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9화
목 잘린 청동 마스코트가 멀리서 보이기 시작했다. 병자마을의 상징 같은 놈이다.
유원지에서 당한 게 많아서 그런가. 저건 낮에 봐도 여전히 기분이 나빴다. 몸서리를 치며 걸음을 재촉하던 그 순간이었다.
“축하해요. 생각보다 빠르게 끝이 다가오네요. 좀 놀랐어요.”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혹적인 여자의 목소리. 이젠 보지 않아도 단번에 똥털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나는 내 뒤에 멀찍이 서 있는 미네르바를 가만히 쳐다봤다.
“죽지도 않고 또 나왔냐. 똥털.”
“그러는 그쪽도 죽지도 않고, 벌써 두 번째 의식까지 끝났네요. 아아, 아니지. 엄청 많이 죽었던가? 푸훗.”
“이런 쐉년이. 멕이냐?”
“네. 멕이는데요.”
똥털은 밉살맞게 대꾸했다.
새끼가 그 새에 말대답 실력이 많이 늘었군.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더니. 나한테서 안 좋은 것만 배워가지고. 쯧.
“.......”
나는 입을 닫고 잠깐 동안 미네르바를 쳐다봤다.
그녀 주위로 흩날리던 푸른 먼지가 거짓말처럼 허공에 멈춰 있었다. 전처럼 이 주변의 시간이 얼어붙어 버린 것이다.
허공에서 별처럼 반짝이는 푸른 먼지들과, 거기에 둘러싸인 어두운 금발의 미녀라. 미네르바의 면상 자체가 워낙 내 취향이라, 순간 넋이 나가는 광경이었다.
“야 X발. 시간정지 같은 거 가능하면 새꺄. 용사고 나발이고 소환은 왜 했냐. 그냥 너희가 다 때려잡고 정의사회 이룩해. 나 그만 은퇴 할라니까.”
나는 그 황당한 조화에 질린 나머지 비아냥거렸다.
하지만 미네르바는 어깨를 으쓱이더니, 오히려 그녀 쪽에서 비아냥거리기 시작했다.
“아아. 얼마나 생각이 없으면 저런 말을 할까. 파라이소 대륙에 잠깐 현현하려면 얼마나 힘이 들고, 얼마나 많은 제약이 따르는데요. 이래봬도 저 엄청 무리하고 있는 거예요.”
“알 바냐. 누가 나와 달라 그랬나. 지가 면상 들이대 놓고 존나 생색내네 X벌.”
뿌득. 미네르바의 곱상한 얼굴에 혈관이 불거졌다.
그녀는 당장이라도 깨질 것 같은 얼굴로 빙긋 웃었다. 그리고 이를 악물며 말했다.
“하, 나 진짜. 모처럼 당신이 마음을 확실히 다잡은 거 같아서, 다음 의식에 대한 정보를 좀 주려고 왔는데. 다 때려 치고 싶네 진짜....”
“뭐라고...?”
다음 의식의 정보라니. 그건 설마 마지막 마왕인 샤키엘을 말하는 건가?
듣던 중 반가운 소리다. 안 그래도 샤키엘에 대한 것은 풍문으로조차 들은 게 전무하니까. 조그마한 단서라도 큰 진전이 될 거다.
나는 퍼뜩 그녀에게 고개를 조아렸다.
“먼 길 행차하느라 고생하셨습니다 똥털... 아니, 똥털님. 어떻게 발이라도 주물러 드리면서 천천히 대화하실까요?”
“‘미네르바님’이겠죠? 똥털님이 아니라.”
“옙. 그 부분은 조만간 시정하겠습니다 똥털님.”
“...... 하. 진짜.”
미네르바는 손바닥처럼 뒤집히는 내 태도에 기가 찬 듯했다.
연신 헛숨을 흘리더니, 이내 가늘게 뜬 눈으로 나를 째려봤다.
“그렇게 순식간에 발발 기고 말이야. 당신은 배알도 없어요?”
“없어요 X발. 정보나 내놔요.”
