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3417413번째 소울라이크 용사-240화 (216/280)

240화

케나인 전역을 유랑하는 용치기 부족.

용제국 황실에 소속되어 아룡(亞龍)을 기르는 것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 씨족 단위로 유랑생활을 하며, 아룡 사육의 노하우와 센스가 집약된... 말하자면 인간문화재들이다.

기본적으로 어린 아룡을 황실에서 받아와 성체까지 기르고, 그것을 황실에 납품하는 것으로 보수를 챙기는 무리들인데.

부업으로 아룡을 택시처럼 사용해 벌어들이는 돈도 쏠쏠하다고 한다.

“케나인으로요?”

방풍용 터번과 로브를 두른 젊은 청년이 되물었다.

집채만한 붉은 아룡에게 생고기를 먹이던 은발 청안의 남자인데. 이 사람이 문제의 드래곤 택시를 운전하는 용치기. ‘붉은발톱 부족’의 리더였다.

“그러니까... 수도까지 간다는 말씀이시죠?”

용제국은 국가명도 케나인이고 수도 이름도 케나인이다. 그래서 보통 국가를 칭할 땐 ‘용제국’이라 하고 수도를 칭할 때 ‘케나인’이라고 한다.

이건 나도 이 용치기 리더 덕분에 처음 알았다.

“네. 맞습니다. 아룡을 좀 얻어 탈 수 있을까요?”

옆에서 샤키엘이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부탁했다.

용치기 청년은 그녀의 부드러운 미소와 눈빛에 잠깐 넋을 잃었다. 표정이 살살 녹더니, 이내 샤키엘의 얼굴도 제대로 못 마주쳤다.

그는 터질 듯이 얼굴을 붉히고, 용제국 특유의 어눌한 공용어로 꿍얼거리기 시작했다.

“아아. 그, 그게... 바, 방향이 같으면 저희가 가끔 공짜로도 태워드리는데. 안 그래도 수도 방향에서 내려오는 길이라, 완전히 반대 방향이네요.”

“돈은 얼마든지 드릴게요. 어떻게 안 될까요?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아아. 이거... 고, 곤란하네요... 하하핫.”

용치기 청년도 말은 그렇게 했지만, 헤벌쭉한 입꼬리를 보니 이미 9할은 넘어왔다.

내가 누구보다 잘 안다. 나도 이쁜 여자랑 대화할 때 자주 저러니까. 저 새끼 지금 이미 머릿속에서 샤키엘과 자녀계획 마치고 노후설계 들어갔을 거다.

“아, 으하하하! 아아, 이거 참 곤란하구로....”

와 X발. 제3자 입장에서 보니 안타깝고 한심하기 그지없군.

지난날의 나와, 어장에서 허우적대는 용치기 청년을 향해 낮은 탄식을 흘렸다.

“.......”

참고로 샤키엘이 미인계를 십분 이용해 이빨 터는 동안, 나는 아가리를 곱게 다물고 있었다. 많은 지역을 돌아다니는 용치기 특성 상 나를 알아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저 청년이 한창 행복한 노후설계하고 있는데, 옆에서 남자새끼가 말 걸면 역효과만 난다.

같은 호구 동지로서 그의 망상을 존중해주고 있는 것이다.

“으음. 어, 어쩔 수 없군요! 대신 저희도 땅 파서 장사하는 게 아니니까... 운임은 좀 비싸게 받을 겁니다?”

결국 예상대로 은발의 용치기 청년은 우리 요구를 수락했다.

그는 자기 부족들을 모아놓고 사정을 간단하게 설명했다. 부족들은 하나 같이 은발에 청안을 하고 있었는데, 남녀노소가 개성적으로 모인 것이 씨족 분위기가 물씬 감돌았다.

“아아. 또 여자네 저거.”

“홀렸구만.”

“링크 오빠가 항상 그렇지 뭐.”

비스무리하게 생긴 용치기 일족들이 한 마디씩 얹었다.

링크라는 이름의 용치기 리더는 극구부인 했지만, 그럴수록 본인만 추해질 뿐이었다.

―이름이 링크인가. 근데 왜 초록색 옷 안 입고 있지.

그리고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수호 형님이 한 마디 얹었다.

갑자기 침묵을 깨고 근본도 없는 개드립을 치길래 좀 벙쪘다만. 나는 이내 정신을 차리고 근본 있는 개드립으로 응수했다.

