇지, 눈치는 좀 있구나.
“꼭… 돌아와. 나, 악몽… 꾸지 않게.”
프리시스가 기어드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고개를 푹 수그리고 있어서 표정이 어떤지는 잘 모르겠다.
나는 그냥 루시나 유리아를 다루듯이, 머리나 슥슥 쓰다듬었다.
“노력해본다.”
물론 나는 좀비드래곤 토벌에 성공하든 실패하든. 여기로 다시 돌아올 일이 없다.
그래서 피안의 악몽에서도 했던 소리를 그대로 우려먹었다.
영양가 조또 없는 개소리 시즌 2호다.
* * *
우리는 샤키엘의 인도로 고원을 조금 걸어서 이동했다.
이윽고 도착한 곳은 고원과 바위언덕의 중간 지점. 군용 임시 막사와 병영이 줄을 지어 설치된 병영의 한 가운데다.
병영 곳곳에는 용제국을 상징하는 드래곤의 깃발이 걸려 있다. 무려 용제국의 전초진지였다.
“빨리 빨리 날라라!”
“기룡대 제1분대, 군량 및 에테르 증폭기, 용갑 정비까지 완료했습니다!”
“용병대 천인장!! 분대별 보고는 멀었나!!”
사방은 전투 준비로 바쁘게 고함이 오가고 있었다.
넓은 병영에 온통 분주한 기색이 가득했다. 전시가 아니면 느껴지지 않을 특유의 긴장감과, 무거운 공기가 어깨를 짓누르는 듯했다.
나는 얼떨떨하게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샤키엘에게 퍼뜩 물었다.
“아니. 이게 뭔 소란입니까. 웬 병력들이에요?”
“아. 그게… 제가 사찰을 나간 사이, 아바마마께서 터무니없는 일을 벌이셨더군요.”
나는 샤키엘과 함께 천막 사이를 걸어다니며, 자초지종을 들었다.
그녀는 가라앉은 목소리로 천천히 전말을 설명했다.
“아바마마가 온건파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기어이 이스그라드 토벌을 강행했습니다. 아마 온건파의 구심점이었던 제가 없는 틈을 노린 거겠죠.”
“… 아하. 그렇군요.”
나는 아까 봤던 용제놈의 능글능글한 웃음을 떠올렸다.
역시. 이걸로 바리공주의 습격에 용제가 개입했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그 도마뱀 새끼, 용가리처럼 생겨서 하는 짓은 능구렁이가 따로 없군. 쯧.
“방심했어요. 설마 아바마마가, 자기 입지를 대폭 깎아가면서까지 이리 급하게 움직이리라곤 생각을 못 했습니다.”
샤키엘도 상황이 상황이라 그런지, 평소처럼 여유로운 행색이 아니었다. 손톱을 잘근잘근 씹으며 막사의 여기저기를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그녀의 고운 입에서는 연신 자학 어린 말들이 쏟아졌다.
“불찰이네요. 시룡으로 전락한 이스그라드에 대한 불안감을 과소평가 했어요. 제가 너무 어리석었습니다.”
“흐음.”
나는 낮은 침음을 흘렸다. 그리고 그녀의 행색을 가만히 쳐다보다가 툭 물었다.
“뭐 찾는 거라도 있으십니까? 똥 마려운 개처럼 안절부절 못 하시네.”
“아. 그, 그것이… 코스크 기룡대 지휘관 막사를 찾고 있었습니다.”
익숙한 이름이 튀어나왔다.
나는 마르크트레스에서 크라네이드와 함께 다니던 두 여자를 떠올렸다.
‘기수와 기룡, 한 쪽만 살아남는 경우가 절대 없는 부대.’
전장이 10미터를 상회하는 대형 비룡종으로 변신할 수 있는 남성형 용인.
그들을 탈 기수이자, 온갖 전투기술을 섭렵한 인간병기로 길러지는 여성형 용인.
두 사람을 용제국 전통의 ‘용각마법’을 통해 혼인시키면, 임전무퇴의 기룡대원 한 기가 완성된다.
‘적이나 내가 뒤질 때까지 물어뜯는… 하늘의 미친개들이랬지.’
이건 내가 아니라 적랑의 평가다.
반려와 함께 전장을 누비는 기룡과 기수는, 한쪽이 먼저 전사할 경우 나머지 한쪽도 목숨이 끊어질 때까지 싸운다고 했다.
코스크 기룡대원이 반려 없이 돌아오는 것은 최악의 불명예다. 전투에서 퇴각하는 건 용서받아도, 반려와 함께 죽지 못한 건 용서받지 못한다고 한다.
‘잠깐. 용인 하니까 생각났는데…….’
용기사들을 생각하다 보니, 문득 용머리의 거북이 아저씨가 하나 떠올랐다.
나는 슬쩍 옆을 쳐다봤다. 샤키엘이 바쁘게 발을 놀려 앞장서 걸어가고 있었다.
“저기요. 샤키엘.”
“아 네. 왜 그러시나요 까마귀님?”
샤키엘은 내가 부르자 언제 초조했냐는 양 방글방글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마치 내가 불러주기만 기다렸다는 듯 즉각적인 반응이다.
거 진짜 존나게 부담스럽군. 나는 슬쩍 그녀와 떨어져 걸으며 말했다.
“그, 확인 차 묻는데. 일단 이 나라 황족이시죠?”