“아오. 당신 진짜 짜증나는 거 알아요?”
“알지. 짜증나라고 이러는 거니까.”
뿌드득. 미네르바의 곱상한 얼굴에 혈관이 더욱 불거졌다.
“이...! 하아. 됐어요. 말을 말자.”
미네르바는 폭발하기 직전에 가까스로 화를 눌러 죽였다. 심호흡을 하더니, 한층 차가운 눈빛과 어조로 말하기 시작했다.
“당신. 샤키엘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죠?”
“이명은 미지의 마왕. 용제국 어딘가에 있다. 끝.”
그녀는 어느새 평소 같은 미미한 미소를 머금은 채, 내 주위를 천천히 거닐었다.
“왜 이명이 미지의 마왕일까요?”
“알려진 게 없으니까 그렇겠지.”
“왜 그렇게 이상할 정도로 알려진 게 없을까요? 알려진 게 없다면 4마왕이라는 악명은 어떻게 사람들에게 퍼진 걸까요. 두 사실이 모순되지 않나요?”“그걸 알면 쌔꺄. 너한테 굽실거렸겠냐?”
한동안 짤막한 문답이 쉴 새 없이 오갔다.
그리고 내 황당한 반문에, 미네르바는 슬쩍 입매를 비틀며 곧장 해답을 말했다.
“그건 샤키엘에 대한 정보가 필요 이상으로 너무 넘쳐났기 때문이에요.”
“... 너무 넘쳐나? 무슨 소리냐?”
“샤키엘이라는 마왕은 사실 하나가 아니거든요.”
“...?!”
저게 무슨 소리냐. 내가 제대로 들은 게 맞나?
나는 가만히 혼자 생각해보다가, 도저히 결론이 안 나와서 재차 물었다.
“하나가 아니라는 게... 정확히 무슨 소리냐.”
“말 그대로입니다. 샤키엘은 군체 생물이에요.”
“구, 군체 생물?”
군체 생물이라니. 내가 아는 그 군체 생물?
샤키엘이라는 마왕이 소위 개미나 벌의 둥지처럼... 개체가 집단의 일부로서 존재하는 그런 형태란 말인가?
‘샤키엘’은 삼합회, 야쿠자, 마피아 같은 폭력집단(?)의 이름이고. 동시에 거기 소속된 놈들이 죄다 또 하나의 ‘샤키엘’들이고?
“마녀 디아나가 최초에 창조했을 땐, 100명에 달하는 샤키엘이 용제국 각지에 퍼져 있었죠.”
“하이고 존나 많네 X발!”
미네르바의 입에서 경악스런 숫자가 튀어나왔다. 나는 당연히 경악했다.
“그 하나하나가 개별적으로 행동하면 어떻게 될까요. 샤키엘에 대한 정보가 여기저기서 산발하니까 제대로 남을 리가 없죠. 나타나는 것도 신출귀몰할 테고. 각자 외형도 다를 테니까.”
“홀리 X발 마더 퍼커...! 개조졌다!!”
나는 각종 혜자 리액션을 대방출하며, 전신으로 경악을 표출했다.
아니. 무슨 두더지 잡기도 아니고, 100명? 장난하냐? 그걸 언제 다 잡고 앉아있냐. 내가 지금까지 잡은 잡몹 마왕들 다 합쳐도 100명이 채 안 되겠구만.
내가 으깨진 멘탈을 부여잡고 끙끙거리고 있자니. 미네르바가 한심하다는 듯이 쏘아붙였다.
“걱정마세요. 대부분의 개체는 여러 가지 이유로 이미 죽었습니다. 지금까지 살아남은 개체는... 극히 운이 좋은 소수뿐일 거에요.”
그것은 듣던 중 다행이었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흘리며 곧장 그녀를 추궁했다.
“며, 몇 마리나 남았는데? 그리고 어디에 있는데!”
“글쎄요. 거기까지 디테일하게 알려주는 건 천계의 규율에 위배돼서요. 제 조언은 여기까지.”