“... 초록 옷 입은 게 젤다 아닙니까?”

―... 오. 맞네. 응... 맞아.

그러자 수호 형님은 제 혼자 납득하더니.

이내 스르륵, 다시 침묵에 잠겼다.

“...?”

요즘의 수호 형님은 진짜 좀 이상하다.

무려 샤키엘이 등장하는 빅 이벤트 때도 아무 말이 없던 그였다.

내가 그 때라고 수호 형님을 불러보지 않았겠는가. 그 때도 대답조차 못 받았다.

‘뭔가... 문제라도 생겼나?’

지금까진 평소에 말이 없더라도, 내가 부르면 수호 형님은 재깍재깍 대답을 해줬다.

하지만 용제국에 들어오고 나서는 심각하다 싶을 정도로 말수가 없다. 일부러 무시하는 건지, 모종의 이유로 혼수상태에 빠지는 건지. 그것조차 알 길이 없다.

‘오랜만에 등장해서... 고작 한다는 게 개드립 치고 빠른 퇴장이라니.’

1년 넘게 지지고 볶았지만 여전히 알 수 없는 양반이다. 혀를 내둘렀다.

“자. 그럼 이 중에서 타고 싶은 아룡을 골라보시죠.”

수호 형님과 짧은 대화를 마친 직후. 우리는 붉은 아룡들이 모여 있는 방목장으로 안내됐다.

스무 마리 가량의 아룡들이 거대한 생고기를 씹어 삼키거나, 낮잠을 자는 등. 들판 위에서 자유롭게 놀고 있다.

몇 명의 용치기들이 붙어서 아룡들과 교감을 하고 있다. 꽤 훈훈한 광경이었다.

“아무리 빠르다지만 수도까진 사흘은 걸릴 테니, 마음이 자알 맞는 놈으로 골라보십쇼. 하하.”

용치기 리더 링크는 그렇게 말했다.

듣자하니 아룡은 나름 지능이 높아서, 너무 상성이 안 맞는 사람이 타면 비행 도중 탑승자를 떨궈버리기도 한단다.

“히익, 떠, 떨궈?!”

“으, 아아!”

그 때까지 시큰둥하던 루시와 유리아는 그 말에 퍼뜩 숨을 삼키더니, 눈에 힘 빡주고 아룡들을 면밀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흐음.’

나도 두 사람의 뒤를 따라 아룡들을 살펴봤다.

우리가 제들을 빤히 주시하자, 아룡들도 금세 우리에게 관심을 갖고 흘깃거렸다. 어떤 놈은 경계 어린 태도를 취했고. 어떤 놈은 관심 지대한 태도를 취했다.

반응이 천차만별이다. 지능이 높다는 말이 실감됐다.

“크루우우.”

“그로로로.”

“구우우우.”

아룡들은 죄다 비스무리하게 생긴 것치곤 울음소리가 다양했다.

일단 거기서 고개를 갸웃했다. 이건 좀 실망스럽기도 하고 신선하기도 하다.

‘크롸롸롸가 국룰인데. 그걸 안 하네.’

시큼털털한 기분으로 가만히 둘러봤다. 개성적으로 울어대는 아룡들 중, 한 놈 앞에서 문득 우뚝 멈춰섰다.

전체적으로 얄쌍하고 성질 더럽게 생긴 아룡이었다. 나는 그놈을 가만히 쳐다봤다.

“구로오오.”

그 아룡도 나를 빤히 쳐다보다가, 이내 주둥이를 쩍 벌려 내 쪽으로 들이밀었다.

옆에서 지켜보던 루시와 유리아는 기겁했지만. 나는 적의를 느끼지 않았기에 그냥 가만히 있었다.

“구로오.”

이내 아룡이 내 가슴팍을 콧등으로 팍팍 치기 시작했다. 워낙 아룡의 덩치가 크다 보니 나조차도 조금씩 밀릴 정도였다.

“와아.”

“대단한데!”

그걸 지켜보던 용치기 일족들이 하나 같이 탄성을 질렀다.

링크도 퍼뜩 다가오며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야. 놀랍네요! 카르마는 진룡(眞龍)의 피가 조금 섞인 놈이라 자존심이 엄청난데! 초면부터 복종의 예를 취하다니.”

“... 뭐, 대단한 겁니까?”