“네. 아바마마… 용제 디스칼트의 일곱 번째 딸인 바리공주라고 말씀드렸죠?”
샤키엘은 멋쩍은 듯이 배시시 웃으며 첨언했다. 나를 쳐다보는 시선에 요염한 장난기가 가득했다.
아니, 그런 정보는 아무래도 좋고. 나는 그녀에게 불쑥 용건을 들이밀었다.
“그… 혹시 크라네이드라고 아십니까. 작년에는 무려 국빈회의도 참가했을 텐데.”
“크라… 네이드?”
샤키엘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녀는 걸음을 멈추고 가만히 나를 쳐다봤다.
저건 놀라서 저러는 건가, 아니면 몰라서 저러는 건가. 알 수 없는 샤키엘의 반응에 미간을 찌푸렸다.
그리고 샤키엘은 곧 얼떨떨한 목소리로 말했다.
“까마귀님. 용제국 방문은 이번이 처음이시죠?”
“네. 왜요?”
“그런데 까마귀님이 어떻게… 3개월 전에 취임한 용제국 오성장군의 이름을 알고 계세요?”
…
…
… X발 뭐가 어째?
“무슨 장군이라고요?”
“크라네이드 장군은 용제국 최강의 다섯 장군, 오성장군 중 한 명의 이름입니다.”
나는 내가 잘못들은 건가 싶어 샤키엘을 빤히 응시했다.
그러자 샤키엘은 찌그러진 내 얼굴을 보더니 퍼뜩 부가설명을 시작했다.
“한낱 용병부대에서 혈혈단신으로 불사교의 음모를 저지한 용머리의 거한. 그 사건으로 아바마마의 눈에 든 것이 시작이었습니다. 그 뒤로도 마왕 토벌에 혁혁한 공을 세우길 거듭해, 무려 1년 반 만에 오성장군의 자리를 꿰어 찬 무시무시한 괴력의 사나이지요.”
“… 허어.”
“그리고 지금, 이 이스그라드 토벌전의 용병부대 총지휘관이기도 합니다.”
“… 허어?”
나는 깨달았다.
크라네이드는 어느새 개노답 4형제 최고 아웃풋이 되어 있었다.
* * *
샤키엘은 그 뒤로도 크라네이드에 관한 자잘한 정보들을 많이 줬다.
“용제국 내에서 그의 기적 같은 성공신화를 모르는 이가 없습니다. 크라네이드 장군을 모르면 간첩이라는 소리가 돌 정도였지요. 특히 용병부대 출신이다 보니 하층민 용사들의 지지세력이 엄청나답니다.”
“… 허어.”
“우직하고 동료를 아끼는 성정에, 어떤 일이든 항상 선봉으로 나서서 행하여 인망이 두텁죠. 황실의 대신들 사이에선 다소 우둔하고 행동이 너무 느려서, 장군감은 아니라는 소리도 있긴 합니다만… 민심이 워낙 좋아서 건드리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들으면 들을수록 내가 아는 크라네이드가 맞나 싶었다.
그러다 ‘우둔하고 행동이 너무 느리다’ 소리가 들리니, 그 크라네이드가 맞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나는 하도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을 쉬지 않고 흘려댔다.
“… 그 크라네이드가, 지금 이 나라에 5명뿐인 대장군 중에 하나라고요?”
“네. 저도 설마 까마귀님이 그런 귀인과 오랜 벗일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역시 영웅은 영웅을 알아보는 법이라는 걸까요? 후후후.”
영웅은 얼어 뒤질. 제 일처럼 기뻐하는 샤키엘을 보고 고개를 슬슬 저었다.
뭐 그래. 친구가 개천에서 용 됐다는데 축하할 일이다. 좀 실감이 안 돼서 그렇지, 나도 순수하게 기쁘긴 하다.
만나면 그쪽이 밥이라도 한 번 거하게 쏠 거 아니냐.
‘그래. 그런 의미에서 얼굴이나 좀 보고 싶은데.’
물론 내 일에 휘말리게 하고 싶진 않다.
그러니 만나도, 내가 용제국에 온 목적 같은 건 일절 함구할 거다.
다만 크로스페이드에서 목숨 걸고 도와준 그에게 감사인사도 없이 헤어졌었다. 헥터에게 복수하느라 눈이 뒤집혔던 게 지금까지도 못내 아쉬웠다.
‘… 아마도 이게, 얼굴 볼 마지막 기회일 거다.’
주머니에 찔러 넣은 손을 무심결에 불끈 쥐었다.
샤키엘을 죽이고 마지막 의식을 완성하면. 나는 루시를 마녀의 자리에 계승시키러 가야 한다.
대륙의 정중앙. 멸망의 성흔이라 불리는 옛날에 멸망한 신성국의 땅. 그곳에서 지금도 디아나가 숨을 죽이고, 완성된 하얀 그릇과 까마귀를 기다리고 있다.
‘그러니 마지막으로, 한 번만.’
나는 루시를 지킬 것이다.
비록 배배 꼬인 악연에서 시작된 관계라곤 하나. 지금 이 다짐은 진심이다.
나는 한다면 무조건 하는 사람이다. 지금까지 그렇게 살았다. 그러니 어떤 희생도 마다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갈 땐 가더라도. 친구랑 술 한 잔 정돈 괜찮잖아.
“… 까마귀님. 자리를 주선해보도록 할까요?”
그리고 내 고민을 귀신 같이 캐치한 샤키엘이 먼저 그렇게 물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