“뭐 인마?!”
끊어도 X발 하필이면 가장 중요한 곳에서 끊어? 이 새끼 웹소설 장사 좀 해봤구나?
미네르바가 내 아찔한 얼굴을 보더니 대놓고 히죽거렸다.
“뭐, 열심히 찾아보도록 하세요. 혹시 알아요? 그쪽에서 먼저 죽여 달라고 찾아올지. 푸후후.”
“그럴 리가 있냐! 뭔 개소리야 진짜!”
내가 황당한 나머지 목청을 높였지만. 미네르바는 이미 옷매무새를 정돈하며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니 X발 야! 잠깐만 타임! 치사하게 그러지 말고 힌트 딱 하나만 더!”
“안 돼요. 안 줘요. 피곤해서 돌아갈 거예요.”
나는 연신 자비를 호소하며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미네르바는 불쑥, 가운데손가락을 드는 것으로 응수했다.
“아니 이런 X벌련이...!”
그런 욕은 또 어디서 배웠어. 우리나라 초딩들이 가르쳐주디?
이세계의 신한테 뻐큐를 먹을 거라곤 상상도 못해서 잠깐 말문이 막혀 버렸다.
“... 여기까지 와버렸으니. 이젠 도저히 막을 수 없겠네요.”
문득, 점점 희미해지기 시작한 똥털이 그런 말을 지껄였다.
나는 눈을 조금 크게 뜨고 그녀를 쳐다봤다. 그녀는 희미하게 웃고 있었고. 한없이 슬픈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러면 최대한... 후회가 남지 않도록 열심히 해보세요. 당신이 선택한 길이니까.”
화아악! 멈춰 있던 푸른 먼지들이 일거에 흩날려 하늘로 날아갔다.
미네르바는 그 먼지에 날려 사라진 마냥, 이미 신형이 온데간데 없이 허물어져 있었다.
‘... 마지막에 뒷맛 존나 구리게 만드네. X팔.’
아무튼 외모 말고는 마음에 드는 구석이 없는 여자다.
뭐... 저쪽은 외모까지 포함해서 내 일거수일투족을 싫어할 테니. 딜교환은 내 승리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눈살을 잔뜩 찌푸리며 병자마을의 입구를 지나쳤다.
* * *
병자마을은 유난히 적막했다.
실제로는 이제야 고작 하루가 지났을 뿐인데. 왠지 엄청나게 오랜만에 찾아온 느낌이었다.
“... 후. 드디어 여기로 돌아왔구나.”
죽은 듯이 고요한 가운데, 공기 중에는 온통 새파란 먼지들이 몽환적으로 흩날리고 있다. 흡사 꿈속의 한 가운데를 걷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목 잘린 마스코트 동상을 가로지르는 순간. 나는 고개를 돌렸다.
“...?”
소리가 들려왔다.
철벅, 처벅. 질척한 땅을 단단한 무언가로 후벼파는 소리다.
돌아간 시선 끝에는 스칼로가 있었다. 성당 천막 앞에서 눈물을 줄줄 흘리며 삽으로 땅을 파는 중이었다.
“스칼로.”
나는 천천히 그곳으로 다가갔다.
스칼로도 내 인기척을 눈치 채고 고개를 들었다. 스칼로가 황급히 눈물을 닦아내며 짐짓 반가운 체를 해왔다.
“... 오오. 친구... 왔구먼.”
처벅, 철벅. 여전히 두 손으로는 삽을 놀려 땅을 파내고 있었다. 나는 그 구덩이 옆으로 슬쩍 고개를 돌렸다.
산처럼 까마득하게 쌓인 푸른 먼지더미가 있었다. 나는 잠깐 멍해져서 중얼거렸다.
“성당에 있던 것들... 전부 빼온 겁니까?”
“그렇다네.”
비참하게 가라앉은 목소리였다.
나는 설마 싶어서 재차 물었다.
“전부... 하나도 안 빼놓고, 모두 이렇게 됐어요?”