“그럼요! 카르마는 자기가 인정한 강자가 아니면 탑승조차 거부하는 놈입니다. 선생님, 한 가락 하시나 봐요?”

링크가 새삼 사람 다시봤다는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나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한 가락은 합니다.”

“하핫. 엄청난 자신감! 역시 카르마가 인정한 사람이군요. 그 놈으로 고르시겠습니까?”

“예. 이걸로 하죠.”

“넵. 알겠습니다. 카르마가 자기 용기수 외에 누굴 태우는 모습은 오랜만에 보겠네요! 지금 용기수를 불러오겠습니다.”

이 아룡의 이름은 카르마라 하는 듯하다.

어감상 나쁜 이름 아니다. 하지만 좀 정감이 안 간다.

나는 눈을 감고 머리를 부딪쳐오는 카르마의 콧등을 슬슬 쓸었다. 그리고 말했다.

“넌 지금부터 3일 동안은 ‘구디’다. 알겠냐?”

“구로오오.”

울음소리가 ‘구로’라서 구로 디지털단지 줄인 거라고는 어디 가서 못 말하겠다.

말해도 어차피 못 알아먹을 테지. 못 알아듣는 게 신상에 이로운 개그지만.

‘자 그럼. 나는 일단 끝났고....’

나는 아룡 선택을 가장 먼저 마치고 다른 일행들을 하나씩 쳐다봤다.

우선 제일 눈에 띄는 건, 혼자 지랄발광하고 있는 루시였다.

“이, 이 못생긴 도마뱀아! 나를 무시하지 말란 말이다! 감히 어느 안전이라고...!”

루시는 통제를 따르지 않는 아룡들에게 연신 박대를 당하고 있었다.

아룡들이 친근감의 표시로 툭툭 치는 게 아니라, 문전박대의 의미로 머리를 꽉꽉 들이밀었다. 그것이 반복되자 루시는 아룡과 싸울 기세로 로우킥을 날려대는 중이다.

옆에서 말리는 용치기들이 아니었다면 이미 잡아먹혔을지도 모르겠다.

“후후. 그렇지. 착하네요. 자, 손.”

“키르르륵!”

반면 샤키엘은 어느새 아룡 하나를 사로잡아 완전히 가지고 놀고 있었다.

싱글거리는 샤키엘 앞에, 배를 까고 바닥을 뒹굴거리는 아룡. 이미 드래곤의 품위는 어디로 갔나 사라지고, 한 마리 충견으로 조교가 완료된 모습이다.

“... 아. 우아아...!”

그리고 마지막 한 명. 유리아는 고전할 것을 예상했지만, 의외로 아룡들이 잘 따랐다.

아니. 잘 따르는 정도가 아니다. 수 마리의 아룡들에게 둘러싸여 무수한 악수의 요청을 받고 있었다.

“구르르르!”

“키오오오!”

“케에에엑!”

사방팔방에서 몰려든 수많은 아룡. 그들이 죄다 친근감의 의미로 연신 콧등을 그녀에게 비비는 중이다.

문제가 있다면 정작 본인이 공포에 질려서 울기 직전이라는 것이다.

우연히 유리아와 시선이 마주쳤다. 도움을 간절히 바라는 눈빛이 쏟아졌다.

“으, 아으...!”

나는 한숨을 내쉬며 흉인 살포를 사용했다.

“키익... 킥....”

“그우우!”

유리아를 둘러쌌던 아룡들이 흠칫 내 쪽을 쳐다보더니, 이내 날카로운 살기를 감지하고 슬금슬금 뒤로 빠졌다.

유리아는 아룡의 포위에서 벗어나자마자 쪽지를 휘갈겨 내밀었다.

[진짜로 진짜로 죽는 줄 알았어요! 역시 용사님이 최고예요!!]

나는 피식 웃으며 유리아의 머리를 쓸어줬다.

다리가 후들거리는 그녀를 부축해주며 일행이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아직도 아룡과 자강두천을 벌이고 있던 루시의 뒷목을 덥석 붙잡았다.

“너도 지랄 그만하고 일로 와.”

“악! 놔라! 지금 막 저 도마뱀 자식이 이몸의 위엄에 무릎 꿇기 직전이었단 말이다!”

“응 아니야.”

개소리 하는 루시를 무시하고 샤키엘 앞으로 다가갔다. 샤키엘은 다가오는 나를 귀신 같이 눈치 채고 시선을 마주했다.