“여기는 증상이 약하든 심하든, 흑혈병자만 모이던 마을이니까 말이야. 허헛.”
“... 묻어주려고요?”
“그래. 그렇다네.”
그러나 스칼로가 열심히 땅을 파는 와중에도, 먼지더미는 불어오는 바람에 실려가 조금씩 하늘로 흩어지고 있었다.
묻어주긴 개뿔. 진심 아무 짝에도 의미 없는 짓이었다. 알고는 있다만 굳이 산통을 깨진 않았다.
내가 침묵을 지키자 스칼로가 너털웃음과 함께 말했다.
“정말로, 알테어와 탈주용사들을 물리치고 자드키엘을 살해했나 보구먼. 친구. 자네의 거침없는 행동력에는 놀라기만 한다네. 커허헛.”
“... 말했잖아요. 나는 한다고 했으면 무조건 한다니깐.”
“그래. 그래... 정말 그렇군. 정말로 그랬어....”
나는 고개를 무겁게 끄덕이는 걸로 응수했다. 딱히 해줄만한 농담이 생각나지 않아서, 재밋대가리도 없는 소리를 하고 말았다.
둥글게 굽은 스칼로의 등을 쳐다보며 툭 물었다.
“이제 어쩌실 겁니까.”
스칼로는 땅을 파던 손조차 멈췄다. 멍하니 아래를 쳐다보며 한동안 입을 닫았다.
그는 공허한 노란 눈으로 나를 응시하더니, 지친 기색으로 웃었다.
“내가 이제 어떻게 하면 좋겠나. 친구.”
익숙한 질문이었다.
지나간 전생의 언젠가, 성당 천막에서 했던 그 대화였다.
하염없이 울며 그렇게 묻는 스칼로를 쳐다보자니. 문득 한 가지 사실이 뇌리를 스쳤다.
‘이 스칼로는... 그 대화를, 잊어버린 스칼로구나.’
성당에서 나보고 가르침을 달라고. 사는 이유를 알려달라고 호소했던 그였지만.
그것은 내가 루시 앞에서 자살함과 동시에 없던 일이 되었다.
‘내가 자살해서 득봤구만요. 스칼로.’
10년치 안주거리 흑역사를 얼떨결에 내가 덮어줘 버렸군. 이래서 목숨은 소중히 해야 한다니까.
나는 쓴웃음을 짙게 머금으며 대꾸했다.
“산 사람은 살아야죠. 스칼로는 뭘 하시든 잘할 거라 믿습니다.”
“... 커허허. 말이라도 고맙군.”
털썩. 스칼로가 그 자리에 무릎을 꿇었다. 더는 서있을 힘도 없다는 듯이.
삽자루를 움켜쥐고 어깨를 가늘게 떨고 있었다. 그는 소리를 죽인 채 꺼이꺼이, 하염없이 울었다.
“... 쯧.”
마음이 심란하다.
친구의 오열을 더는 보고 있기 힘들었다. 뭐라도 하지 않으면, 답답해서 미쳐버릴 것 같았다.
나는 멸망의 대검을 움켜쥐고 힘차게 뽑았다.
“제가 살던 한국이란 곳은 땅덩어리가 좁아 터져서요. 땅 없는 흙수저들 사이에선 화장(火葬)이 유행했습니다.”
대검의 표면을 손끝으로 스윽 긁었다. 손가락 궤적을 따라 멸망의 화염이 치솟았다.
나는 그것을 먼지더미에 겨누었다. 불꽃의 음영이 이글거리는 스칼로의 등짝에 통보했다.
“꼭 묻어줘야 직성이 풀리겠다면, 안 하겠습니다.”
“...... 아니. 그런 건 아닐세.”
“좋습니다.”
나는 망설임 없이 검을 휘둘렀다. 화르륵! 멸망의 화염이 먼지에 옮겨 붙었다.
삽시간에 걷잡을 수 없이 불길이 치솟았다. 푸른 먼지를 집어삼킨 멸망의 화염은 은은한 푸른빛을 띄었다.
먼지의 정체가 원래 인간이어서 그런가. 유난히 거세고 난폭한 불길이 하늘로 휘날렸다.
“가시죠. 곧 마을 전체가 삼켜질 겁니다.”
나는 지옥염처럼 이글거리는 불꽃을 뒤로하고 말했다.
스칼로는 내가 내민 손을 붙잡고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그를 이끌고 마을을 빠르게 이탈하기 시작했다.
“.......”
얼마나 걸었을까. 슬슬 불길이 번질만한 영역을 한참 벗어났을 때쯤.
스칼로는 미련이 남는지 자꾸 뒤를 돌아봤다. 덕분에 나도 슬쩍 마을 쪽을 간간히 돌아봤다.
시야 너머로 온통 새파란 불꽃만이 이글거렸다.
“... 거 잘도 타네.”
성당이었던 거대한 천막. 내가 잠시 일행들과 휴식을 취했던 천막까지 모두 집어삼킨다. 환자의 곡소리가 들끓던 병자마을은 더 이상 그곳에 없었다.
시선을 슬쩍 들었다. 불꽃의 난폭한 기류 때문인가. 푸른 먼지들이 허공에서 격렬하게 춤추고 있었다.
나는 그 아름다움에 취한 양 입을 열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요. 난 당신만큼은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스칼로.”
스칼로의 젖은 눈이 나를 향했다. 나는 그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제가 알고 있는 모든 걸 말씀드리겠습니다.”
나는 그렇게 선언하고는, 그대로 행했다.
정말 내가 아는 모든 것을 알파에서 오메가까지 전부 불었다.
이 세상의 뒤틀린 역사. 용사들이 대거 소환된 진짜 이유. 유리아의 선조인 루나 루에바가 했던 예언의 내용. 다시 말해, 오래전부터 마녀가 준비해 온 계승의 의식.
그리고, 이 개X같은 역병의 진짜 원인과 운터란트의 더러운 비밀까지.
“저도 판단은 스칼로한테 맡기겠슴다.”
내 말을 듣던 스칼로의 눈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눈물은 어느새 바싹 말라 있었다.
나는 반응 없는 스칼로 앞에서 염불 외듯 중얼거렸다.
“페니와 알드콘의 복수를 하러 레비아탄에 돌격하시든. 마녀 계승 의식을 진행하려 저를 돕든. 아니면 그냥 전부 모른 척하고 평범하게 사셔도 좋고. 친구의 결정을 존중하겠습니다.”
나는 그 자리에 망부석처럼 박혀 있는 스칼로에게 꾸벅, 고개를 숙였다.
정중하게 예의를 갖춘 인사였다.
“어느 쪽이든 개족같이 힘들 거라는 것만 알아 두십쇼. 저는 개인적으로 마지막 선택지가 제일 족같았습니다. 그래서 뭐라도 해보겠다고 백방으로 지랄하는 중이구요.”
레비아탄에서 잭 오스올드는 나한테 이런 절절한 동작으로 예의를 갖췄었다.
그가 인사하던 심정을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응원하겠습니다. 무슨 선택을 하시든 스칼로는 나한테 영원히 영웅이에요. 내가 가장 도움이 필요할 때... 나를 도와줬던 유일한 사람이니까.”
“.......”
“먼저 가볼게요. 난 레비아탄에 좀 볼일이 있습니다.”
나는 스칼로를 내버려두고 먼저 가이서스를 향해 터덜터덜 걸음을 옮겼다. 스칼로는 그 뒤로도 한참을 움직이지 않았다.
내 시야에서 사라지기 직전까지. 그는 허공에 춤추는 푸른 벚꽃을 응시할 뿐이었다.
“인생이 참, 거지발싸개 같네요. 진짜로.”
나는 스칼로의 굽은 등에 대고 혼자 중얼거렸다.
이세계고 한국이고 똑같이 족같은 걸 보니. 사람 사는 게 원래 이리 족같은가 보다.
X발.