나는 루시를 그녀에게 내밀며 말했다.

“아무래도 우리가 한 명씩 맡고 타야 될 거 같은데요. 둘 다 혼자 태울 상태가 아니네요.”

“어머. 저는 굳이 같이 탄다면, 까마귀님과 같이 타고 싶은데요.”

우리 대화를 가만히 듣던 루시가 “짐짝 취급하지 마라! 나도 네년이랑 타기 싫어!”라며 개발악을 했다.

물론 샤키엘도 나도 귀담아 듣지 않았다. 나는 루시를 짬 때리듯 샤키엘에게 떠넘겨 버렸다.

“거 헛소리 말고. 이참에 자매간 친목이나 다지십쇼. 제가 유리아 데리고 탈라니까.”

“으음. 그쪽 하얀 눈 아가씨가 너무 부럽네요. 좁은 아룡의 등 위에서, 밀착한 남녀라니. 거기서 얼마나 많은 친밀함이 태어날지 상상만 해도....”

그 말에 유리아가 고개를 푹 수그렸다. 얼굴을 붉히며 어쩔 줄을 몰라하고 있었다.

나는 샤키엘의 개소리를 단박에 차단했다.

“에헤이. 어린 친구한테 못 하는 말이 없어 X바. 그만 놀립시다.”

“흐응. 저는 언제나 진심인데....”

나는 샤키엘의 은근한 눈빛을 무시했다. 그리고 아룡 구디 앞으로 돌아왔다.

거기엔 잠깐 어딘가로 사라졌었던 링크가 돌아와 있었다. 옆에는 처음 보는 은발의 여자를 대동한 채였다.

“아, 선생님! 이쪽이 카르마의 용기수인 프리시스입니다. 인사들 나누시죠.”

나는 링크가 소개한 여인을 가만히 훑어봤다.

대충 20대 언저리의 무표정한 얼굴에, 다른 용치기들과 마찬가지로 은발청안이다.

다만 이쪽은 다른 용치기들과 달리 관자놀이에 얇은 뿔이 돋았다. 그리고 엉덩이 위로는 어김없이 얇은 꼬리가 달려 있었다.

‘... 용인족?’

아니. 아니군.

나는 샤키엘과 눈앞의 용기수를 비교해보다가, 외형이 좀 다르다는 걸 깨달았다.

일단 용인족의 상징인 귀 뒤편의 지느러미 같은 촉각이 없다. 게다가 눈앞의 용기수... 프리시스는 뿔과 꼬리가 극단적으로 얇았다.

얼음처럼 무뚝뚝한 표정의 프리시스에게 툭 내뱉었다.

“반룡인... 인가?”

직접 보는 건 처음이지만, 용제국 주변을 알짱거리며 알음알음 들은 바에 따르면. 반룡인의 외모가 딱 저랬다.

반룡인은 용인과 인간의 혼혈. 용제국 내에선 귀족가 사생아와 비슷한 이미지다. 실제 취급은 용병 이하의 천민 취급을 받는다고 들었다.

“응. 나 반룡인.”

대화를 걸 생각은 딱히 없었는데,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내 말에 대꾸했다.

프리시스가 다짜고짜 말했다.

“나, 프리시스. 넌?”

“나? 나는... 박정용.”

그녀가 이름을 물어왔다. 못 알려줄 이유도 없으니 그냥 그대로 통성명을 했다.

프리시스는 이렇다 할 표정 변화 없이 내게 척,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 음. 발음 어려워. 그냥 ‘박’으로.”

“음? 뭐, 그래라.”

“잘 부탁해. 카르마가 인정한 남자.”

“어. 나도.”

프리시스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내 손을 놨다. 그리고 성큼성큼 걸어가 구디의 상태를 능숙하게 점검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녀의 뒷모습을 가만히 쳐다보다가, 중얼거렸다.

‘... 말투가 어째 관심병사 냄새 나는데.’

합리적 의심을 보내며 프리시스의 등을 가만히 쳐다봤다.

내 직감을 확인할 시간은 아쉽게도 주어지지 않았다.

“이제 출발하겠습니다! 손님들, 각자 선택한 아룡 앞으로 모여주십쇼!”

링크의 외침이 넓은 평원을 울렸고. 곧바로 아룡을 타고 하늘을 날 시간이 다가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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